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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영국 런던의 투자신탁회사 미라클 라이트에서 천우의 신탁이 해제되었음을 공식 선언하였다.
이제 신탁으로 묶여 있던 펀드와 채권, 부동산, 황금 등, 현물자산과 부동자산이 일거에 천우에게로 귀속된 것이었다.
천우는 황금의 규모를 듣곤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어, 얼마라고요?"
"파운드화로 37억입니다. 이 중 일부는 채권으로 전환되어 있고 일부는 펀드로 전환되어 있지요."
"허어!"
"원하신다면 런던 금시장에서 언제든지 현물로 교환하실 수 있습니다."
휴 머피의 설명을 들은 천우는 황당해서 헛웃음만 나왔다.
도대체 그 당시에 황금을 얼마나 쟁여두었으면 이렇게 엄청난 양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이는 영국이나 스페인, 네덜란드 등에 돌렸던 사채의 이자 및 원금으로 받은 일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금이 존재한다는 소리인데···?'
원래 금이란 세상을 움직이는 기축통화였다.
가볍고 휴대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교역에 금이 사용되었던 시기, 그 어떤 분야에 종사하든 무조건 금이 들어갔었다.
그러다가 영국이 최초로 금을 대신하는 통화를 만들어 보급하였는데, 그때에도 여전히 금은 재화의 중심이었다.
화폐가 유통되는 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을 것, 즉 금본위제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금으로 돈놀이를 했던 최가 상단의 경우엔 이정도의 금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휴 머피는 천우에게 남은 재산들에 대해 설명했다.
"저희가 가진 자산은 이정도이고, 남은 재산들은 아마 도련님께서 직접 찾는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한국은 도저히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난이 있었고 일제의 식민통지와 한국전쟁을 거치지 않았습니까. 아마 굳이 신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재산을 숨겨두었겠지요."
"그걸 찾는 건, 저의 몫이군요."
"제 생각에는 당신의 조상들께서는 가문의 옛 영광을 되살리고 잃어버린 재산을 모아서 응집시키는 대가로 이것을 도련님께 주신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됩니다."
"장손의 책무를 다하는 대신에 주시는 유산분배랑 같은 맥락이네요. 뭐, 그것도 아니라면 용돈?"
휴 머피가 크게 웃었다.
"하하, 용돈으로 30억 파운드가 넘는 돈을 준다···. 하긴, 최 씨 집안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지금까지 의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건 비즈니스입니다. 의리를 지켰다고 볼 수는 없지요."
휴 머피는 천우에게 수트케이스를 건네주며 말했다.
"앞으로도 한양 최 씨가 무한히 번창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상들의 엄청난 용돈을 받아 나오는 길.
천우는 주머니가 너무 빵빵해져서 이를 도대체 어쩌면 좋나 싶을 정도였다.
허나 그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돈들이 다 쓸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동산증서를 통하여 세계 각국에 위치한 부동산에 대해 알아보았던 천우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유전이요?!"
"러시아와 두바이에 유전이 두 곳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허어! 당시로서는 그다지 가치가 높다고 할 수는 없었을 텐데?"
최 씨 일가에서 전 세계를 누비던 당시에는 가솔린이나 디젤 등이 상용화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유전을 가지고 있어봤자 그리 큰 이득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그림이 완성된 것은 그저 단순히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어쨌든 천우는 현물자산을 끌어 모아 두바이와 러시아의 유전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휴 머피는 이 유전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강대국 영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두바이와 러시아를 압박했었다.
두바이는 중동과 나토의 분쟁 속에서 영국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었고, 행여나 외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덕분에 유전의 영유권은 천우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유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소련 령이었던 유전 위에는 아주 오래된 저택이 있었는데, 휴 머피 일동은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그대로 버티고 있다가 정치권이 전환됨에 따라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마침 97년도부터 98년도에 걸친 러시아 모라토리움 사태가 겹치는 바람에 영유권주장의 입김은 더욱 짙어졌고, 천우가 지분 100%를 얻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다만, 소유권은 있으나 채굴권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라서 시추에 대한 로열티를 일부 지불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천우가 헛돈을 뜯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러시아의 유전사업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단 1%도 안 되는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은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었다.
영국 금시장에 묻어 두었던 펀드 및 채권을 빠르게 회수하여 개발자금으로 동원한 천우는
리지드 오일 컴퍼니에 해당 유전들을 합병시켰다. 그리고 해당 유전의 이름을 최가 유전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리지드 오일 컴퍼니의 이름을 '최가 유전'으로 바꾸어 출범시켰다.
2002년 5월, 최가 유전 출범 한 달 만에 가채매장량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김영실은 이 평가에서 기존의대략 2.5배 정도 상승했다고 말했다.
허나 문제가 몇 개 있었다.
"상당한 난개발이 예상됩니다. 두바이의 제 1 최가 유전 광구의 경우, 가채매장량이 10억 배럴에 육박한다고 밝혀졌습니다만 지형의 특성상 시추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시추만 된다면 10억 배럴이 보장된다는 소리죠?"
"지질학적으로는 그렇답니다."
채굴에도 단가라는 것이 존재한다.
만약 채굴이 워낙 난항이라 단가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가거나 난개발로 경제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판단하면 채굴이 어려워 질 수도 있었다.
"제 2 최가 유전은 어떤가요?"
"이쪽은 매장량이 제 1광구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만, 원유의 질이 높고 채굴도 비교적 쉬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아요. 그럼 그쪽부터 개발을 시작하고 제 1 최가 유전은 갤럭시 오일컴퍼니와 계속해서 기술협조를 해보는 것으로 하자고요."
"네, 회장님. 그리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현금을 투자해도 개발이 가능할까 말까, 부동산을 받았지만 고민이 더 커져만 갔다.
허나 천우는 조상들이 남긴 재산이니 어떻게 해서든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상속받은 저택들에 대한 등기이전은 끝이 났나요?"
"네, 그렇습니다. 당장 방문이 가능하십니다."
"그럼 머리도 아픈데 그쪽으로 드라이브나 좀 가볼까요?"
"준비하겠습니다."
최 씨 일가의 영국 저택은 런던과 맨체스터, 그리고 요크에 각각 위치해 있었다.
모두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어서 사진작가들도 가끔씩 촬영요청을 해오곤 했으나, 신탁회사에서 접근금지를 해두어 지금까지 그 내부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천우는 현 위치인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저택부터 찾아갔다.
런던의 외곽에 위치한 저택은 흡사 작은 성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대지는 만 평 남짓이었고, 그 안에 고딕양식의 600평 규모 본관, 100평 규모의 별관들이 15개쯤 위치해 있었다.
또한, 상단에서 사용했다던 3000평대의 창고 겸 사설병참이 하나, 그리고 20평 규모의 도서관이 3층 높이로 4개쯤 붙어서 지어져 있었다.
천우는 저택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이걸 조선에서 지었다고요?"
"정확히는 조선의 자본이 지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 대단한 자금력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영조 재위기에 사실상 조선에서 축출 당하였던 최 씨 일가는 이후에 다시 복귀하긴 했어도 상단 자체는 글로벌화가 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세계 곳곳에 이런 저택을 짓고 거점으로 삼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천우가 저택에 도착하니, 말끔한 양장 차림의 집사들이 마중을 나왔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들인가요?"
"오셔필드 가문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최가 상단의 일원으로서 저택과 서고 등을 관리해 왔습니다."
"아아, 그런 사람들도 계셨군요."
"신탁이 거행되었다는 기록은 전해들은 바가 있었습니다만, 그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 나왔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조건이요?"
"미라클 라이트에서는 사실 기밀로 붙였겠지만, 가문을 이끌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 장남이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주인님께서 지금 가진 위세라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흐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아무튼 간에 잘 오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주인님의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분골쇄신, 뼈가 가루가 될 때까지 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셔필드 가문의 한국어는 거의 네이티브 수준이었다.
그들은 10세 이전에 이미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 한국으로 오기 때문에 한국어와 그 문화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었다.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한국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분명 영국 사람이지만 대화의 톤이나 추임새, 습관, 심지어는 수학했던 한국의 지역에 따라서 약간의 지역감정까지 있었다.
물론, 학연도 빠질 수가 없었다.
천우를 데리고 본관으로 가는 도중, 오셔필드 차남가문의 필립이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대학을 어디에서 나오셨습니까? 한국대?"
"아니요, 컬럼비아를 다녔습니다."
"···컬럼비아?"
다들 흠칫 놀랐다.
"어려서 조기유학을 떠났었죠."
"으음? 양키들의 대학을, 그것도 어려서부터···."
다들 천우가 반쯤은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하지만 제 2의 모교는 강원도 화천에 있죠. 수피령 수색대대요."
"아아! 그렇군요. 오리지널 한국인 맞으십니다."
천우는 미라클 라이트에서 어째서 병역문제를 거론했었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한국인이 지배층인 세력의 수장이 되어야 할 텐데, 대학은 미국에서 나왔고 학위마저 그곳에서 다 따고 나왔으니 내세울 건 군대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작은아버지를 닮기 싫어서 군대에 갔던 게 이런 순기능을 만들어 낼 줄이야.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1년 더 투자해서 장교로 다녀오는 건데.'
아쉽긴 하지만 병역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본관에 도착한 천우는 그 외관과 내부를 보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라? 우리 집이랑 똑같이 생겼네."
"집이요?"
"서울에 있는 한양 최 씨의 현재 본가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께서 살아오셨던 터전이라면서 제 조고께서 물려주셨지요."
"아하! 한양의 최 씨 일가 저택을 말씀하시는군요!"
"네, 아마도요. 뭐,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고 했었지만 요."
"맞습니다.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지요."
본관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놀라움은 더해졌다.
크기만 다를 뿐이지 생긴 것은 천우의 본가와 다를 것이 아예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벽지의 무늬나 계단의 생김새, 방의 구조까지 모든 것이 일치했다.
천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정말 할아버지가 당신 취향대로 만든 게 맞나···?'
만약 아니라면 최충의는 집안의 가산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는 천우였다.
< 59.(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