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34화 (134/202)

< 67. >

67.

슈팅스타 그룹의 회장 집무실 안.

최호명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에 따르자면 여당 쪽에서 우리를 마킹하고 있다는 뜻인가?"

"제대로 보았네."

2003년 6월 테러로 인해 미국의 부통령과 다수의 내각이 사망하면서 미국은 밀어내기 형식으로 권한대행으로 내각의 자리를 채워나갔다.

그리고 2004년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대수의 미국인들은 이번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테러수습에도 적극적이지 못했기에 그를 비판하는 여론이 다수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현직 부통령 권한대행과 함께 수많은 내각들을 배출해낸 미국 연방당의 실세가 슈퍼스타를 비롯한 범 현보일가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 제이미 골드너의 주장이었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미국을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 어째서 그들이 우리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미국을 구해준 것은 맞지. 하지만 지금의 여당인 연방당을 구해준 건 아니지 않던가."

"···그게 무슨 말인가?"

"혹시 자네, 로버트 웜우드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로버트 웜우드면 연방당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사람이지."

"그래, 맞아. 부통령과 하원의장이 사망하면서 로버트 웜우드의 정치파트너였던 국무장관 라이언 펠그너가 그 자리를 채워 상원의장이 되었지. 사실상 국무장관은 로버트 웜우드의 입김으로 만들어 진 것이니 부통령이 로버트 웜우드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라는 거야."

"헌데 그 사람이 이번 사건과는 무슨 상관이라는 건가?"

"상관이 있어. 일전에 장갑차 사건 기억하나?"

"제러드 다이내믹의 장갑차 두 대가 탈취되었던 것 말인가?"

"그래, 그 사건으로 6월 테러가 일어났었지. 헌데 자네도 알다시피 이 사건에는 이상한 구석이 참으로 많아. 첫 번째로는 도대체 어떻게 렉스테리아의 유령회사에 장갑차가 넘어갔느냐, 둘째로는 그걸 도와준 사람들이 분명 정부각처에 있을 텐데 어떻게 혐의점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느냐."

"혐의가 없었다고···?"

"업무상 과실, 지금의 경우엔 그 과실이 상당히 크겠지. 하지만 이번 사건은 100% 제러드 다이내믹이 뒤집어쓰고 끝나버렸어. 그들이 무기를 판 건 사실이지만 정말로 테러분자와 내통했는지 알 수 있는 사실이나 정황은 없는데 말이지."

제이미 골드너는 이 사건의 흑막으로 로버트 웜우드를 지목한 것이었다.

허나 그걸 받아들이는 최호명의 입장은 좀 혼란스러웠다.

"정치인이 어떻게···."

"돈이라면 뭐든 다 하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튼 간에 6월 테러로 인해 부통령이 사망했어. 사실상 부통령과는 정당 내 정적관계였지만 상대방이 사망함으로서 이제는 로버트 웜우드가 실세야."

"으음."

"그가 실권을 잡은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네. 사실, 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웠다고 해서 끝은 아니야. 힘이 세 봐야 얼마나 세겠나? 하지만 그가 부통령을 세웠을 정도로 강력한 연방당 내의 실세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겠지. 하필이면 로버트 웜우드가 실세가 되면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쳐낼 준비를 하고 있어. 그 중에는 자네 일가도 포함이 된다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위기일발 때마다 자네 집안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갔다 생각하는 것이지."

"허어! 그럼 우린 뭐 땅 파서 장사하나? 위험을 감수했으면 남는 게 있어야 인지상정 아니겠나?"

"그거야 자네나 나 같은 일반적인 사고방식의 인간들이나 갖는 생각이고. 저들의 생각은 완전히 다른 것 같아."

"제기랄,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겠군."

너무 많이 가져갔으니 뱉으라는 심보.

한마디로 오금자 3대가 이룬 모든 것을 공으로 먹어치우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최호명은 너무나도 억울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이었다.

허나 그는 이 와중에도 아들이 제일 걱정되었다.

"천우는, 내 아들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소문에 의하면 CDS시장을 로버트 웜우드가 크게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 같아.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천우는 CDS협회장에서 밀려나고 로열티에 대한 권한까지 잃게 될 것이 분명해."

"···로열티까지 회수한다고? 그게 법적으로 가능한가?"

"미국에서 불가능한 것도 있었어?"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제이미 골드너는 이참에 재무부를 잠시 떠날까 생각 중이었다.

그에게도 지금의 연방당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집권여당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제 슬슬 이 바닥을 뜰까 싶어."

"자네가 왜?"

"이젠 정말 넌덜머리가 나. 더 이상 골치 아픈 일 좀 안 했으면 해서 말이야."

최호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아주 만약에 연방당이 아니라 상대방인 자유당이 승리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건 정말 만에 하나의 얘기인데 말이야."

"······?"

"만약 코끼리를 제치고 당나귀가 승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대다수가 그걸 바라고 있긴 하지만 그리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나?"

"아니,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말이야."

"뭐···. 그렇게 된다면 판이 뒤집히기는 하겠지."

"로버트 웜우드가 고꾸라질 수도 있는 거야?"

"그거야 대통령 내각이 마음먹기에 달렸겠지만 나 같으면 로버트 웜우드를 정리하고 넘어가겠네."

"으음, 자유당의 이번 대선주자가 누구지?"

"그거야 당연히 중진의원 중에서 제일 경력이 화려한 니콜라스 테일러가···."

말을 내뱉던 제이미가 깜짝 놀라서 중간에 스스로 말을 끊었다.

"···잠깐,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자네가 짐작하는 바로 그게 맞아."

"허어! 자네, 지금 정치판에 돈을 끼얹겠다는 소리인가?!"

"그럼 다른 뾰족한 수 있어?"

제이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자네의 선친께서 필생을 후회하신 일이 뭔가? 바로 정경유착 아니었던가!"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으라는 건가?"

최호명은 이미 굳게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허나 제이미 골드너의 입장은 달랐다.

"이 사람아, 생각을 좀 해봐. 이번 선거에 자네가 스폰서로 나서서 자유당을 살려줬다고 치세. 그럼 다음 선거는? 그 다음 선거에서는 어떻게 할 건데? 그때 연방당이 이기면 자네는 그야말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마는 거야."

"알아. 그러니까 지금 연방당 내부 인사들 중에서 로버트 웜우드와 길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동맹을 맺어놔야지."

제이미는 좌우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반댈세. 그러다가 자네만 다쳐!"

"내가 다쳐서 가문을 구할 수만 있다면야. 더 한 일도 나는 할 수 있다네."

"끄응···!"

최호명은 제이미 골드너의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자네는 이번 일에서 빠지시게. 내 알아서 다 할 테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치사하게 자네만 내버려두고 나 혼자 도망이나 치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니야, 이번 일에는···."

"싫어. 나도 이번 참에 아주 제대로 정계에 발을 담가 볼 참이네."

"정치를 하겠다고?"

"빌어먹을, 저런 미친놈들이 판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어서 말이야."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욕심이 좀 생겼을 뿐이야. 그에 대해선 괘념치 말게나."

두 친구는 오늘을 계기로 다시 의기투합했다.

***

천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누구요?"

"로버트 웜우드, 아마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미국의 부통령이 누구인지쯤은 알고 있을 텐데."

누가 그걸 몰라서 물을까.

천우는 설마하니 김억수의 입에서 돈에 환장한 악마의 이름이 나와 깜짝 놀랐을 뿐이었다.

그는 6월 테러의 원인을 제공한 유력한 흑막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미국 양원의 의장들이 다 사망함으로서 최측근을 부통령 자리에 올린 사람이기도 했다.

그걸 잘 아는 천우로선 크게 놀랄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놈의 영감탱이가 언제 미국 상원과 배꼽을···?'

-이 바닥에 정치인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잘 보십시오.

마샤는 천우에게 김억수가 어떻게 미국의 정계까지 줄이 닿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마치 마인드맵처럼 생긴 인물 관계 도를 천우에게 출력해주었다.

-한국의 국회의원 최석출, 미국 이름은 윌리엄 최입니다. 미국 태생에 대학과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나왔죠. 15년 전에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에 정계에 입문하여 현재 2선 의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헌데 이 사람과 미국의 상원의원인 다니엘 엘라고스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인 하원의원 마이클 에프린이 현재의 부통령, 라이언 펠그너와 대학 동기동창입니다. 심지어 기숙사의 방을 함께 썼다고도 하죠.

'허어! 그럼 거기서 뻗어 나온 줄기가···.'

-네, 맞습니다. 최석출, 이 사람은 김억수의 사촌조카입니다. 최석출이 다니엘, 마이클을 타고 라이언 펠그너와 김억수를 연결시켜 준 것이죠. 물론, 의도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닐 겁니다. 다만, 어쩌다보니 서로 엮이고 엮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겠죠.

'만약 그렇다면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겠군.'

-껌 하나로 지금의 로호떼 제국을 건설한 사림입니다. 인맥을 이용한 용병술이 없었다면 절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 겁니다.

'으음, 인맥이 중요하긴 하지. 하지만 저렇게까지 용병술에 능한 사람은···.'

-드물 겁니다.

김억수는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국의 부통령이 아무리 권한이 없다고는 하나 그 줄이 어디 보통 줄이오? 게다가 다음 대선에서 저들이 승리하는 날엔 우리도 단단히 한 몫 잡게 되는 것이오."

"···한 몫을 잡으신다니. 축하드립니다."

"허허, 축하하긴 아직 이르다오. 정말 축하를 받게 된다면 우리가 계획된 인수, 합병을 모두 끝낸 후에 받아야하겠지. 물론, 대선에서 저들이 패배하게 된다고 해도 그 권력은 아직도 유요할 테지만 말이오."

김억수의 청사진은 이러했다.

라이언 펠그너에게 줄을 댄 후 로버트 웜우드와 긴밀한 사이가 되었으니, 그들에게 수 백 억 달러의 인수과정에서 나오는 인센티브를 넉넉하게 지불하여 엄청난 양의 정치자금을 조달해주는 것이다.

이미 로버트 웜우드는 그에 대해 확답을 준 상태였고, 김억수는 이제부터 아예 대놓고 내부거래로 돈을 끌어와 그야말로 비자금의 천국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황당하지만 김억수는 그런 판에 천우를 끌어들이기 위해 지금과 같은 판을 짜두었던 것이었다.

"자, 어떻소? 이제 나와 거래할 마음이 생기셨소?"

아무리 천우가 쇠심줄이라곤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고민이 안 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비단 돈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세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면 다 죽는다. 하지만···.'

그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늘에 있을 최충의를 떠올려보았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비록 지금은 조언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어떻게 행동했을 지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천우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러자, 김억수의 표정이 밝아지는 듯했다.

허나 천우는 곧바로 엄지를 아래로 떨어뜨려버렸다.

"엿을 드리고 싶지만 차마 연배차가 있어서 그리 못합니다. 이해하시죠."

"뭐, 뭐···?!"

뱀과 손을 잡느니 그 모가지를 딴다.

천우가 생각한 최충의의 행동은 바로 그것이었다.

< 6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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