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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SNS는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소셜네트워크,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이지만 이를 통해서 각종 이슈와 사회문제 등이 퍼져나감으로서 SNS에 대한 가치는 일반 뉴스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
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혹자는 이 SNS가 인생 최대의 낭비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SNS는 획기적인 방식의 미디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SNS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을 찾으라면 당연히 해당 서비스를 창시한 사람들과 그것을 운영하는 회사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엉뚱하게도 SNS의 수혜를 입는 사람이 있었다.
천우는 SNS 시스템을 통해서 인물도감이라는 독특한 어플리케이션을 완성하였고 그것을 적극 이용하는 중이었다.
그는 인간이 가진 능력과 성향을 바탕으로 평가시스템을 만들고 적성에 딱 맞는 자리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자리나 회사가 인간을 만나 발생시킬 수 있는 최대한의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HC투자라는 기업집단을 살찌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회사운영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우는 인물도감을 통해서 전생의 이슈, 즉 미래의 이슈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고찰하고 특정 단체와 인물 간의 관계를 조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는 CIA에게서 받은 자료를 나노머신에게 주입시킴으로서 인물도감을 발전시켰다.
또한, 마샤는 '이슈 아날라이저'를 완성하였다고 천우에게 말했다.
"이슈 아날라이저면 무슨 분석기 같은 건가?"
-어떠한 이슈가 일어났을 때, 그 이슈에 대한 속사정이나 팩트 등을 확인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자료를 수집해야 하지만, 만약 악의적인 목적으로
거대집단이 특정 이슈를 만들어 미디어를 조작했다면 팩트를 체크하기가 힘들어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해당 이슈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합니다. 저희 나노머신은 인터넷
으로 구할 수 없었던 기밀들을 흡수하면서 SNS상의 이슈를 재해석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갖출 수 있게 된 겁니다.
"호오, 그것 참 흥미로운 기능들이로군."
-제 생각엔 주인님께서 이 기능을 통해서 사회적 이슈가 갖는 진실을 통해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샤는 무한히 진화하였고 지금도 천우의 하드웨어가 받쳐주는 한 거의 한계치까지 진화해 나가는 중이었다.
이제 천우의 신경계는 그 목적에 맞게 내분비기관을 조정하여 신체를 조정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만약 지금 천우를 한 겨울의 시베리아 벌판에 던져놓는다고 해도 내분비기관이 그의 신체를 조정하여 충분히 생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었다.
"아무튼, 이슈 아날라이저를 가지면 작금의 중국계 자본들에 대해서 조금 더 빠르게 분석할 수 있다는 거지?"
-진실에 도달할 수 있겠지요.
"으음, 좋아."
천우는 최근 미국의 주식시장에서 역합병으로 회사를 빨아먹고 튄 중국계 자본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인터넷으로는 알 수가 없었던 FBI와 CIA의 조사 자료들과 해당 자본이 들어온 입구라 생각되는 한국, 영국 등의 자료를 집약하여 아날라이저를 돌려보았다.
삐비비빅!
아날라이저는 자본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한 편, 그것을 역추적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CIA와 FBI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일종의 가설을 만들고 SNS를 통해 증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천우가 직접 그것들을 찾아다니면서 팩트를 체크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우선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중국계 방직회사인 '청수방직'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얼마 전, 마샤는 렉스테리아의 자본이 중국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했었다.
만약 청수방직에서 단서를 잡는다면 렉스테리아의 중국 자본을 잡아 그것들과 연결된 제 2의 검은돈을 틀어쥘 수 있을 것이었다.
-서류상에는 청수방직의 본사는 중국 요녕성에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현재 동남아 4개국에 16개 공장을 운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방직제품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시가
2억 2천만 달러에 이른다고 되어 있지요.
"으음, 그러니까 무너진 미국의 방직시장을 교묘하게 뚫고 들어온 것이로군?"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때, 미국의 방직시장은 가장 돈이 되는 종목 중 하나였다.
허나 남미와 동남아 등의 풍부한 인력시장이 노동집약적 산업인 방직시장을 뚫고 들어오면서 미국의 방직시장은 빠르게 추락하게 되었다.
같은 방직물의 가격이 두 배, 세 배 더 싸니까 굳이 미국의 비싼 방직물을 가져가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의 방직시장을 불황으로 몰아넣은 세력 중 하나인 중국에서 미국이 이런 회사를 세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여전히 방직물의 제 1 수출시장은 미국이었고 그곳에 회사를 세워서 투자 금을 모집하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실상은 달랐다.
천우는 요녕성의 청수방직을 찾아가보았다.
직접 중국에서 차를 빌려 몰래 등기상에 나와 있는 방직공장의 본사로 잠입하기로 한 것이었다.
시가지에서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첩첩산중에 위치한 이곳은 산등성이의 고지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무슨 요새를 쌓아놨나."
전체적으로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지만 고도가 상당히 높았다.
아마 위성 카메라로 찍지 않는 이상 제대로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
마치 요새와 같은 청수방직에 도착한 천우는 CIA에서 전달해 준 관련정보지를 펼쳐보았다.
CIA는 요녕성의 방직공장 부지가 거의 만 평이나 된다고 하였고 방직기기가 일반 기업에 비해 족히 두 배는 된다고 하였다.
허나 그곳에는 엉뚱하게도 방직공장이 아닌 고기를 말리는 육포가공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열에 아홉 반은 거짓이었다.
"···완전 나가리 회사네."
부지만 사놓고 그곳에 건물 몇 개 세워서 등기상에 문제만 없도록 해놓은 것이 청수방직의 진짜 얼굴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 일한다는 수 천 명의 생산노동자들은 보이지도 않았고 동네 노인들 몇 명이 나와서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인지도 모를 소고기 몇 장을 말리는 것이 생산 활동의 전부
였다.
천우는 현보에서 생산한 카메라와 캠코더를 가지고 일주일 동안 유령회사 앞에서 잠복하며 그 영상과 사진을 입수하기로 했다.
찰칵!
"오호, 화질 좋은데?"
2001년도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화질이었다.
비록 독일의 정밀회사에서 렌즈를 수입해서 만들어냈지만 본체의 성능 자체는 당대 최고였다.
천우는 흐뭇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는 미리 싸가지고 온 견과류와 육포 등을 먹으면서 일주일을 버텼다.
일주일이 지난 후, 그는 회사에서 총 몇 명의 사람이 드나들었고 차는 몇 대나 들어갔는지 알아보았다.
"하나, 둘, 셋···. 뭐야, 하루에 고작 세 명 밖에 안 들어갔네?"
차량은 텅 빈 트럭에 고기 몇 장 걸려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고 경비원 몇 명을 제외한다면 노동자 세 명이 이 회사의 전부였던 것이다.
천우는 그 장면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이 새끼들, 다 뒤졌어!"
이제 이 회사가 불법이라는 증거를 모아두었으니 이를 통해서 중국 공안당국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었다.
만약 공안에서 정보공개를 거부한다면 아마 미국과의 대대적인 마찰이 불가피할 테니,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정보를 내놓을 수밖에는 없을 터였다.
천우는 이쯤에서 잠입을 정리하기로 했다.
"자, 그럼 슬슬 가볼까?"
짐을 챙겨서 떠나려던 천우, 하지만 그 순간에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양의 방직물이었다.
"···어라?"
천우의 추측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트레일러 30대 분량의 컨테이너박스와 벌크 항공포대가 줄을 지어 회사 앞에 도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특이한 것은 트레일러가 움직이지는 않고 사람만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때, 천우의 눈에 이상한 점이 포착되었다.
망원렌즈로 살펴보니 컨테이너의 측면에 붙은 로고들이 청수방직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장정 몇 명이 나오더니 컨테이너에 붙은 로고 위에 청수방직의 상표를 덧붙여서 원래 있던 상표를 가려버렸다.
"허어, 이곳에서 방직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세탁을 하고 있었던 거구나!"
청수방직은 3/4분기 생산량 4위의 엄청난 물량을 쏟아내는 기업인데, 이들이 뿌린 방직물이 미국 서부지역의 3/4분기를 싹쓸이 해버렸을 정도였다.
그 물량을 자회사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회사의 물건을 매집해서 미국에 물량공세를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서 판별이 되었네요. 저들은 해외시장에서 자기 돈을 주고 구매한 물건을 밑지면서 미국시장에 뿌린 후, 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회계자료를 통해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었
던 겁니다.
"그렇다면 저놈들과 거래하는 회사들을 잡아서 뒤를 털어내면 렉스테리아의 자금줄이 고구마줄기 엮듯 나오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우는 마크를 바꿔치기하기 전에 그것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은 차량의 번호와 기사들의 대략적인 인상착의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버렸다.
찰칵!
거의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른 후, 그는 곧장 주변에서 벗어나려 했다.
허나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가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던 바로 그 틈에 사방을 봉쇄하는 인력이 투입되어 물 셀 틈 없는 포위망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당황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미 군대에서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많이 완성해서 나왔잖아요?
천우가 수색대대에 들어간 것은 단순 차출로 이뤄진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곳에서 마샤는 유사시에 필요한 어플리케이션을 상당히 많이 만들어냈다.
마샤는 그 상황에 딱 맞는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춘 '생존매뉴얼'을 구축해냈다.
생존매뉴얼은 천우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어플리케이션을 즉시 구동하고, 만약 필요하다면 그 자리에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할 수 있는 기능도 있
었다.
-생존 내비게이션을 구동합니다. 구동은 구(舊) 위성지도 데이터베이스가 기반 하여 이뤄집니다.
나노머신에는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위성지도 역시 갖추어져 있었다.
마샤는 천우에게 차를 버리고 걸어서 이동할 것을 추천했다.
-이곳은 산악지대입니다. 비록 탈출구가 도로 하나 뿐이지만 야산을 이용한다면 저들에게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젠장, 그냥 때려눕히고 도망칠까?"
-아시잖아요. 그랬다간 저놈들이 눈치를 채고 잠적할 수도 있습니다.
"빌어먹을!"
만약 저들이 눈치를 채면 그 즉시 꼬리자르기에 들어갈 것이 뻔했다.
천우는 마샤의 말대로 숲 속에 차를 숨겨두고 걸어서 산비탈을 내려가기로 했다.
그는 위성지도를 기반으로 한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어차피 저 물량이 끝은 아닐 것이고, 아직 만족할 정도의 투자금도 먹어치우지 못했을 것이니 족히 한 달은 무사히 지낼 수 있을 테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사사사삿!
마치 뱀처럼 기민하고 유연하게 산을 내려갔다.
한데 이상하게도 야산에 길이 나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위성지도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이곳이 야산을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혹시 누군가 천우보다 먼저 이곳을 올라온 사람이 있었던 것일까.
-한 두 번이 아닌 것 같아요. 산에 이정도 길이 생기려면 적어도 몇 달은 그렇게 오르내려야 할 텐데···.
"이 야산에 나 말고 또 누군가 있다는 건가···?"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천우의 눈에는 아주 허름해 보이는 움막이 하나 보였다.
< 5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