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40화 (40/202)

20.

5월 14일, 최충의에게 검찰의 출석요구가 있었다.

허나 최충의는 이제 출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검찰은 수사 인력을 동원하여 아예 최충의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기에 이르렀다.

콰앙!

"검찰입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공안부에서 선거관련 비자금 자료를 털어댄다고 다녀갔었고 이번에는 중수부에서 들어와 난리를 죽이고 있었다.

검찰은 최충의가 위독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쿵쿵쿵!

"최충의 씨! 문 열어보세요!"

최호명은 병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검찰이라도 최소한의 인간성도 없습니까? 아버지의 상태가 이리 위중한데 굳이 자택 압수수색까지 해야겠어요?"

"나오세요. 불만이 있다면 대법원에 소송이라도 거시든지."

천우는 환생 이후, 이번처럼 당혹스러운 적도 없었다.

전생의 기억과는 너무 다른 전개, 도무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만약 전생의 기억과 지금의 전개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힘들지만 최충의의 죽음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허나 정치권과 최희명의 분탕질 때문에 뚜껑이 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런 개호로 잡놈의 새끼들을 보았나? 그렇게 쳐 먹고도 성에 안 찬다 이건가? 게다가 최희명 이 새끼는 자기 친부가 다 죽어가는 마당에 얼굴은 못 비출망정 집으로 검찰을 들이밀어?'

이미 최희명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급기야 검찰은 최충의가 몸져누운 방까지 들이닥치고 말았다.

"검찰입니다! 압수수색이 있겠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들이 미쳤나?! 병자가 누워 있는 방에서 지금 뭐하는 겁니까?!"

최충의는 최호명의 손을 잡았다.

"···됐다. 놔둬라."

"하지만 아버지!"

"가지고 갈 것이 있다면 가지고 가라고 그래."

조의창의 심사가 뒤틀린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종친에게 주었던 지분까지 싹 토해내라, 그렇지 않으면 집안을 확 엎어버리겠다는 으름장이었다.

허나 이제 최충의는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한결은 미국으로 떠났고, 천우는 필요한 걸 다 얻었기 때문이었다.

최충의는 생명의 불이 다 꺼져가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앉았다.

그리곤 검사들을 향해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가지고 가라. 다만 오늘의 이 일이 추후에 너희들의 모가지를 틀어쥐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은 절대 잊지 마라."

"저 노친네가···."

"볼일 다 봤으면 썩 꺼져라!"

최충의의 벼락같은 호통에 검찰은 흠칫 놀라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곤 다시 몸져눕는 최충의가 끊이지 않는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주치의가 주사를 추가하자, 최충의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 이제 괜찮아."

"저런 나쁜 놈들! 언젠가는 제가 반드시 복수하고 말 거에요!"

"흘흘, 이놈아. 복수보다 미련한 건 없어."

"하지만 저들이 우리 집안에 가했던 행동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요."

그는 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우야, 이게 다 인과응보라는 거다. 내 평생 허상을 좇지 않고 살았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 뇌물로 이룬 제국은 신기루나 마찬가지야. 권력이 툭 치면 그대로 무너지게 되어 있지."

"···명심할게요."

"글로벌 지주회사의 오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할아비를 반면교사로 삼아라. 권력에 빌붙는 것이 아니라 아예 권력이 너를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네, 그럴게요."

잠시 후, 주치의가 들어와 최충의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곤 천우를 조용히 밖으로 내보냈다.

"할머니와 아빠를 좀 불러줄래?"

"네···."

천우가 밖으로 나가보니 온 집안이 죄다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본 천우의 가슴 속에선 천불이 끓어올랐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아무래도 나중에 반드시 복수는 해야겠어요.'

조의창이건 최희명이건 손에 잡히는 놈들은 죄다 쳐 죽이겠노라, 천우는 그리 다짐했다.

이윽고 천우는 무거운 마음으로 아버지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아빠.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시래요."

"그래···?"

두 모자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짐짓 무거운 분위기, 주치의는 두 모자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오늘밤을 넘기긴 어려울 것 같네요."

"······."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무거운 말이 또 있을까.

가만히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천우에게 허태용이 다가갔다.

"작은 도련님, 여기 계셨군요."

"···네. 그나저나 허 씨 할아버지도 편찮은 거 아니었나요?"

"허허, 저는 괜찮습니다. 원래 이 나이쯤 되면 오락가락 그럽니다."

이제는 정정한 모습이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천우였다.

천우에게 허태용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모두가 다 갈 때가 정해져 있답니다. 그 날이 누군가의 예상보다 빠르다고 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이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죽음은 슬픈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천우도 인생을 꽤나 오래 산 셈이었다.

허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나이를 먹어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기억이 흐려지는 것일 뿐, 오히려 괴로운 기억이 쌓이면 상처는 더 크게 벌어지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련님,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지금 도련님의 마음엔 어떤 감정이 자리 잡고 있죠?"

"···복수?"

"복수라. 생각해보세요. 하다못해 그 복수조차도 남겨진 사람의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누리자면 슬픔보다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셨죠?"

"네, 알겠어요."

잠시 후, 다시 방문이 열렸다.

의사는 일가족들을 전부 들어오라고 했다.

최충의는 마치 한 마리의 고고한 학처럼 꼿꼿이 앉아 있었다.

아마도 저것을 두고 회광반조라 하는 모양이었다.

최충의는 천우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유감스럽지만 괜찮지 않구나. 이제 이 할아비는 곧 죽을 거다."

"이, 이렇게 갑자기요?"

"원래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란다···. 미안하다, 병을 숨겨서."

"···그런 말씀 마세요."

이제 더는 건강하다고 거짓말을 해 줄 수 없다는 걸 최충의도 잘 알기에 그는 최대한 힘을 쥐어짜내 천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있는 데로 건넸다.

최충의는 천우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천우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최충의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침대 위에 걸터앉아 최충의를 올려다보았다.

"···천우야, 이 할아비가 네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얼마 없구나.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어도 정작 남는 게 없어."

"아니요, 할아버지는 이미 제게 많은 걸 물려주셨어요."

"놈···. 고맙구나. 그리 말해줘서."

최충의는 천우의 손을 꼭 잡았다.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돌파했던 최충의의 손은 어느 새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천우야, 이 집은 우리 가문이 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이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집은 절대로 남에게 빼앗겨선 안 되는 곳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냐?"

"네. 명심할게요."

최충의는 천우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제 네가 우리 집안의 기둥이다. 절대 나와 우리 조상들을 실망시키지 말거라."

"네, 할아버지. 그럴게요."

순간, 최충의의 눈동자에 깊은 회한이 스치는 것 같았다.

천우는 지금이 바로 그의 영혼이 승천하기 직전임을 깨달았다.

그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다소 거칠고 주름 진 그의 손이 천우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최충의는 이를 악물었다.

"으으으윽!"

"하, 할아버지?!"

"···호명아!"

최호명은 부리나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미, 미안하다, 내가 평생 모질게 굴었던 것 말이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런 말씀 하지마세요!"

"···부디,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아, 아버지?"

순간, 최충의의 눈동자가 힘을 잃고 말았다.

"하, 할아버지?!"

"······."

"할아버지!"

주치의가 달려와 최호명의 맥박을 체크했다.

그는 꼿꼿하게 앉아서 사망한 최충의의 눈을 감겨주며 말했다.

"5월 24일 새벽 1시 21분. 최충의 환자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천우는 가슴 속 깊이 묻혀 있었던 전생의 응어리가 함께 터져 나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 그런 감정들이 천우의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크으윽!"

그러다 문득 천우는 눈물을 뚝 멈추었다.

'···다 부셔주겠어!'

그저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갈아엎겠다는 투지가 천우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슈팅스타와 한결이 합병되어 '한결 슈팅스타'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대검은 상공부에 한결의 세무자료 및 재무자료를 내어달라고 몇 번이고 요청했지만 소관 밖이라는 소리만 되돌아 올 뿐이었다.

이제 한결의 자료는 미국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자료는 상공부에서 이미 소각한 상태, 대검으로선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중수부장 이혁진은 휘하 검사들을 모아놓고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탁, 탁···.

만년필로 책상을 두드리는 그의 이런 습관은 깊은 고민이 있을 때에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는 불현 듯 만년필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탁!

"어이, 제군들."

"예, 부장님!"

"자네들 정말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이래선 현보 그룹 겉만 핥다가 볼 일 다 보게 생겼잖아."

"면목 없습니다!"

쾅!

이혁진이 별안간 탁상을 내리치니 검사들이 움찔거렸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 집안을 뒤졌으면 뭔가 건지는 것이라도 하나 있어야지!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죄송합니다!"

"시끄럽고, 다들 짐 싸. 한결 철강은 미국으로 튀었지, 최충의는 죽었지. 우리만 아주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되어버렸네?"

"죄송합니다···."

"제기랄, 그놈의 죄송! 내가 그랬지, 상공부하고 상무부 쪽 잘 감시하라고! 그리고 최충의 회장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자라는 건 왜 이제 파악 된 건데?"

"예?! 그건···."

작은 아들에게까지 병환을 감쪽같이 속여 왔던 최충의이기에 측근이 아니고선 유언장이 공개될 즈음까지도 병환이 있는 줄 아무도 몰랐었다.

비록 그 대가로 신체를 너무 혹사시킨 것이 문제이긴 해했지만 말이다.

"제기랄, 대가리가 몇 개인데 그 노친네가 죽을 때까지 어쩜 그리 세상모를 수 있나?! 재판 때리고 싶어도 사람이 죽어서 그것도 못해, 그렇다고 최호명에 대한 혐의는 입증할 수 있어? 부동산에 얼마를 돌렸고 얼마를 부정으로 축재했는지 증명할 수 있냐고!"

"허나 그 밑에 부회장들이나 이사진들이라면···."

"그 사람을 죄다 엮어봐야 나올 게 얼마나 있다고? 기껏해야 정치권에 돈 퍼 다가 나른 거? 정치권에서 아주 좋다고 하겠네? 그치?"

"아아!"

이혁진은 사면초가에 몰리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본 수사의 역풍을 이혁진이 고스란히 맞아 검사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최희명이었다.

'젠장, 그 새끼가 가만히 있으리란 보장이 전혀 없는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혁진.

그는 끝내 한 가지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모두들 잘 들어. 지금부터 각 언론사에 조용히 접근해서 이걸 한 쪽씩 돌려. 그리고 앞으로 정확히 한 달 후에 풀라고 그래."

"한 달 후면 부동산 추가조사가 시작되는 시점 아닙니까?"

"그래, 그날. 그날에 딱 맞춰서 이걸 터뜨리라고 그래."

파일을 펼쳐본 중수부는 깜짝 놀라서 자신들도 모르게 펼쳤던 파일을 다시 접고 말았다.

놀란 토끼 눈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이혁진이 말했다.

"···모 아니면 도야. 어차피 정치판에서 끈 떨어지면 곧바로 물갈이란 말이다. 그럼 제대로 분탕질해서 다른 줄이라도 잡아야하지 않겠어?"

"하지만 부장님! 총장님이나 차장님의 인가도 없이 우리 단독으로···. 이건 도박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도박이지. 그런데 도박 말고 지금 다른 뾰족한 수 있어?"

이혁진은 이번 조사에서 재벌총수들이 뒤로 얼마나 꼬불쳤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은행권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총수들이 정치권에 얼마를 어떻게 뿌렸는지 파악하게 되었다.

그는 이걸 심민당에 가져다 줄 참이었다.

"심민당이 칼잡이 노릇만 제대로 해준다면야 제 아무리 여당이래도 별 수 있겠어?"

"하지만 심민당은 우리와 앙숙 아닙니까. 그들이 과연···."

"별 수 없어. 적의 적은 우리 아군이야. 그런 논리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남기 힘들다. 12월 대선을 노리고 여당을 제대로 엎어주자고."

지금은 명령체계나 월권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혁진은 오로지 생존, 그 하나만 생각하기에도 바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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