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97화 (97/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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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

영국 정부의 제안에 대한 천우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의 대답은 'NO'였다.

"미안하지만 그 조건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만."

"···유전의 지분을 준다고 해도 싫단 말입니까?"

"가지고 있어봤자 그걸 팔 수 있는 루트가 있어야 의미가 있죠."

"무슨 말씀이십니까?"

"MI6야 증여 한 번이면 일이 쉽게 풀리겠지만 저는 아니잖아요."

마샤는 고성능의 시뮬레이터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A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생길 리스크와 B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의 리스크를 비교하거나 A루트를 선택했을 때의 결과와 B루트를 선택했을 경우의 루트를 비교할 수 있었

다.

결정의 폭이 넓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나노머신을 가진 사람의 최대 장점이었다.

마샤는 MI6와 CIA 중 어느 곳을 선택했을 때 이득인지 분석했고, CIA쪽이 압도적으로 이득비율이 높게 책정되었다.

이미 돈이야 넘치게 많은 천우에게 유전지분이 그렇게까지 큰 이득이 될까.

마샤의 답은 득보다는 실이 4배 정도 많다는 것이었다.

허나 마리아나 로즐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금전적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죠."

"금전적이라기보다는 그보다 더 궁극적인 이득을 취하는 겁니다. 그게 여러모로 더 이득이니까요."

"으음."

"사실, 재화라는 건 비단 생산수단이 좋다고만 해서 취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의 CDS시장이 파탄에 이르면 당신도 손해를 볼 텐데요?"

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이익이 줄었다고 그걸 손실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손실···."

"CDS프리미엄은 인프라가 없는 수익원입니다. 그런데 이익이 줄었다고 손실이라 할 수 있어요?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논리이지만 마리아나 로즐리는 여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실질적인 이득을 포기하고 결국엔 미국과의 의리를 선택하겠다는 거잖아요."

"의리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도대체 CIA의 뭘 믿고 그쪽 편을 들어주는 거죠?"

CIA에 대한 충성, 아마도 그녀는 천우의 입장을 그리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천우가 첩보원이나 정보장사꾼이 아니고서야 그런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저는 CIA나 MI6나 모두 믿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한쪽을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는 실리적 협상을 고수하는 것뿐."

"으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들을 도와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잖아요?"

천우는 그들에게 선을 그었다.

먼저 CIA든 MI6든 상호 간에 정보를 교류하지는 않겠으나, 해당 사건에 CIA가 연루되어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정보는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접촉여부는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쪽에서 렉스테리아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면 당신들과 엮이지 않는 선에서 제공을 해줄 겁니다. 그 정도는 이해하시

겠죠?"

"그와 반대로 CIA에게도 MI6와 관련된 정보는 주지 않겠다는 소리군요?"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쓸데없는 욕심, 혹은 영웅심으로 MI5와 MI6를 파트너로 삼았다면 일은 점점 더 꼬일 것이 분명했다.

마리아나 로즐리는 천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니까, 정보기관은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로군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나 로즐리라는 이 사람, 사람 자체는 믿어줄 수 있으신가요?"

"그야 오래두고 알아간다면 그리 될 수는 있겠죠."

단호한 천우의 입장을 들은 영국의 정보기관은 꽤나 놀란 상태였다.

사실, 그들은 천우가 사업가라는 것을 이용해서 슈퍼보이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어찌되었거나 사람이 돈을 싫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되게 냉정한 사람이네.'

어떻게 유전이라는 엄청난 재화창출 수단을 앞에 두고서도 흔들림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마리아나 로즐리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뭐, 좋아요.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그럽시다."

"그 대신 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을 조율해봐야겠지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CDS도 엮여 있고 하니 제게 필요한 조치 몇 가지만 취해주시면 됩니다."

CIA에게 그랬던 것처럼 MI5, MI6에게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길 수는 있었다.

허나 그러자면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처음 천우가 CIA를 도와주었을 때에는 가진 힘이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에 우선 협조부터 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손에 쥔 카드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았다.

선을 긋고 그들을 시험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소리였다.

마리아나 로즐리는 천우가 계속해서 선을 긋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버나드 체이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표정은 아까부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 더 확실한 이득을 취하지는 않는군요."

"받은 만큼만 받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받은 것보다 많이 벌어야 돌아가는 것이 기업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거야 장사하는 사람의 입장이고요. 지금 저의 입장은 조금 다르잖습니까."

버나드 체이슨도 천우를 다시 보았다.

다만, 마리아나 로즐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MI6에게 천우는 썩 가까이 하기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조건만 맞으면 무엇이든 털어놓는 정보원을 원하는 MI6에게 천우는 한쪽 이빨이 짧은 포크와 같았다.

'합이 잘 맞지 않는군.'

MI5는 천우와 차차 합을 맞추어 나간다는 입장이 되었으나 MI6는 그와 반대였다.

버나드 체이슨은 천우와 마찬가지로 선을 긋기로 했다.

"뭐, 그럼 그럽시다. 원하는 것을 말 해봐요."

"제가 필요한 조치는 팩스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팩스는 이쪽으로 보내주시죠."

그는 팩스번호 위에는 런던 시청 민원실이라고 적어두었다.

다른 공공기관을 이용해서 MI6정보는 최대한 줄여서 제공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천우는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줄 건 주고, 받을 것만 받으면 결국에 서로에게 빚지는 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제가 해야 할 일은 리지드 오일의 파산을 막는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리지드 오일이 파산하지 않도록 제가 기반을 만들어놓을 테니 두 분은 제가 원하는 구조로 관련 법안이라든지 소속기관의 내규를 좀 수정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법안수정이라."

"아마 영국 정부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일 겁니다. 무리한 건 아니니 일단 들어나 보시죠."

다시는 악성부도로 고생하지 않도록 아예 영국정부에서 조처를 취해두도록 법안을 수정하라는 것이 천우의 조건이었다.

CDS의 판매절차를 조금 더 까다롭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천우가 제시한 절충안의 기본인데, 결론적으로 보자면 천우에게는 당장 손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판매량이 줄면 천우에게 돌아오는 로열티도 적어지기 때문이었다.

허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큰 손실을 줄여서 로열티 수급이 더 많아질 테니 결국에는 천우에게 더 이득이 될 것이었다.

"그럼 오늘 내로 팩스를 보낼 테니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 하죠."

버나드 체이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지만 마리아나 로즐리는 자리에 남았다.

그녀는 천우에게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프리미엄 쇠고기 도축장 - 그레이드 미트]

"쇠고기 사업도 하십니까?"

"우리 MI5의 대외정보통입니다. 이쪽으로 거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오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게 된다면 연락 주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것이니까요."

마리아나 로즐리는 돌아가며 천우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아참, 그리고 요즘 영국 금시장에 당신네 성 씨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 성 씨요?"

"한양 최 씨, 최가 상단의 중추세력 아닌가요?"

그녀는 속주머니에서 신문지면의 조각을 던져놓곤 이내 돌아가 버렸다.

그걸 주워든 천우는 눈을 번쩍 떴다.

"···최가 상단의 선단을 인양해?"

천우는 최근 윌러스 연구팀이라는 사람들이 무슨 인양작업을 한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그쪽은 천우의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들이 건져 올린다고 설레발을 치던 그 '최가'의 최가가 한양 최 씨 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 AI를 통해 최가 상단의 선단을 인양했다는 등의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미래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었다.

다만, 윌러스 탐사 팀이 1998년도를 기점으로 증발하듯 사라졌다는 기사는 있었다.

그는 당장 비서실을 동원했다.

"윌러스 탐사 팀이 모집하고 있는 펀드에 대해서 알아봐주세요."

"네, 대표님."

"얼마나 걸리죠?"

"오늘 안으로 정리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투자는 정보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우는 정보취득 루트에 대한 다변화를 꽤 오래 전부터 시행해 왔었다.

그로 인해서 나노머신이 수집하지 못했던 미래의 정보들이 수집되었고 마샤의 AI는 보다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천우는 윌러스 탐사 팀이 인양하겠다고 선언해서 펀드까지 모집한 것이 최가 상단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서 집안의 모든 서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서책들에는 그의 조상들이 주로 어떤 경로로 교역을 했고 실제 상인들에게 금은을 빌려줄 때 이자로 받은 물건을 어떤 곳으로 들여왔는지 상세히 나와 있었다.

천우는 화이트보드에 세계전도를 그리고 그 위에 선을 그어 윌러스 탐사 팀이 주장하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해보았다.

다소 오차는 있었지만 그곳에 선단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게다가 중요한 건 상단 항해일지에 선단이 몇 번인가 난파된 적이 있다고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사실이 맞긴 한 것 갼年?.

"··ㅉ뭬?, 결국 후손이 멀쩡히 살아있는데 집안의 금을 캐다가 팔겠다는 거잖아?"

어쩌면 최가 상단의 후손이 살아있음을 모르고 이런 짓을 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알았든 몰랐든 침몰한 가문의 선단을 통해 펀드까지 모집한다는 점이었다.

"이것들 좀 보게···?"

그는 윌러스 탐사 팀이 만든 펀드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비서실은 이틀 만에 조사를 끝마쳤다.

김영실은 자신이 모은 정보를 조합해서 천우에게 보고하였다.

그녀는 윌러스 펀드에서 제공한 투자자전용 자료와 관련자들의 명단까지 나열해 두었다.

"이번 탐사에는 지질학자는 물론이고 고고학자와 인양전문가도 다소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질학자요?"

"난파 당시에 조류가 거세져서 보물이 바닥에 가라앉았고, 그 위에 침전물이 쌓여서 땅을 파내야만 보물인양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저들의 입장입니다."

나노머신은 지리와 그 특성에 대한 정보가 풍부하다.

침몰예상지점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보물이 쓸려 내려가 가라앉았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는 저들이 제시한 자료에서 침몰선의 금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헌데 금괴에 인장이 없었다.

과연 최가 상단 정도의 상인집단이 과연 출처도 모르는 금괴를 대금으로 받아서 가지고 왔을까?

"···뭔가 좀 이상한데?"

< 48.(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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