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60화 (60/202)

< 30. >

30.

일본과 한국은 앞으로 3년 간, 일본의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될 때까지 11개 제품군에 대한 수입을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는 한국계 전자산업계의 환영을 받았다.

안 그래도 미국의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현보전자가 언제 앞으로 치고 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보의 가장 큰 경쟁업체인 성일전자는 거의 축제분위기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2개월 후, 규제조치가 본격 시행될 예정이었다.

이 여파로 현보전자의 점유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AS불가에 대한 불안함으로 주가마저 요동치고 있었다.

짝짝짝!

성일전자는 이러한 규제를 성공시킨 한일 양국의 정치인들에게 금두꺼비를 돌렸다.

"이거, 별 건 아닙니다만 받아주십시오! 두꺼비는 은혜를 잘 갚기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허참. 뭐 이런 걸 다···."

아베 노보루는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는 부수입으로 성일전자 등에서 보너스를 받을 것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준다는 것이 고작 금붙이 몇 덩어리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허나 성일전자는 그리 통이 작은 기업이 아니었다.

국내 전자산업 서열 4위, 현보가 떨어져 나감으로서 그들은 이제 부동의 3위를 탈환할 수 있게 되었다.

설마하니 한국 전자업계 3위가 그렇게 손이 작을까?

아니나 다를까, 조의창이 아베 노보루의 금두꺼비를 들어 올려주니 그 아래 깔려있던 상자에서 채권이 다발로 나왔다.

"영국에서 파운드로 환전이 가능한 환매조건부채권입니다. 차명으로 되어 있고 그 차명은 영국 MI5도 찾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엮어 세탁을 해두었지요."

"으음!"

그제야 아베 노보루의 얼굴이 확 피었다.

그는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조 의원님 덕분에 제가 금두꺼비를 다 받아봅니다."

"하하, 뭘요. 앞으로 현보를 수술시켜서 수고비를 받으면 더욱 만족하게 되실 겁니다."

두 사람의 눈동자에 탐욕이 가득해 보인다.

***

놀라운 일이었다.

천우는 설마하니 조의창과 아베 노보루가 붙어먹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는 최호명에게 소재시장에 걸쳐 있는 영향력을 발휘해서 자신이 지정한 업체에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감히 할아버지의 회사를 두 번 죽이려 하다니···!"

원래 천우는 한국의 본가로 돌아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조용히 지내려 했다.

허나 정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싶었다.

아무리 못해도 매운맛의 예고편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보는 천우였다.

천우는 최호명에게 3개월 정도 버틸 물량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현보가 3개월 버틸 물량을 뽑아내면 제가 조 씨 일가의 오줌을 지리게 만들어놓을게요."

"그래?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그럼 같이 한 번 판을 짜볼까?"

"좋죠!"

부자는 현보전자가 3개월 버틸 물량을 만드는 동안 조용하게 지내며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부품업체 15곳이 유럽으로 에어컨, 냉장고의 주요부품을 수출했다.

이곳으로 들어온 부품들은 곧바로 유럽공장에서 생산 공정을 거쳐 미국과 한국으로 역수입되었다.

관세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시장점유율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성일전자는 현보전자가 주춤거린다고 생각했었으나, 여전히 점유율 3위를 지키고 있는 것에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들은 어차피 2개월, 그 안에 결판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곤 오히려 전보다 가격을 약간 더 올려서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전면에 내세운 판매 전략은 국산의 프레임에 일본의 고급 부품을 덧입혀 세계화를 진행하였다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은 이미 국산제품에 대한 성능에 만족하고 있었고 굳이 비싼 일본제품이 들어간 가전을 살 이유가 없었다.

그에 반해 현보는 오히려 이전보다 15%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8월.

완연한 여름이 다가온 가운데, 가전제품 4대 회사의 진검승부가 시작되었다.

오성과 LK전자의 1, 2위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서 아직 반쪽짜리 국산제품군인 3, 4위 경쟁이 뒤를 이었다.

허나 3위 자리 경쟁은 현보의 압승으로 끝이 나 버렸다.

8월, 부품수입이 단절된 이후에도 현보의 물량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현보는 자국의 내수시장을 공략하는데 있어 사실상 덤핑공세를 취하였으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격경쟁력에서 현보가 우위를 점했을 뿐, 그것에 대한 덤핑판정은 없었던 것이다.

콰앙!

조의창은 최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이게 뭡니까! 물량을 끊었는데 현보가 왜 아직도 잘 나간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즉각 시정하겠습니다!"

"시정하긴 뭘 시정해,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시정을 하지!"

잔뜩 흥분한 조의창은 아베 노보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의원님. 안 그래도 전화를 하려던 참입니다.

"일본 쪽에서 부품수입을 단절시킨 거, 맞죠?"

-틀림없습니다. 세관당국이 아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품업체들이 유럽으로 우회 수출하여 현보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보가 저렇게 훨훨 날아다니는 것이로군요."

-지금 해당 업체들에게 핵심소재 공급을 끊어놓았으니 길어봐야 한 달도 못 가서 두 손, 두 발 다 들 겁니다.

"좋아요, 저는 아베 의원님만 믿겠습니다."

-그래요, 저만 믿으세요.

다른 건 몰라도 규제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내는 사람들이니 절대 자신을 실망시킬 리 없다, 조의창은 그리 믿고 있었다.

일본 주민당은 조의창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핵심소재에 대한 외압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아베 노보루의 압력이 15개 업체의 숨을 죽이는데 동원된 것이었다.

허나 주민당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외압을 행사해도 자꾸 어디선가 생산소재가 유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베 노보루는 끄나풀들을 소집시켰다.

"···일처리를 뭐 이렇게 합니까?"

"저희들도 최대한 옥죄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슈퍼보이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슈퍼보이···? 미국의 그 투자자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기랄! 슈팅스타와 슈퍼보이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데 그렇게 발 벗고 나선단 말인가요."

"그것까진 알 수가 없습니다. 현재까지도 슈퍼보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실정 아닙니까."

아베 노보루는 위기감을 느꼈다.

설마하니 버블붕괴 직후, 소재시장을 순식간에 먹어 치워버린 슈퍼보이가 뜰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민당 제 2 라인은 크게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슈팅스타가 슈퍼보이와 손을 잡았다면 제 아무리 주민당이라곤 해도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버거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9월 초순.

슈팅스타의 일본계 여신에 대한 상환연장이 거부되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부실채권을 있는 대로 매입해서 덩치를 키운 후, 그 공백에 자신들의 자회사를 속속들이 투입시킨 블랙하워드 뱅크는 현재 일본계 미국자본 중 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들의 일본국내 여수신 점유율은 15%, 그중에서 주요기업여신의 비율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대출금상환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자금을 일제히 회수해버린다면···?

악몽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베 노보루는 주민당의 모든 라인을 동원해서 슈팅스타와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허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의원님, 슈팅스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빌어먹을! 상무부 라인을 통해서 한 번 알아보세요!"

"상무부 측에선 기업 간의 일이라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면초가였다.

아베 노보루는 만약 슈팅스타가 상환만기연장을 거부하게 된다면 주민당 전체가 실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에 그는 슈퍼보이와 접선을 시도하였다.

HC에서는 다행이도 일본으로 사람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그들의 입장은 슈퍼스타보다 더욱더 강경했다.

"우리 HC투자와 대주주 슈퍼보이는 일본계 자금운용에 대한 철회를 선언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투자고문업의 방향도 앞으로는 일본과의 거래는 차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까 싶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사실상 미국이 일본재계를 보이콧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해석이야 알아서 하시고요."

슈퍼보이가 일본재계와의 단교를 선언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우선 원유산업과 방위산업 자체가 물량투입을 억제하기 때문에 주민당 제 2 세력은 당연히 실각하게 될 것이다.

원유와 방위산업, 그들의 보이콧은 일본재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상무부와 접촉한다면 어떻게 얘기가 잘 풀릴지는 모르겠으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 쌓일 타격과 리스크는 아베 노보루를 밀어내고도 남을 정도였다.

아베 노보루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당신이 뭘 어떻게 해도 우리는 할 일을 할 겁니다. 외부세력과 손잡고 소재산업을 압박해서 한국의 전자산업계를 뒤흔든 점,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거래와는 거리가 먼 처사 아닙니까? 그런 부도덕적인 세력과는 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 슈퍼보이의 생각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슈팅스타의 영향력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일국의 정계를 주름잡는 중추세력이라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들과 직접 대면해보고선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것인가!'

자신은 일본을 좌지우지 하는 세력의 중추라 생각했다.

허나 사실상 그는 슈퍼보이와 같은 진짜 '권력가' 앞에서는 그저 꼬리를 말고 엎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마디로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혼자 북치고 장구 치는 광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심각한 자괴감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요?"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질 테니, 부디 극단적인 처사만큼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베 노보루는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사실상의 굴복, 그는 슈퍼보이와 슈팅스타의 앞에 엎드려 빌 수밖에는 없었다.

"좋아요, 한 번 지켜보겠어요."

찰칵, 찰칵!

HC의 협상단은 고개 숙인 아베 노보루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 역사적인 굴욕을 대주주에게 그대로 전달해주기 위함이었다.

한편.

한국에서는 야권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여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현보를 비롯한 한국 전자산업계를 망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조의창이 꾸미고 시행했다는 것이었다.

조의창은 끝까지 발뺌하며 발버둥을 쳤다.

허나 그는 사면초가에 몰린 뒤였다.

국회의원 사무실에 앉은 조의창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 속에는 일본어로 된 편지와 함께 그것을 번역한 기사의 원문이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전자산업계에 대한 타격이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아베 노보루는 한순간의 이득에 눈이 팔려 그만 조의창 의원과 손을 잡고 11개 부품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어떤 처분이 따르던 달게 받겠습니다···.

바로 아베 노보루의 반성문이었다.

콰앙!

조의창은 팔걸이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빌어먹을! 이 새끼가 혼자만 살겠다고···."

사태만 수습된다면 아베 노보루는 최소한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조의창의 경우에는 어떨까.

입질은 바로 왔다.

똑똑.

"의원님,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검찰?"

자신의 충성스러운 끄나풀이었던 검찰이 찾아오다니.

그는 실소가 절로 나왔다.

"허참, 슈퍼보이인가 뭔가 하는 새끼의 얼굴이 참으로 궁금하군."

< 30. > 끝

ⓒ 풍류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