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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2005년 12월.
미 연준의 금리 추가 인하 정책이 시행되었다.
유가폭등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하여 경상수지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재무부는 금리를 추가로 끌어내려 경기부양책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주장은 4개월 전부터 연준을 꾸준히 압박하고 있었고, 추가 금리인하는 안 된다고 버티던 연준의장이 결국엔 백기를 내걸게 된 것이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양적완화가 함께 시행되었는데, 그로 인해 1조 2,000억 달러가 시장에 풀렸다.
현재 미국의 경제 저성장은 심각한 수준이었음으로 미국 혼자만의 양적완화 만으로는 달러화의 하락을 조장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G7국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기준금리 인하정책과 함께 G7국가들은 일제히 달러화를 방출하였는데, 그 양까지 합친다면 물경 7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미국의 이런 엄청난 달러화 인하 정책 덕분이었던지 2006년 1월에는 드디어 달러화 고공행진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저금리에 저 달러로 인하여 채권시장은 일대 호황을 맞았고 미국의 경상수지가 점점 살아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허나 전문가湧? 미국? 양적완화를 淪漫? 급? 불을 꺼놓긴 했지만 결국 이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근본적인 적자를 해결하지 않고 무턱대고 통화완화 정책을 펼친 것은 가파른 인플레이션만 부추기는 꼴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2007, 2008년에 경제회복이 확실시 되지 않는다면 디플레이션이 생겨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저성장의 지표나 다름이 없는 디플레이션이 일어난다면 세계경제가 출렁일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었다.
2006년 2월.
미국 CNN에서 다시 천우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간판앵커가 아닌 일반 경제부문 기자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멜리사 앤더슨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천우입니다."
서로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멜리사 앤더슨은 차기 간판앵커로 거론되는 인물인데, 특종에 대한 엄청난 집착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다만, 그녀는 미인계로 누군가를 뒤흔들어 이익을 편취하는 등의 악질기자는 아니었다.
다분히 공격적이고도 비판적인 기사를 실어 시청자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탁월한 재능이 있을 뿐, 중상모략에는 재능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다.
-이 여자라면 주인님께 진심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인물평점 5점 만점에 5점입니다.
'오호, 그렇게까지 평점이 후하단 말이야?'
-앞으로 쭉 알고 지내서 나쁠 것 없을 것 같아요. 주인님과의 시너지 효과도 S등급으로 최상급입니다.
'이런 사람이 먼저 인터뷰를 요청해오다니, 나도 운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인물도감은 천우와의 시너지 수치도 나타내 주는데, 멜리사 앤더슨은 그중에서도 거의 탑 5위 안에 들 정도로 점수가 높았다.
천우는 그녀에게 환한 미소로 말했다.
"미인이시네요."
"그쪽도 만만치는 않으신데요?"
시작부터 칭찬이라 그런지 첫 대면보다는 그녀의 표정이 많이 풀어진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는 곧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사전 리허설 같은 건 안 하십니까?"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떤 썩을 년과는 다르거든요."
"아아···."
"아무튼 간에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해주시면 됩니다. 어떤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미화한다면 인터뷰에서 편집할 수 있다는 사실, 인지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좋습니다."
이번 인터뷰 역시 라이브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자, 슛 들어갑니다!"
타악!
PD가 손바닥으로 슬레이트를 치자, 중계카메라가 돌기 시작했다.
멜리사 앤더슨은 능숙하게 천우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늘은 HC그룹의 최천우 씨를 모시고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최근 달러화와 함께 엔화의 하락이 예상되고 있는데,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일본의 정치상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서 약간의 기복은 있겠습니다만, 사실상 엔화시장에 큰 호재가 없다면 110엔 대에서 고착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문가들은 엔 달러 환율이 110엔 대에서 90엔 초반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달러화 하락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허나 천우의 생각은 달랐다.
"달러화의 하락은 무역상대국의 환율에 영향을 미쳐 상승국면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최근 일본의 경제성장부진으로 인해 엔화가 하락국면에 처하면서 그 반대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엔과 달러의 동반하락이 예상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엔화의 고착은 미국으로선 치명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경기는 언제나 호황일 수가 없다.
한 때 일본이 여명정책을 펼쳐 성공시키긴 했으나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제조업의 약세 및 퇴보로 인하여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파도처럼 말이다.
이제는 일본이 생산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겪게 될 수도 있었다.
"최근 일본 정부에서 생산성 향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그 성장세는 상당히 느린 편입니다. 아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일본의 성장은 크게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엔화절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달러, 엔의 동반하락은 분명 세계적인 경제침체를 가지고 올 것이다.
더군다나 엔화의 하락이 의도적인 하락국면의 조장이 아닌 경제침체로 인한 자연적 현상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엔화의 하락은 주변 국가들에겐 거의 재앙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렇다면 최천우 씨, 유로화는 과연 어떤 국면에 처하게 될까요?"
"강세겠죠."
천우는 유로화의 강세를 예견했다.
이는 전생의 2006년도보다 훨씬 더 급격한 상승국면이었고 천우는 그것을 ECB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전 세계적인 양적완화로 인해 아마 달러화는 절하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유로화의 상승곡선은 저지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아마 달러당 1유로를 넘기는 시대가 머지않았습니다."
"유로화가 그 정도로 상승국면이라면 유럽의 경제는···."
"파국이겠죠."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경제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고, 그것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도래를 예견하는 일이었다.
천우는 뉴욕증시가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분명 세계의 주가지수는 널을 뛰고 있음을 강조했다.
"지금부터라도 미국 증시가 만들어낸 거품에 대비해야합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이 상당히 낙관적인 것과는 대조되는군요."
대부분은 1% 이하로 주저앉은 금리로 인해 미국이 엄청난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며 필승을 자신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이 0%대까지 금리를 낮춘다고 해도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전문가들의 미국불패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예언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멜리사 앤더슨은 천우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사실을 미국 정부에서 상당히 싫어할 것 같은데요?"
"좋아하지는 않겠죠. 허나 이것은 저라는 사람이 가진 작은 견해에 불과합니다. 소수의견, 저의 생각은 소수의견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을 폄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켜세운 것도 아니었다.
천우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소신만 밝힐 뿐, 중립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인터뷰는 마무리 되었다.
허나 멜리사 앤더슨은 뭔가 영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조금 더 연방당을 깎아내릴 수도 있었잖아요?"
"저는 언제나 중립을 지향합니다."
"그렇다면 해도 미국의 현재 정책이 너무나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온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지 않았나요?"
"현명한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현명하지 않다는 건가요?"
"저는 선택권을 준 겁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강요에 따른 투자를 하면 안 될 권리는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좀 실망이네요."
그녀는 천우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오히려 천우보다 훨씬 더 고지식하고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여자와의 시너지 점수가 S등급이라고?'
-그건 조금 더 두고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나노머신은 천우가 어떤 인물과 조우했을 때 하는 행동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대략적인 시뮬레이션을 실시한다.
다만, 그것은 천우가 굳이 요구하지 않는 이상 꺼내지 않을 뿐이었다.
물론 그게 100% 맞을 것이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
멜리사 앤더슨은 천우의 면전에 대놓고 욕을 했다.
"좀팽이 같으니."
"뭐, 뭐요?"
"다음번엔 조금 더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어요."
그녀의 이 날카로운 성격.
천우는 멜리사와 자신은 성격이 정반대라고 생각했다.
'정말 시너지 효과가 S등급 맞긴 한 거야?'
-저는 페로몬의 주파수가 잘 맞는다곤 하지 않았습니다.
'뭐야, 그럼 인간관계로선 썩 좋지 않은 궁합이라는 거야?'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이 있고 여러 가지의 조합이 존재합니다. 주인님과 멜리사 앤더슨은 비즈니스 적, 혹은 정치적 동맹이 될 수 있는 사람이죠. 인간적인 조합으로는···.
'대충 어떤 관계인지 감이 오는군.'
천우는 그녀에게 개인명함을 건네주었다.
"나중에 또 봅시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먼저 명함을 주시네요. 다음번에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릴게요. 오늘의 좀생이 같은 짓을 또 다시 하지만 않는다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연락합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여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래도 천우는 AI가 만들어낸 시뮬레이션에 뭔가 있겠거니, 싶어서 한 번 두고 보기로 했다.
CNN의 인터뷰가 방송된 이후, 유로화의 강세가 번졌다.
엔화는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보합세로 돌아섰던 것이 하루 만에 깨지고 말았다.
천우의 이런 발언은 구미의 투기세력을 미국으로 끌고 들어오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허나 미국 재무부는 곧장 철벽을 쳐버렸다.
미국으로 들어올 투기자본을 방어할 통화관리법 개정으로 투기시장 규제에 나선 것이었다.
근래 20년 동안 이토록 보수적인 규제를 보인 적이 없었던 미국이었기에 투기세력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일반인 투자세력까지 축출 당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해서 미국은 곧바로 투기자본의 눈길을 나프타로 돌려버렸다.
2006년 3월 1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영국의 나프타 가입표결이 시작된 것이었다.
< 72.(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