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91년 초, 나노 소프트와 애플스의 저작권 분쟁이 불거졌다.
최근 나노 소프트가 내놓은 운영체제 윈도우 3.0이 자사의 OS와 유사, 이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꼬집은 것은 OS의 화면분할 시스템.
허나 이 분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플스는 90년 말,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고가격PC노선을 철회하고 저가기종을 시장에 투입시키는 경영노선을 구축했다.
그 결과, 수익이 급격하게 줄어 경영악화로 이어졌고 결국 대대적인 인원감축이라는 고육지책까지 발의하게 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나노 소프트가 OS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애플스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허권분쟁까지 가속화 되면서 애플스는 점점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현재의 소프트웨어 저작권법이 애플스에게 여러모로 불리했기 때문이다.
애플스가 처음 나노 소프트를 끌어들여 OS를 제작했던 당시, 나노 소프트는 애플스 OS를 제작 및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대신 자신들이 개발한 화면분할 시스템의 디자인 일부를 차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계약서상 단 몇 줄에 불과했으나 그로 인해 애플스의 주장은 점점 기각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현행법상 '표현은 보호되나 아이디어는 보호되지 않는다'라는 법조항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애플스 OS의 화면분할 방식은 단순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만에 하나 표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제 1차 공판에서 애플스와 나노 소프트가 맺었던 디자인 차용이 합법인데다 증거물에 대한 유사성 및 독창성을 찾아볼 수 없다며 소송이 기각되었다.
아직 분쟁은 끝나지 않았으나 여러모로 애플스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허나 애플스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목을 잡히고 만다.
화면분할 OS는 이미 문서처리 및 복합기 생산회사인 제녹스의 계열사 제록스PARC에서 만든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의 시스템에서 먼저 상용화 시켰다.
제녹스는 오히려 애플스에게 OS의 화면분할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하였다면서 소송을 재기하겠다고 밝혔다.
그 결과, 애플스는 소송을 조용히 취하하였고 나노 소프트는 언제나 그렇듯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다.
92년, 윈도우 3.0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윈도우 3.1이 출시되었다.
여전히 NS-DOS에 탑재한 운영시스템이긴 하나 윈도우 3.1은 3.0에 비해 거의 폭발적인 기능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시장에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재 NS-DOS의 시장점유율은 85% 이상,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나노 소프트의 독과점 문제를 거론하기까지 했다.
92년 현재, 윈도우 시리즈의 판매고는 1000만 개.
바야흐로 나노 소프트의 전성기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해당 주가는 미친 듯이 독주하고 있었다.
덕분에 천우의 재산은 가만히 있어도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었다.
천우가 가진 나노 소프트의 지분은 1.55% 수준, 주식보유액만 쳐도 수 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가가 된 셈이었다.
오늘은 천우의 집으로 황금색 마우스가 도착했다.
[친애하는 주주님께 드립니다. -윌리엄 게리슨 배상]
이젠 나노 소프트의 로고에 천우의 이름이 들어간 컬렉션이 완성될 판이었다.
윌리엄 게리슨은 회사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해서 매년 자사의 창립기념일이 되면 PC와 주변기기 등을 특수 제작하여 보내주곤 했다.
"이제 키보드만 있으면 각 제대로 나오겠는데?"
천우는 자신의 방에 있는 컴퓨터에 마우스를 연결시켜보았다.
작년에는 천우의 이름이 박힌 박스에 담겨져 OS가 전달되었고 소프트웨어 안의 로고에는 천우의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안과 밖, 모두 천우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셈이었다.
원래 수집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그 재미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는 천우였다.
지금 천우의 투자방향은 이 수집과 비슷했다.
컴퓨터 부문에서 앞으로 유망한 종목들에 투자하고 그와 관련된 종목湧? ?? 세분화 하여 투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를 테면 CPU와 같은 비메모리와 D램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에 투자하면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 부분에 연계해서 투자하는 그림이었다.
어떠한 분야가 뜨면 그 세부항목도 같이 뜬다.
이를 테면 건설경기가 회복되면 철근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었다.
천우는 PC시장이 넓어짐에 따라서 앞으로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반도체 생산업체와 그 원재료 생산회사들에 투자해두었다.
또한, 소프트웨어 시장이 각광받기 전부터 이미 OS부문에 투자를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각종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및 게임개발업체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와 게임개발업체에 투자된 금액은 대략 800만 달러 남짓.
그는 대형업체를 제외한 업체들에게 주로 투자하였고 꽤 많은 업체들이 천우의 돈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천우가 가진 컴퓨터를 제작하는 것만 해도 하드, 소프트, 심지어 게임까지, 그의 지분이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소리였다.
천우는 HC에서 투자 중인 회사의 팩시밀리에서 HC에서 투자 중인 회사의 용지로 팩스를 받았다.
지이이잉!
이젠 손이 닿는 곳마다 천우의 자금이 들어가 있었다.
팩스는 총 51통으로서 대부분 투자현황 보고나 중요한 투자고문 안건들이었다.
천우는 그 중에 한 장을 뜯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틴 크레이그 사에 대한 투자수익 현황 보고서'
얼마 전, 미국계 방위산업체인 마틴 크레이그 사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있었다.
89년 12월 2일.
지중해 몰타 해역에서의 미소 선상협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제 1세계와 제 2세계의 냉전은 완전히 종식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엄청난 재정적자의 한 축이었던 국방비 감액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여 록키드나 마틴 크레이그, 보이그와 같은 방위항공, 미사일 제조업체 등은 직격타를 맞게 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HC투자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고 그것은 슈퍼보이의 전성기에 상처를 내는 일이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마틴 크레이그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실패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결국 보고서에는 투자 철회를 주장하는 글귀가 짤막하게 담기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참 깡다구가 없네."
그는 보고서에 대한 대주주 지시사항을 서한의 형식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앞으로 HC가 방위산업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잡아 나갈 것인지 대변하는 글이기도 했다.
천우의 글은 HC투자 본사로 배달되었다.
편지를 받은 김영실은 각 부서의 팀장들을 불러 모았다.
HC의 인원은 첫 발족 때 보유했던 50명에서 거의 8배 정도 불어 400명 남짓의 인원이 되었다.
그들은 천우의 인물도감에 의해 발탁된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천우의 차트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금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들은 천우를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슈퍼보이의 아래에서 일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위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들이 말하는 문제점은 '시대착오'였다.
김영실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천우를 100% 신뢰하며 그의 생각에 단 1%의 의심도 없었다.
"대주주께서 보내신 서한입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천우의 서한을 복사해서 한 부씩 돌린 후, 김영실은 그들이 반응하기만을 기다렸다.
서한의 내용은 최근 감산세인 미국 정부의 국방비가 당장 마틴 크레이그 사를 뒤흔들 것이지만, 그것이 결국 끝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합병?"
"그래요. 대주주께서는 국방산업의 끝은 몰락이 아니라 통합이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95년도, 미국 국방회사들의 합병바람을 이미 알고 있었던 천우는 그 전에 대대적이고도 공격적인 투자로 지분을 넓힐 생각이었던 것이다.
천우는 마틴 크레이그 사를 제외하고도 최근 크게 하락세인 록키드, 보이그 디펜스, 노스만 그루트 등, 16개 회사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갑론을박이 있어도 결국 국방사업은 '잘 나가'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한에는 국방산업과 관련된 희토류 금속 관련주에 투자해야 한다고도 적어 두었다.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으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국방산업 역시 다른 투자부문과 똑같이 그저 투자의 한 부분이라는 걸 강조하셨죠."
"항상 크게 봐야한다···!"
"슈퍼보이의 지론이라고들 하죠. 모든 산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가 방위산업에 투자하는 건 단순히 무기가 잘 팔리기를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 역시 재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그제야 HC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슈퍼보이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그 작은 점만 보다가 결국 대마를 놓칠 뻔했다는 것을 말이다.
***
미국 슈팅스타 그룹의 일본 금융, 부동산 러시에 대한 기사가 연일 신문 일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동안 미국계 부실채권을 꾸준히 끌어 모아 일약 재벌가 대열에 합류한 슈팅스타가 이번에는 일본계 부실채권을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자본금은 일본계 큰손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그 분석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민첩함과 기민함, 이들이 가진 무기는 자금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일본 재무성은 이미 미국계 부동산업자가 신주쿠와 시부야 등지에 고층건물과 각종 상가들을 거의 때려짓고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중규모 이하의 상가들을 지었다가 미국계 자본에게 판매하고 있을 때만 해도 이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일본 부동산 시장의 폭주를 이용해 엔화를 쫙 빨아들인 후에 재투자를 할 때엔 사정이 달라져 있었다.
게다가 일본 시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블랙하워드 뱅크의 차관을 받은 미국기업들이 15% 이상이었기에 이는 슈팅스타가 일본의 부동산 시장을 잠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는 일본 재무성에서 슈팅스타 그룹과의 접촉을 꾸준히 시도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버블경제 붕괴 이전에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은 무려 1조 6천만 엔, 그걸 다시 일본에 재투자하여 부실채권을 빨아들이니 거의 속수무책으로 흡수를 당하고 있었다.
허나 가장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본계 은행순위 10위의 동경은행이 슈팅스타에게 합병을 당한 것이었다.
동경은행은 그동안 마르바시 그룹에서 꾸준한 인수접촉을 시도해왔었는데, 어느 한 순간 입장을 돌연 바꾸어 슈팅스타에게 회사를 넘긴 것이었다.
합병소식이 들리자마자 주식시장에서는 동경은행에 대한 주식거래를 중단시키는 한 편, 재무성에게 입장표명을 요청했다.
재무성도 깜짝 놀란 것은 마찬가지, 일단 입장표명은 보류하였다.
그들은 입장을 밝히기 전에 우선 슈팅스타와 접촉하여 인수취하를 요청했다.
이에 슈팅스타 그룹 전략기획총괄본부 차장 유미영이 일본으로 건너왔다.
재무성 차관 아사다 준이치로와 아베 노보루 주민당 의원이 유미영을 만나기 위해 나왔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절'이었다.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거절이요?"
아사다 준이치로는 유미영이 같은 동양인이라서 말이 잘 통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유미영은 단순한 동양인, 한국인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의 수뇌부일 뿐이었던 것이다.
유미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아베 노보루 의원이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거 놓으시죠?"
"얘기 좀 하자고요."
"숙녀의 팔을 잡아채면 결례 아닌가요?"
"당신은 여자가 아니라 비즈니스맨 아닙니까? 앉으시죠."
그녀는 아베 노보루의 말에 따라 일단 자리에 앉았다.
허나 그녀가 자리에 앉은 건 일본 국회의원이 대수라서가 아니었다.
협상의 우위를 독점한 지금, 얻을 것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럼 담소 조금만 나눠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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