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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서도 채무상환을 주식으로 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그들이 진 빚은 40억 달러 수준, 다른 국가들에 비한다면 제법 준수한 편이었지만 포르투갈의 경제규모를 생각한다면 실로 엄청난 금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우는 기업의 지분으로 채무를 상환 받는 대신에 국채로 이를 대신하기로 했다.
포르투갈 외교부차관 루이스 코스타는 천우와 계약서에 날인한 후에 물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건가요?"
"저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아보신다면 아마 이해가 되실 겁니다."
마이너스투자이론, 천우는 거기서 포르투갈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다고 피력한 것이다.
허나 루이스 코스타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전문분야가 경제는 아닐 테니까.'
어차피 이곳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추후에 HC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영위할 때 국채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2010년대의 유럽 후진국이라 불리던 포르투갈이지만 한 때는 최강의 해상제국이었고 현재에도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통하여 향후 10년 뒤엔 유럽에서 가장 먼저 친환경 에너지를 보급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잘만 다듬는다면 HC의 씨앗을 뿌리기엔 가장 좋은 곳이 아닌가, 천우는 그리 생각했던 것이었다.
루이스 코스타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뭐, 아무튼 간에 포르투갈과 좋은 관계를 맺겠노라 다짐해 주신 것에 대해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가 중요하겠지요. 지금부터 귀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발전가능성은 달라질 겁니다."
루이스 코스타가 천우에게 고맙다고 말한 것은 채권의 일제상환이 있을 시, 포르투갈의 경제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40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이 일제히 회수된다면 당연히 해외투자자들의 자본도 일거에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채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경제상황을 위기로 인식해서 투자자들이 하나 둘 발을 빼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 천우의 이름이 거론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포르투갈에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았다.
상황이 이러니 루이스 코스타는 천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고 천우는 이번 기회를 통해 포르투갈이 조금 더 성장하기를 바랐다.
HC의 채권이 무려 40억 달러나 틀어박히면 해외투자자들은 포르투갈에 호재가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포르투갈이 자신들의 장점을 잘 살려서 이를 발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천우는 루이스 코스타의 말처럼 기회를 준 셈이었다.
다시 포르투갈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천우는 영국 왕실의 채권을 회수하는 과정을 거쳤다.
영국계 채권의 금액은 대략 15억 달러 상당이었으며 채무자는 100% 영국왕실로 되어 있었다.
천우는 영국왕실에게서 금을 받는 대신 영국왕실에서 채권을 발행받았다.
또한, 일부는 영국왕실에서 주관하는 사업에 공동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일주일의 강행군 이후, 천우는 세금으로 8억 달러를 납부했다.
현행법상 상속세의 요율을 생각하면 거의 타격이 없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상속을 채권 및 증권으로 받았기 때문이었다.
현물 황금으로 채무상환을 받는 대신에 유가증권을 선택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었다.
세금을 제외하고 10조 원 대의 자산을 상속받은 천우는 최가 상단의 어마어마한 저력에 다시 한 번 경탄했다.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군."
이는 최가 상단의 영국계 세력에게만 묶여 있던 신탁이다.
아직 찾지 못한 가문의 재산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오셔필드 가문의 견해였다.
그들은 천우에게 가문의 유산을 찾아 회수하는 임무를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저희들이 모든 기반을 동원하여 재산을 회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단서를 찾아서 저에게 가져다주세요."
오셔필드 가문은 영국의 뒷골목과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아무래도 최가 상단이 영국으로 진입했을 당시, 수많은 채권관계가 생겨났을 것이고 그것을 회수하자면 뒷골목 총잡이나 주먹들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을 테니, 그들과 암흑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것이다.
천우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갑니다."
"언제고 다시 찾아주십시오. 저희들은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오셔필드 가문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 다음 날, 천우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회사로 향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바람에 그가 투자했던 주식들이 꽤 많이 올랐는데, 그에 대한 주주배당이 일부 이뤄진다는 소식이 들렸던 것이다.
그가 수령한 종목은 전자제품과 엔터테이먼트였다.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이제 막 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이른 바 '한류열풍'으로 인해 일본과 중국부터 한국계 스타들에 대한 구매력이 상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우는 얼마 전, 니시노 그룹 해체 당시에 니시노 픽처스라는 영화배급사를 흡수하였는데, 그 회사를 미스릴 컴퍼니의 자회사인 미스릴 기획과 합병하여 한국계 연예계 지분을 대거 흡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최근, 한국계 부실채권을 회수하면서 연예계 관련 채권도 상당부분 회수하게 되었기에 뜻하지 않은 시너지가 발생한 셈이었다.
이로서 미스릴 컴퍼니는 한국과 일본에 대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예계의 대지주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었다.
천우는 연예기획사 사장들이 마련한 술자리에 초대되었다.
그들은 아주 점잖은 분위기의 요정으로 천우를 이끌었다.
쿵덕!
고즈넉한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기획사 사장들이 천우에게 술병을 들이댔다.
"회장님, 제 술 한 잔 받아주십시오!"
"그러시죠."
그들은 원래 허리가 90도로 숙여져 있던 사람들처럼 천우에게 굽실거리며 연신 손바닥을 비벼댔다.
천우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맞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격하게 아부를 떨 필요는 없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로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천우의 앞에 납작 고개를 조아리며 이렇게 말했다.
"회장님, 한국계 기업들에 대한 광고를 제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들에게 모델자리를 밀어주신다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광고모델 자리를 내어달라고요? 하지만 그건 광고기획사가 알아서 하는 거지, 저는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만."
"모델은 광고주의 의견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은 유난히도 스타마케팅이 잘 먹히는 나라이긴 하다.
허나 천우가 굳이 저들이 데리고 있는 연예인들을 광고에 기용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그의 이름이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흥행보증수표였기 때문이다.
천우는 잠시 고민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연예계와 언론은 필연적으로 엮인 관계라 할 수 있었다.
언제 어떻게 연예계가 필요할지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단순히 밀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천우는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습니다. 모델을 세워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다만, 신뢰도가 높고 사생활이 깔끔한 연예인들로 광고를 기용하도록 합시다. 찌라시에 이름 하나 올라가지 않은 연예인은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인간성이 개차반이라 언젠가는 몰락해서 우리 그룹의 얼굴에 먹칠을 하면 곤란하니까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획사 사장들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면접을 좀 보시겠습니까? 기왕지사 만나신 김에 술도 한 잔 하시고···."
그들의 얼굴에 음흉함이 넘쳤다.
나는 그들에게 한 마디 일침을 날렸다.
"분명히 말했습니다. 깔끔한 사생활, 높은 신뢰도라고요. 스스로 사생활 관리를 하지 않는 연예인을 들이댄다면 당신들, 다시는 그런 쓰레기 짓 못하도록 내가 직접 수술시켜드리지요."
"죄, 죄송합니다!"
천우도 사람이고 남자다.
여자가 싫을 리는 없지만 그는 연예인을 술자리에 끌어들이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오점을 남길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천우를 여자로 옭아매려던 기획사 사장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버릇들 단단히 고치세요. 아시겠어요?"
"네, 넵!"
"만약 기획사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열애설 이외의 스캔들에 휩싸이게 된다면 당장 손절입니다. 주의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미래에 연예기획사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로비수단, 혹은 자금세탁의 루트로 사용되는 것을 질리도록 보아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비즈니스가 훨씬 쉬워질 지도 모른다.
허나 그 후폭풍이 언젠가 천우의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는 바, 천우는 선을 넘는 행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들 미련한 짓들은 하지 맙시다."
"예, 회장님!"
천우는 이들을 미스릴의 계열사 중 게임과 IT부문에 붙여주기로 마음먹었다.
***
이른 아침, HC투자 본사로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브루스 카렐이었다.
천우는 브루스 카렐이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예정보다 일찍 회사로 출근했다.
"브루스···?"
"천우! 이것 참, 공사가 다망해서 만나기가 쉽지 않군 그래."
"뭐, 요즘 이런저런 일이 많았으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일찍 어쩐 일이야? 아니, 그보다 지금 싱가포르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원래대로라면 그랬지. 하지만 내 인생을 바꿔보고 싶어서 왔다.
"인생을 바꾸다니?"
"너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천우는 브루스 카렐에게 코를 들이대며 킁킁거렸다.
혹시나 술에 취한 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킁킁! 향수냄새 좋군."
"고마워."
"이상하네,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당연하지. 술을 끊은 지 꽤 되었으니까."
"아니, 그런데 나의 제자가 되겠다고?"
"그래! 넌 모교에서 교수제의까지 받았다면서. 그렇다면 내가 너의 문하로 들어가서 학문을 배운다면 사제지간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런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정식으로 임용된 교수가 아닌데?"
"그럼 네가 교수로 임용되면 되지!"
천우는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하나 싶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봐, 브루스. 아침부터 헛소리 하지 말고 그만 진짜 용건이나 말해봐. 무슨 일로 온 거야?"
천우는 그가 무슨 도움이 필요하거나 비즈니스 적인 문제로 이곳에 왔다고 생각했다.
허나 브루스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거참, 사람 말을 못 믿는 녀석이네. 진짜로 네 제자가 되고 싶어서 온 건데?"
"···아니, 그러니까 네가 왜 나의 제자가 된다는 건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잖아."
"말했잖아. 나도 인생을 좀 바꿔보고 싶다고."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 인생인데 바꾸긴 뭘 바꾼다는 거야?"
"내가 네 마이너스투자이론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서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
"···문하생이 되고 싶다는 거야?"
쿠웅!
브루스는 당장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가르쳐주라!"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황당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제자를 받는 일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천우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 6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