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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09화 (109/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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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

2001년 5월, 국제유가가 20달러 선에서 춤을 추다가 일순간 30달러를 돌파하였다.

허나 유가는 계속해서 하락하여 다시 23달러까지 주저앉았고 이제 곧 20달러 선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계속되고 있었다.

HC투자는 유가의 등락에 따라서 상당한 이윤을 챙기고 있었는데, 천우가 만들어둔 차트 그대로 투자하여 꽤나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나 저유가 시대에 투자해두었던 석유기반산업들이 승승장구하면서 HC투자의 몸집을 불려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나 엉뚱하게도 천우를 괴롭히는 것은 미국의 주가지수였다.

우선 미국의 주가는 2000년 버블붕괴 이후에 저점을 고수해 오다가 올해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기부양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금리인하로 인해 서서히 활황을 띄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식으로 얻는 수익은 채 3%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주식시장의 거품은 위험수준이었고 버블이 붕괴한 이후 연준의 개입으로 인해 핫머니가 필요이상으로 유입된 상태였다.

"아마 이대로 테러 등이 일어나면 큰일인데···."

9.11테러 이후, 미국의 증시는 바닥을 찍게 된다.

쌍둥이 빌딩(국제무역센터)이 테러로 인해 무너져 내린 이후, 미국정부는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한 후에 이라크와의 전면전을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당시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족히 3개월이면 끝날 것이고 정상화 궤도에 안착하여 정부수립까지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것은 초일류 국가인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으나, 전쟁은 생각보다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그 바람에 유가가 폭등했고 원자재 가격도 덩달아 올라 제조업을 수렁에 빠트리고 말았다.

이건 천우로서도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CIA를 찾아가기로 했다.

삐비비빅!

호출기를 작동시키니 '1918 3124'라는 글귀가 떴다.

"이게 뭐지?"

잠시 후, 천우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암호를 차례대로 입력해주십시오.

아마도 아론 테이트가 말했던 그 비밀번호가 바로 이것인 모양이었다.

천우는 호출기의 배터리 뚜껑에 있는 번호를 차례대로 입력해주었다.

-입력 감사합니다. 부국장실로 연결됩니다.

이윽고 아론 테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호, 슈퍼보이! 무슨 일인데 호출을 다 주었나?

"상의드릴 것이 좀 있어서요."

-으음, 그래? 그렇다면야.

두 사람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딱히 정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센트럴 파크가 만남의 장소처럼 되어버렸다.

아론 테이트는 오늘도 핫도그를 사왔다.

"아직 점심 전이지?"

"핫도그를 사 오실 것 같아서 아직 안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포장된 핫도그를 먹었다.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천우는 아론 테이트가 이렇게 뜸을 들일 때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워낙 오래도록 알고 지냈기에 대충 표정만 봐도 그가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아론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네, 또 관심법을 썼나?"

"무슨 할 말이 있으셨던 거죠?"

아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을 너무 오래 알고 지내도 문제라니까."

"고민은 나누면 반이 되지요. 한 번 말씀해보세요."

허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음, 아니야. 오늘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뭔가 좀 껄끄러운 것이 있나보죠?"

"그런 구석이 좀 있긴 하지. 하지만 아직 자네의 손을 탈 정도는 아니야. 조금 더 두고 본 이후에 말해주겠네."

"그러시죠."

CIA가 워낙 공사가 다망하기에 천우는 그가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허나 굳이 그걸 추론해서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지금 천우에게 그건 딱히 고생해서 알아낼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뭐야?"

그의 질문에 천우는 자신이 바로 어제 정리해둔 국제유가 및 금값의 동향 분석표를 건네주었다.

천우는 분석표를 통해서 언젠가는 전쟁도발이 일어날 것임을 시사해두었다.

"유가가 요동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국제유가는 하락장입니다. 오펙에서 감산을 합의한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제대로 된 감산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죠."

"으음, 그래. 확실히 그런 기조가 있기는 하지만 대대적인 감산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지."

감산은 생각보다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대대적 감산을 통해 두 번의 석유파동을 경험한 터라 오펙은 감산에 상당히 민감한 상태였고 나토 및 유엔이 그들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감산이 쉬울 리가 없

었다.

그밖에 석유회사의 총매출 감소로 인한 투자이익 하락 등의 이유가 있을 테니, 오펙의 감산합의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천우는 이 모든 것을 타파할 수 있는 방안은 전쟁뿐이라고 역설했다.

"리스크에 따라서 유가와 금값은 변동합니다. 보통은 가파른 오름세를 기록하게 되죠."

"뭐, 안전자산을 찾게 된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이 쉽게 나겠어?"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미국을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요?"

"없지."

"아무리 냉정하게 따져 봐도 없습니다. 그런 미국이 전면전을 벌인다고 가정해보자고요. 중동의 국가들이 똘똘 뭉쳐도 아마 한 달 안에 아라비아가 초토화 되고 끝이 나지 않겠어

요?"

"으음, 뭐 그렇긴 한데···."

"마음만 먹으면 이깁니다. 그런 상태에서 상대방이 먼저 도발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일개국가의 경우엔 족히 일주일이면 상황이 종료 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천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론 테이트는 중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잘라버렸다.

"잠깐, 지금 자네는 아랍권에서 미국에게 도발을 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그게 아랍국가 전체의 의견은 아니겠죠. 하지만 이라크처럼 극단주의세력을 지지하는 국가들의 경우엔 그걸 성전이라고 생각하며 도발할 겁니다."

"허어! 그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들과 우리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저들을 이해하려 한다면 큰 코를 다칠 수도 있다는 거죠. 게다가 이라크는 지금 석유수출에 대한 제재를 받고 있어

서 사실상 인도적인 수출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죠. 수니파가 그걸 용인할 리가 없습니다."

"흐음."

"제 생각엔 조만간 엄청난 피해를 동반하는 공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들이 선제공격을 감행 한다? 어떤 방식으로 말인가? 저들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 않잖나."

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있죠. 사실 미사일보다 무서운 것이 저들에겐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첩보가 있었나?"

"부국장님도 알고 계십니다. 바로 테러분자들이죠."

"······!"

"테러분자들은 반드시 미국의 심장부를 타격하려 들 겁니다. 정치, 경제, 외교 등, 어느 한 구석이라도 반드시 테러를 감행하게 될 테죠. 만약 그렇게 해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테러는

더욱 격화될 것이고 전 세계는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흐음, 그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CIA에서 나서주셔야지요."

"우리는 여전히 중동정세를 자세히 살피고 있어. 하지만 이렇다 할 테러 징후는···."

이윽고 아론 테이트가 생각에 잠겨버렸다.

그는 무려 5분이나 같은 자세로 있다가 다시 상념에서 깨어났다.

"···조사를 해봐야겠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 생각하셔야해요."

"그럼 자네에게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그게 뭡니까?"

"사실, 말이야···."

아론 테이트는 현재 중국에서 유입된 자금이 미국의 경제를 타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천우는 예전에도 중국의 페이퍼컴퍼니를 조심하라고 말해둔 적이 있었다.

허나 정부의 구조상 중국에게서 받은 타격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기에 사태가 일어나도 수습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으음, 결국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군요."

"자네가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가진 정보는 얼마나 있으신가요?"

"지금으로서는 페이퍼컴퍼니가 도산하고 난 후에서야 그들이 사실은 유령회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어. 한마디로 뒤통수 맞은 후에야 꼬리를 잡는다는 거지."

"인정하지 싫겠지만···."

"우리가 놈들보다 한참은 늦어. 미국으로 들어온 중국계 회사가 어디 한 둘이겠나? 게다가 이제는 아예 미국의 회사를 역합병 해서 먹어치우는 수법을 사용하기도 한다네. 더러는

그렇게 벌어들인 자본으로 미국의 회사에 투자를 해서 문어발로 다리를 뻗어 작전을 치기도 하지. 그렇게 해서 넘어간 중견기업이 한 둘이 아니야."

중국식 역합병은 예전에 최호명이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시가총액을 뻥튀기한 회사가 미국계 우량회사와 접촉하여 대규모 자본을 유입시키고, 서로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중국계 이름을 버리고 미국계 회사로 흡수되는 것이다.

허나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사람은 중국인이고 회전하는 자본 역시 중국의 것이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땡전 한 푼 없이 미국으로 들어와 우량기업을 먹어치워 버리는 셈이었다.

물론, 최호명은 자기의 자본을 밀어 넣어 다 죽어가는 미국계 회사를 살리는 방으로 넘어왔지만 중국의 투기세력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도덕성도, 인간성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천우는 피해를 0%로 만들 수는 없지만 한 번 해보는 데까지는 해볼 생각이었다.

"제가 최대한 막아드리죠."

"흐음, 좋아. 그래준다면 우리로선 땡큐지. 하지만 자네로서도 나쁠 건 전혀 없을 걸세."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던 간에 천우를 기용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아론 테이트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화끈하게 천우에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을 생각이었다.

"자네가 마음에 들어 할지는 모르겠네만, 우리는 HC에게 나프타 교역에 대한 대출 권을 부여해주고 싶네."

"나프타 교역에 대한 대출권이요?!"

북미자유무역협정, 즉 나프타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무역동맹체계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무역의 블록화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미국은 나프타를 통해서 엄청난 재정 및 경상수지 흑자를 창출하고 있었다.

미국의 자본, 캐나다의 자원, 멕시코의 인력이 만나서 이뤄진 이 협정에는 미국계 자금회사들이 대거 투입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 어떤 사업을 하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건 간에 사업에서 부채는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자네를 통해서 나프타 내부의 매입채무라든지 각종 대금상환 등이 이뤄지는 것이지."

"그런 조건을 내어주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못 할 것 없지. 중국계 자본이 더 이상 미국 시장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수 없도록 해준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100% 근절은 장담하지 못하는 데도요?"

"알아.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개나 소나 깽판 치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나?"

천우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 큰 판으로 나갈 수 있겠는데?'

< 5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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