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90화 (90/202)

< 45. >

45.

놀랄 '노'자 였다.

렉스테리아의 뒤를 쫓던 천우, 그는 이들이 평범한 마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며칠 전에 깨닫게 되었다.

곡물시장을 쥐고 흔들 때만 해도 말만 마피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진짜 마피아였다, 헌데 놈들은 한술 더 떠서 아예 글로벌 범죄조직을 구축하고 범세계적 파장을 일으

키며 리스크로 생기는 수요를 창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인 트러블메이커라니, 차라리 로이 조로스를 살려두는 거였는데."

필요악.

때론 더 골치 아픈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나마 덜 골치 아픈 녀석들을 시장에 풀어놓는 것이 이득일 때가 있는 법이다.

로이 조로스가 그런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우가 그 공백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천우는 렉스테리아가 일본을 타격하여 아시아 시장을 한 방에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간파하곤 그에 대한 방어책으로 곧장 덫을 놓았다.

어떤 시장이든 주가가 너무 빠른 폭으로 폭락하면 거래제한과 같은 장치가 발동되도록 되어 있다.

그는 일본의 증시가 주저앉기 전에 미리 영국계 CDS협회에 이와 같은 항목을 신설하였다.

[주식시장의 서킷브레이커, 혹은 선물시장의 사이드카와 같은 일시적 거래정지 현상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CDS협회는 회원사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CDS협회의 신용부도스와프 규칙 제 14장 1항에 대한 구절이었다.

천우는 이 밑에 '이는 공정거래 및 시장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이며 이 조항을 실행할 때 유럽의 재무부서 및 인터폴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천우의 조항 신설에 따라서 영국은 유럽 전역으로 공문을 보내어 협조를 요청하였고 3일 만에 OK사인을 받아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CDS시장이 그만큼 활성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용부도스와프가 한 방 터졌을 대 연쇄적 반응으로 타격을 받을 회사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일본이 가진 전 세계적 채권비율이 업계 1위이니만큼 CDS시장도 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천우가 이렇게 급박하게 움직였던 것은 너무 빨리 물막이를 하면 놈들이 덫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결단은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결국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CDS시장조사에서 프랑스의 한 국가가 걸려들고 말았다.

EU의 인터폴, 프랑스 경찰과 함께 CDS협회의 관계자들이 '렉스 컴퍼니'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허나 회사의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쿵쿵쿵!

"프랑스 경찰입니다! 문 여세요!"

사람이 없는 것일까.

근처의 CCTV를 뒤져본 결과, 이쪽으로 사람이 들어가거나 나간 정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층고 25층의 빌딩이 텅텅 비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프랑스 경찰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냄새를 맡고 튀었거나 아예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페이퍼컴퍼니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기랄, 신출귀몰한 녀석들이로군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CDS협회의 급작스러운 법안 상정에도 협회의 회원사들이 자발적으로 자금을 회수하여 시장을 안정시킨 덕분에 사태진화가 빠르게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CDS협회는 강제집행이나 압류 같은 행정력은 없는 단체이지만 CDS의 효력을 사실상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CDS라는 것도 결국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돈이 되는 것인데, 현재의 유럽계 CDS들은 협회의 비준을 받지 못하면 거래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물론 천우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이 로이 조로스 사태 등을 겪으면서 자발적으로 그리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잠시 후, CIA에서 도착했다.

그들은 건물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프랑스 경찰과 공조하여 건물의 등기까지 죄다 뒤져보았지만 놈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론 테이트는 반가운 얼굴로 천우를 찾아왔다.

"슈퍼보이! 자네 정말 제대로 사고를 쳐 주었어. 덕분에 개판이 될 뻔 한 금융시장이 정상화 되었잖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도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하마터면 한 방 맞을 뻔했습니다."

"아무튼 수고 많았어. 그나저나 더스틴 퍼거슨을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까? 그냥 감옥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데 말이야."

데일 카네기가 말했다.

큰 것을 해결하면 작은 것은 자연적으로 해결되기 마련이라고.

천우가 렉스테리아의 뒤를 추격하는 동안 미국으로 들어왔던 자금이 채권으로 전환되어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로 들어간 정확이 밝혀졌다.

이 자금이 해외로 뻗어나가는 동안 그 뒤를 봐준 사람이 바로 더스틴 퍼거슨이었고 재무부는 자체적 내사로 그 증거들을 잡아냈다.

이제 FBI가 나서서 그를 검찰로 끌고 가 기소의견을 받아내면 끝이었다.

허나 아론 테이트는 이걸론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국가반역죄를 토대로 놈을 족칠 수 있는 방안을 한 번 알아봐야겠어."

"반역이라."

"게다가 자네의 부탁도 들어줘야하고 말이야."

미국이라는 나라의 공권력이 해외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악용하여 재계를 뒤흔든 점, 사실 이것만으로도 놈을 정보부로 끌고 갈 명분은 충분했다.

허나 아론 테이트의 그림은 더욱 컸다.

"이번 기회에 이놈과 관련된 모든 끄나풀을 싹 잡아서 CIA로 끌고 와야겠어. 애덤 카퍼필드까지 말이야."

"아아! 한 방에 설거지를 해버리려는 생각이시군요!"

"그게 자네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좋지 않겠어?"

이번 사건으로 천우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모 오금자를 돕는 일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CIA는 행동력이 상당히 좋은 기관이다.

그들은 더스틴 퍼거슨을 중앙정보부로 끌고 오면서 애덤 카퍼필드까지 엮어버렸다.

더스틴 퍼거슨이 국가반역죄를 받았으니 놈에게 돈을 먹인 것들도 반역분자일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98년 1월.

CIA는 FBI와의 공조를 통해서 체스터 카렐 센트럴을 덮쳤다.

콰앙!

"연방경찰입니다. 전부 뒤져!"

"예!"

"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지금부터 체스터 카렐 센트럴 그룹 내 애덤 카퍼필드와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압수합니다. 만일 자료를 은폐하거나 은닉하다가 적발될 경우, 국가반역죄로 체포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국가반역죄는 단순히 세무조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하면 연방감옥에서 평생 동안 갇혀 지낼 수도 있었다.

회사 내 모든 부서가 업무를 멈추었다.

이로서 생기는 손실에 엄청날 테지만 그들은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모두들 손들고 가만히 있어. 3대가 망하는 수가 있다."

CIA와 FBI가 자료를 털고 있을 무렵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듣고 부랴부랴 출근한 애덤 카퍼필드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다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마침 잘 오셨군요. 애덤 카퍼필드 씨, 당신을 뇌물공여 및 국가반역 용의자로 긴급 체포하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가시죠."

애덤 카퍼필드는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렇게 그는 FBI로 연행되었다.

연방경찰의 조사를 받는 도중.

애덤 카퍼필드는 아들 윌리엄 카퍼필드와의 면회를 가졌다.

변호사와 함께 찾아온 윌리엄은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아버지,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이사회가 불과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고요!"

"···안다."

"국가반역죄로 엮이면 우리가 회장직을 인수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고 잘못하면 영구제명까지 당할 수 있다고요!"

"알아, 아니까 좀 진정해봐."

애덤 카퍼필드는 사실 소금으로 쌓은 성에 살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고 비가 내리면 녹아 없어질 허상을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내 지분을 네가 승계하고 이사회 멤버로 들어가거라. 그런 후, 진검승부에 목숨을 걸어보는 거지."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어차피 회장 선출은 이사회에서 무승부로 갈리게 되어 있어. 8대8 무승부가 될 테니까."

"그렇다고 주주총회를 가면 승산이 있을까요?"

"그건 해봐야 아는 거지."

"끄응···."

"아무튼 내 말을 우호세력들에게 잘 전해라. 우리는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이 또한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라고 말이야."

"네, 아버지!"

부자는 심기일전을 다짐했다.

***

시간이 흘러 98년 2월이 되었다.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정기 이사회가 열리는 12일이 되자마자 체스터 카렐 센트럴 본사로 16명의 이사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7명의 세력을 등에 업은 줄리아나 카렐도 있었다.

그녀의 뒤로는 최호명 부자와 전 씨 일가, 그리고 현 회장인 존 카렐 일가도 함께 하고 있었다.

나머지 카렐 가문은 그녀의 반대세력이었다.

오금자의 조카 라이언 카렐 등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고모님 아니십니까?"

"···미련한 녀석들."

"하하, 보자마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몇 십 년 만에 보는데 미련한 놈들이라니요."

그녀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윌리엄 카퍼필드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의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갔다.

꿀꺽!

살면서 지금까지 이토록 분노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의 은공으로 여기까지 온 것들이 감히 국가반역자들과 손을 잡고 회사를 뒤흔들려 들었겠다···?"

"험험! 그래봤자 이사회가 끝나면 회사의 주인은 바뀔 테니 각오하시죠."

"정말 그리 생각하나?"

바로 그때였다.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이사회 명찰을 단 사람이 걸어왔다.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그녀가 누구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가슴에 달린 명찰에 있는 글귀를 보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번 째 멤버!"

***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회사 레드힐 컴퍼니 본사 건물 안.

대표이사 집무실에는 세 명의 남자가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더러 국제금융사기에 동조하라 이 말입니까?"

"당신도 좀 살아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궁상이나 떨고 있을 겁니까?"

레드힐 컴퍼니는 최근 태국 바트화 투매부터 시작해서 인니, 싱가포르, 홍콩, 한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선물환투기에 거금을 연달아 걸었다가 파산 직전에 이르고 있었다.

물론, 이 손실을 감추기 위해서 분식회계로 회사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아주 건실한 기업처럼 보였다.

허나 당장 한 달 안에 그가 알거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얼마 전에 투기세력이 일본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기에 채권시장에서 불안전한 자산들을 빠르게 회수 및 처분, 일부는 손절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레드힐 컴퍼니는 그 기조와 더불어 현재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금 회수를 요구를 받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시국이었다.

허나 아마 이대로 100명만 더 투자 금을 회수한다면 신용대출이라도 받아야 할 판이었다.

밥 윌러스와 빌리 블루버그는 대표이사 찰스 레드힐에게 사기공모를 제안했다.

이미 사료조사와 지질학 조사까지 끝난 최가 상단의 황금사건을 이슈화해서 투가 펀드공모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었다.

지질조사를 통해 지반이 무른 곳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그 안의 지질 봉을 채취해보니 금이 묻힐 수 있는 환경은 전혀 아니었다.

허나 밥과 빌리는 이곳이 바다 속 노다지나 다름이 없다고 학계를 속이고 있었다.

그 행렬에 레드힐이 동참해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다면 게임은 끝이었다.

"이번 펀드모집으로 자금유출을 지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가 한 방에 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그 이후에는 어쩌란 말입니까?"

"어쩌긴, 정리할 건 정리해서 미국을 떠야지."

"······!"

"머뭇거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찰스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여기서 자신의 자존심과 커리어를 다 팔아치워야 하는 것인가.

허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미 자신도 사방팔방에 사기를 치고 있지 않았던가.

"···해봅시다, 그럼."

"오호, 말이 잘 통하는군."

"대신 돈은 정확하게 나누는 겁니다."

"몰론이지!"

사상최악의 펀드사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4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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