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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머신 재벌 3세-39화 (39/202)

19.(2)

천우는 4월 27일에 기말고사가 끝난 후,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왔다.

한국으로 오자마자 본가부터 찾은 천우는 저택 주변을 가득 채운 차량행렬과 마주했다.

"어라? 오늘 무슨 날인가?"

누구의 생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양 최 씨 일가가 제사를 그리 요란하게 지내는 집안도 아니었다.

오늘은 천우의 양친도 함께하고 있었다.

"아빠, 잔치가 있어요? 사람이 엄청 많네요!"

"···아니, 잔치는 아니고."

평소의 최호명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밖에선 어떨지 몰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이 세상 누구보다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가 바로 최호명이었다.

천우는 본능적으로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때, 천우네 가족의 바로 앞에 검은색 차량이 멈추어 섰다.

영국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R사 모델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단 세 대만 출시되었다는 초호화 고급차의 주인.

바로 최희명이었다.

"아이고, 형님! 공사다망하신데 어찌 이리도 빨리 도착하셨나?"

최호명 부자는 최희명이 중수부에 뭔가 대단한 떡밥을 던져주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숙부이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몰아붙이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천우였다.

'뻔뻔한 인간이네. 자기 핏줄들 싹 잡아서 불 싸지르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감히 본가를 찾아와?'

검찰조사는 현보 그룹 기획총괄본부와 더불어 회장의 실무진까지 한 방에 엮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범 현보일가의 내부거래 사실이 중수부에 들어감으로서 이제 한양 최 씨 종친들은 죄다 구치소 신세를 지게 생겼다. 아마 잘못하면 징역을 가야하는 일까지 벌어질 지도 몰랐다.

그런 가운데 최희명은 범 현보일가의 주식까지 천천히 사들이고 있었다.

한마디로 집안 전체를 농락하고 있는 셈이었다.

천우는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언젠가는 그 좋은 권력 때문에 모가지가 꺾이고 말 것이다···.'

최희명의 몰염치에 치를 떨고 있던 천우에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조모 오금자였다.

"아가!"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그래, 그래!"

이제는 조모와 머리 하나 차이도 채 나지 않을 만큼 자랐지만, 그래도 조부모는 조부모다.

오금자는 천우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한동안 포옹한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오랜만에 해우를 나눈 두 조손은 밀린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허나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기다리셔. 어서 들어가자꾸나."

"네!"

천우는 오금자의 손을 잡은 채 잔칫상의 가장 상석으로 향했다.

그때쯤, 현관문이 열리며 최충의가 마당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는 허태용의 부축을 받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금발의 벽안들이 네 명이나 포진해 있었다.

"쿨럭, 쿨럭!"

아무리 봐도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심지어 팔뚝에 두 어 개쯤 주사도 달려 있었다.

천우는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미안, 놀랐지?"

"하, 할아버지가 왜···."

"사실 할아버지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충격을 받았다면 미안하구나."

천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최충의는 간단한 인사치례를 하기도 버거운 상태로 보였다.

그는 푸석푸석하게 말라버린 입술을 간신히 뗐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유언장을 공개할 것이다."

"유언장!"

"보면 알겠지만 나는 이제 곧 간다. 그러니 사후를 정리하지 않을 수 없다."

충격에 몸이 바짝 얼어붙은 천우에게 최충의가 손짓했다.

"천우야, 이쪽으로 오너라."

"네, 할아버지···."

다소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익숙한 조부의 채취가 느껴지니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졌다.

최충의는 천우의 손을 꼭 잡은 채 말했다.

"최 씨 일가의 가산은 전부 천우에게로 귀속시키겠다."

분노에 찬 최희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콰앙!

"아버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저놈은 우리 집안의 사생아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앉아라. 내 장손에게 내가 재산을 물려주겠다는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참견을 한다는 거냐."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저런 딴따라 자식에게 무슨 재산입니까?!"

최충의는 차남의 말을 무시한 채 허태용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던 허태용은 사실 최충의를 대신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허태용은 아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유언장을 읽어 나갔다.

"한양 최 씨의 장손 최천우에게 가문 고유의 재산을 모두 귀속시킨다. 여기서 가문의 고유 재산이란 현보 그룹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말한다."

앞으로 천우가 현보 그룹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한양 최 씨 일가의 저택이나 서고 등, 집안의 명의로 된 것은 전부 천우의 것이라는 소리였다.

허나 그렇다고 해봐야 현보 그룹의 재산과 비교한다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희명은 격하게 분노하여 삭일 줄을 모르고 있었다.

"···저런 근본도 없는 새끼에게 재산이라니!"

허태용은 또박또박하게 최호명에 대한 재산분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남 최호명에게는 현보 그룹의 재산 일부를 증여하되, 그 범위를 한결 철강으로 제한한다."

"철강을···?"

최희명은 이미 한결 철강에 대한 내사를 준비 중이었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최충의가 하필이면 한결 철강을 최호명에게 넘겨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최희명은 선뜻 그 점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최충의는 허태용을 통해서 이미 상공부와 접촉한 상태였다.

이미 최충의는 최희명보다 한 수 앞서서 움직이고 있었던 셈이었다.

"차남 최희명에게는 본인이 가진 지분의 2/3을 증여한다. 다만, 회장직 승계에 대해서는 남은 지분 1/3을 인원수에 맞게 정확하게 분배받은 나의 형제들의 의견에 따라서 정하도록 한다."

순간, 최희명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무리 지배력이 견고한 회사라곤 해도 총수가 지분 100%를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 최충의의 지분 역시 간신히 지배력을 유지하는 정도이고, 여기서 1/3을 떼어서 동생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건 최희명에게 종친들 좀 그만 조지라고 발에 족쇄를 거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콰앙!

최희명은 또 한 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현보가 아예 없어져야 속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오냐, 그래. 네놈이 종친들에 형제까지 죄다 검찰에 엮어놓고 호로새끼 같은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야 오너일가가 무너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뭐라고요?"

"내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 줄 아느냐? 네게 권력자를 붙여준 일이었다. 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놈이라고만 생각했지, 권력에 미친놈이라곤 생각 못했던 거지."

최충의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허나 이제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그만 나가라. 쉬고 싶구나."

씩씩거리는 최희명, 그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본가를 나섰다.

***

최충의의 재산분배가 끝나 갈 때쯤.

이스트우드 투자은행은 슈팅스타와 한결 철강의 합병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슈팅스타가 한결을 인수한 후, 한결이 슈팅스타의 지분을 대거 가지고 가는 청사진이 완벽하게 구상된 상태였다.

그걸 완성한 사람은 바로 허태용.

그의 손에 의해서 합병은 이제 곧 완성될 것이었다.

한 편.

최충의의 유언장이 공개되어 집행되기 시작磯募? 소리가 조의창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소파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콰앙!

"···최충의, 그 빌어먹을 여우가 뒷구멍으로 딴 주머니를 차려고 아주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로군."

"아무래도 꽤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일을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미국 상무부와도 스킨십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요."

"상무부···?"

"의원님께서 최희명 이사에게 대검 중수부를 움직여 현보의 옆구리를 치라고 지시하셨을 무렵, 이미 최호명은 뒤로 일본으로 투자했던 돈과 미국으로 투자했던 자금을 전부 미국으로 빼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상무부에서 좋다고 저 비루한 놈들의 손을 잡아준단 말이야?"

"그것까진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저쪽에서 미국계 금융과 손을 잡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금융? 이미 미국 쪽 금융시장은 개판이 된 지 오래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미국 재무부와 연준에 의해서 어느 정도 구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최충의 회장이 상무부에게 스킨십을 보낸 것 같은데, 거기서 대량의 자금이 오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추측? 어째서 모든 것이 다 추측이야? 우리의 정보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죄송합니다! CIA에서 최근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조의창이라곤 해도 CIA의 블로킹을 빠져나갈 재간은 없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현보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현보 전체의 자금을 동결시켜. 대검이 되었던 안기부가 되었던 사용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1원 한 푼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놔."

"예,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중수부에서 내일 아침이면 현보로 쳐들어 갈 겁니다."

"속도가 생명이다. 감히 이 조의창을 무시하다니, 저것들을 싹 잡아서 내 발 아래로 데리고 와. 알겠나?"

"예, 의원님!"

조의창의 명령은 보좌관을 통해서 곧장 그 직속라인으로 전달되었다.

같은 시각.

상공부와 상무부의 접촉이 있었다.

양측 대표가 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극비리에 진행 되고 있었다.

상무부의 대표 톰 스미스는 상공부장관이자 회담 대표 이석출에게 회사 이전에 대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앞으로 두 회사가 합병 되고 그 이후에 사명을 변경해 글로벌 지주회사를 꾸린다는 계획입니다. 한 번 검토해보시죠."

이석출은 서류를 굳이 검토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신이 원한은 것을 얻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약속하셨던 섬유부문 덤핑판정은 취하해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럼 이걸로 협상은 타결 된 겁니다."

블랙하워드가 천 억대 CD를 먹었을 때, 제이미 골드너는 톰 스미스에게 한결이 블랙하워드를 징검다리 삼아서 미국으로 온다고 말했었다.

이미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예견되었던 일.

그런데 이 사실을 예견한 건 상공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호명이 미국계 부실채권과 재보험을 꾸준히 인수하여 슈팅스타의 덩치를 불려나갈 때, 최충의는 상공부와 접촉하여 덤핑판정을 취하시켜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슈팅스타가 가진 부실채권과 재보험 규모는 무려 한화로 1조 7천억 상당. 여기에 슈팅스타는 사회 간접자본까지 일부 손에 쥐고 있었다.

상무부 입장에서 본다면 어서 한결을 예정대로 끌고 오는 것이 좋았고 상공부 입장에서는 한결 하나 내어주고 경상수지를 회복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미 양쪽 모두가 인정하는 거래가 성사되었다.

이제 한결은 인피니티와 합병되어 사실상 미국 자본이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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