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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에서 포착했었던 하이잭킹 시도는 결국 일거에 무마되었다.
그로 인해서 대규모 테러시도를 방어하였고 천우는 CIA와 FBI에게 귀빈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즈음인 2001년 10월, HC투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였다.
이로서 HC투자와 HC금융, 미스릴 컴퍼니를 자회사로 둔 HC그룹이 출범한 것이었다.
사실상 HC그룹은 현행 관례 및 일부 금융 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회사였다.
그러나 글로벌 지주기업으로서 상당히 많은 부분에 손을 뻗고 있는데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HC그룹에 대한 문어발식 확장을 인정하면서 합법적 법인이 된 것이었다.
만약 천우가 월스트리트에서 인정받아 각 국가의 금융위기 타계에 한 축을 담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HC그룹은 존재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천우 본인의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발버둥의 일환이었으나 결론적으로는 막대한 자금시장 지배력을 손에 넣게 된 것이었다.
10월 15일, 천우는 HC금융을 캐나다와 멕시코로 파견하였다.
이 과정에서 달러화 현금 20억 달러가 출자되었으며 그 중 절반이 채권으로 전환되었다.
이로서 1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기업의 각종 채무로 지원된 셈이고 천우는 나프타에 대한 영향력을 그만큼 크게 행사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곧이어 18일에는 미국의 대대적인 2차 산업 장려정책의 일환으로 18개 기업에 대한 대출도 시작하였다.
미국에 대규모 공장단지를 짓겠다는 한국계 기업들과 태국, 인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글로벌 기업이 HC의 손을 거치게 된 것이었다.
특히나 저번 98년도 금융위기 당시, 태국과 인니 등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은 일방적은 달러화 수용만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달러화의 근본이자 국제통화의 원산지인 미국을 공략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인력의 풍부함은 오히려 동남아 시장이 유리할 수도 있다.
허나 미국이 기업시장과 나프타를 연계하여 대대적인 개방을 시작하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우선 관세의 말도 안 되는 인하율이 적용되며 미국 현지법으로 법인들이 보호를 받기 때문에 통상법 301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통상법 301조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고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관세폭탄으로 수출길이 막히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허나 현지법으로 보호를 받게 된다면 이런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되며 캐나다의 풍부한 광물과 멕시코의 인력까지도 싸게 끌어와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이 기술력인데, 이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천우는 동남아의 여러 국가들을 중국과 러시아로 끌어들이면서 근 5년 동안 엄청난 기술력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또한, 그를 바탕으로 발생한 자금으로 글로벌 제조회사들을 동남아에서 인수함으로서 기술경쟁력이 동시에 생긴 것이었다.
김영실은 천우에게 아시아 18개 회사에 대한 여신상황을 차트로 묶어서 보고했다.
그중에는 슈팅스타도 끼어 있었다.
"현보그룹도 대출을 받았네요?"
"아무래도 미국 정부의 나프타 관련 사업 특별법 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미국은 자국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영위하면서 특별대우를 받는 대신 자금출납에 대한 까다로운 조건들을 법으로 정해놓았다.
이를 테면 일정 이상의 기업신용평가 등급을 취득하지 못하면 사업권 취소 등의 불이익이 발생하게 해놓음으로서 비정상적인 달러화 반출을 방어한 것이었다.
현보그룹은 슈팅스타가 거의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사업기반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오리지널 미국기업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보가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장사를 하자면 반드시 HC의 기업신용평가에서 B등급 이상을 맞아야 했다.
천우는 현보그룹의 자금상황을 살펴보곤 아주 만족스럽게 웃었다.
"최상위 등급이로군요."
"이미 우량등급인 B+등급을 넘어섰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대출이 가능합니다. 상환일정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내규에 따라서 처리해주세요."
천우는 그밖에 다른 아시아 기업들의 대출계획표를 검토하고 그들에게 등급 확정을 내려주었다.
HC에서 등급을 측정하여 천우가 확정하고 그것을 미국정부에게 넘기면 최종 사업권허가 및 자금융통에 대한 허가가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우는 한화로 거의 5조원에 달하는 여신을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신용평가를 마무리 한 후, 김영실은 또 한 권의 보고서를 내밀었다.
"일본에서 온 보고서입니다."
"일본이요?"
"니시노 금융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니시노 금융이요?"
일본 금융회사 순위 5위의 니시노 금융은 여신 및 채권취급 스케일로 따진다면 사실상 3위의 기업이었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문제는 HC와 슈팅스타에서 니시노 금융의 채권을 상당한 수준까지 구매해서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흐음, 이렇게까지 우량한 기업이 넘어갈 줄은 몰랐는데."
"예전에 고베지진과 97년도 바트화 투기에서 얻은 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바트화 투기요?"
"일전에 타이펀드로 니시노 금융의 자금이 상당히 많이 흘러들어갔었는데, 바트화 투매열풍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판단해서 손절을 감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절···? 누군 죽어라 투매방어를 해주었는데 정작 채무상관기업이 손절을 감행하다니!"
이런 돌발행동은 천우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채권회사에 대한 정책까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기랄, 조금 더 믿을 만한 사외이사들을 선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겠는데요."
"그러자면 해당 회사들의 반발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그래요. 천천히 모색해봅시다."
"아무튼 간에 니시노 금융에 대한 처분을 결정해달라고 주민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슈팅스타와 함께 일본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좋습니다. 가는 김에 아버지랑 온천이나 좀 한다고 생각하죠 뭐."
천우는 마침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최호명을 찾아가기가 아주 수월했다.
그는 업무를 마친 후,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여러 스케줄로 바쁜 그를 위해서 천우는 그의 스케줄에 동행하기로 했다.
그는 최호명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천우의 얘기를 들은 최호명은 낮게 신음했다.
"으음. 결국 이런 식으로 역효과가 나오게 되는구나."
"어차피 투자 초기부터 어느 정도는 생각해왔던 부분 아닌가요?"
"뭐, 그렇긴 하지."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주민당의 얘기부터 들어봐야겠지. 그쪽도 극우파 표심을 의식해서 조심스러운 것 아니겠냐?"
니시노 금융이 물론 바트화 투기에서 일부 세력을 잃은 부분이 분명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타격은 채권대상자들이 하나같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데 있었다.
일본은 온건파 주민당이 집권하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업 관련 수익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로 인하여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천우의 전생보다 일찍 탈출했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제조 산업의 몰락이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자산업은 그야말로 최절정에 달하던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이때, 일본은 부동산으로 엄청난 호황을 누렸었지만 반대로 생산성은 점점 감소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무리 관광산업이 발달하고 금융업이 발달한다고 해도 제조 산업에서 밀리게 된다면 근본적인 성장세 둔화를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일본의 소재산업이 아무리 강력한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결국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가들이 감산을 결정하면 업계의 경기가 주춤할 수밖에는 없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 바로 생산성의 감소라는 것이었다.
이런 생산성 감소는 관련 금융업계까지 병들이고 만다.
특히나 전자제조 기업들의 엄청난 부진으로 인하여 니시노 금융과 같은 은행권의 수익률 감소에 채권회수율 급감으로 자금이 경색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만약 니시노 금융이 파산하게 된다면 관련 여신기업들은 줄줄이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특히나 니시노 금융을 손에 쥐고 있는 니시노 그룹의 여러 기업들은 공중분해가 될 것이
뻔했다.
"니시노 그룹은 우익과 관련이 깊어. 특히나 니시노 전자의 경우엔 전 세계 콘솔시장을 거의 쥐락펴락 하고 있으나, 그 자금 중 일부는 극우 정치인들의 후원금으로 사용되고 있어.
아마 주민당 극우파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게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
"기어코 무슨 수를 써서든 도산을 막아내려 하겠지. 특히나 마쓰비시와 같은 회사들이 금융회사의 자금을 출자시켜서 채권을 대신 회수해준다던지, 구제 금융을 출자한다던지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냐?"
천우는 생각했다.
마쓰비시에서 태클을 걸어서 니시노 그룹을 살려준다고 쳐도 근본적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우리가 수술해서 채권을 회수하고 경쟁력을 붙여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수술을 시킨다···."
"마쓰비시에서 덤벼든다고 해도 저들의 부진이 나아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으음."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자금력이면 마쓰비시쯤이야 별 거 아니죠. 사실, 그쪽에서 꽤 많은 채권을 뿌려두셨잖아요?"
최호명은 실소를 흘렸다.
"후후, 그야 그렇긴 하지."
마음만 먹으면 지르밟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최호명의 슈팅스타는 이제 그런 위치의 회사가 된 것이었다.
"좋아, 한 번 해보자. 그까짓 마씨비시 따위야 치워버리면 그만이지."
"그럼 일 마치고 일본에서 온천이나 좀 하다가 올까요?"
"좋지."
"아참, 그나저나 우리 둘만 온천에 간다고 엄마가 서운해 하지는 않을까요?"
최호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네 엄마, 요즘 브로드웨이에서 짬짬이 연극학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몰랐냐?"
"감자기 무슨 연극?"
"연기에 대한 갈망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게지."
"허어. 나한텐 그런 얘기는 없던데?"
"당연히 없지. 지금은 말단 단역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브로드웨이의 연극학원을 다니고 있거든. 뭔가 뚜렷하게 얻은 것이 없어서 네게는 말하지 않았을 거야. 아마 지나가는 단
역이라도 얻는다면 네게도 말을 해주겠지."
미스 로호떼 출신의 연기자에 시대를 풍미했던 한희연이지만 워낙 오랜 공백 기간이 있었고 나이도 꽤 먹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녀에게는 아직도 스타였던 시절, 그리고 연기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다.
비록 예전처럼 빛나는 스타는 될 수 없다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갈증은 채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천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요즘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자꾸 늦어지시는 거군요."
"가면 뭐하냐. 사람도 없는데."
"큭큭, 아버지도 결국 늙는군요. 예전 같으면 무슨 자유네 뭐네···."
"···시끄럽다. 얼른 온천이나 알아보자. 술도 한 잔 하게."
"좋죠."
오랜만에 부자는 오붓한 시간을 가져 볼 생각이었다.
< 5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