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59화 (59/202)

< 29.(2) >

HC투자가 세워질 때만 해도 금융계의 인재들만 몰려들었다.

헌데 사업의 다각화가 진행되고 보니 다방면에서 인재가 발굴되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천우는 HC비즈니스 서포터 센터를 설립하고 사업자금을 출자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얼마 전, 서버관리 아르바이트생으로 엘리 베이직이라는 미래의 거물 엔지니어가 HC를 찾아왔다.

만약 천우가 엘리 베이직에게 파격적인 근무조건과 연봉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50 대 50의 확률이지만 그가 아예 회사에 개발자로 눌러앉게 될 수도 있다.

허나 천우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 베이직은 분명 호랑이새끼다.

호랑이새끼가 커서 호랑이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목줄을 채우고 사육하는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서 덩치만 큰 고양이가 될 수도 있었다.

천우는 엘리 베이직이라는 호랑이새끼에게 양껏 먹이를 먹이며 성장시킨 후, 함께 수렵하는 파트너로 삼을 생각이었다.

이런 호랑이새끼를 더 많이 키울수록 천우는 오히려 더 빨리 산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호랑이는 산군, 천우는 그 산군 위에 군림하는 자가 되는 셈이다.

엘리 베이직은 너무나도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창업계약서요?"

"HC투자에서 귀하의 학업을 서포터하고 앞으로 졸업 이후, 사업자금을 조달해주겠다는 겁니다."

"허어, 그래서 이 회사에 남는 건 뭔데요?"

"우리는 당신이 세운 회사의 지분을 취합니다. 그 이후, 대주주와 경영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그럼 경영간섭이 생길 가능성도 있잖아요."

HBSC(HC비즈니스 서포터 센터)의 센터장 카트리나 골드는 엘리 베이직에게 두툼한 창업계약서의 중간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어 보여주었다.

"경영간섭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초도투입자본에 대한 영향력만 행사할 뿐이죠."

"으음···."

"만약 그래도 부담이 된다면 추후에 성장률대비 투자금 반환을 통해서 우리의 지분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의결권만 있으되, 경영간섭은 일절 할 수 없는 상태로 남겨둘 수도 있겠죠."

HC투자의 목표는 글로벌지주회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기업을 먹어치우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은 결국 자사에 독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엘리 베이직은 계약서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셨네요."

"다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HC라는 울타리 안에서 경쟁이 벌어져도 중립을 지켜주십시오."

HBSC에 묶인 기업만 30개가 넘는다.

그 기업들은 차후에 거성이 될 신성들이다.

그들이 부딪쳐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으며 과열경쟁으로 한쪽이 도태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한다고 해도 그건 자연의 섭리와 같은 것이다.

카트리나 골드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도태되면 과감하게 버립니다. 자선 사업가는 아니거든요."

"아아, 그렇군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잊지 마세요. 우리는 투자업자입니다. 도태된 회사는 필요 없습니다."

HC투자의 입장에서는 무한 경쟁이 아주 당연한 소리였다.

허나 그건 후발주자 사업가들에겐 큰 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엘리 베이직은 달랐다.

"약육강식의 세계, 매력적인데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런 각축장이야말로 자신이 진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링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카트리나 골드는 엘리 베이직을 포함하여 총 30개 기업에 대한 계약을 채결했다.

이로서 HC투자는 IT기업 30개에 대한 투자를 승인하였고, 바야흐로 진정한 문어발식 확장이 시작된 것이었다.

***

이른 아침부터 최호명의 집무실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수출규제라니요!"

"전자제품의 부품 군 11개에 대한 수출을 1/10으로 줄이겠답니다."

"···이놈들이 미쳤나?"

일본정부는 에어컨, 냉장고, TV 등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11개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품목 11개에 대한 무역수지가 대대적인 적자로 돌아서면서 경상수지 회복 차원에서 11개 품목에 대한 수출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한국정부의 반응은 아주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저들이 말한 11개 품목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대략 8% 남짓, 이제 거의 대부분이 국산화에 성공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11개 품목의 가격이 떨어진 것도 수출물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한국계 수입이 줄어들면서 생긴 일이었다.

중진국 이하의 국가들의 경우엔 미국이나 한국, 대만 등에서 반제품을 들여와서 자기들의 브랜드만 붙여서 파는 경우가 많았음으로 일본에서 부품을 따로 수입해다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한국의 부품시장이 축소되자, 그와 함께 11개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이 이슈가 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현보의 입장은 달랐다.

콰앙!

"이런 빌어먹을! 일본정부가 현보를 잡아먹으려 작정한 것 아니고서야···."

"아무래도 조의창과 아베 노보루의 뒷거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 씨 와 아베가?"

"올해 2월, 도쿄 긴자에서 아주 은밀하게 회동을 가졌답니다. 아무래도 그때 현보전자에 대한 집중적인 조이기가 진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새끼들이 아주 작정을 했군 그래."

조의창, 아베 노보루, 모두 슈팅스타에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헌데 더 열 받는 건 경쟁업체들의 태도였다.

"전자업계는 뭐랍니까?"

"무반응입니다. 심지어 현보와 같이 부품을 받아다 쓰는 성일 쪽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답니다."

"···담합인가? 조의창이 우리 몰래 뒤에서 전자업계를 설득하고 다닌 모양이로군."

한국의 전자업계 3, 4위를 다투는 현보와 성일은 유독 에어컨과 냉장고 부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 두 기업은 꾸준한 연구비 증강으로 이제 거의 다 국산화에 성공한 상태이지만 2%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수입길이 막히면 피를 보는 건, 성일 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현보는 국가에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고 있었으나, 성일은 아예 가만히 앉아서 노가리나 까고 있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뭔가 있군. 아무래도 앞에서 해결을 보긴 어렵겠어."

최호명은 일단 일본의 부품생산업체들을 찾아갔다.

현보가 부품을 받아서 쓰는 곳은 대부분 일본계 대기업의 하청업체들로서, 대기업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생산만 하청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로서도 국가의 통제 하에선 수출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입장이었다.

"우리라고 매출 8%를 까먹는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8%를 더 챙기자고 존립의 근간 자체를 뒤흔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제기랄···."

규제에는 반드시 법적 조치가 뒤따른다.

아무리 대기업의 하청업체라곤 해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어버린다면 공장이 문을 닫아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들은 가장 큰 문제와 직면해 있었다.

"규제도 규제인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부품을 만들어 납품할 때 들어가는 핵심소재의 유통망을 확 걸어 잠가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핵심소재요?"

"에어컴프레서 하나 만들어서 판매하려고 해도 핵심소재 몇 개 빠지면 공정이 불가능하잖아요. 가장 무서운 건 그거죠. 일본에서도 몇 군데 빼고는 업체를 찾아보기도 힘든데다 보관이나 관리가 극도로 까다로워서 우리는 아예 손도 못 댄다는 점, 한마디로 유통망이 막혀버리면 그대로 동맥경화입니다. 즉사인거죠."

"흐음. 복잡하게 되어버렸네."

"포기하세요. 아마 재생산은 어려울 겁니다."

최호명은 생각에 잠겼다.

얼마 전, 아베 노보루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동경은행의 매각이 전면 중지되면서 일단 손에서 카드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러자 곧바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새끼, 자기에게 불리한 카드가 사라지면 그 즉시 안면을 싹 깔아버리는구나."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판을 짜고 있었다.

아베 노보루라는 인물은 그런 이중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허나 최호명이 부품생산업체의 말을 들어보니 길이 아주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소재만 주면 생산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겁니까?"

"뭐, 그렇긴 하죠. 원재료는 언제든 수급이 가능하니, 핵심소재 몇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그럼 일단 유럽으로 물량을 보내주세요."

"유럽? 갑자기 무슨 유럽?"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걸린 거지 유럽으로의 수출규제가 걸린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곳으로 부품을 보내주세요. 우리가 우회생산 하겠습니다.

"···그렇게 한 후엔 우리 다 같이 굶어죽자고요? 한국으로 수출하지 말라고 했는데 유럽우회수출의 루트를 열어주면 곧바로 핵심소재 조달을 막아버릴 겁니다."

"안 굶어죽습니다. 소재는 우리가 조달해 줄 수 있거든요."

"네에···?"

"우리의 아주 강력한 파트너가 일본 소재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거든요."

천우는 최호명과 손잡고 일본계 소재시장을 공략하여 정말 소리 소문도 없이 장악해버렸다.

시장 100%를 손에 꽉 움켜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물량을 동원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최호명은 천우를 통해 핵심소재를 조달하고, 그것으로 부품을 만들어 우회생산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부품제조업체들의 불안은 상당히 컸다.

"잠깐, 그랬다가 주민당에게 찍혀서 평생 일감이 끊어지면 어쩌죠?"

"괜찮아요. 앞으로 일감은 우리가 줄게요. 핵심기술이 없는 것뿐이지, 생산 공정 자체에는 대단한 노하우가 쌓여 있잖아요?"

"물론이죠! 레이저 절삭기술만 해도 우리를 따라올 곳은 아마 없을 걸요?"

비록 하청업체이긴 해도 이미 저들은 중소기업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제품을 만들어내는 핵심기술 중 몇 개만 없을 뿐이지, 사실상 이들도 해당 지식만 있으면 단독활동도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와 함께 유럽으로 나아가봅시다. 잘 챙겨줄게요."

"유럽이라!"

이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도박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중요한 건 누구의 줄을 잡느냐, 그것이 향후 인생의 거취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최호명의 줄을 잡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한 번 해봅시다!"

"잘 생각했습니다. 우선 당장 기술 제휴가 중단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들도 집행절차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죠."

"그럼 그에 맞춰서 유연하게 대처하면 되겠군요! 그런 후에 당신들과 손을 잡으면 될 것이고."

"역시, 사리분별이 빠르시네요."

일단 최호명은 대놓고 맞대응을 하는 것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현보가 부품을 자체 조달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끌기로 했다.

그런 후에 조의창과 아베 노보루 두 명을 한꺼번에 묻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들이 사람을 아주 참새 거시기로 아는군.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 29.(2) > 끝

ⓒ 풍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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