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20화 (120/202)

< 60. >

60.

천우는 본관 2층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이곳의 생김새 역시 한국에 있는 최 씨 본가의 서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어찌나 똑같으면 천우는 이곳에서 내 집의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우리 집 같네요."

"맞습니다. 주인님의 집이시죠."

"그런 뜻이 아닌데···. 뭐, 아무튼 간에 편안해서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아무튼 영국에서의 집무를 보시거나 머무르실 일이 계시다면 이제는 호텔이 아닌 이곳에 머무시게 될 겁니다. 이제는 영국, 유럽 등 해외 생활전반은 저희들이 책임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시지요."

최가 상단, 그러니까 최 씨 일가는 비단 최 씨들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 아래 조력자, 협조자, 수많은 가신들이 있어 그 엄청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오셔필드 가문 역시 그러했다.

오셔필드 가문은 최가 상단이 유럽으로 진출했던 당시부터 가문을 보좌해왔고 해외업무를 도맡아 해왔던 최가 상단의 일원이었다.

이제부터 천우의 행보는 단순히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오셔필드 가문의 현 수장인 데이비드 오셔필드는 팔순의 나이에도 천우를 보좌하겠다며 나왔다.

그는 여전히 허리가 꼿꼿하고 병색을 찾아볼 수 없는 팔팔한 노인이었다.

"주인님, 이제 곧 채권을 회수하시러 파리로 행차하셔야 합니다. 전용기를 준비했으니 가시지요."

"파리요? 그쪽에도 가문의 채권이 있나요?"

"물론이지요. 최가 상단은 고려시대부터 활동했었던 상단입니다. 그 세력이 유럽 전역, 심지어는 중동아시아에까지 걸쳐 있었으니 최 씨 돈 안 쓰곤 장사를 못할 정도였지요."

최가 상단은 오셔필드 가문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사실, 천우가 생각하기엔 약간의 과장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워낙 집단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매듭지었다.

"아무튼 간에 옛 프랑스 왕실과 관련되었던 채권입니다. 프랑스 정부가 통령제로 전환되면서 그 채권이 이관되어 있는 상태이지요. 원래는 미라클 라이트 가문에서 관리하던 것을 다시 본가로 옮겨왔습니다. 대량의 세금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어쩌면 당연히 감수하셔야 할 일입니다."

"미라클 라이트 가문?"

"미라클 라이트 컴퍼니의 주축세력입니다. 원래는 최가 상단에서 사채를 돌리던 장사치들이었지요. 이들도 넓게는 최가 상단의 일원입니다만, 정확히는 협력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아! 그래서···."

"자, 그럼 가실까요?"

데이비드는 천우를 데리고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는 길, 데이비드는 앞으로 천우의 일정에 대해 읊어주었다.

"내일 프랑스에서 채권을 수령하시고 세금을 납부하시고 나면 스페인으로 가셔야합니다. 그 다음 날에는 포르투갈, 마지막 날에는 영국으로 다시 돌아오실 겁니다."

"으음, 그렇군요."

"또한 마지막 날에 영국에서 채권을 추가로 인수하신 후에는 유럽중앙은행과의 대담도 가지실 예정입니다."

천우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이미 영국계 채권을 인수했는데 또 뭐가 남아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채권을 회수했잖아요?"

"그건 아직 만기가 끝나지 않은 채권과 회사채 등등이고요, 만기가 이미 끝난 채권은 추가로 수령하셔야합니다. 다만, 그 순서가 있기에 프랑스부터 방문하시는 것이고요."

"으음, 그렇군요."

천우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비행기가 프랑스 파리에 닿았다.

그가 프랑스에 도착하니 전용기 공항에 이미 검은색 수트케이스를 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천우를 보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최 선생님. 가문의 수장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저희 프랑스은행에서 선생님께 약소하나마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받아주시지요."

예전에 영국계 CDS와 관련해 프랑스은행과 대담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인사가 전부 다 은퇴하여 뉴페이스들이 즐비해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천우는 제법 친숙했던 프랑스의 중앙은행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 표정을 읽은 프랑스 중앙은행의 재정기획국장 앙드레 파르밀로가 천우에게 재빨리 명함을 건넸다.

"앙드레 파르밀로입니다. 이번에 재정기획국장으로 임명받았습니다. 피에르 토마 전임 국장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아, 토마 국장님. 그 후임이셨군요."

"진즉에 인사를 드렸어야했는데···."

"아닙니다. 안 그래도 어차피 CDS정책회의에서 만나게 되었을 겁니다."

천우가 금융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프랑스에서 국빈대접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한데 그가 최 씨 일가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만으로 프랑스은행에서 이렇게 굽실거리고 있었다.

'무슨 채권을 얼마나 팔았으면 이러는 거지?'

그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앙드레 파르밀로는 천우에게 두툼한 서류를 한 권 건네주었는데, 그 첫 장에는 '만기채권 인도 증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 뒷장을 천천히 넘겨보니 프랑스에 대한 채권은 1700년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앙드레 파르밀로는 직접 부연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읽으시는 동안 채권에 대해 설명 드리자면, 이 채권은 1720년도 프랑스 왕립은행이 미시시피 주식회사와 합병하면서 생겨났습니다. 물론 사실상 채권의 뿌리를 찾는다고 한다면 16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루이 14세 대의 재정파탄이 절정에 이를 때까지 꽤 많은 국가재정을 최가 상단에서 차관해주었는데, 그 빚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1700년대까지 온 겁니다."

프랑스는 전쟁으로 인한 적자누적으로 인하여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는데, 특히나 왕실의 재정 절반에 달하는 빚 때문에 매년 20%에 달하는 적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최가 상단은 그때의 프랑스에게 황금을 빌려주었고 그것이 1720년도 프랑스의 통화 공급과 맞물려 엄청난 가치상승을 입게 되었다.

"1720년도,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 존 로가 프랑스 왕실에 제안했던 중앙은행의 화폐공급이 현실화 되면서 프랑스 경제는 엄청난 호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거리에는 백만장자가 널려 있었다고 하죠. 이를 계기로 프랑스 왕실은 재정적자를 일부 청산하게 되는데, 유독 최가 상단만큼은 채권을 화폐로 돌려받지 않았습니다. 리브르 화폐 대신에 그것을 미래의 금 가치가중치에 비례한 초장기 만기환급 형 채권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하였지요. 무려 90년 후까지요."

"불안정한 화폐 대신에 미래가치에 시선을 고정시킨 것이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당시의 최가 상단은 호황의 프랑스에게서 화폐를 받아서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었으나, 그것을 다시 불안정한 프랑스 왕실에 묶어버렸습니다. 실로 대단한 결단입니다. 마치 프랑스 화폐공급이 존 로와 미시시피 회사의 몰락으로 인해 최악의 경제위기를 만들어 낼 것임을 예견한 것처럼 말이죠."

최가 상단이 대단한 이유는 단순히 미래가치를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거품이야말로 상인이 가장 멀리해야 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결단을 내릴 때엔 엄청난 이문마저도 포기할 줄 아는 결단력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 1800년대 나폴레옹 정부는 프랑스의 재정적자를 타계하기 위해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등을 쥐어 짜냈으나 여전히 고갈상태를 무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프랑스가 최가 상단에게 졌던 채무를 200년 후인 2000년도까지 미뤄버렸습니다. 프랑스의 경제위기와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의 재정적자까지 더해져 엄청나게 쌓여 있던 그 빚을 사실상 갚지 않겠다는 말이나 진배없었습니다만, 최가 상단은 이를 받아들였지요."

"통이 엄청나게 크셨네요."

"단순히 통이 크다고 해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아무튼 그 이후로 빚이 이관되고, 또 이관되면서 1946년 프랑스은행이 중앙은행으로 국유화 되는 동시에 채권이 현 프랑스에 뿌리를 박게 된 것이죠."

제법 긴 얘기였지만 천우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 사건들을 거치면서 프랑스에 대한 채권가치가 미친 듯이 뛰어올랐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앙드레 파르밀로가 천우에게 가지고 온 채권의 현재 가치는 무려 7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적으로 금본위제가 폐지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금은 통용되고 있지요. 해서, 저희들은 70억 달러의 금을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현물로 수령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70억 달러!"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개인이 수령하기엔 손이 떨려서 심호흡을 몇 번이고 거듭해야 가능할 정도의 돈이었다.

앙드레 파르밀로는 이런 금액을 조금이나마 절충하기 위해서 천우에게 협상을 시도하였다.

"다만···. 현금 70억 달러를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들이 회장님께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만."

"제안이요?"

"현물만큼 저희 프랑스 국영기업의 주식으로 수령하시는 건 어떠하시련 지요?"

"국영기업이라."

70억 달러의 주식이면 엄청난 양이다. 때에 따라선 몇 개의 대기업을 흡수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허나 프랑스 정부는 천우에게 단순히 국영기업의 주식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국영기업'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기업을 통째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지배력을 분산시키겠다는 소리였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프리미엄을 제공하겠습니다."

"프리미엄?"

"네, 그렇습니다. 드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요."

천우는 삐딱하게 턱을 괴며 말했다.

"글쎄요. 그게 프리미엄을 아무리 주신다고 하지만···."

"최고 3%까지 프리미엄을 드리겠습니다. 무려 2억 달러가 넘는 금액입니다."

"주식을 제 값에 팔 수 있다면 그렇겠지요."

세상 그 어디에도 팔면 팔수록 물건의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는 없다.

수요가 많아야 가치가 상승하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제 아무리 공기업이라고 주식을 팔아서 가치가 내려가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도 주식변동 추이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매각이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니까, 프랑스에서는 천우의 70억 달러 자산을 자국에 꽁꽁 묶어두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천우는 그들에게 현물 황금으로의 환전을 요구하였다.

"계약서 그대로 현물 황금으로 돌려주시죠."

"지,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죠. 아까 그쪽에서 먼저 제안하셨습니다. 원하는 방식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요. 저는 그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앙드레 파르밀로의 안색이 고구마를 한 만 개쯤 먹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거참 더럽게 까다로운 놈이로군.'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천우는 그런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시죠. 프리미엄은 5%, 대신 종목은 제가 정합니다."

"그, 그렇게 된다면···."

"걱정 마세요. 저도 회사를 굳이 빼앗아갈 생각은 없으니."

"끄응!"

천우의 얼굴에 약간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 6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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