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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103화 (10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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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인간은 언젠가 한 번쯤은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경험을 한다.

허나 만약 죽음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면···.

"끄으응!"

알레시오 보누치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마도 알레시오 보누치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허나 그건 그의 아주 작은 착각에 불과했다.

스르륵, 스르륵···!

정육점에서나 나올 법한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스틱스 강을 건널 모양인데."

알레시오 보누치는 10대 때부터 조직에 몸담았던 범죄자였다.

비록 밥 먹듯이 사람을 죽여 대는 청부업자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 죽는 걸 많이 봐왔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상황은 평생 알레시오가 지켜봐 왔던 죽음직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꿀꺽!

절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이 팽팽한 긴장감을 감싸고도는 미칠 듯 한 적막.

잠시 후, 밀실에 불이 켜졌다.

그의 표정은 이내 더욱 굳어져버렸다.

자신의 팔다리는 로브로 꽁꽁 묶여 갈고리에 매달려 있었고 그 갈고리 옆에는 숙성 중인 소고기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정육점에선 하루에도 수 백 리터의 피를 쏟아내고 내장을 항공포대에 담아서 후처리공장으로 보내곤 하지. 사람 하나 죽는다고 그걸 누가 알겠어?"

또각, 또각.

묵직한 하이힐의 발자국 소리가 밀실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알레시오 보누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기랄!"

"반가워. 나는 그레이드 미트의 책임자 스칼렛 브라셔라고 해."

칼을 갈고 있던 사람은 바로 스칼렛 브라셔였다.

그녀가 하이힐을 신은 것은 바닥의 피를 밟기 싫기 때문이었다.

"옛날 귀족들은 정원에 널려 있는 똥을 밟기 싫어서 하이힐을 신기 시작했다고 하잖아. 나 역시 그래. 인간의 따뜻한 피를 밟는다는 건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거든."

"아, 아하하! 그럼 애초에 피를 흘리지 않게 하면 되겠군."

"으음, 그건 불가능해. 너 같은 범죄자 새끼들은 피를 봐야만 정신을 차리더라고."

알레시오 보누치는 기겁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니야! 나는 다른 꼬장꼬장한 마피아들과는 다르다고!"

"마피아가 다 같은 마피아지. 뭐 다를 게 있다고?"

"절대 그렇지 않아! 난 조직에 충성한다고 목숨 따위나 버리는 그런 미친놈이 아니라고!"

"호오? 그래? 보통은 그렇지가 않던데."

그녀는 칼이 잘 갈렸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숙성된 소고기를 얇게 썰어보았다.

슥슥···!

얼마나 예리하게 벼려졌으면 쇠고기에 칼을 대자마자 고기가 포 떠져서 나왔다.

"고기는 결대로 썰어야 잘 썰어져. 잘 봐, 너도 결국엔 한 덩이의 고기니까···."

"자, 잠깐! 제기랄, 원하는 것부터 말해줘야 할 거 아니야!"

"원하는 건 조금 있다가 말해줄게. 처음부터 너무 쉽게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제기랄!"

그녀가 알레시오 보누치를 육포로 만들려던 바로 그때였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하여간, MI5는 너무 잔인해서 문제라니까."

"···양키 아저씨가 벌써 오셨네."

"협상도 하기 전에 회부터 뜨면 뭐 어쩌자는 겁니까?"

스칼렛 브라셔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 다셨다.

"쓰읍, 타이밍 참 안 좋네."

"이제부터는 당신 상관과 함께 우리가 저놈을 취조하겠습니다. 그러니 협조 좀 해주시죠."

"에이, 재미없어! 그 노친네가 사람 취미생활까지 막아버리네?"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마리아나 로즐리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미안하군. 부하 취미생활까지 간섭하는 꼰대라서."

"알긴 아시네."

"그만 복귀해, 브라셔 요원."

"쩝."

"어서."

그제야 스칼렛 브라셔가 돌아섰다.

알레시오 보누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저런 미친년이? 고마워.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빠각!

마리아나 로즐리의 주먹에는 강철로 만든 너클이 위치해 있었다.

그것에 정통으로 맞은 알레시오 보누치의 누런 치아가 하늘을 수놓듯이 튕겨져 나갔다.

"쿨럭, 쿨럭!"

"착각하지마라. 너 같은 뺀질이 새끼의 이죽거림이나 들어주자고 우리가 여기 모인 게 아니니까."

"···빌어먹을. 칼로 썬다는 년이나 너클로 치는 년이나, 매한가지군 그래."

이번에는 마리아나의 펀치가 그의 코를 후려 쳐 버렸다.

우드득!

"끄아악!"

"이번에는 코뼈를 부러뜨렸지만 다음에는 어디가 부러질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러니 아가리 털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마라."

그녀는 알레시오 보누치가 비록 겁은 많지만 이런 상황에 아주 익숙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 20년 넘게 굴러먹은 그녀의 직감이 그걸 너무나도 생생히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본론부터 얘기하고 고문하겠다. 잘 들어."

"···뭐?"

탁탁!

저 멀리에서부터 한 남자가 자동차배터리와 점핑케이블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발전기와 연결되었고 점핑케이블은 배터리와 알레시오를 이어주었다.

"이, 이런 씨발!"

"길게 말하지 않겠다. 렉스테리아의 다음 정기모임이 어디서 열리는지 알아야겠다."

그녀는 더 이상 묻거나 답을 듣지도 않고 그냥 알레시오의 귓불에 점핑케이블을 연결해버렸다.

콰지지직!

"끄아아아악!"

"걱정하지마라. 이 발전기는 안정기가 부착되어 있어서 쇼크를 일으키지 직전까지만 전기를 사출하니까."

"우웨에에엑!"

위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낼 때쯤 전기가 멈추었다.

그녀는 눈에 실핏줄이 다 터져버린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열리지?"

"···빌어먹을! 대답을 듣고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지지는 것이 순서 아닌가?!"

"그건 내가 정한다. 어디서 열리지?"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다는 듯이 그의 입이 열렸다.

"이탈리아 밀라노 브리츠 호텔에서···."

"개소리. 브리츠 호텔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임장소로 사용된 적이 없어. 거짓말이다."

순간, 알레시오 보누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은 수갑을 찬 닉스 굿맨이었다.

"닉스! 이 개자식이 감히 형제들을 배신해?!"

"지금까지 세월 좋았지? 누구는 뒤에서 사람 죽이고 다니느라 손에 피 마를 날이 없는데 누구는 양 옆에 여자들이나 끼고 술이나 퍼 마시고 있으니 말이야. 씨발,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그런데도 뭐, 형제? 아주 지랄 똥들을 싸고 자빠졌다!"

닉스 굿맨은 수갑을 찬 채로 쇄도해 나가더니 이내 펀치 볼을 치듯 알레시오 보누치의 안면을 강타해버렸다.

콰앙!

"쿨럭, 쿨럭!"

"···새끼 좀 살려보겠다고 총질에 칼질에 목까지 조르고 다니는 나를 개처럼 다룬 너희가 충성심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냐?"

마리아나 로즐리는 닉스 굿맨의 분노를 조금 누그러뜨려주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됐어. 어차피 일망타진해서 없애버릴 놈들이야. 국제사범교도소에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썩다보면 느끼는 것이 있겠지."

"크흐흐흐···."

바로 그때였다.

알레시오 보누치가 미친 듯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웃기는군! 우리 형제들을 일망타진하겠다고? 렉스테리아가 무슨 범죄조직의 대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뭐야?"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큭큭큭, 이것 참. 너희들은 지금까지 문어다리의 빨판 하나를 잡았을 뿐이야. 상식적으로 마피아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정치인을 주물럭거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 같

나?"

"이 새끼가 감이 어디서 약을 팔려고···."

"약? 약은 이미 꽤 많이 팔았지. 만약 내 말을 믿기 힘들다면 모임장소를 습격해서 수뇌부를 싹 털어봐. 아마 잡아봤자 금방 흐지부지 될 걸?"

티는 내지 않고 있었지만 MI5는 혼란에 빠졌다.

알레시오 보누치는 볼펜과 메모장을 요구했다.

"내가 주는 대로 받아 적어. 일주일 후, 프랑스 리옹의 노스탤지어 모텔에서 오후 3시 11분에 모임이 열리는데, 호실은 501호야. 참가인원은 8명이고 그 인원들의 신상명세를 아주

상세히 알려주도록 하지."

"너를 포함한 모두가 감옥에 가게 될 거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발언을 우리더러 믿으라는 거냐?"

"후후, 웃기는 놈들일세. 알려달라고 작살나게 두들겨 팰 때는 언제고 막상 알려주니까 알려준다고 난리야?"

MI5 입장에서 본다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이긴 했다.

허나 알레시오 보누치의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 그럼 나는 정보를 제공해주었으니 그만 경찰로 넘겨주지 그래?"

"······."

"하하, 이제 와서 겁이라도 나는 거냐?"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MI5는 정보기관이지 사법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체포 이후의 사법처리는 검찰에서 하도록 되어 있었다.

모든 정보기관이 그렇겠지만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피의자는 사법기관에 넘겨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알레시오 보누치는 그것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손 털었다. 뭐,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일단 구치소에 쳐 넣고 알아보시던지. 원하는 건 다 털어놓을 테니 말이야."

"···제기랄."

만약 단순히 살인청부업자의 변심으로 개인적인 복수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알레시오 보누치는 비굴하게 눈물이나 질질 짜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허나 MI5는 엄연히 정부의 공공기관이다.

비록 폐쇄적인 구조의 정보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정부 산하에 있는 단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만에 하나 지금 MI5가 알레시오 보누치를 밀실에 계속 억류시켜둔다고 해도 그의 정보에 의해 노스탤지어 모텔을 습격하고 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검찰은 조사를 통해 알레시오 보누치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결국엔 사법처리를 요청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부장님, 어쩌면 좋습니까? 나중에 분명 변호사를 써서 혐의를 회피하려 할 겁니다. 게다가 저놈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 큰 조직이 위에 있다는 소리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반드시

윗선에서 손을 쓰려 할 겁니다."

"···그렇다고 규칙을 어길 수는 없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놈은 감옥에서 호의호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정부기관인 우리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일하자는 건가?"

"필요하다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쳤나? 다들 옷 벗고 싶어서 환장했어?!"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또 한 사람이 등장했다.

그녀는 키가 아주 크고 푸른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놈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올리비아 그린버드 요원···?"

"사법처리를 받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시죠."

MI5요원들은 CIA요원을 비꼬듯 말했다.

"허, 그렇게 간단하게 이놈을 놓아주면 어차피 윗선과 접촉해서 이 사태를 무마시키려 할 겁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그게 운명이라면. 그게 사법체계라면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던 테이블 위에 서류뭉치를 올려두었다.

[1급 기밀]

올리비아는 마리아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윗선이 더 있다면 그놈들을 낚을 생각을 해야지 단순히 감옥에 보내고 끝낼 생각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저쪽에서 지금 한국에 CD를 돌려서 전직 대통령을 매수했다는 첩보가 있

습니다."

"······!"

"저놈들에게 직구를 줘서 크게 한 방 띄워서 아예 맞춰 잡자고요."

마리아나 로즐리의 눈빛이 일순간 빛났다.

< 5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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