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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76화 (76/202)

< 38. >

38.

브루스 카렐, 체스터 카렐 센트럴 그룹의 전 회장인 리처드 카렐의 손자이며 현 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리처드 카렐이 오금자, 그러니까 줄리아나 카렐의 큰 오라비이니 리처드 카렐은 천우에게 진외종조부가 되는 것이다.

브루스 카렐의 아버지이자 현 회장인 존 카렐이 천우에게 진외종숙이니 5촌 관계이고 브루스 카렐은 천우에게 6촌인 셈이었다.

허나 미국계 가문에는 이런 복잡한 호칭이 없으니 그냥 '친척' 쯤으로 뭉뚱그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말이 없는 천우.

브루스 카렐은 천우의 접시에 담겨 있던 카나페를 손으로 집어먹었다.

우드득, 우드득!

무슨 카나페 하나를 먹는데 비장함마저 감도는 것 같았다.

여차하면 한 대 치겠다는 기세.

"할 말이 뭐야?"

"넌 사교모임에서 친척을 만났는데 할 말이 그것뿐이야?"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는데? 포옹이라도 해줘야하나?"

지나가는 개도 브루스 카렐이 천우에게 뭔가 억하심정이 있다는 건 곁눈질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만약 브루스 카렐이 천우에게 다정하게 다가왔다면 천우도 그를 다정하게 맞아주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피는 섞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태도가 영 아니었다.

"한국의 음식수준은 정말 상식 이하라니까."

"······."

"만남은 참 즐거웠다. 다음에 또 보자."

천우는 분명 화가 났다.

헌데 당장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은 저 미친놈이 왜 저런 비이성적인 짓을 하는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니까?"

"없어. 그냥 너 때문에 입맛이 뚝 떨어졌을 뿐."

"장난하나."

"그럼 간다."

"앉아."

"네가 뭔데 앉으라 마라···."

천우는 그의 어깨를 잡아 눌러버렸다.

그러자, 브루스 카렐은 마치 중력의 저항을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처럼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쿵!

"어, 어라···?"

"좋은 말로 할 때 앉아라. 참고로 난 두 번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브루스는 어깨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드드득!

"아, 아아아!"

그저 약간 힘을 준 것 뿐인데, 천우의 약력은 브루스의 어깨를 부셔버릴 정도였던 것이다.

천우의 악력은 일반인의 대략 다섯 배 정도 된다.

근력으로 따진다면 자기 몸무게의 4~5배정도는 들 수 있으니 대략 400kg의 바벨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건 천우의 근 골격이 상당히 좋은데다 근육의 질이나 밀도 등이 일반인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달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하드웨어가 없었다면 천우는 나날이 발전하는 나노머신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두뇌활용을 위해 신체가 발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허나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천우의 힘이 왜 이렇게 센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뭐지?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아마 천우 정도의 힘을 가지려면 세계 보디빌딩대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우락부락하게 근육을 키우거나 파워리프팅 선수나 역도선수처럼 엄청나게 단련을 해야 할 것이다.

헌데 천우는 상당히 날렵하고 균형이 잘 잡힌 몸이었다.

이런 힘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긴 했다.

허나 그럼에도 브루스 카렐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허어, 참. 말하자면 가문비사인데 굳이 그걸 이 자리에서 까발려야 하나?"

"뭐가 어째?"

브루스 카렐은 천우의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보는 눈이 많다. 나에게 날을 세운 건 아주 잘 한 거야."

"······?"

"이따가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와. 긴이 할 얘기가 있어."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천우를 비웃 듯, 획 돌아서서 사교회장을 나가버렸다.

처음부터 브루스는 천우에게 적의를 가졌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를 한 것이었던가.

천우는 마샤에게 물었다.

'어때? 거짓말 같아?'

-동공의 팽창정도와 호흡, 심장박동을 체크해 본 결과로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상당히 긴장한 상태이긴 합니다. 참 확률은 95%, 거짓 확률은 5% 미만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연기한 것이 맞네.'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샤는 인간의 행동패턴을 분석해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거짓말탐지기를 개발해냈다.

브루스가 뭔가 숨기는 것이 있을지는 몰라도 악의를 가진 것은 그런 척 연기를 한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저런 연기를 한 것일까.

천우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허나 그런 그에게 단아한 모습의 아가씨가 다가왔다.

"옆자리 비었어요?"

"제 자리도 비었습니다. 앉으시죠."

"벌써 가시려고요? 기껏 용기내서 온 사람에게 너무하시네요."

순백의 피부, 오뚝한 콧대와 두툼한 윗입술까지.

굳이 따진다면 한희연의 귀여운 버전이랄까.

'미인상이네.'

흑발의 흑안, 그녀는 동양인이 분명했지만 볼륨감 하나는 외국인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육감적이었다.

넘칠 정도로 미인이긴 했지만 지금 천우에겐 이 여자보다 브루스와의 대화가 더 절실했다.

그녀는 천우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잠깐 얘기를 하는 것도 안 돼요?"

"···사람을 참 귀찮게 하시네요."

"게다가 지금 나가면 브루스가 연기한 것이 말짱 허사가 될 텐데요."

천우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중에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강렬한 눈빛, 허나 그 눈동자에는 기묘한 매력 같은 것이 넘실거렸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겠네요. 뭐, 나쁘지는 않아요. 아무튼 설명은 해드릴게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이윽고 그녀는 천우에게 악수를 건넸다.

"전미라에요. 한국대학교를 다녀요."

"최천우입니다. 기업을 경영하죠."

"알아요. HC의 총수시잖아요."

"뭐, 그렇긴 하죠."

"기왕지사 나가실 거면 저랑 같이 나가요. 그래야 당신이 친척을 따라서 나간다는 느낌이 안 들죠."

"으음, 알겠습니다."

"나가서 한 잔 해요. 술은 마실 줄 아세요?"

"이번 생에선 처음일 걸요?"

"그럼 전생에선 마셔봤다는 소리인가요?"

"그럴 지도 모르죠."

"희한한 사람이네."

***

뉴욕 월스트리트 한 복판의 5층 건물 안.

이곳에는 '이글루'라는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이글루는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한창 뜨고 있는 투자기업인데, 폐쇄적 사모펀드의 계열사로 알려져 있었다.

오늘은 이글루의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이글루는 서류전형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1차 심사에서 대부분이 떨어져나가 면접까지 오기도 힘들다고 악명이 자자했다.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면접에서는 꽤나 난이도 있는 질문이 나왔고 때로는 허를 찌르는 질문이 많아서 이글루에 입사하느니 CIA에 들어가는 것이 더 빠를 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지경이었다.

"면접번호 2번, 들어오세요."

"네에!"

당당하게 이글루의 면접장으로 들어간 사람은 금발의 미녀였다.

면접관은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줄리아 테일러 씨?"

"넵!"

"경력이 아주 특이하시네요. 컬럼비아 경영대를 졸업한 후에 미 해병대에 입대를 하셨어요?"

"제 한계를 좀 시험해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한계는 시험해봤습니까?"

"육체적 한계는 시험해봤는데 이상의 한계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군대는 제 이상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이상의 한계치를 충족시켜 줄 회사를 찾고 있는 것이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면접관은 서류를 몇 장 더 넘기더니 이내 슬그머니 웃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HC의 대표이사와 같은 동아리에 있었네요?"

"그때는 천우가 슈퍼보이라는 걸 모를 때였어요."

"그가 쓴 마이너스투자이론에 얼마나 기여를 했죠?"

"글쎄요. 논문에 제 생각이 한 줄 정도는 들어갔을까요? 저희는 그냥 친구이지 학문정립의 동료는 아니었어요."

"소수의견 투자동아리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얻은 수익은 얼마나 됩니까?"

"아르바이트로 만 달러 정도 모아서 투자했는데, 지금은 자산이 300만 달러정도 되는 것 같아요. 부동산과 주식을 다 포함해서요."

"오호, 꽤나 모으셨네요?"

"모은 게 아니고 묻어 둔 거죠. 천우의 말처럼 씨를 뿌려서 열매가 열릴 때까지 기다린 것뿐이에요."

면접관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명찰을 꺼내어 탁자 위에 내려두었다.

[로버트 콜먼]

로버트 콜먼은 흥미롭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묘하게도 당신은 우리가 투자하는 방식과 아주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군요. 흥미롭습니다."

"그랬던가요?"

"당신에게 하나만 묻죠. 요즘 폐쇄적 투자회사에 대한 도덕성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폐쇄적 구조의 사모펀드가 굴리는 돈이 특정국가의 재무구조를 멍들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겠지요.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줄리아는 로버트 콜먼이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소신을 밝힐 뿐이었다.

"우리 감자, 아니 천우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돈 버는데 왕도는 없어도 쓸 때 점잖게 써야한다는 말이군요?"

"사모펀드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그들의 도덕성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벌든 돈을 바르게 쓴다면 상관이 없다?"

"네, 그렇습니다. 다만, 폐쇄적 구조의 사모펀드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굳이 이 회사에 입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시다시피 우리는 폐쇄적 사모펀드의 계열사입니다만."

"과연 대부분의 부도덕적인 회사와 다른 점이 있을 까, 그걸 탐구하려는 겁니다. 만약 이 회사가 도덕적이라면 제 이상을 채워줄 수 있겠죠."

로버트 콜먼은 그녀의 면접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콰앙!

그리곤 웃으며 그녀에게 사원 증을 건네주었다.

"나가서 당신의 이름을 넣어달라고 말하세요."

"하, 합격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줄리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런 그녀에게 로버트 콜먼이 말했다.

"이 회사가 도덕적인 법인이 될지 말지는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저는 그저 말단 사원에 불과한데요."

"거대한 기업조차 말단 사원이 없다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두머리만 있는 집단은 결국 집단이라 할 수 없겠죠."

"으음."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회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겁니다. 잊지 마세요."

그로부터 얼마 후.

줄리아는 출근 한 달 만에 첫 번째 임무를 하달 받았다.

그것도 제법 굵직한 프로젝트로 말이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CD시장을 조사하라니···."

그녀가 처음으로 받은 임무는 싱가포르와 홍콩의 양도성예금증서 시장을 주도면밀하게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줄리아가 싱가포르로 장기출장을 떠나기 전, 그녀에게 두 장의 명함이 전달되었다.

본사에서는 그들을 만나 업무협약을 채결하라고 했다.

[HC투자 금융투자본부 조사팀장 헨리 막스]

[슈팅스타 켈리 디프너]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HC와 슈팅스타가 아시아 양도성예금증서 시장을 왜 조사하는 거야?"

아니, 그보다 그녀는 이 세 개의 회사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부터가 의문이었다.

폐쇄적 구조의 회사가 대대적인 업무협약을 채결한다는 건 보통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38. > 끝

ⓒ 풍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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