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36화 (136/202)

< 68. >

68.

2008년 11월 2일 화요일.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출구조사에 따르자면 자유당이 연방당을 52만 표 차이로 누르고 총 득표율에서 앞서나갈 것으로 예상되었다.

허나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연방당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서 선거인단 55명을 가져왔고, 그 바람에 선거인단 확보에서 연방당이 자유당을 눌러버린 것이었다.

이로서 사상 두 번째의 소수정당이 탄생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당일에 같이 치러진 총선에서 연방당이 자유당을 누르고 여대야소의 국면을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이로서 연방당은 미국의 대통령, 상원의장, 하원의장을 모두 거머쥔 보수정당 천하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 모든 그림을 만들어낸 사람은 바로 로버트 웜우드였다.

그는 연방당의 보수주의 노선이 지금의 경제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호황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시민들의 기대에 불을 지폈다.

이에 LA의 부자, 중산층에게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냈으며 최다인구보유 주 3개에서 표를 쓸어 담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곧 천우에게 있어서 엄청난 압박이자 위기로 다가왔다.

게다가 최근 일본의 정계에서도 슬슬 극우파들이 다시 한 번 치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민당 제 2 지류인 극우파의 수장이 교체되면서 서서히 힘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극우파는 다소 소극적인 노선을 걸어온 반면, 현 극우파의 수장인 요시미츠 시게루는 적극적인 우경화 노선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인 역사왜곡과 영토분쟁의 불씨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요시미츠 시게루의 우경화 노선은 지금까지 보였던 일본의 그 어떤 우경화 노선보다도 지독했으며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길을 달리한다고 평가했다.

특히나 요시미츠 시게루는 전범기인 욱일승천 기를 숭상하며 일본해상제국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며 잃어버린 일제의 영광을 찾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한데 황당한 사실은 이 노선이 우파들의 뇌리를 자극하여 새로운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정권도 전범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그것을 정치적 선동무기로 사용한 경우는 없었다.

헌데 이 요시미츠 우경화 노선은 차원이 달랐다.

이들이 얼마나 문제가 심각했으면 일왕까지 나서서

'우리는 백제유민이다. 또한, 같은 조상을 모신 형제의 나라를 침범했으며 그들을 수탈한 전범으로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죄인들이다.'

라며 진화에 나서기까지 했다.

허나 이들의 우경화는 빠른 속도로 일본의 젊은 보수층과 기성세대를 자극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반미시위와 함께 한국과 중국을 폄하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하는 등, 우경화 노선의 행패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에 HC계열사의 일본주가가 5%포인트 이상 하락하였고 이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005년 1월이 밝았다.

이제 미국의 정권은 오로지 연방당에게 돌아갔고 남은 것은 천우가 어떻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느냐였다.

HC는 당장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새해벽두부터 로버트 웜우드가 CDS시장을 개혁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지금까지 CDS의 로열티 및 협회장으로서의 특별대우가 가져다 준 HC의 수익은 전체비율 약 5%이상이었다.

전 세계에 걸쳐 주식과 부동산, 금융에 자금이 산발적으로 투자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로 대단한 비율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헌데 이 수익이 하루아침에 감소해버린다면 HC의 주가는 미국에서도 바닥을 칠 것이 분명했다.

"회장님, 이대로 CDS협회에서 쫓겨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소송을 준비하시죠."

"맞습니다! 만약 CDS가 모기지 채권시장에 진입한다면 그 수익률은 엄청날 겁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회사의 중역들이 천우에게 반격을 요구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던 천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우리는 CDS를 내어주고 새로운 투자노선을 구축할 것입니다."

"아예 CDS시장을 포기하자는 말씀이십니까?!"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협회장에서 물러나고 로열티를 받지 않겠다는 것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요, 우리는 모기지 시장에서의 CDS와 금융시장에서의 CDS에서 발을 뺄 겁니다. 그리고 신흥국 투자 위주의 CDS에 집중하는 것이죠. 그것도 소액으로 만요."

"그렇게 해서는 절대 이득을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래요, 크게 이득을 볼 수는 없죠. 하지만 손해를 볼 일도 없을 테지요."

중역들은 답답하다는 듯이 천우를 쳐다보았다.

김영실은 그런 그들에게 천우를 대신해서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저번 모기지 채권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물론입니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몇 년을 늙었는데 그걸 까먹겠습니까?"

"채권만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가 그 정도였는데 만약 부동산버블이 일어나 붕괴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야···."

"예전에 일본을 좀 생각해보세요. 그들은 거의 4년, 길게 본다면 5년 만에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니, 저금리의 절정은 블랙먼데이 시절이었으니까 불과 3년 남짓 되었겠네요."

이 바통을 천우가 넘겨받았다.

그는 앞으로 HC가 걸어갈 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앞으로 와신상담하면서 때를 기다릴 겁니다. 주가가 다소 빠져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가진 세계의 금융, 주식, 부동산의 지배력과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을 테니까요."

"흐음."

"불안한 4년이 될 겁니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버텨서 이겨 낼 겁니다. 게다가 국가상대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기업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것도 미국에서."

중역들도 소송만이 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제 그들은 천우에게 새로운 투자노선이 어떻게 펼쳐질지 묻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렇다면 회장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종목에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앞으로는 미래지향적 사업이 괜찮을 겁니다. 특히나 IT, 게임, 소프트 및 하드웨어 시장이 활황이겠지요. 그중에 우리는 IT에서 현재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런 강점을 이용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해봅시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이라. 그렇다면 주로 기술개발에 돈을 투자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 개발에도 힘을 써야 할 것이고 젊은 세대를 겨냥한 사업도 많이 구상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미스릴 연구소를 설립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으음, 좋은 생각이십니다."

지금은 분명 위기였다.

허나 HC그룹은 최대한 침착하게 위기에 대응해 나가고 있었다.

***

2005년 2월 초순.

슈팅스타에 대한 미국 정부의 특혜가 취소되면서 수익률이 무려 10% 이상 감소하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드디어 범 체스터 일가의 몰락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 와중에 최호명은 더록 호마하를 찾아갔다.

이번 총선에서 일리노이 주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된 호마하는 자유당의 전당대회에서 실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 스피치로 좌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를 계기로 호마하 상원의원은 단숨에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을 아우르는 대표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최호명은 호마하가 당선되기 전부터 이미 줄을 놓고 있었는데, 처음에 호마하는 사업가의 접근을 썩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허나 그는 당선 전이나 후나 달라지지 않은 우직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호마하의 관심을 사게 된 것이었다.

시카고에 있는 호마하의 사무실로 찾아간 최호명은 그에게 선물로 상아모양의 뿔나팔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은 호마하는 단숨에 표정을 구겨버렸다.

"상아채취는 비인도적이라고 말이 많은데 굳이 이런 걸 가지고 오셨군요."

"후후, 생긴 것만 상아지 도자기로 만든 겁니다."

"도자기?"

호마하는 손가락으로 뿔나팔을 두드려보았다.

깡깡···!

마치 잘 만든 도자기그릇을 두드리는 듯 한 청아한 소리가 났다.

"으음!"

"한국 설화에 만파식적이라는 피리가 나옵니다. 그것을 불면 태평성대가 찾아온다고들 하죠. 그걸 아메리카 버전으로 한 번 만들어봤습니다."

"아주 좋은 뜻을 가지고 있네요."

"그리고 사실은 코끼리의 상아를 다음번에는 가짜 상아로 만들어버리라고 드리는 겁니다."

코끼리는 연방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제야 호마하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군요. 그놈의 가짜코끼리들!"

"앞으로 미국, 아니 국제경제와 정세가 걱정된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반드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사실, 지금 가장 속이 쓰릴 사람은 다름 아닌 호마하일 것이다.

최호명은 그에게 조금 더 채찍질을 하라는 뜻에서 뿔나팔을 준 것이었고 호마하는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호마하는 최호명이 더욱 마음에 들어졌다.

헌데 그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 진보진영이라고 한다면 저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그 사람보다는 사상이 마음에 들었던 거죠."

"사상이라!"

"사람은 정치색과 사상이 꽤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과 나는 우연치 않게도 그 노선이 잘 맞았던 것뿐이죠."

"으음."

"제게는 이른 바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호마하 의원님이 참으로 괜찮은 사람 같더라고요."

최호명은 슈팅스타 그룹을 통해서 수많은 보육원을 후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었고 이제는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로 나가 일 년에도 몇 번씩 최호명에게 화환과 선물을 보내오곤 한다.

비단 그것이 뿌듯해서 후원 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그게 최호명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부자를 위한 나라가 아닌 사람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자기들은 운이 좋아서 저를 만났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다고요."

"···그렇군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백인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보다는 모두가 화합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사, 자꾸 당신을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이는 최호명의 진심이었다.

사실, 그는 호마하에게 별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조언으로 다리를 놓다보니 어쩌면 그와 정치적 견해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후원해주는 아이들의 얘기까지 듣다보니 정말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최호명은 사업가다.

정권이 바뀐다면 태세를 전환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와 인간적으로 많이 교류하고 싶어졌다.

"맥주나 한 잔 하실까요?"

먼저 술을 권한 쪽은 호마하였다.

최호명은 웃으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국에서는 맥주에 치킨, 아니면 마른 오징어가 찰떡궁합으로 여겨지는데. 그런 가게가 있을까요?"

"하하, 그런 소소한 가게라면 제가 잘 알죠."

우연이지만 두 사람은 술 취향도 비슷했다.

< 6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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