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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싱가포르, 대만 등지를 돌면서 조사한 결과, 청수방직은 총 55개의 회사에서 방직물을 받아다가 세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천우는 이 회사들의 계좌내역들을 받아낼 수 있도록 해당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CIA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은 빼고 HC투자에서 허위사실 및 작전주 발본색원에 필요한 정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아주 상세하고도 세밀한 계좌정보를 내어주었다.
특히나 말레이시아의 경우엔 이 사안에 대해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98년도에 있었던 태국의 바트화 투매 사건 당시, 말레이시아는 강력한 통화시장 폐쇄 정책을 실시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미 말레이시아는 97년도부터 이상기류를 감지하곤 바트화의 투기세력이 태국정부를 무너뜨린다면 반드시 자신들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태국의 금융위기가 무사히 지나가긴 했지만 98년부터 99년도에 걸친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사태에도 이들은 통화폐쇄정책을 검토 중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말레이시아 정부는 해외에서 들어온 자본이 급격하게 유출되거나 자국의 화폐가 투기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천우는 상당히 구체적이면서도 상세한 거래내역을 받을 수 있었다.
최근 월스트리트에서는 HC투자를 사실상 제 2의 신용평가기관으로 인식하는 추세였다.
이미 HC투자가 손을 대는 종목은 우량종목으로 대우를 받아 주가가 뛰어 HC효과라는 말이 생겨난 상태였다.
그 HC효과가 이제는 신용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서 신용평가기관들이 HC의 투자동향을 참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HC가 투자하는 경향을 참고해 만든 차트, 이른 바 'HC지수'에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국의 신용평가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애써 일군 금융시장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천우는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보내 온 계좌내역을 받곤 약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계 투자은행이라···."
막연하게 렉스테리아와 연관되어 있다고만 생각했지, 설마하니 저들이 중국의 투자은행과 엮였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나노머신의 저장장치에서 '청화투자'이라는 기업에 대해 검색해보았다.
나노머신에는 인물도감을 비롯하여 수많은 도감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기업도감도 있었다.
-청화투자 - 설립연도: 미상. 자본금 규모: 미상. 자산운용규모: 미상.
어지간한 정보가 전부 미상으로 나왔다.
마샤는 이들이 중국계 사모펀드라고 설명했다.
-알려진 것이라곤 중국계 폐쇄적 사모펀드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전생에 있었던 IMF위기당시, 론스타의 대한민국 재계시장 침입에 대해 기억하실 겁니다.
'물론이지. 1금융권을 흡수해서 아주 자기들 마음대로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튀었잖아.'
-그 론스타는 대표적 폐쇄적 투자법인, 즉 폐쇄적 투자 사모펀드로 거론됩니다. 미국에서는 이 폐쇄적 사모펀드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물론 폐쇄적 사
모펀드가 사방팔방을 다 뒤집고 다니는 중이죠.
'흠, 그래. 그런 투기세력들이라면 아주 골이 아프게 많이 상대했었지.'
-청화투자 역시 그런 부류로 예상이 됩니다. 다만, 나노머신이 가진 정보로는 저들의 정체를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선 CIA나 인터폴의 협조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케이, 좋아. CIA에게 연락하자.'
청화투자의 정체를 파악하기만 한다면 CIA가 중국 공안을 압박하여 월스트리트 내에 잠입한 유령회사들을 대대적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주식시장은 훨씬 더 안정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는 있었다.
사건이 터지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대를 메야 할 텐데, 과연 그 책임소재를 제대로 짊어지고 사태를 수습할 사람이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천우는 CIA부터 찾았다.
아론 테이트는 천우가 가지고 온 자료를 보며 깜짝 놀랐다.
"허어, 자네 무슨 스파이인가? 이건 우리 쪽 소관인데. 차라리 우리에게 요원을 지원해달라고 하지 그랬나."
"CIA의 움직임에 대해선 공안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저는 일반인이기 때문에 공안이 마킹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CIA는 다르죠."
"으음."
"만약 CIA가 움직이는 것을 공안이 눈치 챘고, 혹시라도 공안에 짱 박혀 있을 프락치가 적과 내통이라도 했다면 우리는 완벽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겁니다."
"하긴, 그건 그렇군."
"아무튼 간에 이정도 정보면 공안을 완벽하게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론 테이트는 청화투자에 대해 알아오라는 명령을 하부조직에 내려주었다.
그들은 FBI와 연계하여 인터폴에 협조를 요청하였고, 그 결과가 무려 30분 만에 나왔다.
정보본부에서는 해외범죄기록에 대한 검색과 연계하여 보고서를 완성하여 올렸는데, 그 결과가 상당히 의외였다.
정보본부 요원 엘리사 그린은 이들이 흑사 회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 쪽에서 활동하는 흑사회 계열 조직 '청랑회'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가 바로 청화투자입니다. 만약 청수방직이 청화투자와 관련이 되어 있다면 청수방직 역시
청량회의 직속기관일 가능성이 큽니다."
"뭐야,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렉스테리아와 관련이 없다는 소리야?"
마샤는 빠르게 이들의 정보를 흡수해 나갔다.
그리곤 이런 결론을 내렸다.
-렉스테리아와 비슷한 계통의 조직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결국 뭔가 더 큰 대가리가 존재한다는 뜻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죠.
천우는 마샤의 분석이 가장 신뢰가 높다고 판단했다.
"부국장님, 아무래도 청량회와 렉스테리아는 같은 계열의 조직이라고 생각됩니다. 렉스테리아가 관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요."
"뭐야, 그렇다면 저놈들이 우리에게 붙잡혀 왔던 당시에 지껄였던 소리들이 전부 허풍에 뻥카가 아니었단 말이야?"
"뻥카인 줄 알았는데 패를 뒤집어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죠."
세븐포커가 재미있는 건 상대방의 패가 정확히 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배짱 튕기는 놈들에게 돈을 잃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CIA는 렉스테리아의 상부조직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긴 했어도 그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진즉에 수사를 더욱 확대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론 테이트는 수사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아무래도 국장님과 상의를 좀 해봐야겠어. 상무부와도 얘기를 해보고 말이야."
"그렇다면 이 사건을 가지고 중국의 공안도 압박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CIA는 천우가 가지고 온 자료를 받자마자 중국 공안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들은 미국 주식시장에 들어온 조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다가 천우가 모아둔 정보를 내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협조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아론 테이트는 공안과 국제경제사범에 대한 정보공유를 공식적으로 문서화 하는 '상호경제사범정보공유'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서 CIA는 중국계 자본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한 편.
HC투자는 천우의 지시로 뉴욕종합증시와 나스닥 내의 중국계 자본들에 대한 평가를 시작하였다.
천우는 CIA를 통해 중국에서 받아온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도감을 업데이트하였고, 불과 하루 만에 30개가 넘는 유령회사를 색출해냈다.
HC는 일단 자사 홈페이지와 투자고문통지서에 위 30개 회사에 대한 투자를 제한할 것이라고 고지해두었다.
그러자, 해당 회사들의 주가가 하루아침에 뚝 떨어져 바닥까지 주저앉아 버렸다.
이에 주식시장에서는 해당 회사들에 대한 거래정지를 명령하였고 본격적인 상장폐지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상무부에서는 재무부와 연계하여 해당 자본들의 달러화 유출을 막는 임시방편을 만들어냈다.
상무부 차관 제이슨 골드너는 천우를 상무부로 공식 초청하였다.
그는 천우에게 감사패와 함께 대통령 표창을 전달해주었다.
"축하해! 꼬맹이 시절, 첫돌 잔치에서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장성해서 대통령 표창까지 받다니. 내 감회가 다 새롭군 그래."
"감사합니다, 차관님."
"차관님이라니.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
"그래도 여긴 공식적인 자리인데 그럴 수야 있나요."
"허참, 딱딱하긴 한데 매력 있어."
제이슨 골드너는 천우에게 또 다른 한 뭉치의 서류를 건네주었다.
"CIA에서 자네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고 하더군."
"아아!"
천우는 마치 생일잔치에서 선물을 앞둔 아이마냥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류를 꺼내보았다.
그 안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공식 재무 스폰서로 HC를 지정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제 천우는 나프타와 관련한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사업에 대대적 자금출자를 할 수 있으며 채권발행 및 회수에 대한 권한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는 상무부는 물론, 재무부와 깊이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식 파트너임을 인정받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요즘 HC를 제 2의 신용평가기관이라고 하더군. 하지만 이제는 공식적으로 자네들이 신용평가기관이 될 걸세. 나프타 관련 기업들에 대한 신용평가를 자네들이 관리하게 될 테니
말이야."
"······!"
"다만, 지금처럼 자네의 직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 된 틀을 만들어 우리에게 제출해야 할 거야. 그래야 상무부와 재무부, HC가 연동하여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을 테니까."
영향력이라는 건 비단 돈을 벌어다주는 수단만은 아니다.
부를 뛰어넘는 재계의 명예.
천우에게는 그런 명예가 수여된 것이었다.
***
FBI는 8월 말부터 9월 10일 현재까지 창립이례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사건건 미국을 지나는 비행기들을 수시로 감시하고 수색하느라 미국 50개 주와 특별주의 경찰들이 아주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CIA에서 제공한 첩보에 의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테러분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그와 더불어 바빠진 곳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출입국사무소와 해양경찰이었다.
미국 해경은 4500톤급 함정 등을 대거 기용, 미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을 일제히 검열했다.
덕분에 무역선 입항에 약간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해경은 테러분자들을 절대 그냥 들여보낼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북대서양에서 들어오던 선박이 급히 회항하여 도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 해경은 재빨리 함정을 급파하였고 미 해군과의 공조를 통하여 대대적인 포획작전을 구상하였다.
해경은 발 빠른 대처로 순식간에 목표선박을 따라잡았고 그들을 포위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씰은 헬기를 동원한 작전으로 목표물에 침투하였다.
콰앙!
선실 내부로 진입한 네이비씰은 순식간에 선원들과 마주하였다.
"해군이다! 손들어!"
"제기랄, 쏴버려!"
탕탕!
놀랍게도 그들은 AK-47소총으로 네이비씰을 겨누었고, 순식간에 선박 내부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네이비씰이 투입되어 전투를 치르는 동안 후방에서 해경특공대가 침투하여 갑판을 점령했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순순히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이미 네이비씰 대원 두 명이 총상을 입었기 때문에 해경과 해군은 상당히 격노한 상태였다.
총격전으로 인해 저들이 테러분자라는 것은 이미 입증이 된 바, 이대로 네이비씰이 후퇴하고 함포로 배를 침몰시킨다는 작전까지 구상된 상태였다.
"5분의 시간을 주겠다! 항복하면 살려줄 것이고 항전한다면 침몰할 것이다!"
해경과 해군은 5분의 시간을 주었다.
허나 그들은 여전히 결사항전을 고수하겠다며 나섰다.
"신의 뜻이다!"
결국 해군은 철수하기로 했고 해경은 함포로 선박을 폭파시키기로 결정했다.
그 시각.
CIA는 FBI, SWAT와 함께 특별대책본부를 꾸렸다.
사상초유의 하이잭킹 시도가 감지 된 것이었다.
< 57.(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