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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릴 픽쳐스는 천우의 생각보다 훨씬 더 썩어 있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썩은 부분과 썩은 부분을 합치면서 굉장히 안 좋은 시너지가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건 파면 팔수록 더 가관이었다.
어느 때, 어느 시대를 가건 뒷돈 빼돌리는 것들이 문제가 된다는 건 천우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뒷돈 때문에 쓸쓸한 말로를 밟아 본 천우이기에 그걸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이 딱 그런 놈들 천지였다.
미스릴 컴퍼니 산하 미스릴 픽쳐스를 방문한 천우는 중역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이미 회사 내부사정은 다 꿰뚫었다.
이제 남은 건 사람들을 볼 차례였다.
대부분 합병 전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로 구성된 경영진들은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많았다.
-인물평점 2점대의 사람들이군요.
'니시노 픽쳐스를 합병하면서 물갈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버렸네.'
그나마 블루마운틴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천우는 이참에 아예 경영진들을 갈아 엎어버리기로 했다.
그는 대표이사 이시하라 토오루에게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 재무제표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합병 전부터 지금까지 자회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재무제표를 몽땅 털어오세요."
"지, 지금 당장 말입니까?"
"지금 당장이요."
"하지만 회장님, 영화사 수뇌부와의 대담과 재무제표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는 것인지···."
"대담이 아니라 면접이요. 저번에 면접을 못 봤으니까 이제라도 보겠다고요."
도대체 뭘 얼마나 해 쳐 먹었는지 재무제표를 털어서 확인해보겠다는 것이 천우의 생각이었다.
처음엔 그저 수뇌부 얼굴이나 보는 것이겠거니 했던 그들은 일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차트분석 하나만으로 글로벌 범죄조직을 찍어내고 월스트리트의 신성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천우다.
물론, 관례상 뒤로 약간 빼돌려 먹는 것쯤은 눈감아 줄 수도 있었다.
허나 그것도 정도껏이지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희롱하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재무제표가 천우에게로 왔다.
경영학을 전공했고 그걸로 대기업 회장의 밑구멍을 핥아 그 집안 사위까지 되었었던 천우에게 재무제표와 이중장부는 거의 숨 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이 익숙한 것들이었다.
천우는 이곳에 오기 전, 감사팀을 통하여 회사의 비공개문서와 내부안건을 탈탈 털어서 확인했었다.
이제 그걸 공개문서와 대조해서 다른 부분을 찾아내면 게임은 끝나는 셈이었다.
천우는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공금횡령은 고소감입니다. 나는 1센트 한 전이라도 빼돌린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고소해서 콩밥을 먹여줄 겁니다. 감방에서 몇 년 푹 썩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진실을 고백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다.
원래 비자금이라는 것이 혼자서 빼돌려 꼬불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적당히 서로 봐주면서 눈치껏 한 푼 두 푼 빼돌려야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저, 저희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희가 회장실에 올린 보고서에나 국세청에 올린 자료들이나 회사의 그 어떤 회계자료와도 차이가 없습니다."
먼저 치고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CFO인 로버트 웰슨 이었다.
그는 능력은 좋으나 잔머리 굴리기를 즐기고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기를 밥 먹듯이 반복하는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천우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허나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저렇게 아무리 발광을 떨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 혼자 살겠다고 설친 것이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그게 모두를 죽이는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 그가 내민 재무제표는 결과적으로 회사의 실제 현금흐름과는 상이했기 때문에 천우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그걸 캐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건 아예 대놓고 분식회계를 했다고 자백하는 일인데다 범죄에 대한 증거를 알아서 내밀어 주는 식이었다.
이시하라 토오루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제가 모든 사건을 주도했습니다."
"주도?"
"이중장부를 작성하고 회장님께 올릴 보고서 역시 분식회계로 만든 가짜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무릎을 꿇었다.
쿠웅!
"책임자를 처단하십시오."
"감옥에라도 가겠다는 말씀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이시하라 토오루는 그나마 이중에서 제일 나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양심은 있으며 어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줄은 알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까워도 어쩔 수는 없었다.
배임은 상당히 무거운 범죄이며 그 굴레를 안고 최고경영자로 살아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천우에게 약간의 선처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시하라 토오루가 발휘했던 용기의 대가였다.
"자, 그럼 결론 났네요. 이렇게 싹 털어서 검찰에 자료를 넘길 테니 조사는 각자 알아서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법정에서 보자고요."
"회, 회장님!"
이시하라 토오루가 천우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다.
"제발, 저 하나로 끝내주십시오!"
"죄는 같이 지었는데 그럴 수야 있나요."
"···부탁드립니다."
아마도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천우가 일일이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소리는 검찰에 가서나 하시죠."
"크윽···."
천우는 아예 수뇌부들을 전부 다 쳐내고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올리라고 김영실에 지시해두었다.
그러면서 그는 김영실에게 한 가지 지시를 더 내렸다.
"저 사람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한 번 알아봐주세요."
"선처하시게요?"
"대단한 선처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것이 가상하니 사정 좀 봐주려고요."
"네, 알겠습니다."
천우는 과연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을지 한 번은 들어보기로 했다.
***
2004년 8월.
나프타가 재 협정에 들어갔다.
이번 협정으로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원자재의 가격이 대폭 낮아질 예정이었으며 미국정부는 그것을 신 산업단지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98년도부터 추진되었던 신 산업단지는 미국 북서부 연안에 건설될 예정이었는데, 지난 4월에 완공되어 해외의 엄청난 자금유입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동안 침체기에 있었던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비롯하여 전자제품, 조선 등이 부활 조짐을 보였다.
해외 기업들은 최대 수출국가인 미국에 직접 공장을 세우고 캐나다에서 원자재를 싸게 조달받아 사용함으로서 비용을 절감하고 있었다.
불과 4개월 만에 흑자비율이 15%가량 높아졌는데, 최근 임금상승으로 인하여 다시 가동에 어려움이 생길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멕시코에서 유입되는 노동자의 비율을 높이기로 결정했다.
또한, 제조 산업 관련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실시함으로서 자체 고용율도 높였다.
나프타 재 협정에서는 멕시코 노동자들의 출입국조건 하향, 그리고 캐나다에서 들여오는 원자재의 세율 인하 등을 주요 안건으로 삼았다.
8월 11일 협정이 재계되었고 단 이틀 만에 타결됨으로서 바야흐로 미국 북서부 연안의 전성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었다.
그와 함께 90년도 중반에 증설되었던 기존 산업단지에 대한 고용율도 높아지게 됨에 따라 경기가 활성화 되었다.
제조 산업 육성으로 2003년 모기지 채권 상환 사태에서 받은 타격이 빠르게 회복세로 돌아선 것이었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HC투자였다.
지금까지 HC투자는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부실채권에 투자했었는데, 전문가들은 사실상 이 돈을 회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허나 경기의 활성화로 인해 부동산 수요가 폭발하면서 다시 주택공급물량이 부족해졌다.
여기에 이라크전의 장기화로 인해 안전자산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금과 부동산의 가치가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1억 달러 이상의 부실채권을 가장 많이 매입했던 슈팅스타는 투자금액 대비 15%의 이윤을 창출했고 체스터 카렐 센트럴은 12%의 흑자를 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천우는 얼마나 이득을 보았을까?
이른 아침부터 김영실은 웃는 얼굴로 천우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회장님, 드디어 터졌습니다!"
"터지다니요?"
천우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땠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매입했던 부실채권들 말입니다! 지금 공급물량이 달리면서 가격이 30% 이상 올랐답니다! 일반 주택의 경우엔 우리가 매입했던 시기보다 40%이상 올랐다고 하네요!"
"결국 평균가격을 회복하게 된 것이네요?"
"그런 셈입니다!"
천우는 공급물량을 천천히 조율하면서 시중에 물건을 풀어놓으라고 지시했다.
물건을 팔아야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급격하게 많은 물량이 풀려버리면 결국엔 가격이 내려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완급조절을 잘 하세요. 일단은 10만 달러 대의 물건부터 천천히 풀어보자고요."
"네, 회장님!"
"그나저나 이제 발바닥 맞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네요. 그렇죠?"
김영실은 천우를 곱게 째려보았다.
그러자, 천우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 아무튼 일이 잘 풀렸으니 다행이네요. 오늘은 다 같이 좀 마셔봅시다."
천우는 주택가격이 오르면서 생긴 이득을 직원들에게 돌려 주였다.
회사 전체로 돌아간 이 성과급은 CEO급부터 말단 직원, 심지어 청소담당 직원에게까지 돌아갔다.
그만큼 이익의 폭이 높았기 때문에 천우는 그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어주려는 것이었다.
뜻밖의 성과급을 받은 직원들은 사기를 높였다.
최충의가 강조했었던 '베풀어야 일한다'는 것을 천우는 철저히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4년 9월, 주택가격은 5% 더 올랐고 10월이 되었을 때에는 전년도 대비 60%까지 올라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거품이라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재무부는 천우에게 주택공급을 조금 더 개방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천우로서는 들어줘서 나쁠 것 없었다.
어차피 부동산시장이 과열 되어봤자 천우에게도 좋은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량은 불과 3개월 만에 다 털려버렸다.
HC투자가 최종적으로 얻은 수익은 투자대비 57%, 실로 엄청난 수익이었다.
포브스를 비롯한 비즈니스 잡지, 뉴욕의 유력 일간지들은 천우의 결단을 '사상최고의 리더십'이라고 찬양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슈퍼매직'이라며 회자하였다.
CNN은 천우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CNN의 간판앵커인 사라 테일러가 직접 천우를 취재하러 나왔다.
그녀는 미스 뉴욕 출신의 미녀이며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30대 여성 100인에 들기도 했었다.
그녀는 카메라가 돌기 전, 천우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사라 테일러입니다."
"TV보다 실물이 미인이시네요."
"후후, 그런가요? 그쪽도 실물이 훨씬 나은데요."
"감사합니다."
적당히 인사치례를 나눈 그녀는 천우에게 오늘 인터뷰에 대한 사전 질문에 대해 일러주었다.
대표적으로는 현 미국 경제를 조금 더 부양시킬 수 있는 정책과 슈퍼 사이클에 대한 것이었다.
이미 슈퍼 사이클에 대한 얘기는 벌써 10년 전부터 천우가 입이 닳도록 말했었던 사안이었다.
이제는 상품의 가격이 점점 올라서 천우가 말했던 슈퍼 사이클이 점점 도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었다.
"앞으로의 투자방향을 좀 일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CNN과의 인터뷰에서 천우가 투자방향을 일러준다면 아마 상품시장이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는 미국 내에서 투자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해볼까?'
그가 말하면 시장이 움직이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6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