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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이라크전쟁에서 생긴 사망자만 4천 명이 넘었다.
부상까지 합친다면 3만 명···.
허나 문제는 이것이 군인에 국한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연일 유가는 폭등이요, 국제정세는 미국을 거칠게 비판하며 반미주의를 확산시키고 있었다.
현재 HC투자의 주가는 대략 15%정도 상승한 상태였다.
원자재 가격은 폭등했고 유가는 100달러 선을 유지, 전쟁으로 인한 무기 수출은 늘어만 가고 있으니 HC의 주가가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국제 금가 격이 바닥을 찍었다가 2003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기조로 인하여 상품 및 금시장으로의 핫머니 유입이 증가하였는데, 그 수준이 걸프전 직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치였다.
사실상 HC의 두 번째 전성기가 온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 보고서를 받은 사람은 바로 로버트 웜우드였다.
"끈질긴 놈들이네."
"생각보다 기반이 더 단단합니다."
"제기랄, 이래서 어디 항복하겠다고 백기를 내걸겠어요?"
로버트 웜우드는 HC를 포함한 범 체스터 카렐 일가와 현보일가를 끝도 없이 압박하고 있었다.
허나 이런 숨 막히는 압박 속에서도 HC투자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CDS, 나프타 등, 일반 기업이었다면 벌써 항복해서 배를 까뒤집었을 폭탄을 아무리 투하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보고서를 덮었다.
타악!
"조만간 다시 손을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라크 쪽이 걱정이네요."
이라크전쟁의 장기화, 이것은 연방당에게 있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실책이었다.
로버트 웜우드의 측근들은 그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쯤에서 이라크에 추가파병을 하시는 것이···."
"아프간에 나가있는 병력에 이라크의 원정군까지 합치면 몇 만입니까?"
"아아···!"
미국 내 거의 모든 병력이 아랍권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추가파병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이 운용할 수 있는 전투 병력은 15~20만 남짓이었다.
140만 상비군 중에서 지원병과를 제외한 숫자를 합치면 이 정도인데 부상까지 겹치니 병력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현 국방차관 일레이져 블랙은 증병을 제안했다.
"백악관을 압박해서 병력증강을 꽤하심이 오른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 증병을 하자는 겁니까?"
미국의 재정적자는 그 옛날 프랑스 왕가가 거론될 정도로 극심한 상황이었다.
전쟁에는 반드시 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에 걸친 두 번의 전쟁으로 엄청난 재정적자를 겪고 있었다.
저금리 정책으로 일단 경기호황을 꾸며놓고 있기는 했지만 정부 자체의 자금악순환은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레이져 블랙의 제안은 이러한 미국의 현 상황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라 볼 수도 있었다.
허나 로버트 웜우드의 생각은 달랐다.
"하긴, 병력이 모자라면 더 뽑으면 되는 거지."
측근들 중에서 경제인 출신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백악관을 압박하시는 편이 낫다고 보입니다."
"다른 방법이라니요."
"이라크 철군을···."
콰앙!
로버트 웜우드의 분노가 폭발하여 애꿎은 집무실 책상만 매를 맞았다.
격분한 로버트 웜우드의 눈동자가 측근들을 향했다.
"다들 정신 안 차리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두 손 털고 쿨하게 퇴장하자는 겁니까? 그런 거예요?"
"아,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갑이 뚱뚱하니까 슬슬 딴마음들을 품으시나? 내가 지갑 한 번 털어줘요?"
"아니요! 저희들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말만 하세요. 국세청이 대기 중이니까."
미국의 국세청은 악명이 높기로 자자하다.
세상천지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는 정치인들이라고는 해도 국세청은 무서워 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로버트 웜우드는 그런 막강한 무기를 손에 틀어쥐고 있었다.
비록 그가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그 세력을 움직이는 중추라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철군을 다시 거론하면 그 즉시 모가지를 칩니다. 긴장들 하세요."
"넵!"
"아무튼 간에 병력 증강부터 다시 얘기해봅시다."
일레이져 블랙은 웃으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병력을 200만 수준까지 끌어올리십시오."
"뭐 그렇게까지···."
"그래도 병력은 부족할 겁니다. 그러니 목표를 250만까지 잡으십시오."
"자유당에서 반발을 할 텐데?"
"우리에게는 명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병력증강이 가지고 오는 경제효과에 대해서 강조하시지요."
"으음, 나쁘지 않군요."
정부의 재정지출이 국민들을 향한다면야 자유당에서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경제전문가들의 비판은 피할 수 없겠으나 그건 백악관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니 로버트 웜우드와는 상관이 없었다.
로버트 웜우드는 일레이져 블랙의 주장을 적극수렴하기로 마음먹었다.
"백악관으로 가야겠습니다."
"그런 빠른 실행력, 너무나 존경할 만합니다!"
자리를 파한 후, 로버트 웜우드는 당장 워싱턴DC로 향했다.
그리고 남은 측근들은 그의 저책 정원에 모였다.
"의원님 똥구멍이나 핥고 다니면 좋나?"
현 상무차관 유진 로빈슨이 일레이져 블랙을 비난하듯 말한 것이었다.
허나 일레이져 블랙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허참,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다들 자기 밥그릇은 좀 챙기면서 사시죠. 이러다가 나중에 줄줄이 감옥에라도 들어가면 가솔들은 뭘 먹고 살겠습니까?"
"···뭐라?!"
"생각해보십시오. 이미 이라크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누군가 한 명쯤은 총대를 메야 할 상황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짜낸 겁니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이라?"
"이라크전쟁에서 소모한 병력이 몇 만입니까? 그런데 3만이나 전투불능이 되어버렸고 일부는 아프간에 주둔 중이죠. 지금도 병력은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전쟁은 우리가 이겼다고 보기는 힘들 정도입니다."
"으음!"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지만 봉사에 귀머거리가 아니라면 절대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라크 침공은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었다는 것이었다.
"돈은 꾸준히 소모되는데 아랍권 제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유럽권 국가들은 꽤나 오래전부터 미국의 이라크 압박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CIA를 희생해서 이라크 전쟁의 꼬투리를 억지로 만들어냈죠."
"끄응···."
"지금 철군해도 모자랄 판에 여전히 군사투입 강행이라니요. 만약 그럴 것 같으면 병력을 증강해서 한 30만쯤 추가 파병해서 저들을 압박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지금처럼 3~4만의 병력을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대부분은 전쟁 직후, 미군이 주둔하는 것만으로도 치안이 유지되며 사실상 전쟁은 마무리가 되었다.
허나 이라크는 사정이 달랐다.
과도정부와 이라크 수니파 등의 대립, 그리고 급진주의 세력 중에서도 세력이 분열되면서 내전이 세분화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이건 이라크의 내전도 아니고 민족 간의 분열도 아닌, 아주 특이한 상황이라는 소리였다.
"과도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을 우리가 힘으로 밀어주고 반대파를 아예 싹 쓸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각 도시와 마을마다 부대를 하나씩 주둔시킵니다. 그러면 전쟁은 끝납니다."
"이라크가 무슨 모나코도 아니고 어떻게 부대를 하나씩 주둔시키나?"
"병력 30만이면 커버가 가능할 겁니다. 추가로 해군과 공군도 대거 투입시키고요."
"허어! 그렇게 하면 재정적자가 엄청 날 것인데?"
"그래서 나프타 재협정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으음."
"게다가 통상법 301조에 대한 정책개정으로 재정수입은 조금 더 늘어날 겁니다. 물론, 나토군에 대한 영향력이 꽤 많이 떨어지긴 하겠지만요."
미국의 우방국 및 동맹국 대우, 조치에 대한 반발이 끝도 없이 일어나면서 이미 세계 곳곳에 반미노선이 굳건하게 정착된 지 오래였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의 국비증강이 시작되었다.
원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나토에게는 위기감이 조성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구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로서 러시아의 침략압박을 받고 있는 국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천연자원 판매로 천문학적인 이득을 취한 러시아 정부는 블라디미르 이바노프라는 엄청난 권력의 독재자와의 앙상블을 일으키면서 사실상 소련해체 이후 최고의 군사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동유럽권 국가들은 엄청난 심적 압박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연방의 가입권유를 뿌리치는 나라들이 꽤 많았다.
그것은 미국 주도의 나토연방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 불신의 시작이었던 이라크 침공에 30만이나 되는 대군을 투입한다면 나토연방은 그 뿌리부터 통째로 흔들릴 가능성이 컸다.
"아니, 나토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지면 러시아는 어떻게 견제하겠다는 말인가?"
"동맹도 견제 중 하나입니다."
"동맹···?"
"우리에게는 밀약이라는 아주 좋은 동맹수단이 있잖습니까."
"······!"
일레이져 블랙은 로버트 웜우드라는 거대한 벽을 세워놓고 실질적인 정치를 해먹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로버트 웜우드가 바보가 아니고선 그를 쉽게 신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나 지금의 상황은 충분히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도 남을 것이었다.
미국정부가 워낙 거대한 삽질을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후후, 신이 나를 돕는군!'
***
2005년 5월 말.
이제 계절은 슬슬 여름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우네 집에 오늘따라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범 현보일가는 물론이고 체스터 카렐 일가와 그 센트럴 뱅크 일가까지 한 자리에 모였으니, 그 북적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된 것은 허 씨 일가의 입김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오셔필드 가문은 이제 허 씨 일가와 긴밀히 협조하는 하나의 세력으로 뭉쳐졌다.
그들은 허 씨 일가의 수장인 허태용의 건강이 위독함으로 어서 빨리 현보일가의 장손인 천우에게서 후계를 보자고 주장했다.
허 씨 일가는 이를 인정했고 이를 최호명에게 전달함으로서 오금자가 센트럴 뱅크 일가를 끌고 한국으로 온 것이었다.
한마디로 오늘은 천우의 상견례라는 소리였다.
천우는 서재에 들어가 연신 불안한 듯,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렇게 빠른 결혼이라니."
"때가 되었으면 해야지.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그를 설득하고 있는 사람은 한희연이었다.
사실, 중년이 되면서 슬슬 손자를 얻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그녀는 내심 이 결혼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뤄졌으면 하고 바랐다.
허나 천우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가 못했다.
"이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요. 정식으로 교제한 지도 얼마 안 되었고요."
"하지만 허 씨 아저씨가 이제 곧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고 하잖니."
"그야···."
허태용의 건강이상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허나 매년 허태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우를 찾아왔다.
물론 그렇다고 그걸 두고 '올 해도 정정하시겠죠. 원래 그런 분이잖아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천우가 고민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머님, 저예요."
"우리 예비 며느리께서 오셨구나."
한희연이 문을 열자,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전미라가 보였다.
천우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갈까요?"
전미라가 손을 내밀자, 천우는 자기도 모르게 그 손을 잡고 말았다.
마샤는 그 모습을 이렇게 해석했다.
-말했잖아요. 페로몬의 주파수가 이보다 더 잘 맞을 수는 없다고요.
한희연 역시 그리 생각했다.
"얼마나 잘 어울려. 이제 나는 결혼 준비만 하면 되는 건가?"
< 6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