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18화 (118/202)

< 59. >

59.

2001년 11월.

일본 정부는 슈팅스타의 니시노 그룹의 채권회수를 최종적으로 승인하였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슈팅스타는 니시노 전자와 엔터테이먼트, 금융을 전격 인수 및 합병함으로서 순환출자구조를 단순화 하여 회사를 정리하였다.

한 편, 니시노 전자의 자회사였던 콘솔제작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를 미스릴 컴퍼니에게 매각하였다.

사실상 업계 1위나 다름이 없었던 PD(플레이그라운드)를 매각한 이유는 제법 단순했다.

이 회사의 적자폭이 생각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신제품 PD2를 생산해서 판매한다고 쳤을 때, 일본 내수시장에서만 대당 2~300엔의 손실을 보게 된다.

이는 최근 들어 상승한 원자재 및 원유가격의 여파 때문이었는데, 얼마 전 원유 투기시장에서의 급격한 매각세가 진행되었다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원자재 수급루트 경색이 점점 가파르게 진행 될수록 PD의 손실 폭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던 데다 불법복제와 짝퉁본체 및 주변기기의 등장으로 판매량 감소와 재고증가의 악재가 겹치는 바람에 PD는 겉만 번지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PD는 미스릴에게 인수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보전자의 뛰어난 기술력을 끌어와 기기를 한 층 업그레이드하는 한 편, 미스릴 컴퍼니 내부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접합시킴으로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 전 세계 게임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미스릴 컴퍼니의 게임회사들이 만든 타이틀을 콘솔에 접합, 독보적인 시장을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독자적 인터넷 연결망인 '플레이넷'을 구축함으로서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면서 그동안 싱글플레이에 국한되어 있던 기존 타이틀에 대한 시장도 넓혀나갔다.

천우가 일본 극우파를 제압하기 위해서 내놓았던 안건들이 실제로 상정됨에 따라서 PD컴퍼니도 수혜를 받게 되었다.

이들은 기업의 숨통을 조여오던 각종 세금압박에서 다소 자유롭게 되는 한 편, HC그룹의 자회사인 HC자원에서 직접 광물을 수여받아 원자재 가격 하락의 이중 수혜를 경험하였다.

이로서 PD는 불과 3개월 만에 완벽 정상화 궤도에 안착하였고 매출증대 250%라는 엄청난 진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다.

이로서 HC그룹의 전체적인 주가는 크게 향상되었다.

천우는 기존의 생산라인보다 훨씬 더 생산성이 좋은 라인을 확보하고 계량하는데 60억 엔을 출자하였다.

이제는 'PD넘버 시리즈'를 생산해서 충분한 마진을 붙여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그 첫 번째 시장은 유럽이었다.

최근 미스릴 컴퍼니의 게임 타이틀 판매량이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는 유럽시장의 장기불황 측면에서 본다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경기불황이 지속되고는 있으나 최근 젊은 세대의 여가활동 다변화로 인하여 소비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보전자와의 합작 및 HC자원의 광물 연계로 인한 생산단가 하락, 출시단가 인하 등이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한다면 바로 유로화 시대의 개막일 것이다.

사실상 유로화는 98년도에 관련 법안이 재정되었으나 지금까지 가상화폐로서 존재해왔다.

그러나 2002년 1월 1일, 유로화가 공식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기축통화가 생겨난 것이었다.

유로화는 시작부터 폭발적인 수요를 보였고 1월 22일에는 공급부족현상을 경험하기도 했었다.

천우와 HC는 이미 투자회사 설립부터 꾸준히 유럽통화시장을 공략해 오고 있었다.

이들이 과감하게 미스릴 계열사들과 PS넘버 시리즈를 결합해서 유럽을 공략하고 생산라인까지 늘릴 수 있었던 요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미 유럽의 통화시장과 CDS시장을 석권한 HC그룹은 그 누구보다 유럽의 통화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이례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셈이다.

허나 아직 유로화 완전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2월 25일 아침, 김영실이 보고서를 가지고 천우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달러화 약세와 함께 유로화가 강세입니다. 다만, 영국의 유로존 개입 유보로 인해 유럽 기축통화 궤도진입은 약간 힘들어 보인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이에 HC투자는 엔, 원화 시장 공략을 고려하는 입장입니다."

"뭘 그렇게까지. 어차피 영국은 유로화 시장에 진입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닐 뿐입니다."

"그렇다면 유로화는 오를까요?"

"아마 다음 달이면 0.8달러 선에 진입할 것이고 4월에는 0.9달러까지 따라붙을 겁니다."

천우는 HC투자에게 유로화, 달러화, 엔화에 대한 투자전략을 공표해서 내려주었다.

그는 화폐가 오르고 내리는 차트를 만들어서 김영실에게 전해주었다.

"엔화가 계속 강세일 겁니다. 그와 함께 원화도 강세인데, 그에 반해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화폐는 평이한 수준, 혹은 약세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럼 이와 같은 전략은 언제까지 가지고 가면 될까요?"

"5월을 마지노선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 이후부터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달러환율 전쟁이 개막할 겁니다. 다들 준비 철저하게 하라고 전하세요."

2002년 5월까지는 미국의 노동생산성 하락으로 인한 달러화 하락이 지속되며 유로화 및 엔화의 강세로 약간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타날 것이었다.

"아마 2003년도에는 유럽중앙은행이 인플레 우려로 인한 통화긴축에 나설 겁니다. 다만, 그것이 단순 통화회수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시장 자체의 구조조정까지 갈 것인지는 사실 좀 지켜봐야 알겠네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공포증은 단순한 '공포증'이 아니라 경제침체와 맞물려 엄청난 연속악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당국들에게는 경계대상 1호였다.

천우는 금융시장이 들썩일 때마다 돈을 벌었다.

미래의 지식이 모두 천우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제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물경기 시뮬레이션을 선행하지 않고서는 감히 예상하기가 힘들어졌다.

수많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고 그냥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긴장해야겠는데 이거.'

당장 2003년도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마저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버렸다.

긴축이 있을 것은 뻔한 일이다.

유로화가 시장에 풀리고 달러화, 엔화 급반등이 있기는 했으나 2003년도를 기점으로 영국과 독일 등지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ECB가 통화긴축을 선언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이 상황에서 2003년도의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천우는 항상 그보다 한 수 이상을 앞서보았다.

HC를 이끌어가자면 조금 더 머리를 굴릴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CDS협회에게 ECB가 CDS재조정을 건의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유럽시장에 맞는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으음, 한마디로 이 기회에 밉보이면 우리까지 재조정 하겠다는 뜻이군요?"

"일종의 압박으로 해석됩니다만."

"압박임과 동시에 기회겠죠.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조정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CDS는 마샤의 나노머신이 철저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만들어냈다.

지금의 구조 역시 나노머신이 계속해서 정밀조정을 해나가는 추세인데, 만약 ECB가 HC를 견제할 생각이라면 천우가 그것을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알겠다고 전해주세요."

"예, 회장님. 아참, 그리고 영국에서 정식으로 신탁이 해제되었으니 일주일 후, 영국 런던으로 오시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아아, 신탁!"

천우는 그동안 이런저런 사건이 있어서 신탁에 대한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천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

2001년 8월, 미국의 방위산업체 제럴드 다이내믹 사에서 신형 장갑차를 생산하여 육군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으로 제럴드 다이내믹의 주가가 연일 급반등하였고 앞으로 이스라엘과 브라질 등에 수출될 예정이었다.

헌데 뜻밖의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2002년 2월, 제럴드 다이내믹 사의 신형장갑차 2대가 태평양해협을 건너다가 그만 좌초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이 사고로 선원 120명이 사망하였고 장갑차와 수송선 등이 침몰하여 막대한 재산피해를 내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장갑차에 붙어 있었던 GPS수신기가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GPS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점점 이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GPS장치가 따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었으나, 제럴드 다이내믹의 연구진들은 그것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장갑차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CIA는 이를 장갑차 탈취사건이라고 명명했다.

미 국방부에서는 해당 사건을 최대한 조용하게 끝내고 싶다고 CIA를 가만히 압박하였고, 그들은 FBI와 함께 조용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너무 조용히 움직였던 탓일까.

장갑차의 GPS 신호가 꺼지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아론 테이트는 국방부차관 로한 모리스와의 대담을 가졌다.

로한 모리스는 이 책임을 모두 CIA에게 돌렸다.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겁니까?"

"뭐요?"

"장갑차 두 대면 뉴욕 한 복판에서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 몇 백 명 죽는 건 일도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아론 테이트는 기가 차서 혀를 내둘러버렸다.

"거참, 알 만한 사람들끼리 이러지 맙시다. 국방부가 요청한 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관련부서 협조를 놓쳤고 상황이 여기까지 온 거 아닙니까. 이번 사건으로 내가 옷을 벗게 된다면 당신도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하는데 억울하게 나만 계급장 떼고 낙향하라고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죠."

어지간하면 잘 흥분하지 않는 아론 테이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국방부차관이 모든 책임을 CIA 부국장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론 테이트는 다른 건 몰라도 남의 중상모략에 헐랭이처럼 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국방부차관이라는 사람이 말이야, 사람 목숨을 그렇게 허투루 여겨서 되겠습니까?"

"···뭐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사람이 그러면 쓰겠습니까? 아무튼 간에 처신 잘하십시오. 분명히 말하지만 책임은 국방부와 CIA가 공동으로 질 겁니다. 명심하세요."

제 아무리 미국의 국방부라곤 해도 CIA가 작정하고 물귀신 작전으로 나오면 방법이 없을 것이었다.

로한 모리스의 선공과 아론 테이트의 방어.

과연 누가 카운터펀치를 먹을 지는 한 번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 5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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