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42화 (42/202)

21.

HC컴퍼니가 문을 열자, 투자컨설팅 문의가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다.

천우의 팩스는 거의 하루 종일 종이를 뱉어내고 있었고 마샤의 기업 시뮬레이션 어플리케이션도 하루 종일 돌아갔다.

불과 두 달 여 만에 천우에게 들어온 컨설팅의 총액은 한화로 약 3조원.

천우는 투자 분야에 따라서 수수료 요율을 0.8%~1.5%까지 다양하게 잡았기에 평균으로 따졌을 때엔 거의 1.1~1.15%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볼 수 있었다.

한화로 300억 남짓, 천우가 두 달 만에 벌어들인 금액이었다.

이제 개방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은행권의 반경이 미국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만간 연매출 3000억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천우는 수익의 20%정도를 환투기에 지출하고 나머지 80%의 금액을 전부 주식에 투자하였다.

이중에서 10년 이상 장기투자의 비율이 70%정도 되었고 나머지 30%가 단기투자, 즉 단타에 꾸준히 들어갔다.

이른 아침.

천우에게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김영실이었다.

"지시하신 사안들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고마워요, 김비서."

"별 말씀을."

"그나저나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았나요?"

"일손이야 늘 부족합니다. 다만, 도련님을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덕분에 로스가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원격으로 모든 것을 지시하고 있기에 천우는 김영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절감하지 못했었다.

허나 여전히 거의 모든 업무가 수기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업무량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지금 HC컴퍼니에 사원이 얼마나 있죠?"

"저 포함 5명입니다.

"···고작 5명이 이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요?"

"물론 외주를 주는 일도 꽤 있습니다. 다만, 비용부분에서 부담이 되기 때문에 그 비율을 최대한 줄여보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옛 말에 빨리 가려거든 혼자가고 멀리 가려거든 같이 가라고 했었다.

천우는 이쯤에서 회사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HC컴퍼니의 회사구조를 확립시키도록 할까요?"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우리는 투자회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금융관련 회사이기도 하죠. 투자와 금융으로 갈래를 나누고 그 갈래에서 분야를 세분화해서 인력을 뽑자고요."

"얼마나 뽑을까요?"

"일단 최대한 많이 뽑아보세요. 만약 외주로 나가는 일을 제외한다면 얼마나 필요한 지 계산해보시면 되겠네요."

"외주를 제외한다면···. 대략 50명쯤 필요하지 않을까요?"

"좋아요. 50명, 채용을 시작하자고요."

"그럼 서류전형부터 면접까지 진행한 후, 결과물을 도련님께 제출해서 최종 승인을 받는 것으로 하시지요."

"네, 그렇게 해요."

김영실은 천우에게 그 다음 안건을 내어놓았다.

이번 안건은 곡물수입회사 EA트레이딩에 대한 것이었다.

"고정투자비율 70% 내에서 생각한다면 연내 충분히 인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인수금액은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만, 한화로 300억 남짓입니다."

"300억이라."

"항만시설과 물류시스템까지 포함한 가격입니다. 사실상 장비와 항만시설에 대한 가격이라고 보시면 편하실 겁니다."

원래 EA트레이딩은 영국계 투자은행인 벨 트러스트 산하에 머물러 있다가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 때 계열분리 및 매각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벨 트러스트는 미국의 곡물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으로 EA트레이딩을 설립했으나, 초대형 곡물회사들의 로비공작에 밀려 수출권이 동아시아로 못이 박혀버렸다.

법적으로 EA트레이딩은 동아시아로 전체 지분 15%가량을 수출할 수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당장의 수익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아직 동아시아의 쌀시장이 개방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투자된 금액은 한화로 500억이 넘는데 건질 수 있는 금액은 채 70%도 되지 않았다.

천우는 금액을 조금 더 깎아보기로 했다.

"250억에 못을 박을 수 있을까요?"

"으음, 글쎄요. 저들도 꽤 많이 양보한 금액이라."

"어차피 지금은 미국의 동아시아 무역압박이 진행 중이잖아요. 지금이라면 가격을 꽤 많이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미 무역 분쟁, 미일 환율분쟁이 가속화 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 시장개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해소를 위해서 원화절상의 압박까지 이뤄지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도련님의 말씀대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어필해서 회사를 구매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자고요."

"한데, 도련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뭔데요?"

"동아시아 쌀시장이 개방되지 않는 한, 이 회사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손에 쥐려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그녀는 미래가치가 전혀 없는 곡물수출회사를 도대체 왜 가지고 있으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미래에서 온 사람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만약 쌀시장이 열리면요?"

"그야···."

"대박이겠죠? 언젠가 쌀시장은 열립니다. 그리고 굳이 쌀 시장이 아니더라도 곡물 전체의 수입률이 높아질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와요."

"으음, 그렇다면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시는 셈이네요."

"그렇죠. 지금의 250억이 미래에 얼마가 될 지는 아무도 장담 못할걸요?"

"그렇긴 합니다."

"게다가 수출권한이 동아시아에 국한되어 있는 거지 곡물의 구매는 제한이 없잖아요."

"물론입니다. 아메리카 전역의 곡물은 전부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한 사업권이니까요."

천우가 노리는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때론 곡물투기가 금융투기보다 훨씬 이득이 될 때도 있었다.

수출권은 모르겠지만 아메리카 지역의 구매권한이 부여된 사업권이 있기 때문에 미국 내 투기를 해봐도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EA트레이딩을 인수하면서 미국 국내시장에 대한 판매권도 얻어주세요. 그건 어렵지 않겠죠?"

"물론입니다. 로비자금 만 달러면 딸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진행해주세요. 로비자금은 제가 현금으로 지급할게요."

천우는 자신의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여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두었다.

헌데 돈을 전달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말이죠, 로비는 누가 담당하죠?"

"아직 담당은 없습니다. 그럼 로비스트를 한 명 채용할까요?"

미국은 로비의 천국이다.

심지어 로비가 합법인데다 법안상정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AI마샤의 업데이트가 진행 중입니다···.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인물검색 및 도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감? 그게 뭔데?'

-AI가 성장하는 동안 습득한 미래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물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습니다. 신문, 뉴스, 심지어는 SNS를 통해서 쌓여 있었던 인물의 정보를 데이터화해서 일종의 도감을 만든 것이지요.

'오호!'

-도감을 한 번 사용해보시겠습니까?

'좋지!'

마샤는 천우의 눈동자에 도감을 팝업 시켰다.

도감은 인물의 프로필을 슬라이드 형식으로 넘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프로필에는 그 생애와 업적 등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었다.

또한 다기능 검색창을 통해서 특정 인물을 검색할 수도 있고 일정한 직업군이나 업적 등을 검색할 수 있는 필터도 적용이 가능했다.

이제 천우는 스카우트 대상을 지정해서 인력적 이득을 취할 수도 있었다.

"제가 로비스트를 지정할게요."

"그러시겠습니까?"

"그리고 헤드헌터를 지정할 테니 그를 포섭해주세요. 그를 통해서 50명의 직원을 제가 직접 지정해서 채용할게요."

"직접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어떻게···."

"제게 다 방법이 있어요."

천우에게 인물도감이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 리 없는 김영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수긍했다.

워낙 천재로서 희한한 일을 많이 벌이는 천우였기 때문이다.

"아참, 그리고 이제 비서님이 아니고 부사장님이라고 부를게요."

"부사장이요?"

"김 비서님보다 더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없잖아요."

당연한 인사단행이었다.

비록 사원수도 얼마 안 되는 회사이지만 지금까지 거의 모든 실무를 대신해 온 그녀에게 천우 다음으로 권한이 많은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옳았다.

"앞으로 열심히해보겠습니다."

"고마워요! 월급이랑 보너스도 팍팍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도련님. 아니, 사장님."

천우는 일단 헤드헌터로 OTC 출신의 미카엘 어니스트를 지목했다.

"아무튼 간에 미카엘 어니스트, 이 사람을 먼저 섭외해주세요."

"장외주식시장의 딜러를 헤드헌터로 고용하시게요?"

미카엘 어니스트는 미국 OTC 증권 브로커 출신으로 2010년대에는 나스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이었다.

지금은 그저 15년 째 브로커로서 발을 넓히고 있을 뿐,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허나 미국 굴지의 회사들에 대한 굵직굵직한 헤드헌팅을 꾸준히 성사시키는데, 가장 유명한 일화는 M1전차의 개발업체인 크라잉슬러 디펜스의 CEO를 방위산업체 락키드 마틴사의 CEO로 데려온 일이었다.

그밖에 엄청난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언변이 좋은 마당발 증권브로커일 뿐이었다.

"아무튼 그 사람을 반드시 고용해주세요. 헤드헌터 및 인사담당관 역할을 해달라고 말이죠."

"과연 그가 수락할까요?"

"정 그렇다면 필립 아저씨와 같이 가실래요?"

"아아, 그래요. 필립 씨에게 연락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우는 당장 필립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아주 호탕하게 OK하였다.

-어려울 것 없지. 그 친구, 안 그래도 최근 이직 문제 때문에 골머리 좀 썩고 있었거든. 그나저나 그 친우는 어떻게 알았어?

"헤헤, 다 방법이 있죠!"

-하여간 신기한 녀석이야. 아무튼 다리를 놓아줄 테니까 한 번 잘 해봐.

"감사해요!"

천우는 여기서 인맥의 소중함을 세삼 깨달았다.

-AI마샤의 어플리케이션이 업데이트 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인물도감에 인물관계도와 메모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관계도?'

-한 때 SNS에서 사용되었던 기능입니다. SNS의 자료를 바탕으로 A라는 인물을 B가 알 수도 있는 확률을 계산하는 거죠.

'오호라! 그렇다면 다리를 놓을 때에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겠군!'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특정 인물에 대한 중요도를 체크하실 수 있고 인물에 대한 메모를 기록해서 그때그때 꺼내보실 수도 있습니다.

'꽤 좋은 기능을 얻었군.'

AI란 정말 무궁무진한 힘을 가졌구나, 천우는 그리 생각했다.

***

87년 10월.

이젠 정말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허나 정민당의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다면 정민당이 우승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민당은 대검 중수부에 의해 국세청에서 안기부로, 그리고 안기부에서 다시 CD를 받아간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하였다.

이를 토대로 대대적인 비리척결운동을 시작하였고 그것이 대선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짜악!

조의창은 무릎을 꿇고 앉은 최희명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내가 뭐라고 했나? 칼을 휘두를 땐 앞뒤 분간하면서 휘두르라고 말했지?"

"죄송합니다!"

"덕분에 우리 당이 대통령 자리를 빼앗기게 생겼어.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최희명은 중수부에 부동산 조사대상에 현보를 넣어달라고 말했고, 중수부는 아주 성실하게 조사했다.

헌데 이것이 문제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의창의 손에 휘둘리던 중수부장이 갑자기 약을 먹었는지, 심민당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시민들의 옹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중수부는 이제 검찰의 권력기관에서 벗어나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정의의 사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들은 현보와 정민당이 유착했던 정황까지 깡그리 긁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만약 중수부가 부동산 조사대상에 현보를 엮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자해지, 자네가 알아서 수습해. 일주일 주겠어."

"이, 일주일이요?! 하지만···."

"일주일도 길어. 앞으로 대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고 있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이 분위기라면 심민당이 아니라 정민당이 나서서 현보를 수술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최희명은 입술을 짓깨물었다.

"···제가 다 총대 메겠습니다!"

"총대를 메시겠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말보다는 결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 한 번 지켜보겠어."

조의창은 최희명을 지나쳐 방을 나섰다.

그러다가 불현 듯 웃으며 말했다.

"아참, 그러고 보니까 자네는 군대 면제잖아. 총대 메는 법을 알긴 아나?"

"······."

"하하, 웃긴 일이로군."

최희명은 이를 갈았다.

'···씨발놈,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