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64화 (64/202)

32.

대한민국의 건설사 15곳이 러시아 천연가스 공동개발자 입찰에 참여하였다.

입찰자 선정의 기준은 간단했다.

개발팀의 리더인 HC의 간택을 받을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었다.

건설사들의 엄청난 로비가 이어졌다.

하루에도 수 십 억의 돈이 HC로 들어오기 위해 금, 다이아몬드, 부동산으로 변신하여 HC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든 것이 다 허사였다.

이미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천우로서는 답을 미리 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천우의 건설사 간택기준은 미래에 저들이 얼마나 성장해 있었느냐였다.

이미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를 전부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우는 저들에게 어떤 결점이 있고 장점이 있는지 파악이 가능했다.

마샤는 이런 미래지향적 채점을 위해서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냈다.

-···마샤의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기업평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업평가라."

천우가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하기만 하면 원하는 회사들의 로고에 손가락만 올려놓아도 기업의 정보와 이력, 미래의 일까지 종합되어 나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기업에 대한 평가를 5점 만점 기준하여 평점을 내려주었다.

-현보건설, 종합평점 3.2점입니다. 다만, 주인님께서 현재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베네핏을 적용하게 됩니다. [email protected]에 대한 수치는 추후에 다시 산출할 수 있습니다.

"흠, 좋아."

이런 식으로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 올 수 있으니, 현보를 제외한 4개의 건설사를 선정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다.

천우는 건설사 평점 상위 4개 기업을 선정해서 합격자 통보를 내려주었다.

그의 합격을 받은 업체 중 2개는 대기업, 2개는 중견기업이었다.

80년대 중동 오일러시에서 뒤쳐졌었지만 차근차근 플랜트 사업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쌓은 이 중견기업들은 IMF금융위기와 2008년 국제 금융위기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내실로 따진다면 어지간한 대기업의 계열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해외플랜트 사업 모입이 개최되었다.

상호 건설과 예림 건설의 사장들은 자신들이 해외로 나간다는 것에 무척이나 설레는 것 같았다.

그들은 행사장에 감사의 표시로 다과와 소정의 선물까지 준비해서 놓아두는 정성을 보였다.

95년 8월 초.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모임에 속속들이 관계사의 대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안 그래도 최근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건설사 경기가 활로를 되찾은 것 같아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앞에 HC투자의 대표이사 슈퍼보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HC의 대표이사 최천우입니다."

"허어! 설마···?"

모두들 이제 최충의 회장의 핏줄은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설사 있다고 해도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해 미국에서 뼈를 묻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곤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이 처음 모였을 땐 도대체 왜 현보와 같이 끈 떨어진 재계의 퇴물을 데려오나 싶었었다.

헌데 막상 슈퍼보이의 실물을 영접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늘 행사에 현보의 대표로 참석한 천우의 당숙 최진명은 큰 충격과 약간의 감격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천우가 말했다.

"당숙, 많이 놀라셨습니까?"

"···설마하니 HC의 대표가 천우였다니!"

이미 슈팅스타의 대주주가 최희명이었다는 건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아직 천우에 대한 얘기는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천우는 그에게 당숙으로서의 예의만 갖춰주곤 이내 회의를 이어나갔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우리는 이제 러시아로 갑니다. 그곳에서 천연가스 분천을 개발하고 그 일대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임무를 맡게 되겠지요. 수익배분은 약정된 금액과 같습니다. 유전개발에 대한 공지는 추후에 다시 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미국계 회사들과 조율이 안 된 상태라 서요."

"미국?"

"미국의 갤럭시 오일 컴퍼니와 록키드나 마틴 사와 같은 방위산업체도 참가할 겁니다."

"유전을 파는데 무슨 방위산업체를? 공사에 군수품이 필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래요,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그들은 진보된 탐사기술을 가지고 있고 채굴 장비를 만드는 기술 역시 수준급입니다. 이미 미국의 셰일유전을 탐사하면서 상당히 진보된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지요."

천우가 갤럭시 오일 컴퍼니와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을 이어준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방위산업체들은 셰일유전을 탐사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제는 해당분야의 장비를 만드는데 상당한 노하우가 쌓여 있었다.

천우는 이들을 한국계 기업과 이어줘서 수익을 나누는 대신 개발비용과 탐비용을 대폭 줄여서 소요자금의 대략 1/2를 줄일 생각이었다.

탐사와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으면 적을수록 수익은 많아지는 셈이니 이건 천우에게 이득이었다.

"자, 그럼 천연가스 개발에 대한 세부일정을 오늘 조율하고 2개월 후에 선발대를 출발시키는 것으로 하시죠."

천우의 진두지휘 하에 본격적인 개발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95년 8월 17일.

나노 소프트의 신작OS '윈도 95'가 출시 하루를 앞두고 있었다.

미국 시애틀의 나노 소프트 본사에서는 배본에 앞서서 천 만 장 이상의 타이틀 판매계약을 맺었고, 지금도 꾸준히 계약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8일, 드디어 윈도 95가 첫 선을 보였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MBI와 애플스에서도 윈도우 95를 구매해서 장착, 판매하는 전략을 수립할 정도였다.

이제 전 세계 OS시장은 나노 소프트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노 소프트의 주가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96년 1월.

미국과 영국의 언론은 각 신문사들의 의견을 통합, 그들의 의견을 통해 추적한 세계 최고의 부자 1위를 윌리엄 게리슨으로 꼽았다.

윌리엄 게리슨의 현재 자산은 대략 1000억 달러, 개인자산으로는 거의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미국의 석유재벌 로이 하워드 3세가 91년도까지, 92년도와 93년도에는 자동차 재벌 FM그룹의 휴 엔져가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94년도부터 변동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윌리엄 게리슨이 두 사람을 모두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이런 압도적인 시가총액을 보유한 회사의 1.55%의 주주가 바로 천우였다.

이른 아침.

천우는 학교로 한 통의 소포를 받았다.

소포 안에는 윌리엄 게리슨의 서명이 들어간 키보드와 스피커, 프린터가 들어 있었다.

박스 겉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컬렉션 완성.

천우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윌리엄 게리슨은 1.55%의 주식을 가진 천우를 상당히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해마다 컴퓨터 용품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선상파티 초대권이나 크루즈여행권 등을 보내주곤 했었다.

윌리엄 게리슨은 소소하지만 천우와 계속해서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진 천우는 연구실로 향했다.

그의 연구실 안에는 단출한 컴퓨터 한 대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컴퓨터 안에는 처음 환율 장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쌓아둔 경험을 통해 집대성한 투자이론 논문이 들어 있었다.

오늘은 그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천우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기는 했지만 이미 학계에선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도교수인 존 헤네시의 권유로 지금까지 천우가 집대성한 투자이론을 학위논문으로 제출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존 헤네시는 천우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최연소 교수, 존 헤네시는 그런 생각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천우는 교수임용에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나이를 지긋하게 먹어 할아버지가 된다면 한 번쯤은 모교의 교단에 설 생각은 있었으나, 지금은 절대 아니었다.

경영대 학장으로 임용된 존 헤네시는 천우를 학파의 교수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내걸었으나, 천우는 번번이 그 제안을 거절했다.

"오늘이 논문 발표일이군. 자네와 함께 한 시간이 꽤 길었는데, 이렇게 보내려니 아쉬워."

"학교를 떠나는 것일 뿐, 학파를 아주 떠나는 건 아니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만."

존 헤네시는 지금까지 천우만큼 애정을 쏟아 키운 제자가 없었을 정도로 그에게 정성을 다했다.

허나 아쉽게도 천우는 학자로 남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스승의 곁을 떠나려는 것이었다.

천우는 만약, 자신의 논문이 거절되어 박사학위 취득에 실패하더라도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물론, 얼마 후에 돌아온 결과는 학위인정이었다.

일각에서는 컬럼비아 대학을 나와 자교의 대학원에 진학한 것을 두고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려 한다'라고 비난하기도 했었다.

같은 학파의 같은 이론을 배워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것은 학문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의 교육관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허나 이미 천우의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학계인지라 모교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할 말이 없었다.

결국 천우는 영원히 스승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 천우의 미국 집에서도 그의 짐이 하나하나 상자에 담겼다.

늦은 밤.

10년 전과 같이 천우네 세 식구는 가족회의를 가졌다.

이제 천우가 다 컸으니 굳이 부모와의 동거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보통의 가정이었다면 천우가 군대를 가는 순간, 독립으로 보고 따로 거처를 잡았을 것이다.

허나 이미 천우는 대학원까지 졸업한 사람이며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사업체를 운영 중인 사람이었다.

지금 분가를 논해도 절대 이른 것이 아니었다.

사실, 한희연은 천우가 서른이 될 때까지 같이 살았으면 했다.

그러나 그건 어머니로서의 욕심일 뿐이었다.

"한국으로 간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 다짐에는 변함이 없니?"

"네, 아직도요."

"으음, 그렇다면 우리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한국에서 혼자 살 수 있어요.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이제 가문의 저택은 저에게 맡길 테니 알아서 살아가라고요. 저는 두 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저를 키우느라 다들 고생이 많으셨잖아요. 이제는 저는 상관하지 말고 두 분의 인생을 찾아서 사세요."

순간, 한희연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품 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천우가 정말로 홀로서기를 하려 하니, 감동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서운함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미, 미안. 엄마도 이제는 나이를 먹나봐. 주책이야, 눈물이 다 나네."

"괜찮아요. 눈물도 생리현상이잖아요?"

이제 천우는 어머니와 족히 머리 두 개 차이는 났다.

한희연은 어느 새 거대해져버린 아들에게 손을 뻗었다.

천우는 어머니를 품에 안았다.

"이제는 엄마가 저를 안지도 못하잖아요. 이제는 아빠랑 둘이 오순도순 잘 사세요. 애정표현도 거리낌 없이 하시고요."

"···별 소리를 다하네."

"늦둥이도 괜찮지만 최대한 신중하시고요."

그녀는 천우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

천우는 웃으며 부모님에게 인사를 고했다.

"그럼 저는 내일부로 한국으로 갈게요."

"···자주 연락하고."

"그럴게요."

최호명 부부는 이제 새롭게 인생을 설계해보기로 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천우와의 생활을 접고 자신들만의 인생을 꾸며나가는 것이었다.

< 3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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