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51화 (51/202)

25.(2)

페르시아 만의 긴장상태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병력 30만을 일으켜 쿠웨이트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였다.

1991년 1월 15일,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에 대한 물리적 제재를 승인하였고 68만의 다국적 연합군이 창설되었다.

같은 달 17일, 연합군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하여 이라크의 주요시설이 파괴되었고 공중폭격 및 대대적 공습이 마무리 되었을 무렵, 2월 24일을 기점으로 지상전이 시작되었다.

결국 지상전 투입 100시간 만에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동안 유가는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89년도까지만 해도 상당한 저유가 시장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90년도 초부터 시작된 이라크, 쿠웨이트의 갈등국면으로 인하여 유가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천우는 몇 년 전부터 이미 석유에 대한 투자지분을 늘리고 있었다.

이제는 자산규모의 대략 15% 남짓이 석유에 투자되어 있었고 그 규모는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러한 투자는 89년도에 정점을 찍어버렸다.

특히나 신 유전에 대한 투자가 속속들이 진행되었고 심지어는 유전 4곳에 대한 지분이 각각 0.95%에 달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덕분에 석유회사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91년도 중반, 과잉투자와 유가 하락세가 기업에 타격을 주었던 순간에도 이들 회사는 건재하였다.

천우가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오히려 지분을 매수하였기 때문이었다.

91년 7월.

미국 최대의 석유회사 갤럭시 오일컴퍼니에서 천우를 찾아왔다.

그들은 천우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유가대책고문을 맡아달라고 했다고요? 의외인데요."

"네, 사장님. 갤럭시 오일컴퍼니는 80년대 초, 유럽 및 아시아시장의 인프라를 매각하고 중앙집권화를 꾀하지 않았습니까? 이 과정에서 중동 신 유전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유전 지분 매입경쟁에서 사실상 장외로 밀려났다고 평가됩니다. 아마 그래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 사료됩니다."

인간의 기술은 날로 발전한다.

시추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실상 사용이 가능한 석유의 매장량이 증가한데다, 유전탐사의 기술 역시 진보하면서 페르시아 만 이외의 중동지역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가들이 석유를 시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 속에서 갤럭시 오일컴퍼니는 그 거대한 덩치를 어찌할 수가 없어 휘청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 유전경쟁에서 밀렸으니 나더러 자기네 회사를 수렁에서 건져내 달라?"

"그런 셈이죠."

"내가 무슨 초능력자인 줄 아는 모양이네요."

"거절할까요?"

"흐음, 미래가치는 충분한 기업인데 말이죠."

"단기적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라면 저는 찬성입니다."

"그래요? 저는 반대인데."

장기, 아주 초장기적으로 본다면 갤럭시 오일컴퍼니의 미래는 밝다.

갤럭시 오일컴퍼니는 82년도, 셰일 유(油) 시굴에 35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투자하였다.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였을 때엔 2조 4천 5백억, 민간회사로서는 거의 천문학적인 돈을 밀어 넣은 셈이었다.

이는 70년대 오일쇼크 당시, 갤럭시 오일컴퍼니가 도산한 미국계 석유회사를 병합하여 세력을 확장하면서 생긴 리스크가 80년대로 들어서면서 묵직한 타격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갤럭시 오일컴퍼니는 사업의 다각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갤럭시 오일컴퍼니의 수뇌부들이 주목한 사업 분야가 있었다.

그건 바로 셰일 오일이었다.

원유가 생성된 뒤 지표면 부근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셰일 층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채취하면 충분한 수익성이 발생한다는 이론이었다.

다만 셰일 층까지 시추 관을 삽입해서 석유를 꺼내야하기 때문에 기술적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허나 갤럭시 오일컴퍼니는 이 사업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만약 이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가 생긴다면 중앙집권화를 통한 이득이 충분히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로키산맥에 묻혀 있는 셰일 석유의 매장량은 2천 8백 20억 톤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는 현재 석유부존량의 약 3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이는 로키산맥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 미국 전역에 있는 셰일원유를 시굴하면 전 세계가 앞으로 수 십 년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 사업에 투자자들은 몰렸고 82년,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천우가 생각하는 갤럭시 오일컴퍼니의 경쟁력이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어 갔다.

"이들과의 파트너십은 단기로 마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사업 자체가 계륵이기 때문이지요. 셰일오일은 시굴에 들어가는 자금이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수압파쇄방식을 사용하다보니 환경오염도 예상이 되죠. 아마 상용화가 되어도 생산단가가 안 맞아서 사업은 주저앉고 말 겁니다."

지금 이 시대의 셰일오일은 기대감만 높고 실상 이득은 별로 없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한화로 2조 넘게 투자했던 갤럭시 오일컴퍼니가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천우의 생각은 달랐다.

"상용화가 된다면 판도는 뒤집힐 겁니다. 물론, 단기간에 수익화가 되긴 힘들겠죠. 하지만 그동안 갤럭시 오일컴퍼니가 사업의 다각화를 통하여 회사 운영에 집중하면서 버틴다면 미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으음, 정말 그럴까요?"

"인간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합니다. 지금은 전화가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죠? 언젠가는 무선으로 통화하면서 전화로 게임까지 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서로 얼굴 보면서 통화도 하고요."

그녀는 실소를 머금었다.

"설마요.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오는 소리 아닙니까."

"진짜인데."

미래를 예견한다는 건 미친놈소리를 듣기 딱 좋은 짓이긴 하다.

지금 이 시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에 사장님께서는 이들 회사와 손잡으실 생각이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다리를 놓아드리겠습니다."

김영실은 천우의 미래지론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의 능력이라면 갤럭시 오일컴퍼니를 수렁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괴짜이긴 해도 대단한 능력자, 그것이 바로 천우였기 때문이다.

***

91년 10월.

대한민국 정부의 대대적인 비자금 규제가 시작되었다.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금융실명제에 대한 필요성이 야권에서부터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

허나 계속되는 정치대립 속에 난항을 겪었고, 연달아 금융 실명제를 전면 유보하여 사실상 무기한 연기해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허나 87년도, 정치비자금 사건과 함께 대기업 총수들의 불법대출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도입을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91년, 그 목소리는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조의창은 자신을 찾아온 아들 조일규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뭘 해달라고?"

"비자금 재조사를 해주세요. 이번에야 말로 저놈들을 쓸어버리고 제가 대표이사 겸 회장직을 맡을 수 있게요."

"이미 회사에서 잘려 몸 따로 머리 따로 분해가 된 놈이 무슨 총수가 된다는 거냐?"

이미 지난 번 긴급이사회에서 사장직 해임 및 이사회 방출 등이 가결되어 주주총회까지 통과하였다.

이사회는 미국 블랙하워드 뱅크의 차관요건에 대대적 구조조정이 담겨 있었다면서, 사장단 중에서 가장 실적이 적은 조일규를 회사 밖으로 밀어버린 것이었다.

조의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집에서 자중하고 있어라. 공기업 사장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

"아버지, 정말 이러실 겁니까? 한 번만 밀어주세요!"

"밀어주긴 뭘 밀어달라는 소린데? 이젠 아예 줄이 끊어져 다시는 붙지도 못하는 놈이 말이야."

"제가 지금 이사진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포섭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3명이나 넘어왔습니다. 회장이 감옥에 갔을 때 어떻게 해서든 반전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친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이 안 되도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요. 솔직히 아버지도 묵직한 저금통 하나 버리고 나니 주머니 사정이 썩 좋지 않잖아요?"

조의창의 지갑이 얇아 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 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요즘엔 그 정도가 심각했다.

최근 원화절상으로 인해 기업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데다가 장기불황까지 겹치면서 부리로 머리를 아무리 쪼아도 돈 나올 구멍이 전혀 없어졌던 것이다.

사실, 조의창도 예전 최충의 시절이 그리운 건 마찬가지였다.

"너, 내가 만약 현보를 다시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대대적인 비자금 조사에 착수하면서 대검의 표적을 현보로 조준정렬하면 되는 거잖아요."

"말은 참 쉽게 하는구나. 잘못하면 금융 실명제를 억지로 도입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 선거는 한강물을 퍼서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어차피 지금 현보를 다시 끌어들이지 못하면 다음 선거는 한강물이 아니라 대동강 물을 퍼서 치러야 할지도 모르죠."

"끄응."

92년 3월에 총선, 12월에 대선까지 치르자면 어지간한 자금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87년도에 극심한 타격을 받았던 정민당은 평화당, 한국당과의 합당을 통하여 거대여당을 창설하였다.

일단 3당 통합으로 여당 권력을 높이긴 했으나 국세청의 비자금 폭로로 인해 민심이 꽤 흉흉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대검의 자체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대외적 비판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다음 선거에서의 낙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 가운데 비자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현보가 떨어져 나가니 조의창으로서도 조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끝내 결단을 내렸다.

"좋아, 한 번 해보지 뭐."

"정말이십니까?!"

"다만 이번에야말로 실패해선 안 된다. 알겠냐?"

"물론이죠!"

결심이 섰다.

실리적 판단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조의창이 한 번 결심했다는 건 단순한 결정보다는 큰 의미였다.

조의창은 최측근들에게 대검으로 국세청을 압박하라고 지시했다.

측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효과가 있을까요?"

"효과가 없다면 있도록 만들어야지. 그게 우리가 할 일 아니겠어요?"

그는 스케줄을 변경하여 경제기획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 유태철은 꾸준한 재벌가 족치기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총수가 감옥까지 들어간 마당에 칼을 댄다는 건 그저 수술을 하겠다는 말 밖에는 안 되는 일 아닙니까."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게다가 미국 쪽 눈치도 좀 봐야지요. 블랙하워드 뱅크가 차관한 자금이 얼마인데···."

"그렇다고 다음 선거 때 맨손으로 강물이나 퍼 나르고 있을까요?"

"그야···."

"미래를 생각하시죠, 부총리님. 설마하니 부총리에서 끝낼 생각은 아니었겠지요?"

"···말조심 하시지요."

"야망이 없다면야, 저도 더 이상 밀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당의 생각도 마찬가지라는 거,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유태철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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