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61화 (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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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노보루와 조의창의 일명 '삽질무역'이 일단락되었다.

대검 중수부는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조의창을 긴급체포, 구금수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시점, 일본에서는 아베 노보루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사실상의 경질설이 나돌고 있었다.

이에, 온건 우파의 새로운 수장인 타카키 소이치로는 아베 가문의 책임 설을 대두시키며 주민당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었다.

결국 선대에 이루지 못한 총리대신의 꿈을 이루겠다던 아베 노보루의 뜻은 강경파 우익의 스캔들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온건 우파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경 우파의 자세는 심히 단호했다.

원리원칙, 일본 정치의 전통을 지켜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주민당 소속 고타즈미 준이치로는 사실상 일본의 국익을 위해 벌인 일이라면서 아베 노보루를 두둔하며 나섰다.

허나 언론과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는 10월 12일 총선거에서 잘못하면 주민당이 실각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분명 아베 가문은 전 총리의 파벌이며 주민당 제 2파를 주도하는 세력이긴 하나, 그들은 부패정치인이라는 낙인을 찍은 지 오래였다.

국회의원 선거구를 세습함과 동시에 부패까지 세습했다는 여론이 나온다면 선거구를 잃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아베 노보루는 외조부인 전 총리와 전 관방장관이었던 부친의 선거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사람이었다.

그 압도적인 지지율이 만약 안티로 돌아선다면 어떻게 될까.

언론은 아베 가문은 또 다시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당은 일본 10월 12일 총선에서 또 다시 압승할 것이라고 자신하였다.

38년간 이어온 세습정치에 대한 자만심이었다.

허나 여기서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온건 우파의 수장 타카키 소이치로가 탈당하면서 새로운 보수정당을 수립한 것이었다.

타카키 소이치로는 아베 노보루의 삽질무역을 예로 들면서 우익의 우민화는 결국 자국을 궁지로 몰아가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주변국가와의 분쟁이 아닌 미, 중, 러, 한 간의 중립 실리외교라, 그는 그리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한 설득력이 높았던 것일까?

8개로 분열되었던 여당 중 6개가 타카키 소이치로와의 단일화를 선언하였으며 주민당 제 3파벌 역시 탈당을 선언하며 독자노선 구축 및 타카키 노선과의 동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10월 12일.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총선거가 펼쳐졌다.

결과는 전문가와 언론의 예상대로 아베 노보루의 참패하였다.

그 뒤를 이어 일본의 국익을 위한 일이라며 부패를 감싸주던 주민당의 고타즈미 준이치로가 낙선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그와 함께 일본의 주류로 불리던 주민당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 주민당의 실각이 확실시 되었다.

그에 반해 타카키의 평화일본당은 전국 각지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표를 싹쓸이해버렸다.

38년 만에 신당이 일본의 거대정당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었다.

평일당(평화일본당)이 득표율 1위, 그를 이어 주민당이 2위, 전 주민당 제 3파벌이었던 정민당(정의민주당)이 3위로 올라섰다.

이로서 평일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주민당은 결국 소수정권으로 밀려나는 대참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슈퍼보이 효과'라고 평가했다.

94년 1월.

천우는 평일당 총재이자 일본 총리대신으로 선출된 타카키 소이치로의 서한을 받았다.

서한에는 HC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초청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서 주민당과의 격차를 크게 벌이려는 의도 같았다.

김영실은 일본이 HC를 통하여 미국과의 스킨십을 늘리려는 정책을 고수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타계할 방법으로 미국시장과의 본격적인 동맹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안 그래도 최근 미국의 쌀 수입 압력으로 미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으음, 우리를 교두보로 삼겠다?"

미국의 대일 압박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작년부터 미국은 일본에게 흑지비율 50% 감축을 요구하였고, 일본은 그에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동안 일본은 미국과의 마찰이 있을 때마다 WTO제소를 통하여 맞불을 놓았고, 미국은 통상법 301조를 통하여 일본을 압박하다가 WTO제소에 부딪쳐 결국엔 일본의 멱살을 놓아주고 말았다.

허나 이번에는 달랐다.

미국이 일본 무역업계에 대한 덤핑판정을 내리고 WTO에 덤핑공세를 근거로 불공정무역 제소를 해버린다고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쌀시장 개방과 같은 난제가 터지니, 일본으로선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으음, 원래대로라면···.'

천우는 AI의 사건사고 검색기능을 활성화 하였다.

일전에 만들어졌던 증권가 호재, 악재검색 기능에서 발전하여 이제는 사건사고 검색기능이 추가 된 것이었다.

이제는 AI가 마지막으로 인터넷과 연결되어있던 그 시점까지 일어났던 사건들을 날짜나 키워드, 이슈의 종류 등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95년도, 미국의 WTO제소에 일본이 맞제소로 대응하면서 사실상의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미국과 일본은 수차례 무역마찰을 빗게 되나, 일본은 꾸준한 덤핑공세로 아시아, 유럽 시장을 공략해 나갑니다.

사건사고 검색은 천우가 검색 이슈들에 대한 정보를 스크랩해서 모아놓으면 그에 대한 브리핑도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굳이 국제정세를 파악하거나 이슈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종합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미래를 참고한다면 아무리 내가 중재를 한다고 해도 결국 분쟁은 터지게 되겠군.'

-미국과 일본의 장기불황이 계속된다면 말이죠.

'흐음.'

-하지만 일본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인님께서 한국에서 본가를 물려받아 사업을 영위하게 된다면 일본정부와의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하긴, 그건 그래.'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아무리 천우가 일본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해도 결국 그들 역시 천우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아예 일본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일본의 썩어빠진 정치인들이지 일본 자체는 아니지 않던가.

"초청을 받아들이세요. 다만, 공개석상이 아닌 비공식 접촉으로 진행해주세요."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이젠 슬슬 정식 데뷔를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진행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한 편.

천우가 데뷔를 준비하는 동안 최호명은 일본과의 대대적인 협상에 착수하였다.

지금까지 아베 노보루의 비자금루트로 알려져 있던 동경은행을 슈팅스타가 전격 인수하기로 한 것이었다.

최근 동경은행은 선거에서 참패한 주민당의 영향으로 대거 예금인출 사태를 겪고 있었다.

동경은행이 결국엔 주민당의 비자금 창고라는 인식이 심어진 것이었다.

최호명은 이 타이밍에 동경은행을 인수하고 은행의 회계장부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다.

그는 이른 바 '클린뱅크' 캠페인을 시작하며 동경은행의 광고 문구를 '적폐청산의 민주화 은행'이라고 써 붙였다.

이번 총선거에서 일본의 정치판도가 바뀌면서 이와 같은 문구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본 방송가를 찾아가서 오히려 비자금 문제에 대한 이슈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일본 다사히 TV는 방송수입 저조로 인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슈팅스타는 다사히 TV에 대한 대대적 광고와 스폰서 제안을 하면서 이와 같은 부탁을 한 것이었다.

다사히 그룹 방송부문 사장 다사히 준페이는 슈팅스타의 접선을 크게 반겼다.

"안 그래도 정계의 부패와 정경유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번쯤은 이슈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잘 되었군요. 제대로 된 방송 한 번 시원하게 뽑아주십시오."

"하하,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최근 방송수입이 줄어서 골골대던 마당에 슈팅스타라는 기업을 등에 업게 생겼으니, 이들로선 '땡큐'였다.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사실 안.

중수부장 한윤식이 죄인의 신분으로 마주앉은 조의창에게 물었다.

"조의창 씨, 삽질무역의 대가로 기업 총수들에게 금품을 요구하였죠? 인정하십니까?"

"···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고 이러는 건가? 그러다간 정말 큰 코 다칠 텐데."

한윤식은 조사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읽고 있다가 그 파일을 덮어버렸다.

타악!

그리곤 조사실 문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준비해."

"예, 부장님."

조의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조의창이 한 번이라도 대검 중수부에 끌려와 본 적이 있었다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중수부를 사법기관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앞마당에 키우는 개,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한윤식은 팔을 걷어붙였다.

"잠깐, 롤렉스시계 좀 빼고. 우리 아들이 승진했다고 선물로 준 시계를 버릴 수는 없지."

"······?"

"뭘 갸웃거려? 내가 뭘 어떻게 할지 궁금해?"

금장시계를 신주단지 모시듯 바닥에 내려놓은 한윤식은 조의창을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렸다.

빠악!

"크허어억!"

"이런 씨부랄 새끼가 쉬엄쉬엄 하니까 감이 잘 안 잡히지?"

지금까지 이런 굴욕이 또 있었던가.

한윤식은 뒤로 넘어가버린 조의창의 멱살을 잡곤 그를 다시 일으켰다.

"일어나, 이 비리비리한 범죄자 새끼야. 네가 사람대접을 해주니까 여기가 너희 집 안방인 줄 알지?"

"···이러고도 무사할 성 싶으냐!"

"무사하지 못할 건 또 뭐야. 왜, 아직도 세상이 네 것 같나? 착각하지 마. 정권이 바뀌면서 세상도 바뀌었으니까."

"······."

"뭘 꼬라봐, 이 새끼야!"

퍼억!

한윤식의 주먹이 조의창의 얼굴을 아주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

그럼에도 조의창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똑바로 들어. 조만간 군사정권의 전 대통령 두 명은 곧 감옥에 들어간다."

"···뭐?"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넌 과연 어떻게 될까?"

"······."

"설레지 않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신세계가 열리는 거야! 그게 무슨 신세계냐고? 바로 감옥이라는 신세계지!"

조의창도 언젠가 한 번쯤은 굴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그 굴욕이 이런 끝도 없는 나락일 것이라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한 번 잘 생각해봐. 중수부에서 네가 과연 어떻게 구는 것이 현명할지."

조의창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이 고통, 안면부가 깨질 것 같은 이 고통도 결국 자신이 당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나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뭐, 그럼 이렇게 합시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시는 걸로."

"다 좋은데 감옥에 가기는 싫으시다?"

"그만큼 이번 정부에 충성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한윤식은 그에게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

"일단 피부터 닦고 말해 봐요. 한 번 들어보고 결정할 테니."

"후후, 아마 구미가 확 당기실 겁니다. 당신들도 이번 기회에 청와대에 눈도장 쾅 박고 싶을 테니, 들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두서가 길군. 어서 지껄여 봐요."

조의창은 이미 인생을 포기했다.

더 잃을 것도, 후회할 것도 없었다.

'씨부랄, 어차피 죽을 거면 다 같이 죽는 거다!'

그렇다면 저승길 동무정도는 만들어놔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 30.(1) > 끝

ⓒ 풍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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