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36화 (36/202)

18.

86년 7월.

미국 그린버드 뱅크 은행장 집무실에 한 통의 보고서가 도착하였다.

보고서의 내용은 한인 환투기꾼의 활약상이었다.

은행장 올란도 가드너가 받은 보고서의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걸 단 한 사람이 맞췄다고?"

"네, 은행장님."

"말도 안 되는 소리!"

85년 플라자 합의 이전의 엔 달러 환율은 200엔 대를 호가하였다.

처음 투기꾼이 환율 장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달러당 210엔, 그러다가 달러화가 점점 올라서 250엔을 넘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가 첫 선물환 약정을 맺었을 때가 달러당 243엔, 그러다가 플라자합의 이후 10월에 정산시기가 도래했을 때쯤엔 201엔이 되었다.

한마디로 1억 엔 넘게 이득을 본 셈이었다.

엔화를 달러화로 환전한 그는 엄청난 이득을 안은 채 다시 선물환을 약정하였다.

달러랑 201엔의 시세일 때 약정해서 거래하기로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86년 6월의 엔, 달러 환율은 1달러 당 150엔 대.

불과 반 년 만에 200엔 선이 깨지고 달러당 100엔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마치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차트라도 뽑아놓고 거래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올란도 가드너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정도면 그냥 하루하루 환전만 해도 먹고 살 정도겠는데?"

"네, 그렇습니다. 요즘 '코리안 뉴 보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84년도부터 시작해서 최근까지 거의 무일푼으로 수 천 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였는데, 그중 일부가 환전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합니다."

농담으로 한 소리가 실제로 있었다고 하니 올란도는 소름이 쫙 돋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농담으로 한 말인데 진짜로···."

"진짜입니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그의 행보,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코리안 뉴 보이는 원래 OTC의 유명한 브로커 필립을 통해 연결된 사람이었다.

다른 조건 없이 그저 선물환을 거래하고 싶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가 몇 살이고 어디에 사는지, 심지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했다.

한국계 자본이기에 코리안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기에 뉴 보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었다.

"다음 거래도 혹시 약정이 되었나?"

"아니요. 아직 약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흐음, 다음 행보는 어느 쪽으로 향하려나?"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바로 그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린 사람은 그린버드 투자본부장 일리나 커스버트였다.

일리나는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우선 문부터 열었다.

"은행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코리안 뉴 보이가 재구매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그래? 요청 규모는?"

"1200만 달러입니다."

이제는 그의 요청에 과연 응해야 할지, 의문마저 들었다.

일리나는 은행장에게 다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은행장님, 이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코리안 뉴 보이를 영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를 스카우트 하자고? 얼굴도 모르는데 무슨 스카우트를 하나."

"옐로우스톤 뱅크, 아시죠?"

"잘 알지. 우리 경쟁은행인데."

"그쪽에서는 이미 코리안 뉴 보이를 영입하기 위해서 총알을 장전하고 있답니다."

"뭐···?!"

"만약 저쪽에서 먼저 그를 포섭하게 된다면 우리는 환율투기로 앉아서 돈 버는 기회를 날리게 되는 셈입니다."

이스트우드 컴퍼니와 손잡고 환투기에 발을 담갔던 그는 총 7개 회사와 거래하고 있었다.

이미 그들 사이에선 코리안 뉴 보이가 유명 인사였고 이제는 그와 거래한다는 사실을 대외비로 남길 정도였다.

그가 투자하면 뜬다, 이런 공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알아보니 OTC쪽에서도 매수에 시동을 건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가 구매했던 회사채 부실채권이 빠르게 회복되어 지금은 상장까지 갔답니다."

"상장?"

"나노 소프트 아시죠? 프레던스가 넘어질 때 같이 넘어졌던 기업 말입니다."

"알지. 우리 쪽에도 여신 요청했었잖아."

"네, 그 나노 소프트 말입니다. 그런데 그 나노 소프트가 넘어질 때쯤에 한화로 30억쯤 투자했다가 1.55%의 주식을 받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가 투자하고 나니 회사가 살아난 거죠."

"···그게 말이 되는 얘기야?"

"믿기 힘들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허어, 이 정도면 뉴 보이가 아니라 샤먼 아니야?"

"샤먼 이건 뉴 보이건 간에 그를 붙잡는 것이 관건입니다. 얼마를 쓰든 간에 말이죠."

그린버드는 저번 금융위기에서 받은 타격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다른 은행권 역시 마찬가지.

만약 이 시점에서 누구라도 먼저 코리안 뉴 보이를 잡게 된다면 봉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 좋다 이거야. 도대체 그를 어떻게 영입할 건데?"

"투자신탁에서 받는 수수료가 한 0.8%쯤 되잖습니까. 우리는 그에게 1.5%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겁니다."

"은행이 투자수수료를 지불하자고? 자네 우리 체면에···."

"체면보다 돈이 더 중요한 곳이 은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녀의 말은 틀린 구석이 전혀 없었다.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은행이었던 것이다.

올란도 가드너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럼 이대로 진행 하겠습니다."

"좋아. 진행해.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 자네가 그렇게 큰 소리 친 만큼 코리안 뉴 보이를 꼭 잡아오도록. 그렇지 않으면 문책을 피하기 힘들 거야."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를 이용해서 만약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그럴 일 없습니다."

그녀는 호언장담했고 올란도는 그녀의 주장을 승인해주었다.

아마 두 사람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이 선택이 추후에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말이다.

***

천우는 너무나도 뜻밖의 제안이 들어와서 약간 놀랐다.

무려 7개 은행에서 자신에게 투자수수료를 지급할 테니 고문을 맡아달라고 제안을 해 온 것이었다.

이 제안서를 직접 가지고 온 필립은 상당히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거 참, 천우 군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아주 피곤할 지경이야."

"죄송해요, 아저씨. 저도 의도한 바는 아니라서 조금 당황스럽네요."

"하하,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기회야. 네가 가진 투자회사가 잘하면 거부들의 돈을 신탁해서 굴릴 수 있는 여건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아하! 달리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투자관련 금융들이 모두들 어떻게 돈을 버는가? 남의 돈으로 돈을 굴려서 돈을 벌지 않던가.

천우에게도 그런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저들이 말하는 통상적인 수수료는 1.5%야. 운용자금의 1.5%를 수수료로 내겠다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어. 그건 알고 있지?"

"알죠. 하지만 저들이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필립은 천우의 질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답을 주었다.

"한국의 무당이 왜 돈을 버는 줄 알아?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

"제가 그럼 무당이라도 된다는 건가요?"

"저들은 네가 미래를 보는 식견이 있다고 믿는 거야."

너무나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던 투자행위, 그것이 어느 새 천우의 추종자들을 만들어 낸 셈이었다.

필립은 천우에게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라고 조언해주었다.

"이 일은 네가 대학을 다니면서도 할 수 있어. 지금처럼 네가 투자하는 곳에 같이 자금을 몰아주면 되는 거야."

"일종의 투자세력이 생긴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것도 꽤나 큰 세력 말이야."

은행 7개는 결코 작은 규모의 투자집단이라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상업은행이 투자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지만 천우가 주로 하는 투자에 저들이 끼어 있기 때문에 이건 분명 플러스 요인이라 할 수 있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고문을 맡을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이참에 너도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하여라."

"그럼 어느 은행과 손을 잡을까요?"

"다 잡아야지. 7개 전부 말이야. 수수료를 1.5%로 통일해서 일을 수주하자고."

이 어린 나이에 은행의 투자고문까지 맡게 될 줄이야.

천우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건 분명 돈이 되는 일이었다.

돈을 벌자고 투기까지 하는 천우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엔화에 단기투자를 하는 형식으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또한 단기투자기간은 대략 89년까지 이어질 것이고 87년도를 기점으로 EC가입국의 통화를 점진적으로 매수한다는 전략을 수립하였다.

은행들은 천우의 말대로 매수포지션을 잡았다.

정말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따라해 주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의 투자금에 대한 1.5%를 천우에게 상납해주었다.

"진짜 입금을 해주었네. 이래서 남는 게 있으려나."

밑지고 장사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나 은행의 입장은 달랐다.

단기투자로 사실상 3% 이상의 수익을 기대하란 쉽지 않은데, 천우는 못해도 8% 이상의 고수익을 따박따박 올려주고 있지 않았던가.

이제는 오히려 여수신 이익보다 천우를 따라 투기를 벌이는 것이 나을 지경이었다.

이렇게 한 달쯤 지내고 나니 천우에게 별에 별 상담이 다 들어왔다.

심지어는 해외투자기업에 대한 차관문제를 상의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6.5%, 여기서 0.8%를 떼어서 천우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괜찮은 조건이긴 했다.

여신 건이 어디 한 두 건이겠는가.

그 건수마다 0.8%를 떼어간다면 천우는 은행의 여신이익의 0.8%를 공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허나 문제는 새로운 차관에 대해선 천우조차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흐음, 이걸 어쩐다."

과연 환율이 급등해서 차관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인가?

솔직히 천우도 그들이 차관을 해주었다가 돈을 떼일지 안 떼일지 한 번에 알아맞히는 건 불가능했다.

허나 그에겐 기업 시뮬레이션 어플리케이션이 있었다.

이 시뮬레이터에 차관 데이터를 넣어주면 자동으로 시나리오를 짜서 확률까지 알려주니 거의 100% 투자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차관관련 상담을 해 온 사람은 옐로우스톤 뱅크였다.

옐로우스톤 뱅크는 요즘 한창 뜨기 시작한 일본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에 차관을 해주어도 괜찮겠냐고 상담을 해왔다.

천우는 그대로 값을 장입시켜서 시나리오를 짜냈다.

-기업 시뮬레이션 결과, 부동산 투자회사 엘리어트 컴퍼니의 계획대로 차관을 해주고 정확히 돈을 받을 수만 있다면 100% 성공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100% 성공이라고?"

-엘리어트 컴퍼니가 일본에 투자하기로 한 금액은 대략 1억 달러 상당, 6%대 저금리 상태에서 차관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자상환의 부담도 적을 것이고 지금 이대로 수익이 계속 발생한다면 차관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다만, 원금을 전부 돌려받게 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을 걸어야겠군."

-맞습니다. 엘리어트가 버블붕괴 이전까지 부동산을 정리하고 원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계약서를 짜주는 겁니다.

"흐음, 좋아. 그럼 그렇게 계약서를 꾸며서 마무리하도록 유도해줘야겠어."

천우는 옐로우스톤이 엘리어트에게 계약서를 써 줄 때, 89년도까지 상환할 것을 못 박으라고 명시해두었다. 그리고 90년도 2월부터 추가여신을 지원해 줄 수 있도록 장치도 마련해주였다.

한마디로 천우는 엘리어트의 일본시장 진출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 준 것이었다.

아주 깔끔하고도 간단명료한 컨설팅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과연 시뮬레이션대로 흘러가느냐, 그걸 지켜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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