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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25화 (125/202)

< 62.(2) >

62.(2)

워싱턴DC에 위치한 미국 상무부 내 상무차관 집무실 안.

제이미 골드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장갑차 분실사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거냐?"

"네, 맞아요."

아침부터 찾아온 친구 아들이 반가워 낮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하나 싶었던 제이미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제러드 다이내믹에서 장갑차를 판매할 당시, 그 계약서를 통과시켜 준 것은 당연히 상무부의 책임이라면서 그를 몰아세운 것이었다.

"그냥 무기도 아니고 장갑차 등을 판매하는 사업입니다. 그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계약서 하나 살펴보지 않았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할 수 있겠죠."

"···직무유기?"

"잘못하면 업무상 배임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콰앙!

제이미 골드너가 집무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지금 배임이라고 했나!"

"때에 따라서 그렇게 엮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허참,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어찌 아버지의 친구에게 이럴 수가 있어?"

"정확한 책임소지를 따지고 있는 겁니다. 다른 감정은 없어요."

루이스 윈터스가 천우를 찾아왔을 때, 천우는 그 즉시 범죄와 연루될 수 있는 소지를 갖게 된 셈이었다.

허나 달리 생각한다면 이와 엮인 모든 사람이 범죄와 연루될 수 있었다.

천우는 제이미 골드너에게 그걸 알려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네가 이 아저씨에게 업무상 배임의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고 하다니, 그 친구가 들으면 아주 기함하면서 넘어갈 일이로군."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제가 이 사건을 CIA나 MI6등으로 들고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다못해 국토안보부에서 이 사실을 한 발자국만 빠르게 캐치했어도 아저씨는 곧장 차관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수도 있어요."

"으음."

"같이 죽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생겼을 경우, 방어대책을 세워야하기에 찾아온 거라고요."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 오해를 하자면 천우의 말은 변명거리로 들릴 수밖에는 없었다.

허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천우가 항상 제이미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천우가 하루라도 더 늦게 찾아왔다면 어느 기관에서 치고 들어왔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을 것이었다.

"···정말 나를 걱정해서 찾아온 것이 맞지?"

"물론이죠. 아저씨가 우리 가문의 은인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설마하니 제가 아저씨를 물고 늘어지기 위해서 찾아왔을까요?"

그제야 제이미는 슬그머니 웃었다.

"그래, 내가 잠깐 흥분을 했었구나. 미안하다."

"아니요. 두서없이 찾아온 제 잘못이 더 크죠."

다소 오해가 있었지만 금세 풀렸고 이제는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사태를 해결해나가야 할 차례였다.

천우는 이 사태를 내부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중간에서 개입했어요."

"내부자의 개입이라. 하지만 첨단보병무기를 판매하는 안건에 참여할 정도라면 적어도 부장급 이상은 되어야 할 텐데, 당장 내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그렇다면 다른 부서가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병기를 파는 일이다.

상무부는 물론이고 재무부, 국토안보부까지,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가운데 과연 누구를 내부자로 특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찔러보면 자기는 아니라고 할 것이 분명하고···."

"그럼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이 사건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말이에요."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사람이라."

제이미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한 사람을 꼽았다.

"국토안보부 장관이겠지. 국토안보부가 신설된 건 테러와 안보위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니까."

"그럼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요?"

"이득이라.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과연 있긴 하겠어?"

"있죠. 장관이 부재 시 그 권한을 대행하거나 승진해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요. 물론, 그 사람을 밀어줘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아아···!"

순간, 제이미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한 사람 있지!"

"그게 누군데요?"

"미국 상원의원 중에 로버트 웜우드라는 사람이 있어. 들어봤나?"

"들어봤죠. 현 상원의장의 오른팔이라고 하던데."

"맞아. 상원의장 때문에 정계에 입문했고 지금은 4선까지 왔어. 뭐랄까, 그쪽에서는 꽤나 입지가 굳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헌데 그 사람이 이번 사건과는 무슨 상관인가요?"

"처가가 유전지분이 꽤 많아. 총기협회와도 연줄이 깊고."

"총기협회!"

안보가 흔들리면 무기나 총알을 파는 사람들이 가장 큰 수혜를 입는다.

전략물자라는 것은 위기상황, 혹은 전시상황에서는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다 전쟁 한 번이면 재고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종목 중 하나다.

"로버트 웜우드는 국토안보부 장관을 선임할 때, 자신의 집안사람을 밀어줬어. 헌데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임권 때문에 뒤로 밀려 기회를 잃고 말았어."

"만약 그때 장관을 자기 사람으로 앉혀두었다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겠네요."

"바로 그거지. 내가 그놈을 의심하는 이유는 이미 한 차례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야."

"전적이요?"

"이미 걸프전에서도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리가 많았고, 사실상 상무부와 당시 국토안보국 출신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기정사실과도 같아."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네요!"

"자네의 얘기를 쭉 듣고 있다 보니 로버트 웜우드가 딱 떠올랐어. 그 많은 인맥들을 아우르고 그를 통해서 가장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로버트 웜우드 밖에는 없어."

"그럼 CIA에게 제보해서 그를···."

제이미는 고개를 저었다.

"정치는 그리 간단하지 않아. 무작정 CIA를 움직여서 상원을 들쑤시면 잘못해서 줄초상이 날 가능성이 높거든."

"그럼 어찌해야 하나요?"

"네 결백은 내가 입증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

"그럼 아저씨는요? 그쪽에서 상무부차관 자리가 필요해서 아저씨를 밀어낼 수도 있잖아요."

"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으음."

"그보다도 나는 네가 걱정이다."

"제가 왜요?"

"최근 모기지 채권 시장이 심상치 않잖아. 이미 CDS까지 파생상품으로 엮어서 팔려는 조짐도 보이고 있고 말이야."

CDS시장이 폭발해버리면 결국엔 그 책임을 천우가 져야 할 수도 있다.

이 세상은 어찌되었건 사태가 터지면 그걸 수습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게 순리 아니던가.

허나 천우는 CDS라는 폭탄을 잘 갈무리 해 나갈 청사진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제재법안을 마련해두었고, 마침 EU에서 새 기축통화를 찍어내는 바람에 기회가 생겼어요."

"기회라니. 그게 유럽권 통화와 무슨 상관이라는 거냐?"

"지금은 유로화의 가치가 수직상승하는 시기잖아요. 그와 동시에 물가 역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죠. 그렇다면 ECB(유럽중앙은행)에서 통화긴축에 들어갈 텐데, 제 생각에는 달러화의 가치가 필요 이상으로 절하될 것으로 생각 된단 말이죠."

"필요 이상의 절하라."

"수출국가임과 동시에 세계최대 수입국가인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달러화의 흐름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겠지요."

"유로화가 상대적으로 강세에다가 통화긴축카드까지 꺼내든다면 연준도 금리인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겠군."

"맞아요. 하지만 통화의 흐름상으론 그렇겠지만 예전에 80년대처럼 기조만 보였다가 뒤통수를 칠 수도 있겠죠. 제가 해야 할 일은 그 기조를 현실화 시키는 한 편, 모기지 채권시장을 뒤흔들어서 거품을 걷어 내는 것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미국 내 CDS는 물론이고 영국계 CDS시장까지 안전할 테니, 한 방에 시장이 무너질 일은 없을 겁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는데?"

"그렇긴 하죠. 하지만 최근 렉스테리아의 중국계 자본을 싹 쓸어버려서 깡통CDS는 거의 다 사라졌어요. 그나마 다행인 상황인 거죠."

제이미는 얼마 전, 천우가 중국계 검은자본의 뿌리를 거의 다 뽑아버렸던 사실을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때 그 일이 없었다면 천우는 지금쯤 뇌에 과부화가 와서 쓰러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굳건히 잘 버티고 빠르게 수습해라. 상황이 썩 좋지가 않아."

"네,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너는 걱정하지 않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마."

"고맙습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왔는데도 일일이 상대를 다 해주시고요."

"하하, 내 밥그릇 달린 일이기도 하잖냐."

제이미는 천우에게 자택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이쪽으로 전화해라. 이제부터는 개인적으로 말하자꾸나."

"네, 아저씨."

자리에서 일어서는 천우, 그런 그에게 제이미가 물었다.

"전 씨 일가의 그 아가씨와는 잘 되어가는 거냐?"

"좋은 감정으로 지내고 있죠."

뜬금없이 전미라에 대한 얘기가 왜 나오나 싶었던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제이미는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알겠다."

"왜 그러시는 데요?"

"그냥 좀 궁금해서."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천우는 제이미의 속을 알 수 없었지만 그저 인사치례라 생각하기로 했다.

***

슈팅스타의 채권 중, 부동산 담보부증권이 대량 매각되었다.

이를 사겠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줄을 서 있었지만, 월스트리트에서는 일부 학자들의 '모기지 채권의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2003년 현재, 주택담보대출의 총액은 1조 5천억 달러에 달한 상황이었다.

이 금액에 대한 만기상환이 이제 겨우 반년도 남치 않았는데, 만약 상환날짜를 연장하지 못하게 되거나 상환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모기지 시장은 한 방에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때마침 슈팅스타의 채권매각으로 인해 그 위기설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금융권은 긍정파와 부정파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1년 전부터 채무상환일자의 도래가 위기설로 발전되고 있긴 했으나 그 심각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허나 슈팅스타가 포브스 선정 기업순위 50위 안에 기록되어 있고 세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 안에 드는 최호명의 결정이 월스트리트를 흔들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부 월스트리트의 경제학자들은 최호명의 결정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으나, 그 반대의 세력이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인해 모기지 시장의 대대적 채무 중도상환이 이뤄지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해외자본들이 미국으로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들이 외국의 핫머니를 끌어들여 슈팅스타가 만든 모기지 채권시장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항간에서는 그 행동들을 지적하며 모기지 시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맞섰으나 재무부에서는 그 어떤 제재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워싱턴DC와 뉴욕 월스트리트 한 복판에 무장한 장갑차가 등장한 것이었다.

< 62.(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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