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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
일본 총리관저로 관료들이 모여들었다.
니시노 금융의 파산으로 인해 그룹 전체에 대한 채권회수가 공식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각 관료들은 물론이고 주민당 의원들 다수도 함께 모였다.
짐짓 무거운 분위기가 감도는 이곳에서 정적을 깬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본 주민당 극우파의 수장 소노다 야스히로였다.
"언제까지 우리 일본이 거대자본 제국주의에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국주의?"
"당신들, 최 씨 일가 제국 말입니다."
소노다 야스히로는 3년 전부터 일본 정계에 강력한 해상자위대 구축바람을 불어넣은 인물이었다.
얼마 전부터 타카키 소이치로의 '타카키노믹스'가 서서히 힘을 잃어감에 따라서 극우파가 서서히 인기를 거머쥐는 형국으로 정치판이 변해가고 있었다.
타카키노믹스로 일본경기의 성장정체를 일부 타계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생산성의 증가는 꾀할 수 없었던 것이 결정적인 문제였다.
제조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으나 실패, 오히려 해외채권시장에서 힘을 발휘했지만 결국 생산성 저하로 경제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노다 야스히로는 이 와중에 니시노 그룹 감싸기에 나섰다.
일본의 전자산업은 경제를 일으킨 거목이라면서 나라가 기업을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니시노 그룹과 엮인 과거 전범기업들과 극우파들이 그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점점 판이 뒤집히려 하고 있었다.
타카키 내각이 일본 극우파와 대립하면서 정치판에 냉대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타카키 소이치로가 결국 최 씨 부자라는 카드를 꺼내들기에 이른 것이었다.
사실, 이제 최 씨 일가는 체스터 카렐 센트럴 그룹까지 아우르는 엄청난 규모의 기업집단이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최 씨 일가가 발 벗고 나서면 나라 하나 망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일본 입장에서 본다면 최 씨 일가는 하나의 금융제국이나 다름이 없다는 소리였다.
소노다 야스히로는 최 씨 일가를 제국이라고 일갈했다.
이것은 극우파가 가진 대미 콤플렉스와도 상통하는 부분인데, 현재의 극우파는 일제가 미국에게 패망한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가 일본을 자금의 식민지로 만들었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채권으로 만든 당신들의 제국주의에 정식으로 대항할 것이란 말입니다."
"오오!"
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약 저들이 진심으로 일본의 자금적 독립을 원하는 것이었다면 생산성 증가를 위한 방법을 물색하고 나섰을 것이다.
현재의 산업 환경을 개선해주고 기술력 증대 등을 자극해서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의 2차 산업을 중흥시킨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지도 몰랐다.
허나 언제나 그랬듯, 저들은 여론을 선동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통해서 정권을 잡으려 발악하고 있었다.
사업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극우파건 뭐건 성실하고 논리적으로 기업환경을 살려준다면 저들의 주장을 수용해 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최호명은 저들의 말도 안 되는 일갈에 이렇게 대응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채권회수를 멈추고 니시노 그룹을 살려주는 대신 3년 안에 기업을 자력도생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세요.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뭐요?"
"제국주의 탈피네 뭐네 말하셨으니 그에 상응하는 비책이 반드시 있을 터, 그걸 가지고 오라고 말한 겁니다."
소노다 야스히로는 최호명의 제안을 다시 제국주의라고 받아쳤다.
"당신들은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일주일 만에 그런 플랜을 짜서 가지고 올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결국 돈으로 힘자랑을 하겠다는 것밖에는 더 되겠습니
까?"
"그럼 도생도 불가능한 마이너스 성장의 회사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입니까? 그건 기업가로선 너무 부당한 처사인데요."
"흥! 그렇다면 반대로 당신들이 한 번 해보시죠! 일주일 안에 3년 도생 프로젝트를 완성해서 가지고 온다면 우리도 입을 다물죠."
순간, 천우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최호명은 천우에게 비책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를 통해서 극우파를 도발했던 것이다.
시기적절하게도 극우파의 선동 질이 이어졌음으로 최 씨 부자가 치고 나올 수 있었던 셈이다.
천우는 타카키 소이치로에게 A4용지를 부탁했다.
"제가 이 자리에서 3년 장기프로젝트에 대한 청사진을 짜드리지요. 그럼 완벽하겠지요?"
"···뭐요?"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그 입으로 '일주일 안에 3년 도생 프로젝트를 완성해서 가지고 온다면 입을 다물겠다'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보려고요."
소노다 야스히로는 황당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허나 그 이상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자신이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고 그걸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천우는 그가 무슨 핑계를 대기도 전에 A4용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입으로 일일이 주석을 달아주었다.
"현재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난 80년대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위기에 닥쳤을 때엔 과감한 정책과 결단으로 경제를 부양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타
카키노믹스는 아주 좋은 선례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를 통해서 생산성 향상에 힘써왔어야 했지만 일본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실패함으로서 또 다시 몰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매
번 상향평준화는 되겠지만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계속 된다면 앞으로 일본은 10년, 혹은 20년 주기로 계속 침몰을 반복하게 되겠죠."
"으음!"
"하지만 분명 돌파구는 있습니다."
타카키 소이치로가 추임새를 넣자, 내각들이 웃으며 웅성거렸다.
웅성, 웅성···!
천우는 첫 번째 목표로 재정확대를 내걸었다.
"정부의 재정확충이 그 첫 번째입니다."
"재정확충이라!"
"현재 타카키노믹스의 출범으로 인해 일본은 극심한 재정적자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록 해외차관 및 투자협조, 자원개발 참여로 재정수익을 충당해내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
족입니다. 고갈된 재정적자를 해소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국고정상화까지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3년 안에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정책이 3년 안에 정립되면 일본
의 재정은 훨씬 나아질 겁니다."
천우는 나노머신을 활용해서 이미 시뮬레이션을 끝마쳤고 그것을 그래프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책은 총 5단계로, 이것이 계획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일본의 국고는 거의 수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것을 일일이 수치로 환산하여 그래프에 적어두었고, 그걸 바라보는 소노다 야스히로 측은 아연실색 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제 천우는 재정확충을 통해 얻은 돈을 정부가 인프라 구축 및 기업환경 조성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돈을 벌었으면 써야겠죠? 하지만 이 돈으로 정치인들의 배나 불리면 결국 의미가 없어집니다. 재정흑자를 만들어 낼 거점을 확보한 후, 본격적으로 재정확대에 나서야 합니다. 그
리고 허울뿐인 돈 뿌리기가 아닌 기업 인프라 구축으로 청년들을 시기적절한 일터로 붙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무분별한 재정확대는 결국 나라를 파멸로 이끈다는 걸 천우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일본에게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었다.
천우는 재정확대 정책을 총 7단계로 나누어서 그래프로 만들어놓았고 이것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갈지 눈에 훤했다.
그는 웃으며 이 그래프에 현재의 니시노 그룹의 기업들을 끼워 넣었다.
"이제는 자동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나라의 정책이 기업을 살려주고 생산성이 높아진 기업은 알아서 재정을 확충시켜 주죠. 당신들의 논리라면 그저 나라의 재정, 혹
은 이웃 기업의 돈으로 다 죽어가는 회사에 자금만 조금 수혈시켜주는 것뿐입니다."
"······."
"자, 이제 여러분들은 약속대로 입을 다물어 주실 거죠?"
마쓰비시의 회장 마쓰비시 히로시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하, 이거야 원! 어쩔 수가 없네요. 저는 이만 빠지겠습니다."
"···뭐요?!"
극우파의 계획 중 돈줄을 담당하고 있던 마쓰비시가 일어서자, 소노다 야스히로의 표정이 일거에 굳어지고 말았다.
허나 그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잘못하면 정치기반을 다지려다가 아예 시궁창으로 쳐 박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타카키 내각은 천우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럼 이미 결판은 났네요. 앞으로 일본 정부는 HC의 직언을 수렴함으로서 적극적인 생산성 증가에 나서겠습니다."
"으음! 역시, 괜히 HC, HC 하는 것이 아니로군요!"
이미 극우파 의원들은 자리를 떠버렸고 타카키 소이치로는 웃으며 천우의 손을 잡았다.
그는 천우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도 당신이 저와 우리 일본을 구해주셨네요."
"저는 그냥 컨설팅만 해준 것뿐인데요."
"아아, 그렇다면 컨설팅에 대한 요금을 지불해야겠네요."
"아니요, 그렇다기보다는···."
"앞으로 우리 일본의 사업에 HC와 슈팅스타가 직접 참여해서 보다 많은 이익창출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재정확대에는 그에 따른 사업자 선정이 중요한데, 그걸 최 씨 일가에게 밀어주겠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한 셈이었다.
허나 이는 두 사람을 일본의 정, 재계와 더욱 깊숙이 연관시키겠다는 타카키 내각의 계략이 숨어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게 천우에게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하, 저야말로 감사하지요! 자, 그럼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하실까요?"
타카키 소이치로는 천우 부자를 데리고 긴자의 술집으로 향했다.
***
컬럼비아 대 경영대학 학장실.
경영대 교수진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브루스 카렐을 바라보았다.
"뭐, 뭘 어쩌고 싶다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크음!"
브營? 카셈? 컬낳湊? 경영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한데 이제 와서 갑자기 모교에서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니, 굳이 박사학위가 필요한 가 싶어서 다들 의아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 대학에서 대학원까지 진학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같은 대학의 학문을 같은 대학원에서 익힌다면 시야가 국한되어 결국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는 논리였다.
"저도 압니다. 교수님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최천우를 말하는 건가?"
"네, 교수님."
"그야···."
"그래요, 천우는 천재라서 논외로 두겠지요. 하지만 천우를 롤모델로 삼고 그에게서 배움을 얻는다면 저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순간, 교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굴 스승으로 삼겠다고?"
"천우 말입니다. 제가 천우의 마이너스 투자이론을 전수받아서 카렐 학파에 공헌할 수 있다면 저를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학장 존 헤네시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조건을 하나 걸도록 하지."
"뭡니까?"
"만약 자네가 천우를 우리 학교 교수로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나도 자네의 대학원 입학을 고려해보겠네."
"교수요···?"
경영대 교수진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조건이라면 야."
이미 카렐 학파는 천우의 교수임용을 몇 번이고 종용하였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천우의 마이너스 투자이론이 힘을 받을 때, 비로소 카렐 학파는 학계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허나 그 구심점인 천우가 없으니 말짱 황이었던 것이다.
브루스 카렐은 교수들의 앞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셨으니 제가 천우를 반드시 모교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지켜보겠네."
브루스 카렐은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은 천우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녀석을 나의 지도교수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든 천우를 끌어오려 발버둥 쳐보겠노라 다짐했다.
< 58.(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