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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85화 (8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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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이른 아침, 천우는 줄리아와의 약속에 나갔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만난 그녀는 10년 전과 정말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태도로 천우를 맞이했다.

"우리 감자! 으이그, 이 귀염둥이!"

"···사람이 변하지를 않네."

"원래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죽어. 게다가 우리 감자가 어른이 되니까 더 귀엽잖아!"

"이제 나는 누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데?"

"헤헤, 그래도 귀여워!"

천우의 덩치만 커졌지 지금의 그림은 대학을 다닐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의 뒤에는 무뚝뚝한 표정의 마이클이 서 있었다.

다만 그는 정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마 나름대로는 오랜만에 보는 천우가 무척이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줄리아와의 해우를 마친 천우는 마이클과 가볍게 하이파이브하면서 인사했다.

인사를 마친 세 사람은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이곳 카페는 칸막이가 잘 되어 있어서 집중해서 듣지 않는 이상에야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천우는 두 사람에게 대통령과 그 차남의 국정농단수준의 비자금 조성에 대해 전해 들었다.

이런 엄청난 아이템을 얻었으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담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아예 모르는 척을 하라는 거야?"

"물론이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정보야."

"하지만 애써 알아낸 이런 정보를 사용조차 하지 못한다면 아깝잖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은 자신이 정보가 제법 대단하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부동산중개업자가 신도시 개발에 대한 호재를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그는 해당 부동산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할 것이다.

아직 언론에는 퍼지지 않았음으로 자신은 제법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믿기에 개인투자는 물론이고 주변의 지인까지 동원해서 작은 세력을 구축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언론보다 빠른 건 사실이었다.

허나 이런 경우에 정말 대박을 맞을 확률은 극히 적다.

호재가 언론을 타는 건 정말 끝물의 얘기다.

이미 얘기가 퍼져 나왔다는 것 자체가 벌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만약 신도시 개발 호재를 고위급 공무원이나 정보기관에서 얻었다면 알짜배기일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허나 부동산시장의 소매업자라 할 수 있는 공인중개사까지 이 소식을 들었다는 건 입소문을 타고 돌고 돌아 이미 그 정보가 닳고 닳았다는 소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안기부와 검찰에서 그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어. 풀어봤자 소용이 없을 걸?"

"···벌써 알고 있다고? 그런데 왜 아직까지 행동을 하지 않는 거야?"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CD를 돌린 건 단순히 정권유지만을 위한 게 아니야. 조금 더 폭넓은 정경유착을 위한 것이지. 아마 지금 터뜨려봤자 유야무야 묻히기만 하고 터뜨린 쪽만 역풍을 맞게 될 걸?"

"으음···."

"지금은 터뜨릴 때가 아니야. 다만, 이 정보를 남들보다는 조금 더 빨리 취득했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는 있지."

"가령 어떤 방식으로 말이야?"

"환율과 주식, 어떤 식으로든 요동치게 되어 있어. 금융 쪽의 타격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니 최저점에서 투자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마이클은 이 정보로 대단한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 같았다.

허나 천우가 별 볼일 없는 듯이 얘기하니 약간 맥이 풀린 감이 있었다.

천우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단언컨대 마이클이 지금 이 정보를 터뜨려서 얻는 이득보다 저점투자로 얻는 이득이 100배는 더 많을 거야. 역풍을 맞아서 거리에 나앉는 일도 없을 거고."

"···난 아직 멀었다는 얘기인가?"

"누구나 성장과정이 있어. 나 역시 여기까지 오는데 절대 쉽지 않았어. 그건 이 세상 누구도 다 마찬가지일 거야. 고통 없이 얻는 건 아무것도 없어."

지금 천우가 덜 고생할 수 있는 건 나노머신의 역할이 가장 컸지만 그가 전생부터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 고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단순히 지식만 가지고 설쳤다면 절대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천우는 마이클에게 한 가지 목표를 심어주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마이클'이라는 사람의 말이라면 철썩 같이 믿도록 만들어봐."

"재계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라?"

"세상을 지배하는 건 사람이야.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도 사람이지. 하지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신뢰감이야. 신뢰를 얻을 정도의 힘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렵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다시는 이런 고민을 할 일이 없을 거야."

분명 마이클은 천우보다 나이가 많다.

허나 천우의 속에 든 사람은 이미 인생을 반백년도 넘게 산 중년이었다.

그의 눈에 마이클은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청년으로 보였다.

'아마 마이클은 전생에 이 시점에서 매장을 당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인물도감에도 잘 나오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의 성향으로 미뤄보아 이번 사건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대대적으로 저격했을 것이고 그것이 한미관계의 정상화 국면에 맞물려 역풍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흑화해서 아예 비

공식 투기자본으로 돌아섰을 수도 있고, 아예 매장당해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아까운 인물 하나 버릴 뻔했네. 타이밍이 아주 좋았어.'

머릿속에 모든 지식이 있는 천우로선 미래가 예측되지만 마이클에겐 모든 것이 변수였다.

그에게 변수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천우에겐 기회의 창이 된다.

이런 차이가 미래의 마이클을 암흑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내 말대로 저점투자를 시작할 타이밍을 잡아봐. 그걸 캐는 건 계속하되 터뜨릴 생각은 접어."

"차근차근 수면 위로 올라오라는 소리군···."

"이번 기회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어봐. 그 아이템이라면 적어도 투자회사에서 확보한 고객들 정도는 까무러치게 만들 수 있을 걸?"

천우는 AI와의 협업을 통해서 가장 큰 한 가지를 배웠다.

사업이나 투자에도 쇼맨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주변에서 아무리 압박해도 굴하지 않을 배짱이 필요해. 그것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마이클도 이 시장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으음!"

"어때? 이정도면 상담이 만족스러웠다고 말해 줄 수 있겠어?"

줄리아는 만족스럽게 웃는 마이클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곤 마치 밀가루를 반죽하든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귀염둥이! 설마하니 그것 때문에 속병까지 생긴 건 아니지?"

"···아니야."

천우는 자신도 똑같은 신세가 될까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계산서가···."

"이리와, 우리 귀여운 감자! 어쩜 말도 그렇게 알차고 예쁘게 잘 할 수 있어? 이 누나가 아주 감동했잖니!"

"그냥 친구로서 당연한 충고를 해 준 건데."

"헤헤, 그래도 예뻐!"

결국 천우는 그녀의 손에 붙잡혀서 귀여움을 당하고(?) 뽀뽀까지 덤으로 얻었다.

도대체 이런 누나가 세상에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저돌적인 애정표현이다.

허나 적어도 천우는 그녀의 이런 애정표현이 친구관계에서 나오는 진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참, 우리 감자가 이제는 술을 마실 나이가 되었다고 했나? 그럼 한 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아, 그랬나? 술, 좋지."

천우는 예전부터 술자리에서 음료수만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사실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끼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려왔었다.

이제는 그 봉인을 해제할 날이 온 것이다.

"가자. 오늘은 내가 산다. 우리의 첫 술자리잖아."

"우리 감자가 술을 다 산다니, 감동적인데?"

"세월은 흘러. 마치 강처럼 말이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건 꽁치누나도 나이를···."

"스톱. 가기까지만 해는 게 좋을 걸? 혹시 머리가 근질거리는 건 아니겠지?"

"미, 미안."

나이 얘기를 하면 머리를 깨무는 그녀의 분노를 감지한 천우는 그 즉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렇다고 그녀의 기분이 다운되는 건 아니었다.

"가자, 오늘은 뻗을 때까지 마셔보는 거야!"

그녀는 양쪽 옆구리에 친구를 하나씩 끼고 술집으로 향했다.

***

영국의 고고학자 크리스 리는 윌러스에게 선단의 정확한 정보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녀는 이 선단이 고려에서 왔다고 했다.

윌러스 탐사 팀도 역사적 지식이 아예 전무한 편은 아니라서 고려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고려에서 유명한 상단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최가 상단이라면 단연 으뜸이라고 했답니다."

"최가 상단?"

"한양 최 씨에서 세운 상단이죠. 장수거북은 최가 상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장수거북을 용왕의 사자라고도 부른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세계지도에 최가 상단이 오간 무역루트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부터 유럽에 이르는 방대한 교역거점을 가진 최가 상단은 페르시아 일대에도 분방을 두었을 정도로 세력이 넓었다.

그 세력권을 전부 표시하니 무슨 거미줄을 보는 것 같았다.

"물길은 바다로 통하고 금은 최가 상단을 통한다는 말이 있었답니다. 그만큼 대단한 재력가들이었죠."

"그렇다면 동북아에서 온 사람들이 아랍의 선단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겁니다."

당시 동북아시아의 가장 비싼 사치품은 파식이나 대식, 그러니까 페르시아 일대에서 주문제작한 도자기나 장신구 등이었다.

동북아에서 페르시아까지 물건을 가지고 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데 주문제작까지 하자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헌데 최가 상단은 아예 배를 페르시아에서 주문, 제작해서 선단으로 만들어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수장된 곳을 찾아냈다니···!"

"아무튼 선단 어디에도 보물은 없었다고 했던가요?"

"네, 그렇습니다."

크리스 리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흐음, 이상하네요. 그쪽은 조류가 강한 곳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가 발견한 스팟이 교역로에 끼어 있기는 합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교역로를 관통하는 한 가운데 스팟이 있어요. 틀림없는 최가 상단 선단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교역로 한 귀퉁이를 빨간색으로 색칠하니 이해하기가 더 쉬웠다.

심지어 이 부분은 교역로 여섯 개가 겹치는 지점이기도 했다.

"물살이 약해서 환적루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지점입니다. 물건이 사라졌다는 건 누군가 일부러 보물을 빼갔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죠."

"···보물을 빼갔다고? 그럼 우리보다 선단을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소리입니까?"

"그런 셈이죠."

"하지만 그런 작업을 하면서 아예 티를 안 낼 수가 없었을 텐데? 선박의 구조를 정확하게 꿰고 있는 사람들이 작업해도 족히 반년은 넘게 걸릴 겁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더욱 은밀히 작업을 했겠죠. 그것도 아니라면 나라에서 뒤를 봐주었거나."

"아아!"

지중해에 인접한 국가에서 스폰서를 해주었다면 발굴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밥 윌러스는 조바심이 났다.

"···우선 주변 국가들의 공무원들에게 줄을 대서 해역에서 작업을 했거나 인근에서 대대적인 공사를 했는지 알아보자."

"그래서 뭘 어쩌게?"

"만약 누군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라면 당장 도망쳐야지. 채권자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아아, 그런 그러네···."

"목숨이 걸렸어.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여."

혹시나 윌러스보다 먼저 금을 가지고 간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의 이 사기극이 세상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들은 이제 정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 42.(2) > 끝

ⓒ 풍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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