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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카렐 학파 정기모임에서 리스크 스와프에 대한 집중 토론이 있었다.
우선 그들은 천우가 코리안 뉴 보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다.
허나 굳이 천우가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선 다소 찬반여론이 있었다.
체스터 카렐 센트럴이 오금자를 밀어낸 것에 대한 복수를 해서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쪽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립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천우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결국 천우가 자신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건 자율에 맡기기로 한 채 학회가 진행되었다.
학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각종 제한장치를 부여함으로서 충분히 안정적인 시장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천우는 여기서 나온 결론을 기업 시뮬레이션에 넣고 총 120회의 검증을 거쳤다.
결론은 '양호'였다.
100% 완벽하다곤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초기의 모델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이라는 것이 마샤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천우는 이를 바탕으로 정식명칭 '신용부도스와프(CDS)'를 출범시키기로 최종 확정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수익률이 약간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CDS자체에 각종 규제를 걸어버리면 프리미엄에서부터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천우는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하였다.
이 의견에 가장 크게 동조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투자계의 신성이라 불리는 록 베넷이었다.
2003년, 록 베넷은 CDS가 재계를 죽이는 독약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예상은 적중하였고 2008년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도래했었다.
록 베넷은 스승 체스터 카렐의 가르침을 토대로 아주 성실하게 자신을 발전시켰고, 그로 인해 '아메리카의 현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뉴욕의 완연한 겨울.
새해가 밝은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록 베넷은 플라자 호텔에서 천우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천우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살다보니 이런 일이 다 생기는구나. 내가 록 펠러와 직접 마주하게 되다니!'
2010년대, 록 베넷과 점심 한 끼를 먹는데 한화로 50억을 낸 사람이 있었다.
그와의 점심에 과연 얼마를 낼 것인가를 놓고 경매를 벌였는데, 한화로 약 50억에 낙찰이 된 것이었다.
이 한 끼의 식사에 과연 50억의 가치가 있을까.
당사자는 그 이상, 수 천 억의 가치가 있었다고 답한 적이 있었다.
천우는 자신이 그 수 천 억의 식사를 그저 인맥으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휘이이잉!
30분 일찍 약속장소에 나와 있던 천우는 하얀 눈보라와 함께 돌아가는 회전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머리를 아주 멋들어지게 넘긴 중년의 신사가 로비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바로 투자계의 신성, 록 베넷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천우는 그에게 다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아, 자네가 바로 스승님의 증손자?"
"네, 맞아요!"
"이렇게 뛰어난 후배를 만나게 되다니, 영광이로군."
"별 말씀을요!"
"정말이야. 스승님께서 보셨다면 아주 좋아하셨을 테지."
세상에서 스승을 가장 존경한다는 사람,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절대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록 베넷이었다.
그는 천우와 식탁에 앉자마자 자신이 가장 궁금했던 점부터 물어보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사부님의 이론을 토대로 환투기에 뛰어들어 성공했다고 하던데, 그 비결이 뭔지 물어도 되겠나?"
"특별한 것 없이 차트와 호재, 그리고 국가 간의 이해관계를 분석한 결과라고 말씀드릴게요."
"호오, 그렇다면 자네는 정말 시장의 흐름을 읽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군."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영광이죠."
록 베넷은 자신이 원했던 첫 번째 답을 얻은 후, 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쪽지 한 장을 올려두었다.
쪽지에는 '코리안 뉴 보이'에 대한 정보를 산다는 짤막한 토막글이 적혀 있었다.
"이걸 누가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투기꾼?"
"상무부야."
"상무부!"
"자네의 행보에 상무부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지."
"저는 그저 투자조언을 해주었을 뿐인데요."
"그래, 그랬을 뿐이지. 하지만 자네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수 억 달러의 이득을 취한다면 중앙권력기구의 관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야."
"아아!"
"지금까지는 아주 잘 해내고 있어. 자네 덕분에 수면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은행권이 점점 급부상하고 있거든. 덕분에 상무부에서는 자네와 다리를 놓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천우신조네요. 저는 그저 이득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래, 운이 좋았지. 하지만 그 이상의 운은 기대하기 힘들어. 자네가 워낙 거물이 되어놨어야 말이지."
"거물···. 선배님께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쑥스럽네요. 부끄럽기도 하고."
"하하, 사실인 것을. 아무튼 간에 지금부터는 마이너 시장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해야 할 것 같더군."
"마이너?"
"지방의 소규모 지역은행부터 변방의 투자조합까지, 만약 업무협약 제안이 온다면 거절하지 말고 무조건 잡아서 자네의 세력으로 엮어버리시게."
"그러자면 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텐데요."
"그렇다면 몸이 열 개인 것처럼 움직이면 되겠군."
"허어, 그게 가능할까요."
록 베넷은 테이블 위에 있던 냅킨 위에 자신의 볼펜으로 뭔가를 끼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뭔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형상이 완성되니 그것이 일종의 업무 커리큘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은행의 개수가 많다고 해서 관리가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야. 잘 봐, 투자의 분류와 대상 지역에 대한 정보로 업무를 나눈 후에 자네가 일률적인 지표를 만들어서 내려주는 거야."
"그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그건 일반투자에 대한 것만 그리하고 있잖나."
"그렇다면 투자고문 업무까지 전부 맡겨야 한다는 건가요? 그건 좀···."
"왜? 자네가 직접 고른 전문가들이 미덥지 못한 모양이지?"
"그, 그건 아니지만···."
"자네가 담당자를 믿을 수 없다면 그들은 그저 자네의 하청직원일 뿐이야. 파트너, 그 이상의 관계가 되기란 불가능하다는 소리지. 파트너와 단순하청, 어떤 차이인지 알겠나?"
그제야 천우는 조부의 가르침이 불현 듯 떠올랐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조부님께서도 그리 강조를 하셨건만···."
"원래 인간이라는 건 다 그런 법이라네."
록 베넷은 기업을 인수하여 합병시킨 이후, 해당 회사의 CEO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뽑아 CEO 자리에 앉히는 것에는 상당히 까다롭고 히스테릭하지만 그 이후의 경영에는 절대 참견하지 않았다.
"자네가 무엇을 담당시켰건 간에 그 사람이 해당 분야에 최적화 된 전문가라고 생각했을 것 아니야. 그렇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 이미 자네는 환율이나 주가, 유가 등, 호재와 악재를 정확하게 꿰뚫어 투자에 대한 재료를 제공하고 있잖나. 그것이면 충분해.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겨."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자네 본인의 의견이 필요한 곳에만 직접 움직여. 사람은 열 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감사합니다!"
천우는 이 사람과의 식사가 과연 50억의 가치가 있구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높구나, 라고 생각했다.
록 베넷은 그 이후, 천우가 사소한 담소를 나누었다.
학교의 생활은 어떻고 교우관계는 어떠하며, 나중에 키가 자라게 된다면 반드시 운동을 하라는 등, 정말 사소하기 짝이 없는 담소만 이어졌다.
그런데도 천우는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록 베넷은 언변이 무척이나 좋았기 때문이다.
이제 식사의 마지막, 디저트만이 남아 있었다.
"아쉽군. 자네가 성인이었다면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술을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는데요."
"나도 사람이야. 평소에는 술을 즐기지 않지만 그래도 이따금 마음이 맞는 사람과는 한 잔씩 기울이곤 하지."
세계 최고의 갑부의 유일한 취미는 기타연주였다.
그것도 지독하게 재능이 없지만 자신의 연주에 취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만큼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는 그가 천우에게 술자리를 갖고 싶다고 말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성인이 된다면 같이 한 잔 기울이자고."
"저야 영광이지요!"
디저트까지 다 먹은 후,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록 베넷은 자신의 개인 연락처를 남겼다.
"언제든지 전화하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연락하라고."
"감사합니다!"
"아참, 그리고 말이야. 조만간 재무부에서 자네 회사로 접촉해 올 거야. 당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줘."
"재무부요?"
"자네가 버는 돈이 어디 한 두 푼인가? 그나마 국세청에서 나서지 않는 것은 그만큼 자네가 재계에서는 스타라는 소리겠지. 만약 재무부에서 관심이 없었어봐. 당장 국세청에서 치고 들어오지 않았겠나?"
"하긴, 그건 그렇군요."
"아무튼 오늘 참 즐거웠네. 다음에 또 이런 자리를 마련하자고."
"네, 선배님!"
천우는 이제 록 베넷의 조언대로 회사를 재정비하고 지방은행과의 접촉을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록 베넷과의 만난 다음 날.
그는 곧바로 김영실에게 지방의 중소 지역은행과의 접촉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투자전문가들에게 이 일을 배당하라고도 말했다.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죠.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회간접자본에도 좀 투자를 해보자고요."
"간접자본에 투자를 하면···."
"최소한 미국 정부에 미운털은 박히지 않겠죠."
"부친께서 하시고 계신 것처럼 말입니까?"
최호명이 부실채권 다음으로 신경 쓴 것은 다름 다닌 사회간접자본이었다.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득이 되지 않는 사업들, 그런 사업에 자금을 투자한 것이 지금의 최호명을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김영실은 흡족하게 웃었다.
"아메리카의 현자를 만나신 이후에 뭔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으신 모양이로군요."
"물론이죠. 그것도 아주 큰 것이요."
이상과 현실은 아주 많이 다르고 그것의 괴리감을 좁히는 것은 오로지 경험뿐이다.
천우는 경험을 통하여 성장하고 있었다.
그건 마샤 역시 마찬가지.
-AI마샤의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인물도감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물도감 시뮬레이션? 그게 뭔데?'
-AI에 저장되어 있는 인물도감에는 그의 생애와 인맥관계만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성격과 버릇 등을 저장하여 행동패턴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동분석이라니. 그게 필요한 이유가 있나?'
-주인님께서 부하직원인 A라는 인물에게 투자고문을 맡겼다고 치겠습니다. 그럼 그 인물의 행동패턴과 인맥, 현재의 경재 및 국제정세 등을 고려하여 과연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으로 평가하는 겁니다.
'허어, 사람을 시뮬레이션으로만 평가할 수가 있는 건가?'
-물론 100%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주인님께서 어떤 집단을 이끌어 나가시는데 큰 도움이 되겠죠. 참고하시라고 만들어낸 겁니다.
'오호, 괜찮은 기능이군!'
AI가 발전한 것은 마샤가 천우의 미래까지 고려해서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천우의 성향과 감정까지 고려할 만큼 발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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