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50화 (50/202)

25.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자회사이자 미국계 투자은행인 카렐 컬럼비아나의 투자펀드관련 부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펀드매니저들은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흉작에도 불구하고 자꾸 내려가는 곡물과 관련된 물건들이 일제 매각국면에 접어들었던 것.

"이상한 일입니다. 이 시기쯤 되면 오히려 물량이 부족해야 정상인데 이건 뭐···."

"고객들의 문의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이 타이밍에 우리도 함께 던져야 하는 것인가, 버텨야 할 것인가."

흉년이 들면 곡물가격은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허나 최근 5년 동안의 추이를 지켜보자면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가격이 내려가는 곳은 내려가고 적정선을 유지하는 곳은 제법 유지가 되기도 했다.

아무리 철저한 분석을 통한 투자라곤 해도 자꾸 변수가 생겨서 펀드매니저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사람을 향한다.

투자총괄사장 헨리 카렐이었다.

카렐 가문의 차남 브레드 카렐의 아들 헨리 카렐은 체스터 카렐 센트럴 내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정보력과 투자 감각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회사의 정책이 결정될 것이었다.

헨리 카렐은 시원스럽고 간단명료한 대책을 내어놓기로 유명했다.

허나 그만큼 생각이 단순하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CIA쪽에서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급정보를 흘린 것일까?'

마치 무언가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CIA는 각 정보채널을 이용해서 아시아 시장에서의 곡물 수입이 거의 확정되었다는 정보를 흘렸다.

그것도 비밀엄수라는 조건과 함께 말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가진 걸 그냥 던지면 될 일이었다.

그럼 아마 최소한 중간은 갈 것이다.

'아니야, 뭔가 있어. 이 새끼들,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지?'

헨리 카렐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헌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사장님, 새로운 소식입니다! 곡물관련 매물이 다시 빠르게 매입되고 있답니다!"

"매입 세력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곳저곳 중구난방이라···."

"으음."

"어떻게 할까요? 우리도 매수에 나설까요?"

헨리 카렐은 결단을 내렸다.

"고객물량은 묶고 우리 물량은 던지세요."

"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손해를 보게 될 텐데요."

"제가 책임집니다. 던지세요."

때론 정보가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처럼 명확한 호재, 악재를 앞둔 때엔 더더욱 정보의 의존하면 손해를 볼 수가 있었다.

'자금적인 이득은 취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건 함정이다!'

CIA의 정보력은 압도적이다.

제 아무리 주식장사를 한다고 이리저리 빨대를 꽂아놓아도 CIA를 이길 수는 없다.

오히려 CIA가 주식시장이라는 우물가에 막대기를 넣고 휘휘 저으면 그 안의 개구리들은 있는 그대로 휘둘리는 것이 정상이었다.

만약 휘둘리지 않고 반항하며 튀어 오르면 그 즉시 작살에 찔려 변사체가 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였던 것이다.

그는 혹시 몰라서 다른 투자은행들의 행보를 살폈다.

"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쪽은?"

"그 동네도 일부매각입니다."

"으음, 좋아. 그럼 이대로 산하 매니저들에게 명령을 전달하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손해가 나도···."

"당신들까지 손해 볼 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했잖습니까."

"그렇다면야."

투자업계는 돈이 많이 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상류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만, 한 방 제대로 사고를 치면 그 즉시 쪽박을 차는 것도 이 바닥이었다.

허나 이 조직은 담이 작아도 너무 작은 것이 탈이었다.

'이런 새가슴들을 데리고 일을 해야 한다니, 나도 인복이 정말 더럽게 없구나.'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 했다.

헌데 그의 귓가를 자극하는 소식이 들렸다.

"어라? 슈퍼보이가 떴다는데?!"

"슈퍼보이가 떴다고?"

금융계의 신성, 코리안 뉴 보이에서 이제는 슈퍼보이가 되어버린 그는 가는 행보마다 귀추가 주목되는 사람이었다.

헨리 카렐 역시 주목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슈퍼보이의 행보에 대해 슬쩍 물어보았다.

"그의 포지션은?"

"버티기랍니다."

"버티기?"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투자관련 전 종목을 매매하면서 회사를 운영하다가 일순간 모든 자금유동을 동결시켰답니다. 때문에 지금 월스트리트의 펀드들도 약간 움찔거리는 반응이랍니다."

"현재 증시상황을 알 수 있어요?"

"네, 잠시만···."

사내 차트를 가지고 온 매니저들은 그의 앞에 일렬로 쫙 깔아놓았다.

차트를 보는 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뭐야, 차트가 왜 이래?'

단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까지 클 수 있단 말인가.

슈퍼보이의 주 종목이라 불리는 환율시장은 당연히 동결이었고 원유, 천연자원, 심지어는 금값까지 동결이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는 있지만, 그가 사실상의 동결 포지션을 취하고 나니 관련업계가 한 방에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건 주가에도 일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슈퍼보이의 세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인가!'

헨리 카렐은 최근 HC투자가 금융에서 영역을 넓혀 에너지, 금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기업들의 투자 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소리를 듣긴 했었다.

허나 그것이 이런 결과까지 가지고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하루, 이틀, 일주일에 걸쳐 장기적인 영향력까지 발휘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그가 일종의 투자에 대한 지표가 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슈퍼보이는 아직 섭외 전입니까?"

"그게, 좀처럼 우리의 러브콜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허나 퀸튼 토플러와는 작년부터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다 다른 금융권과의 스킨십도 일부 허용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우리만 따돌리겠다는 건가."

"성향이 다르다고 판단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흐음."

이쯤 되니 그의 정체보다는 그 주변세력이 더 궁금해졌다.

그는 부하들에게 슈퍼보이의 협력업체들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상업, 투자를 불문하고 그들과 손잡은 은행권들을 전부 조사하세요."

"그들의 기업정보라면 이미···."

"아니요. 최근 그 기업에 대한 구조변경이라든지 인사이동, 사내 정치상황까지도 전부 파악해두세요."

"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우리가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는 걸 저들이 알면 마찰이 빗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지. 다들 알아서 잘 움직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가장 어려운 주문, 하지만 그들은 헨리 카렐의 명령은 절대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1990년 1월 13일.

동경증시가 일경평균주가 기준 653.36엔이나 하락하였고 이는 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최고치였다.

일본은 상대적 저금리 시장이었으나 87년 뉴욕증시 대폭락과 더불어 그에 대한 방어책으로 대대적인 저금리 정책을 펼쳐나갔다.

그 결과, 투기가 조장되었고 가뜩이나 쌓여있던 상대적 저금리와 엔고의 거품이 정점을 찍게 되었다.

그러다가 버블이 붕괴되면서 증시가 폭탄을 맞은 셈이었다.

반면, 대만의 가권지수가 453.59포인트 폭등세를 보였다.

그동안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로의 대대적 투자를 감행했던 천우에겐 일대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89년도 12월에 부동산을 일제 매각하였고, 그때의 부동산 가격은 그야말로 최 정점에 올라 있었다.

투자기간이 좀 길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점진적으로 투자했던 금액의 대략 10~15배의 이득을 거둔 셈이었다.

물론, 아버지와의 내부거래와 편법적 원재료 조달 등으로 수익률을 극대화시키긴 했지만 이정도면 상상불가의 대박이라 할 만 했다.

천우는 작년 9월과 10월에 자금을 동결시켜두었다가 11월부터 12월까지,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일제히 매각해버렸다.

그러면서 엔화에 대한 선물환을 구매했었고, 꽤나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천우가 이번에 선택했던 종목은 홍콩 달러였다.

홍콩은 미국과 일본 등의 폭락과는 전혀 관계없는 성장세를 보였고, 엔화폭락에 대한 반사이익까지도 챙길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 천우는 엄청난 양의 엔화를 손에 쥐게 되었고 이제 이것으로 일본 내부의 부실채권을 빠르게 매수하며 세력을 넓힐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2월 초순, 천우는 CIA에게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일당의 꼬리를 잡았다고요?"

-모두 다 자네 덕분이지. 중간에 자네가 자금을 동결시켜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 물론, 이 작전개요 마저도 자네의 것이기도 했고.

천우는 자신을 따르는 세력이 많아졌다는 것을 이용하여 대외적인 자금동결을 시사해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일순간 자금의 흐름이 멈추었고 그 순간에도 쉬지 않고 매입하던 세력들을 쫓아 엑스의 끄나풀을 낚아 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놈들이 순순히 입을 열까요?"

-심문을 해보니까 수뇌부나 중요간부 같지는 않았고, 그냥 돈이나 몇 푼 받는 하청용역 인 것 같아.

"아쉽네요. 큰 건더기 좀 건져보나 했는데."

-하하, 자네는 욕심도 많군. 우리가 5년을 꼬박 따라다녔어도 머리카락 하나 못 잡았던 놈들이야. 이정도면 정말이지 대단한 성과라고.

"그런가요?"

-뭐, 아무튼 간에 우리가 자네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은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보시게.

"이미 곡물관련 투자가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었잖아요."

실제로 곡물가격은 크게 올랐다.

미국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위기는 면했지만, 천우는 그 반사이익으로 엄청난 돈을 거머쥐게 되었다.

허나 CIA는 그걸 모두 천우의 공으로 돌렸다.

-사람이 욕심이 없군. 그거야 자네의 기지로 그리 된 것이고. 정말 원하는 게 없어?

"다른 건 없고 다시는 이런 모험이나 좀 안 했으면 좋겠네요."

-하하, 미안하게 되었군. 하지만 그건 좀 힘들겠는데.

"···어째서요?"

-국장님께서 자네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아무래도 조만간 자리 한 번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

"허어, CIA국장님이 저를요?"

-지금처럼 위험한 일을 맡기려는 건 아니고, 그냥 지능경제사범 전담 고문으로 자네를 고용하고 싶다는 것 같아.

"···그게 위험하지 않다고요?"

-그냥 조언만 해주면 되는 거야. 지금처럼 말이지.

지금 당장 천우가 원하는 건 정말로 없었다.

허나 이대로는 억울해서 안 될 것 같았다.

"좋아요. 저도 원하는 걸 좀 얻어야겠어요."

-그래, give&take. 얼마나 좋아?

"차용증 써주세요."

-차용증?

"사건 해결할 때마다 소원권 하나씩 빚지는 것으로 하자고요."

-빚을 진다? 우리 CIA가 빚을 질 일이 그리 많지가 않은데.

"안 된다면 뭐."

-그래! 까짓 거, 하지 뭐! 그런데 그 소원권이라는 게 말이야. 범위가 어디까지인데?

"없죠. 소원인데."

천우가 CIA에게 원하는 건 없었다.

다만, 그들이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뭐. 쿠폰으로 만들어서 줄까?

"···무슨 식당인가요?"

-하하, 스탬프를 찍으면 계산하기도 편하고. 좋잖아?

"알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자잘한 정보 좀 달라고 해서 소원을 까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별 걱정을 다 하는군. CIA가 좀생이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됐어요."

일단 CIA라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다.

그들이 과연 천우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을 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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