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86화 (8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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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범죄조직 X에 대한 추적이 본격화 되는 시점, CIA는 천우에게 거의 정보의 홍수와도 같은 양의 자료를 건네주었다.

올리비아 그린버드가 건넨 자료에는 각종 금융 및 무역사기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알바니아 피라미드 금융사기가 있었다.

"지난 3월, 알바니아에서 사실상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피라미드 사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때문이었죠. 피라미드 회사들은 마피아와 손을 잡고 국민들의 돈을 쪽쪽 빨아먹고 잠적했습니다. 그 당시, 미군이 투입되어 알바니아 내전에서 시민들을

안전지대로 구출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CIA가 입수한 파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렉스테리아라는 이름의 마피아에 대한 문건이 놓여 있었다.

문건에는 렉스테리아가 피라미드 금융회사 '골드인'과 결탁해서 알바니아의 시민들을 이탈리아로 대피시키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받는 브로커 짓을 했다는 정황이 나와 있었다.

시민들의 봉기를 탄압하기 위해서 알바니아 정부는 전투기로 폭격을 지시하기도 했었는데, 이때 파일럿들이 전투기를 탄 채로 이탈리아로 망명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마피아들은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탈리아로 대피시키는 대신에 일정부분의 수수료를 받다 챙긴 것이었다.

"무기밀매로 돈을 벌어들이니 밀수루트야 마피아들 손바닥 안이었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쯤이야 껌이었겠죠. 헌데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전말이 드러나고 맙니다."

그녀는 파일의 몇 장을 넘겨서 거의 중간지점에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피아들이 시민들을 대피시킬 당시에 민간인들을 실은 배를 마약 및 밀매무기 운반책으로 사용했다는 정황이 나와 있었다.

천우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그렇다면 마피아가 알바니아 시민들을 방패막이로 삼아 대량의 무기와 마약을 옮겼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당시에는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함대가 지중해와 페르시아 만 일대에서 활동 중이었는데, 나토군과 신유고연방의 갈등과 독일과 이란의 외교전쟁으로 인해 대대적인 군사 활동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무기를

실어 나를 구멍도 없고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마피아들이 아주 좋은 구실을 잡은 것이죠."

"나토군이 일반 시민들을 공습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로군요."

"자국의 공군이 시민군을 폭격할 수 없다면서 망명까지 하는 판국에 나토군이라고 해서 시민들을 학살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무기는 잘 넘어갔나요?"

"서류에도 나오겠지만 나토군의 호위를 받으며 서유럽과 남유럽으로 넘어갔습니다. 황당하지만 밀수꾼들이 나토군의 호위를 받은 셈이죠."

아마 나토군 사령관이 이 얘기를 들으면 혈압이 터져 병원에 실려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마하니 자신이 마피아의 밀수에 혁혁한 공을 세웠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말이다.

"정확한 수치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렉스테리아가 피라미드 금융사기의 붕괴로 얻은 수익이 대략 2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2억 달러요? 그건 피라미드 붕괴에서 나온 금액과 같은 수준이잖아요?"

알바니아의 내전은 돈 때문에 일어났다.

피라미드 금융회사들은 무기밀매로 돈을 끌어다가 역고리대금으로 자금을 불려나갔었다.

당시 금융권에서 평균시세의 5~10배도 넘는 금리를 적용, 그냥 돈만 맡겨도 꼬박꼬박 다달이 돈이 나오도록 설계를 한 것이었다.

이들은 무기를 팔아서 번 돈을 시민들에게 마구 뿌려댔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다가도 실제로 돈이 나오는 걸 눈으로 보게 되니 너나나나 전부 달려들어 돈을 맡기고 역고리대금을 챙기려 한 것이었다.

알바니아의 국민 60%가 피라미드 사기에 휘말려들었다.

당시에는 이걸 최고의 재테크로 여겨서 호텔사업가나 무역업자들까지 나서서 돈을 맡겼다고 하니, 그 피해가 엄청났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때 알바니아의 1인당 GDP가 951달러였는데, 손실액이 무려 2억 달러에 달했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전 재산이 피라미드 사기로 한 방에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헌데 그렇게 날아 가버린 금액과 비슷한 이익을 챙겼다는 건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허나 그 속을 조금만 파보면 답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들어간 무기만 약 1억 달러라고 합니다. 내전에 동원된 무기는 물론이고 마피아가 항구를 통제하는데 들어간 무기도 다 여기서 나왔죠."

"내전에 동원된 무기요?"

"아무리 시민군이 무지막지해도 해군기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는 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누군가 뒤에서 암암리에 무기를 뿌렸다는 얘기죠."

"허어!"

"정확한 금액까지 추산하기는 어려워도 대충 그 정도는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CIA는 알바니아에 초대형 무기창고가 있었을 것이고, 마피아들은 그것을 가지고 밀매장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총기밀매로 금융사기를 치다가 내전이 발발해서 아예 수지를 맞아버린 거네요?"

"안 그래도 나토군의 눈치를 보느라 잔뜩 위축되어 있다가 구원의 손길을 받은 거죠."

"···미친놈들."

"아무튼 간에 이 총기밀매의 중심에 바로 렉스테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보스니아 주민들을 태운 배를 이용해서 총기뿐만 아니라 마약까지 실어 나른 것이죠. 그런데 이 렉스테리아, 돈을 댄 곳이 무기와 마약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서류를 몇 장 더 넘기자, 그 안에는 이탈리아에서 나온 자금이 서유럽, 동유럽을 지나 미국으로 들어간 정황이 나와 있었다.

서류에는 '1급 기밀'이라는 직인과 함께 민간인 대피선에서 찾아낸 문건들이 나와 있었다.

"아까 미군도 시민들을 대피시켰다고 했었죠? 그때 텅 빈 선박에서 이런 장부를 발견했습니다."

장부에는 미국의 곡물시장으로 보낼 CD와 어음 등을 적재했다는 장부가 들어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제출할 목적이 아니라 수량을 체크할 목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자금이 어디에 얼마 들어갈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관리가 가능했던 모양입니다. 장부에 나온 이름들을 대략적으로 추적해봤더니 미국의 곡물시장이었던 것이죠."

"곡물마피아!"

"그래요, 이름만 마피아가 아니라 진짜 마피아였던 겁니다."

"X! 렉스테리아가 바로 X였던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정보들로는 놈들을 찍어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워낙 용의주도해서 말이죠."

그녀는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올리비아가 그리는 그림에는 렉스테리아의 활동노선과 그 자금유동이 그래프처럼 나와 있었다.

"자, 보세요. 이놈들은 철저하게 무기명으로 된 재산을 가지고 미국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곡물시장을 후방에서 공략하고 있죠. 은행은 줄 돈은 주고 받을 돈은 받는 제법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CIA에서 아무리 털어봤자 문서에 나온 그대로만 알고 있을 뿐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을 통해선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렉스테리아가 움직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는 반드시 곡물시장이 꿈틀거립니다."

"그와 함께 CD와 채권시장도 같이 꿈틀거리겠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CIA가 천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정보를 많이 수집해서 놈들의 뒤를 쫓아도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채권시장이 약간 꿈틀거렸다고 해서 모두 렉스테리아의 행동은 아니잖습니까."

"으음, 그러니까 그래프에서 렉스테리아를 찍어내 달라는 소리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천우는 그녀에게 새로운 정보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우방국들에 대한 정보를 전부 다 털어서 주세요."

"우방국이요?"

"미국과 가장 많이 교역하는 나라, 그리고 그들과 가장 많이 돈을 주고받는 나라 말입니다. 아마 미국시장을 그리 깊게 파고들었다면 다른 나라도 연관이 되어있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천우는 미래에 채권시장과 CD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가 이렇게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마샤의 데이터베이스가 모두 공개에 의한 자료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암호화 된 문서나 개인이 가지고 있던 문서, 혹은 정보단체의 기밀문서 등은 마샤로서도 수집할 수가 없을 테니 천우는 CIA를 통해 그 정보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액면가 그대로의 정보는 필요 없어요. 가장 은밀한 곳의 정보,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은밀한 곳의 정보라?"

천우는 자신이 아는 가장 최근의 정보를 풀어놓았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서 풀린 CD가 한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꺾기가 연발되었고, 그것이 한국계 정치자금으로 전환되고 있을 겁니다. 아시죠?"

"그야···."

"그런 겁니다. 미국 재무부와 엮였을 정도면 홍콩은 못 뚫겠습니까?"

"아아!"

"만약 제가 렉스테리아라면 미국은 자본을 투입하는 메인뱅크, 나머지는 자본을 순환시키는 거점으로 삼겠습니다. 유입되는 돈 안 막는 미국으로 돈을 들고 들어와서 과연 어떻게 가지고 나가겠습니까? 방법은 뻔 하잖아요."

"방법이야 뻔하지만 그 꽁무니를 잡기는 쉽지 않겠군요."

"언제 어디서나 우방국은 가장 좋은 밀수루트가 됩니다."

"으음!"

"지금 알아본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니까요."

"그럼 팩스로 계속해서 정보를 보내주세요. 제가 정보를 수집하자마자 꾸준히 그들을 추적할 테니까요."

HC만큼 자금시장 돌아가는 전말을 훤히 꿰뚫는 단체도 없다.

그 두뇌가 바로 천우이기 때문이다.

***

윌러스는 지중해 인근에서 인양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을 조사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그들은 아주 묘한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무려 6개월이나 머물렀다고?"

"천연가스 파이프를 묻어두었다가 그것이 잘못되어서 터질 뻔했다나봐. 그런데 전문가들의 얘기에 따르면 파이프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유속이 워낙 느려서 작업이 6개월씩이나 걸릴 이유가 없었데."

더군다나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자면 이곳에서 작업이 진행될 동안 무려 12척의 초대형 수송선이 오갔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그 작업에 필요하다면서 민간 잠수함까지 동원했다고 했다.

게다가 최근에 금값이 출렁 내려앉은 시점이 있었는데, 그때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대량의 금괴가 넘어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지금은 그 금이 채권으로 전환되어 영국의 신탁회사에 묶여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팀원들은 동요했다.

"대장, 그럼 우린 다 죽는 거야?!"

"빌어먹을! 죽기는 누가 죽어? 그럴 일 없어."

"하지만 그놈들은 렉스테리아라고! 우리는 그 즉시 모가지가 뚝 떨어지고 말 거야!"

"···좀 닥쳐. 안 죽는다고 했잖아."

"미국이고 영국이고 중국이고 그놈들이 안 돌아다니는 곳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남겠다는 거야?"

"금을 원한다면 만들어주면 되는 거잖아."

"금을 만들어준다고?"

팀원들은 밥 윌러스의 눈에서 광기를 보았다.

"대장, 설마···."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야. 그럴 바엔 우리가 찾던 물건, 끝까지 한 번 찾아보자."

"어떻게 말이야?"

"거하게 사기 한 번 쳐 보자. 우리가 제일 잘 하는 거잖아."

"사기?"

< 43. > 끝

ⓒ 풍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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