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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46화 (146/202)

< 73.(2) >

73.(2)

이른 아침, 덕수궁 돌담길을 거니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아론 테이트와 천우였다.

아론 테이트는 웃는 얼굴로 천우에게 말했다.

"정취가 꽤 좋은데? 말년엔 한국에서 지내봐야겠어. 수도 말고는 이런 고성이 없나?"

"굳이 고성을 찾으신다면 공주나 부여로 가시면 될 겁니다."

"오호, 그렇군."

"아무튼 간에 노후대책 세우러 오신 건 아닐 것이고, 어째서 한국까지 오신 겁니까?"

"그 급한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그럼 사람이 어디 가겠습니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론 테이트는 쓰게 웃으며 천우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사진 속에는 세르게이 게라시모프가 버나드 로드리치가 접선하는 모습이 들어 있었다.

천우는 놀란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허억! 이건···?"

"내가 살다, 살다 이렇게 황당한 일은 또 처음이네. 설마하니 자유당에서 러시아와 접선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네. 우리는 당연히 연방당에서 줄을 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만약 자유당이 러시아와 접선한다면 그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었다.

바로 나토와 러시아의 대립이었다.

아론 테이트는 천우가 속으로 급히 추론한 것과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토와 러시아의 대립으로 이득을 챙기려는 새끼들이 있는 모양이야. 나토가 조지아를 포함시킨 이후, 계속해서 전쟁을 자극하는 행위를 이어나가고 있는 거지."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데요?"

"만약 유혈사태 직전에 상황이 종료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 피가 튀고 폭탄이 떨어져줘야 진짜 돈을 벌 수 있거든."

"···그런 미친놈들이 정말로 있었네요."

지금까지는 나노머신 내에 정보가 별로 없어서 러시아와 미국의 내통자가 있어도 잘 캐치할 수 없었다.

허나 이제는 두 인물의 신상정보를 손에 넣으니 마샤의 인물도감이 첨예한 거미줄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세르게이 게라시모프는 일전에 석유관련 비자금 스캔들로 수차례 홍역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송유관 문제를 가지고 국회에서 설전을 벌이던 도중,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었지요.

'아하! 러시아 국회의원 박투사건을 말하는 거야?'

-상대도 KGB출신이라서 정말 볼만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죠.

인터넷에선 2007년 벌어졌던 러시아 국회의사당 맨투맨 박투 사건을 두고 '불곰국의 꼴불견'이라고들 말하곤 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세르게이 게라시모프인 것이다.

-당시에 박투사건이 일어난 것은 조지아의 송유관에 전 재산을 투자했던 세르게이 게라시모프가 조지아의 남오세티야 압박에 대한 대항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주장했었기 때문이었지요.

'전 재산을 묻어?'

-조지아가 평생 러시아에게 기대어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SVR에서 모든 돈을 전부 털어서 송유관 사업에 투자한 겁니다. 헌데 조지아가 오세티야를 끝까지 놓지 않으며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발버둥을 치니 똥줄이 탈 수밖에요.

'뭐야, 결국 돈 때문에 그 지랄을 한 것이란 말이야?'

-그런 셈이죠.

'어디를 가나 국회의원들은 왜 그렇게 천태만상인지 모르겠군.'

-가진 것이 많으면 그걸 놓기 싫은 법이죠.

'아무튼 간에 돈 때문에 국회의사당에서 주먹질을 할 정도면 나토와 러시아의 전면전을 부추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어차피 러시아와 조지아는 싸워보나마나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쟁 중인 미국이 해군력을 동원해봤자 거기서 일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 SVR출신의 화려한 정보망을 가지고 아주 나토연방을 가지고 놀 생각인 겁니다.

'미래에 내가 살던 때에도 놈이 이런 혐의를 받았던 적이 있었나?'

-전쟁이 터진 이후엔 이미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 된 지 오래였습니다. 혐의가 있어도 크렘린에서 묻어버리면 끝이었죠.

'으음. 그렇다면 뭐, 지금도 건드리기 힘든 사람인 것은 매한가지잖아.'

-그런 셈이긴 하죠.

천우는 인물도감을 통해서 게라시모프와 로드리치의 주변 인물들을 쭉 훑어보았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미래의 정치인들은 거의 필수적으로 SNS를 했었기 때문에 인물관계망울 구성하기가 편했다.

관계망을 살펴보니 로드리치는 중도보수진영이긴 하지만 미국의 극단주의 우파와 꽤 많은 교류를 맺고 있었다.

한데 반대로 당내 중도보수진영과는 뭔가 좀 껄끄러운 구석이 있었다.

얼마나 트러블을 자주 일으키면 자유당의 말썽꾸러기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였다.

"잠깐, 그 두 사람 말이에요."

"응?"

"공통점이 있지 않아요?"

"공통점이라니. 둘 다 쓰레기라는 거?"

"그래요, 재활용이 안 되긴 하죠. 하지만 그것 말고요. 그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꽤 많은 적을 주변에 두고 있어요. 정적이 많다는 건 트러블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죠."

"으음, 맞아. 일찌감치 게라시모프는 국회의사당에서 쌍욕을 퍼부으며 설전을 벌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고 로드리치는 같은 당원에게 싸대기를 한 대 얻어맞았었지."

"바로 그거에요!"

"바로 그거라니?"

"이제 곧 HC에게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하셨죠? 우리는 그걸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순간, 아론 테이트의 눈이 반짝거렸다.

"어떻게 말이야?"

"이이제이라고, 그런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 오호, 자네 역시 머리 좀 돌아가는군."

"가장 기본적인 병법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천우는 아론이 워낙 잡학다식해서 사자성어쯤 읊는 것쯤은 놀랍지도 않았다.

사실, 그는 사서삼경을 독파한 사람이기도 했다.

물론 천우가 그런 사실을 알 리는 없었지만, 그만큼 아론은 아는 것이 많았다.

"러시아 중진의원 중에 블라디미르 하리토노프라는 사람이 있어. 게라시모프와는 KGB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 러시아 육군에서부터 더플백 같이 매고 다닌 동기라고 하더군."

"그 사람은 주먹다짐을 했던 그 사람 아니었습니까?"

"맞아. 동기는 동기인데 서로 사상이 달라서 아주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 물어뜯어서 안달이지. 만약 자네가 생각한 것처럼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면 이만 한 놈도 없을 거야."

"헌데 어째서 하리토노프 의원이 오랑캐 인 겁니까?"

"후후, 겉으론 평화주의자 운운하지만 그 새끼도 별반 다를 거 없는 새끼야. 소련이 해체되던 시절부터 크림반도를 반환해야하네 마네 말이 많았던 놈이지. 심지어 크림반도로 러시아 상비군을 배치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었어."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령 자치공화국이잖아요. 그런데 무슨···."

천우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하다가 말문이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2014년도에는 결국 러시아가 사실상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함으로서 러시아 연방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런 조처가 어디 하루아침에 이뤄졌겠는가.

천연자원의 가치가 상승하면 상승할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러시아고 그 국력이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동유럽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모르겠나? 미국이고 영국이고 러시아고 다 같은 미친놈들이야. 거기서 정상을 찾는 건 망망대해에서 잃어버린 반지 찾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렇다면 뭐, 일이 훨씬 더 쉽게 풀릴 수도 있겠네요."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면 그럴 수도 있지."

주먹질까지 서슴지 않는 저들을 싸움붙이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는 곧이어 버나드 로드리치에 대해 알아보았다.

로드리치는 워낙 적이 많아서 굳이 누굴 특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로드리치는 뭐, 러시아와 내통한다는 정보 하나만 풀어도 물어뜯을 사람이 한 트럭이네요."

"으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뭔가 좀 상황이 거시기 해 질 것 같은데."

"왜요?"

"아아, 자네는 모르겠군. 로드리치의 처가가 영국의 무기상이잖아. 나토에 보급되는 무기가 미국에서만 조달되겠나?"

"허어! 그랬었나요?"

"놈이 와이프의 호적을 판 후에 결혼하는 등, 아주 혈연관계를 숨기려고 별 지랄을 다해서 그렇지 그놈의 검은돈은 모두 처가에서 나오는 거야. 그러니 기를 쓰고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거지."

나토연방은 소속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되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러시아와의 전쟁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동, 북유럽에서 러시아의 압박을 받는 국가들이 방위력을 증강시키고 모병제에서 징집제로 전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노력에는 영국산 무기와 전투기를 가져다 무장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모르긴 해도 처가에서 런던의 지하에 묻어둔 놈의 비자금이 수 억 파운드는 될 걸?"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론 테이트는 천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자네가 그놈의 자금줄을 비틀어서 영, 미의 비난을 한 방에 몰아주었으면 좋겠어."

"제가요? 제가 어떻게···."

"나도 듣는 귀가 있어. MI5, MI6에서 자네를 가지고 자금세탁가를 털어대고 있잖나. 그때 슬쩍 숟가락을 좀 얹자는 거지."

역시 CIA는 정보력이 남달랐다.

허나 천우는 정보를 다룸에 있어 아주 신중하지 않으면 영국의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자네는 그냥 영국 정부가 시킨 일만 해주면 되는 거고, 나는 언론 좀 움직여서 그 빌어먹을 놈을 묻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오히려 이 일을 해주면 아마 재무성에서 자네의 볼에 키스마크를 남긴다고 난리일걸?"

"으음."

그는 천우에게 서류뭉치를 하나 건네주었다.

서류 안에는 CIA의 직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넘어온 자금이 버나드 로드리치에게 전달된 내역이 모두 들어 있었다.

"이걸 다 언제 구하셨습니까?"

"국토안보부에 슬쩍 흘려주니 알아서 털어주던데?"

"아아!"

"우리에겐 권한이 없지만 그들에겐 재무부를 털어댈 권한이 있거든. 국토안보부는 대통령이 만든 권력기관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으음, 그렇군요."

"아무튼 그걸 MI5에 가져다 줘봐. 아마 손뼉을 치면서 좋아할 거다."

CIA가 MI5와 공조수사를 하던 때도 이번 대선 전의 일이었다.

연방당의 재선으로 인해서 로버트 웜우드가 실세로 등극했고, 그로 인해서 MI5와의 관계도 상당히 소원해 진 상태였다.

"우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언젠가는 예전의 CIA로 돌아가서 영국의 정보국과 연계하는 유연하고도 머리 좋은 조직이 될 거라고."

"그러니까, 아직 CIA가 안 죽었다는 표식인 거네요?"

"그렇다고 보면 되겠지?"

천우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가 다리를 놓아드리죠."

"후후, 고맙군. 아마 이번 일만 제대로 해준다면 자네는 CIA와 MI5, 양쪽에서 선물을 받게 될 거야."

"CIA에서요? 연방당이 가만히 있겠어요? 아니, 그전에 일단 CIA국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론 테이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 이제 곧 바뀔 테니까."

천우에겐 이득, 아론 테이트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가 바로 작금의 이 사건이었다.

< 73.(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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