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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39화 (13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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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상견례에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번 상견례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사실 이보다 더한 긴장감이 감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차기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회장을 결정하는 일과 최근 로버트 웜우드 가문의 횡포에 대항하는 협상안을 준비하는 등의 일이 첨예하게 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이 세 개의 가문이 생존을 위해 손을 잡는 것이기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오금자는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최근 체스터 카렐 센트럴 그룹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이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세 가문이 더욱더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다행이도 우리 천우가 센트럴 뱅크의 전미라 양과 교제 중인데다 HC와 센트럴 뱅크의 관계도 상당히 매끄러운 것으로 압니다."

오금자는 전미라의 손을 잡았다.

이제 이 집안의 안주인 자리를 그녀에게 넘긴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두 가문의 전통을 아주 소중히 여기며 끝까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그녀는 전미라의 손을 꼭 잡은 채 말을 이었다.

"또한, 저는 이 자리에서 아예 체스터 카렐 센트럴 그룹의 후계자를 정했으면 합니다."

"일전에 말씀하셨던 훈련은 거의 다 마무리가 된 겁니까?"

전 씨 일가의 질문에 오금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스승을 만나서 이제 막 꽃이 피고 있답니다."

"오오, 그것 참 희소식이로군요."

오금자는 가만히 앉아 밥을 먹고 있던 브루스에게 말했다.

"브루스, 좌중 앞에 일어나 인사해라."

"네, 고모할머니."

사람들은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브루스는 연일 좌천에 좌천을 거듭하다 이제 막 본부장에 복귀했을 뿐이었다.

허나 부회장 미하엘 슈베르트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으음, 그렇지. 아주 옳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전 씨 일가는 회장 후보가 약간 못마땅한 것 같았다.

아마로 브루스가 리처드 카렐의 아들이기 때문으로 보였다.

"적통이라고 한다면 학파의 정통을 계승한 최천우 군이 차기로 적당하지 않나 싶은데요."

전태중은 이제 곧 천우의 장인이 될 사람이라 그를 적극 회장으로 밀고 싶었다.

허나 미하엘 슈베르트의 생각은 달랐다.

"브루스 카렐 군이 최근 카렐 학파에 몸을 담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카렐 학파요? 브루스 카렐 군은 예일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작년부터 최천우 군의 문하로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경영학을 배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허어!"

"최근에는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죠."

미하엘 슈베르트가 브루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로 자신의 행보에 대해 설명했다.

"얼마 전, 최천우 회장이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 경영연구원의 고문 및 자문 담당 교수로 임용되면서 지도교수 자격이 생겼습니다. 해서, 저를 문하로 들이고 카렐 학파 명단에 입적시킨 겁니다."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배워야 한다면 배워야 삽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동물인데 그깟 대학에서의 직위가 중요하겠습니까?"

마침 브루스가 타 대학의 석사과정을 밟았다는 것이 학파 입적에 더욱더 큰 도움이 되었다.

같은 계열 대학의 제자를 대학원에 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 불문율이 아니던가.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카렐 학파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브루스를 적극 반기는 눈치였다.

물론, 그 안에는 천우를 본격적으로 카렐 학파의 전면에 세우겠다는 학장들의 계산이 들어 있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이로서 브루스가 체스터 카렐의 후계자가 되는 적통성은 갖춰진 셈이었다.

"혈통, 학파,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인물이죠."

"하지만 능력은요?"

이번에는 천우가 나섰다.

"능력은 충분합니다."

"최천우군···?"

"비록 완벽하다 말 하기는 많이 힘든 지경이긴 합니다만, 앞으로 발전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히려 아직 아무것도 그려놓지 않은 백색 도화지와 같다고나 할까요. 앞으로 이곳에 뭘 그리는지가 중요하지만 그 자질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여지는 없다고 봅니다."

그 어떤 누구의 말도 아니고 천우의 말이었다.

물론 자신이 키우는 문하의 학생이 뛰어나다는 것을 직접 인증하는 셈이니, 약간의 편파성향이 있을 수도 있었다.

허나 그의 말 한 마디가 갖는 파장을 생각한다면 결코 가벼운 발언은 아니었다.

"능력에 대한 검증은 끝난 겁니까?"

전태중의 질문에 천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서류에는 브루스가 얼마 전에 천우의 명령을 받고 시행했던 부동산 투자회사의 갱생과 체스터 카렐 그룹에서의 활약상 등을 담겨 있었다.

"충분합니다. 더 이상 논할 여지가 없지요."

"으음."

"부회장님, 이정도면 회장으로선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회장님께서 많이 다듬어 주셔야하겠지만요."

전태중은 여전히 브루스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판을 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는 여기에 몇 가지 제약을 걸기로 했다.

"좋습니다. 지지하죠. 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한 가지는 브루스 카렐 군의 업무에 대한 고문을 최천우 군에게 맡기는 겁니다."

"업무고문이라."

사람들이 브루스를 쳐다보았다.

제 아무리 제자라곤 하지만 연배가 비슷한 친척끼리 일일이 업무에 대한 검사를 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마치 학교의 숙제처럼 말이다.

허나 브루스는 상당히 쿨하게 넘겼다.

"사부님께서 직접 그리 해주신다면야 저로선 환영입니다."

"끄응···."

이로서 천우의 업무가 하나 더 늘었다.

이 일에 대해선 오히려 브루스가 상당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전태중은 약간 당황한 듯 잠깐 말을 끊었다.

'나름대로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군.'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브루스 카렐 군의 결혼을 우리 집안에서 주도했으면 합니다."

"결혼이요?"

"일종의 정략혼이죠."

"정략!"

"슈베르트 가문과 정략을 맺게 했으면 합니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일순간 흔들렸다.

슈베르트 가문은 전 씨 일가와 이미 사돈을 맺은 사이였다.

두 가문은 지금까지 제법 많은 의견충돌을 이어 왔지만, 상당히 끈끈한 부부의 연이 이어져 있었음으로 그 충돌은 단순한 이견으로만 분류되었던 것이다.

허나 카렐 가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카렐의 성 씨를 쓰는 사람이 부회장 일가와 연결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천우의 경우엔 한 다리 건너 오금자의 손자였고 브루스의 경우는 직계자손이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달랐다.

"슈베르트 가문의 미카 양이 상당히 미인에 재원이라고 들었습니다. 미스 독일 출신에 아나운서로 지내고 있다니, 이정도 신붓감이면 카렐 가문에게도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으음."

결정은 오금자에게 달렸다.

정략이라는 것은 결국 그 집안의 수장에게 결정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금자는 슬그머니 브루스를 쳐다보았다.

무념무상의 브루스.

그녀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뭐, 그러시죠."

"그렇다면 저희 전 씨 일가에서도 브루스 카렐 군의 차기회장 선출을 지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로서 카렐 가문의 직계혈통이 부회장 일가와 이어진 첫 번째 결혼이 성사되었다.

허태용은 대화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이제 복잡한 얘기는 얼추 끝났으니 다들 만찬을 즐기시죠. 간만에 저희 집안에서 힘 좀 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모두들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

허태용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미하엘 슈베르트가 불현듯 물었다.

"그나저나 허 씨 일가의 후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허허, 저희들은 그저 가문을 보필할 뿐입니다. 후계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지요."

"으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최가 상단의 지분 상당수가 허 씨 일가와 오셔필드 가문에 귀속된 것으로 압니다만."

얼마 전, 천우가 상속을 받는 과정에서 오셔필드 가문이 가지고 있던 신탁지분의 일부가 허 씨 일가에게 귀속되었다.

이는 허 씨 일가 역시 최가 상단 일가를 이루는 세력 중 하나였기 때문에 생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허태용은 웃으며 말했다.

"장남은 차남에게, 차남은 장남에게 그 책무를 떠넘기고 있어서 나중에 제비뽑기를 좀 해볼까 싶습니다."

"제비뽑기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승계를 왜 이렇게 뒤로 미루는 것인지.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허나 허태용은 그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허허, 아무튼 간에 중요한 건 우리 도련님이 장가를 드신다는 것이겠지요. 제가 좋은 날을 정해서 돌아오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가문에서는 남원에서 길일을 받아서 예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비록 두 번이나 건너뛰긴 했지만, 이번 결혼은 좀 제대로 길일을 정해볼까 합니다."

"그리 하시지요."

허태용은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했지만 표정만큼은 매우 기뻐보였다.

천우는 그런 그를 보며 막연한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도 결혼식 때까진 괜찮겠지?'

최충의에 이어 허태용까지 떠난다면 심적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 천우는 불안해져 있었던 것이다.

전미라는 그런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이따가 맥주나 한 잔 할까요?"

"···그럴까요?"

심란한 이 마음, 그녀는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

CIA 중앙지부에 한 차례 인사조정이 있었다.

국장인사는 조지 칼리스가 내정되었는데, 그는 웜우드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어려서부터 로버트의 옆집에 살았기 때문에 거의 사촌이나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웜우드의 집안 사람 인것이다.

이른 아침, 조지 칼리스의 수뇌부 소집이 있었다.

콰앙!

그는 아침부터 부국장 아론 테이트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러시아 정치인이 미국에 들어왔는데 우리는 그를 감시할 권한이 없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국토안보부에서 고위인사 감시권을 다 가지고 가는 바람에 우리가 더 이상 어쩔 권한이 없습니다."

"그놈의 국토안보부! 그 핑계를 대는 것도 이젠 지겹지 않은가?"

CIA와 FBI의 수사에 혼선이 생긴 것은 국토안보부의 창설 직후부터였지만, 6월 테러 이후에는 그 권한이 몇 배나 강화되었다.

이제는 테러 억제가 아니라 내부조사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가버린 것이었다.

심지어 CIA에서 특정한 테러용의자를 풀어주었던 사건과 애먼 사람을 납치해서 고문한 것은 가히 가관이라 할 수 있었다.

아론 테이트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국장님께선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무슨 말이 그런가? 나에게 지금 반항하는 거야?"

"사실, 상원 쪽 눈치도 있기에 우리는 움직이고 싶어도 못 움직입니다. 아무리 CIA라지만 백악관에서 작정하고 치면 어쩔 수 없이 목이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아론 테이트는 웜우드 가문이 꼽사리 끼었다는 걸 에둘러 깐 것이었다.

사사건건 꼽사리 끼면서 물을 흐리는 저놈들을 확 해치우고 싶지만 참는다, 그런 뜻이기도 했다.

조지 칼리스는 아론 테이트의 발언에 버럭 하면서도 한 발자국 물러섰다.

"험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무튼 지금 아랍에서 테러분자들이 또 움직일 지도 모르니까 감시 철저히 해! 나는 이만 퇴근한다!"

잠시 후, 조지 칼리스가 물러난 뒤에 수뇌부들이 아론 테이트를 향해 모여들었다.

이젠 파벌도 소용이 없었다.

조지 칼리스라는 고문관이 들어와 버렸으니 뜻하지 않게도 CIA가 하나로 단일된 것이었다.

"부국장님! 정말 이대로 가만히 계실 겁니까?!"

"젠장, 더 이상은 못 참겠네!"

아론 테이트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쉿. 조용. 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봐."

"······!"

이대로 당할 아론 테이트가 아니라는 것.

다른 건 몰라도 다들 그거 하나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 69.(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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