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43화 (143/202)

< 72. >

72.

안톤 슈베르트는 천우에게 곧 원자재 가격과 천연가스 가격이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세계의 정보기관들도 쉽사리 장담하기 힘든 사실이었는데, 안톤은 그 사실을 천우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고 있었다.

"남오세티야의 독립문제가 결국은 전면전으로 번질 겁니다."

"조지아 정부가 남오세티야를 공격할 것이란 말인가요?"

"결국엔 그리 될 겁니다."

"으음."

"2004년, 조지아 대통령 리카슈발리아가 남오세티야와 압세트 공국의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그 전에 조지아는 나토연방에 가입했고, 이는 여차하면 미군이 흑해로 함대를 파견해 러시아와 한 바탕 전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천우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렇게 정확하게 미래를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뭐지?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는 거야?'

보통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지아와 러시아의 유혈사태는 2008년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일어난다. 헌데 그걸 이 시대에 사는 사람이 어쩜 이리도 자세하게 내다볼 수 있을까.

천우는 그 근거에 대해 물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또 다른 근거가 있습니까?"

"이미 조지아는 터키, 아제르바이잔과의 교섭을 통해 본격적인 유럽진출라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송유관 및 철도구축으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청사진을 구축한 것은 아주 유명한 일화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흐음."

"그리고 또 하나, 러시아에서 나토연방과의 갈등국면을 외교에 이용하려 한다는 극비문서가 있습니다."

"극비문서요···?"

"기름 값을 더 올릴 수 있도록 판을 짜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러시아는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의 가격이 오르면 가장 먼저 수혜를 받는 곳이고 전쟁은 천연자원의 가격이 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악재이자 호재다.

게다가 송유관시설의 요충지인 남오세티야의 문제를 전쟁과 함께 해결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터였다.

안톤 슈베르트의 주장은 미래에서 온 천우가 보기엔 상당히 타당하고도 설득력 있는 얘기였다.

허나 문제는 이 사람이 위의 정보를 어떻게 얻었고 왜 이런 엄청난 얘기를 천우에게만 몰래 전달하느냐, 바로 그것들이었다.

게다가 이는 극비문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우는 이제 그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졌다.

"SVR과 연이 닿아있으신가요?"

천우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러시아 정보국과는 아예 안면도 없습니다."

"그럼 어찌 이런 예상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는 웃으며 답했다.

"하하, 제가 미래에서 오지 않은 이상에야 이런 사실을 알아낼 수는 없었겠죠."

"그렇다면···."

"제 3국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런 대박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천우의 머리에 떠오르는 조직이라고 해봐야 CIA나 MI6정도뿐이었다.

허나 그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새로운 조직의 이름을 거론했다.

"몰타입니다."

"어, 어디요?"

"몰타요."

"그렇다면 영연방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정세가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어느 정도 분쟁을 예상하고 있겠죠. 하지만 아마도 확신은 없을 겁니다. 제가 입수한 극비문서가 없는 한은 말이죠."

"하지만 몰타에서 그런 정보를 어떻게 입수했단 말입니까? 미소회담이 열린 것 말고는 러시아 쪽과는 상관도 없는 나라인데요."

"자세한 입수과정은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몰타에서 석유수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저에게 이 안건을 만 달러에 넘겼죠."

"이런 안건을 고작 만 달러에···?"

"가지고 있다가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한 거죠."

"허어!"

"아무튼 간에 이는 우리가 갖는 재계에서의 위치를 몇 단계나 조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천우는 앞으로도 어떤 분쟁이 무슨 효과를 만들어낼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안톤 슈베르트는 천우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서 HC를 또 다른 국면으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에게서 대량의 지분을 수령하셨다고요?"

"최 씨 일가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가보군요."

"이 업계에 있다 보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이죠.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는 천우의 앞에 세계지도를 펼쳐놓았다.

안톤 슈베르트는 볼펜과 형광펜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선은 중국에서 넘어왔다.

"이미 중국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 자원개발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건 누구보다 회장님이 더 잘 아실 테죠."

"그건 그렇습니다. 80년대부터 일찌감치 중국의 자본이 아프리카로 유입되고 있었죠."

"본격적인 경제개방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중국의 자본이 아프리카로 넘어갔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이제 곧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캐서 본국으로 실어 나를 것이라는 소리겠지요?"

안톤은 중국에 이어 한국, 일본, 기타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미국에서도 선을 이어왔다.

"중앙아프리카는 천연자원의 보고로 일컬어집니다. 나이지리아가 빠르게 도상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것과 관련이 있죠."

"흐음."

"다시 말해 이곳은 르네 모보르뉴의 블루오션 전략과 관련이 깊으면서도 레드오션인 포화시장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는 중앙아프리카로 이어졌던 선을 하나로 묶어서 모로코로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스페인과 연결시킨 후에 '공업단지'라는 글귀를 적어놓았다.

"모로코 북부와 스페인 남부에 공업단지와 항만단지를 건설합니다. 이는 엄청난 이점으로 작용할 것인데, 특히나 유럽에서도 공업화의 중앙집권화를 선도했었던 영국이나 프랑스로의 자본집중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으음!"

모로코의 풍부한 자원과 스페인의 지역적 이점, 그리고 양국의 인력자원이 합쳐진다면 분명 엄청난 시너지가 폭발하게 될 것이었다.

안톤은 천우가 스페인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은 김에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면 필승을 거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천우가 생각하기에 그건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뭐, 다 좋습니다. 하지만 모로코와 스페인의 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그래요. 하루아침에 좋아질 관계는 아니죠."

모로코와 스페인은 영토분쟁으로 인해 관계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한일관계가 그렇듯, 영유권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게 될 경우엔 어지간해서는 그 관계를 회복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허나 안톤에게는 나름대로의 비책이 있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모로코와 스페인이 영유권분쟁 만으로 싸우겠습니까? 모로코로 몰려든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스페인으로 밀입국 후에 불법취업을 일삼으니 문제가 심화되는 것이지요."

"뭐, 그건 그렇죠."

"우리가 그 문제를 좀 해결해줘 봅시다."

"으음."

"최근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 그게 다 제조업의 부재 때문인데, 스페인은 경제위기를 해소해서 좋고 모로코는 난민과 밀입국 문제를 해결해서 좋고.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닙니까?"

천우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스페인에 제조업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나라든 간에 생산성이 떨어지면 경제는 언젠가 무너지게 되어 있고, 아무리 현금을 많이 보유해도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처럼 생산성이 높은 나라는 드물다.

제조업을 버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도 없지만 생산성 향상이 말처럼 쉬운 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었다.

허나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제조 산업을 육성시켜 성공을 이루기만 한다면 또 다른 신화를 써내려 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스페인의 제조업을 육성시키기 위해선 국제분쟁부터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거죠."

천우는 가장 원론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허나, 안톤의 생각인 약간 다른 듯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우리가 반쪽짜리 동맹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반쪽짜리 동맹이라?"

뭔가 대단한 비책이라도 있는 것일까.

천우는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

늦은 밤.

브루스와 미카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스페인과의 사업에 관심이 많으세요. 그대로 포르투갈까지 진출하고 싶어 하시죠."

"그래서 천우를 데리고 가셨군요."

"슈퍼보이라는 이름을 이용한다면 우리 가문과 체스터 카렐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슈베르트 가문은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중역 가문이지만 안톤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독자적 사업을 통해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미하엘 슈베르트는 안톤이 자신의 뒤를 이어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건 분명 개인적인 욕심에 불과했다.

다만, 안톤 슈베르트는 체스터 카렐 그룹과의 인연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전체주의적 시선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미카는 브루스가 체스터 카렐 센트럴 그룹의 회장직을 인수하게 된다면 반드시 가문 중심적 마인드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정략으로 맺어지면 개개인은 사라지고 단체만 남을 거예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뭐, 상관없습니다. 저 역시 가문이 없고선 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한 가지.

어떻게 해서든 두 가문을 이어 시너지를 발휘하려는 안톤 슈베르트를 이해해줄 것.

그것만이 결혼조건이었던 것이다.

미카는 확신이 섰다.

'그래, 이 남자라면 아버지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브루스에게 정식으로 청혼했다.

"결혼해요.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럽시다."

마치 일종의 거래와 같은 말이었다.

서로의 조건이 맞는다면 혼인신고서에 도장 찍고 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브루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다만···. 저는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실질적인 수장은 천우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우리 그룹을 살렸고, 저를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한 가지 걱정이라면 그런 저의 생각이 그쪽 집안을 자극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긴 하네요.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라."

이런 경우엔 두 개의 태양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태양이 작은 태양을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다 좋은데 미카의 마음에 걸리는 단 한 가지라 할 수 있었다.

"그를 주군처럼 생각하시나요?"

"사실상 그가 회장이 되었으면 했지만, 천우는 아예 생각이 다른 것 같더군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 기업을 통째로 바칠 생각만 없으시다면야, 문제가 될 것 있겠어요?"

"으음, 그렇군요."

미카는 머리가 좋은 여자였다.

허나 그 머리를 비열하게 굴리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모든 것은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갑니다. 최천우 씨 역시 하나의 톱니바퀴에 불과합니다. 이를 테면 약간 더 큰 바퀴라고 생각할게요."

"더 큰 바퀴라."

"어차피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무너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초대회장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으니까요."

브루스는 당장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 7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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