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07화 (107/202)

< 53.(2) >

렉스테리아에 대한 조사는 끝이 났고 그 수괴들은 전부 감옥에 수감되었다.

허나 렉스테리아에 대한 여죄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여죄는 밝혀서 형을 집행하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그들의 여죄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에 있었다.

최근 미국의 닷컴열풍이 잦아들면서 주가의 거품도 빠르게 꺼지고 있었는데, 그와 함께 중국의 자금이 미국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시가총액 10억 달러 대의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불어나 나스닥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달러화를 거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헌데 이 와중에 하나 둘 중국계 회사들이 증발하고 있었다.

그 악역을 렉스테리아가 자처하고 있었는데, 연방경찰에서는 그들의 범죄를 확신했고 CIA는 입장이 약간 달랐다.

한 편.

CIA부국장이 건강악화로 은퇴를 선언하면서 아론 테이트가 그 자리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로서 아론 테이트는 CIA의 중추로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된 것이었다.

신임 기획실장으로는 이실리아 테론이 내정되었고, 이로서 그녀는 아론 테이트의 라인이 된 셈이었다.

미국 센트럴 파크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중국계 자본 유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회의를 갖는 중이었다.

"중국 공안당국과는 접촉을 해봤나?"

그의 질문에 이실리아 테론은 고개를 저었다.

"시도는 해봤습니다만, 그놈들도 작정하고 입을 다물기로 한 모양입니다."

"···이놈들이 미쳤나."

4월 현재 미국의 주가는 전월대비 1.83%정도 떨어졌는데, 이중에 거의 대부분이 중국자본이었다.

지금 현재도 미국으로 진출한 중국계 유령회사들이 하나 둘 달러를 꿀꺽 집어삼키곤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라면 연내 4%대 주식붕괴가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라 할 것이었다.

"우선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수사를 조금 더 강화해봐."

"공안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말짱 황입니다만."

아론 테이트는 실소를 흘렸다.

"어차피 안 돼. 윗선에 압력이 없었으면 저놈들이 애초에 미국에 들어올 수 있었겠나?"

"으음!"

"암암리에 수사해. 필요하다면 언더커버를 더 심더라도 말이야."

"괜찮다면 슈퍼보이를 끌어들이는 방안을 생각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

"이제는 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겁니까?"

"당연히 신뢰는 하지. 하지만 그는 이제 몸값이 너무 높은 용병이 되어버렸어. 어지간하면 그의 개입은 생각하고 싶지 않군."

슈퍼보이를 개입시키려면 응당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이 업계의 정설이 되어버렸다.

CIA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당연히 그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아론 테이트는 언더커버의 확충을 지시하는 한 편, 감옥에 들어간 렉스테리아 수뇌부에 대한 재소환을 검토했다.

"연방교도소에게 면회신청을 좀 해봐."

"그거야···."

"아니, 은밀히."

"으음. 알겠습니다."

CIA는 수많은 단독작전이 가능하지만 연방교도소에서 은밀한 만남을 기대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놈들이 워낙 거물인데다 렉스테리아의 하부조직원들이 연방교도소에 얼마나 있을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CIA요원 안나 슈나이더가 연방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녀는 정신과 전문의로 위장하여 렉스테리아의 수뇌부 이스트 프락시모를 찾아갔다.

이스트 프락시모는 얼마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교도소에서는 중요증인의 사망을 우려하여 전문의를 초빙한 것이었다.

그는 안나 슈나이더를 보자마자 담배부터 찾았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시작합시다."

"교도소에서는 금연이 원칙 아닌가요?"

"그건 너무 틀에 박힌 생각 같은데. 교도소도 사람 사는 곳인데 담배를 왜 못 피우겠어요?"

"으음, 뭐 그러시죠."

안나 슈나이더는 그에게 돌돌 말린 담배를 한 개비 건네주었다.

냄새를 맡은 이스트 프락시모는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 대마초?"

"기왕지사 피울 것이라면."

"···CIA에서 나왔나?"

"이런, 너무 일찍 밝혔나?"

이 세상에 어떤 정신과 전문의가 감옥을 방문하면서 대마초를 챙겨오겠는가.

그녀는 이스트 프락시모에게 라이터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한 대 피우고 우리가 묻는 말에 대답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뭐, 그러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연방교도소에서 대마초 구하기는 좀 힘드니까."

과연 대마초 한 개비로 무슨 거래가 될까 싶었지만 그는 지독한 대마중독자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연초는 입에 맞지도 않았다.

그걸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이스트 프락시모에게 꽤나 걸걸한 선물은 준 것이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입 쭉 빨아 당겼다.

"쓰읍, 후우! 크흐, 죽이는군!"

"남미에서 가지고 온 거야. 최상품이라고 하던데."

"뭐, 최상품까진 아니고. 아무튼 간에 궁금한 게 뭐야?"

"최근 중국에서 들어온 페이퍼컴퍼니들, 정말 렉스테리아의 작품이야?"

그는 웃으며 담배를 뿜었다.

"후후, 그럼 우리 작품이지. 이미 연방경찰에게 자백했고 수사가 거의 종결 직전인 것으로 아는데?"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조금 다르거든? 그러니 다른 답변을 좀 줬으면 좋겠어."

"허참, 없는 말을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인데."

"···감옥에 들어갔다고 끝이라 생각하는 거냐?"

"법적으로 처벌 받았고 우리는 살 만큼 살면 감옥을 나갈 거야. 거기에 죄 하나 더 얹는다고 뭐 달라지겠어?"

"평생 감옥에서 못 나갈 수도 있겠지."

"그것도 감안하지 않고 죄를 인정했을까?"

이스트 프락시모는 자신에게 불리한 소리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CIA는 FBI로 이들을 넘기기 전에 먼저 성격파악을 위한 인터뷰로 수사를 마무리 지었었다.

그들이 순순히 렉스테리아를 넘기는 대신 성격을 파악해서 추후 조사에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조사에 따르자면 이스트 프락시모는 상당히 이기적이지만 조직에 대해선 전체주의적 성향이 짙은 인물이라서 결코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 또한 연막이겠군.'

CIA의 입장은 이스트 프락시모와 같은 렉스테리아 수뇌부가 자신들이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행동하는 것은 일전에 인터뷰를 통해 확보했듯이 이들에게는 정말로 상부조직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범죄를 렉스테리아가 전부 다 뒤집어쓴다면 조직에 뭔가 더 혜택이 있

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었다.

이스트 프락시모는 담배를 한 개비 다 피운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서 그는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담배 값은 해야지. 알랭 드로스, 스위스계 미국인이야. 지금은 상원에 있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 사람을 한 번 찾아가봐. 뭔가 나올 지도 모르지."

"알랭 드로스···."

안 그래도 CIA는 렉스테리아가 연줄을 이용해서 뭔가 공작을 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정치인들을 한 명씩 싹 훑어두었다.

그중에 알랭 드로스는 가장 청렴한 정치인이었는데, 그의 이름이 나오니 CIA로선 상당히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또 심리전이네.'

CIA로서는 알랭 드로스가 정말 렉스테리아의 끄나풀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범죄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말을 흘려버리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했다.

CIA는 또 다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집무실.

천우는 알렉산더 노바크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제가 당신의 자원들의 자원을 팔아주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미 채권을 그렇게 많이 넘긴다고 했는데도 조건이 또 필요하십니까?"

"돈도 좋지만 저는 안전한 것을 제일 좋아합니다."

"안전이라."

"제가 들고 나가는 물품들을 나토에서 일일이 검수했으면 합니다만."

"···나토요?"

러시아의 지하자원 수출은 무역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헌데 그만큼 규모가 크다보니까 이 안에 도대체 무슨 물건을 섞을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연합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동유럽 포위망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서 정정당당하게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 천우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입장은 참으로 난감해졌다.

"나토군이 참여하게 된다면 우리가 당신을 기용한 이유가 없어집니다만."

"이유가 없어지지는 않죠. 시간이 다소 걸리고 추가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기왕지사 유럽에 수출하는 거, 러시아 딱지를 붙이는 것보다야 나토 딱지를 붙이는 것이 더 비싸게 먹히지

않겠습니까?"

"으음. 우리의 신용도가 그 정도로 바닥인가요?"

"그건 저를 찾아오실 때 이미 감안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모라토리움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지불유예에서 한 단계 더 지나면 디폴트, 국가부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니 사실상 디폴트나 모라토리움이나 신용도에선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아무리 정직하게 장사를 한다고 해도 이미 무역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이건 비단 수출가능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비록 수출을 한다고 해도 받아줄 수 있는 나라는 적을 것이고 그만큼 러시아가 감당해야 할 디스카운트는 상당히 높은 요율이었다.

이들이 천우를 찾아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러시아산 광물을 HC가 보증하는 광물로 바꾸어 내보내면 그만큼 신뢰도가 높아지기기에 지금보다 많은 이득을 챙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허나 HC보다는 아무래도 나토연합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천우는 그리 주장한 것이었다.

물론, 그보다는 러시아에서 어떤 물건을 보내건 사고가 생기면 나토가 다 뒤집어쓰도록 정치를 걸었다는 것이 옳았다.

문제가 생기면 나토는 천우보다는 러시아를 추국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뭘 보내든 천우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었다.

여차하면 남의 나라에 전투기부터 띄우는 무식한 러시아이지만 그렇다고 개나 소나 다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천우의 생각이었다.

천우의 제안을 들은 알렉산더 노바크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버렸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오래 걸려도 상관이 없으니 천천히 답변을 주시지요."

알렉산더 노바크도 천우가 나토를 들먹일 줄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사업가라면 응당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지, 그걸 놓칠 수도 있는 쪽으로는 생각을 잘 안하기 마련이니까.

뭔가 공으로 먹으려다가 빈손으로 일어서게 된 알렉산더 노바크는 씁쓸하게 웃었다.

"···보통은 아니시네요."

"저는 그저 보통의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군요."

이로서 저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천우라는 사람은 보험 없이는 절대 아무나 손을 덥석 잡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알렉산더 노바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괜찮다면 추후에 다시 조건을 조율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다만 나토 얘기는 못 뺀다는 것만은 확실히해두고 싶네요."

"흐음, 혹시 다른 단체의 개입은 불가능할까요?"

"다른 단체?"

"EU라든지···."

천우는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국과 뭔가 썸씽이 있구나!'

뭔가 켕기는 것이 있으니 저러는 것이겠거니, 천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EU와의 접촉도 시원하게 받아줄 수는 없었다.

"저는 나토로 못을 박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나토입니까?"

"그럼 반대로 묻죠. 왜 나토는 안 되는 겁니까?"

우문현답에 알렉산더 노바크는 자리를 떴다.

"···그럼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죠."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 천우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53.(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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