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35화 (35/202)

17.(2)

4월에 검정고시를 치른 천우가 5월 10일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평균점수는 100점, 석차는 단연 전국 수석이었다.

교육계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에 진짜 수재가 탄생한 것 아니냐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정작 그 장본인은 무덤덤했다.

천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공사대금으로 약 20억쯤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공사를 하는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건가요?"

-한국과 일본은 임금차이가 꽤 납니다. 그렇다고 인부를 한국에서 조달할 수는 없잖습니까.

"흐음, 그렇군요."

최충의가 만들어준 투자회사 HC컴퍼니의 비공식 실무담당자이자 현보 그룹 비서실 소속 김영실은 천우의 지시로 일본 긴자에 상가를 짓는 작업에 들어간 상태였다.

사실, 천우가 투자했던 부동산 가격은 투자 당시에 비해 5%이상 가격이 떨어진 상태였다.

전 세계가 사실상 고금리 사회에 진입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 것이었다.

천우는 그 타이밍에 한화 10억을 추가로 출자하여 긴자의 비교적 낙후된 뒷골목 상권에 투자하였다.

긴자는 원래 일본 최고의 상업 지구였지만 신주쿠의 대중술집과 섹스산업에 밀려 상업지구의 구매력을 상징하는 백화점 점유율 순위에서 신주쿠에게 두 배 차이로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겉으로만 본다면 천우는 거의 헛손질만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었다.

허나 그가 긴자에 투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84년도 후반부터 긴자는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긴자재개발' 정책에 의하여 활기를 되찾게 되고 90년도에는 드디어 일본전역 임대로 수익 1위를 달리는 노른자 땅 타이틀을 회수하게 된다.

지금은 임금이 높은 대신에 원자재 가격이 저렴해서 그나마 공사를 해볼 만 했다.

그는 10층 대 건물 두 채와 5층대 건물 네 채를 짓기로 했는데, 이미 5층 건물의 공사비는 입금이 된 상태였다.

헌데 문제는 이 10층 대 건물들이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땅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데 공사비를 꽤 비싸게 부릅니다. 요즘 긴자에 개발 붐이 일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분명 결코 저렴한 공사비용은 아니었다.

허나 앞으로 1년만 지나도 분명 공사비용은 훨씬 더 비싸질 것이다.

"좋아요. 마련해볼게요. 대신 대금은 달러화로 지급한다고 말해주세요."

-전액 달러로 말입니까?

"네. 대신 공사대금을 선불로 낸 만큼 추가비용은 없도록 해주세요."

-물론입니다.

돈은 꾸준히 벌고 있다.

선물환 이외에도 외화장사는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이대로 공사가 마무리만 된다면 이득은 네 배 이상이다!'

앞으로 엔화가 크게 올라서 공사비용이 상승한다고 해도 이미 계약서에 선금 이외의 추가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에 아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중소건설사 순위 3위 안에 드는 사람들이라 신용도 때문이라도 공사를 계속할 것이 분명했다.

천우는 계좌에 있는 달러화를 대금으로 지급해주었고 일본의 건설사들은 크게 기뻐하며 공사에 돌입했다.

심지어 감사의 인사로 일본의 특산품을 소포로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완연한 여름.

천우는 조모 오금자와 함께 미국을 찾았다.

오금자는 천우와 함께 묵을 호텔로 플라자 호텔을 지목했다.

웅성, 웅성···!

엄청난 인파가 호텔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우와, 사람이 무지하게 많아요!"

"아마 오늘 G5회담이 다시 열린다는 것 같더구나."

"아하!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엔저호황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바로 오늘인 것이었다.

플라자호텔에서 합의가 이뤄지는 만큼 이곳의 객실은 거의 만원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금자가 이곳을 숙소로 잡은 이유가 있었다.

엄청난 인파를 뚫고 객실로 들어서니 중년 남성 한 명이 조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오셨습니까?"

"잘 지내셨죠?"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인파가 많아서 우리 작은 도련님께서 힘드시지 않았을지 걱정입니다."

그는 천우에게 악수를 건넸다.

남자의 손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흰 손, 마치 여성의 손을 잡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로버트 콜먼입니다. 현 이스트우트 컴퍼니의 대표이사 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아! 로버트 콜먼! 아저씨가 그 유명한 애널리스트 출신 월급사장이시군요!"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로버트 콜먼은 상당히 날카롭고 까다로운 인상에 정이라곤 요만큼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허나 그렇기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신뢰가 느껴졌다.

그는 천우에게 계약서를 한 장 건네주었다.

"앞으로 HC컴퍼니의 선물환 및 통화선물 시장 진출 파트너로 이스트우드 컴퍼니로 지정한다는 계약서입니다. 앞으로 0.1%의 수수료를 차입하여 수익관계를 형성한다는 기밀 계약문건입니다."

"기밀?"

"아시다시피 이스트우드 컴퍼니는 도련님의 진외증조모께서 설립하셨습니다. 때문에 그 친자식들인 진외종조부들께서 언제나 우리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행여나 현보 일가와 이스트우드 컴퍼니가 결합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이미 외증조부님의 재산분배는 끝났잖아요?"

"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카렐 가문이 운영하는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입장은 다릅니다. 외증조부님이 타계하시기 전에 조모님 앞으로 회사 지분 0.8%를 상속해 두셨는데, 우리는 이것의 수익이 사회간접자본에게 유입되도록 신탁해두었습니다. 문제는 이 지분의 신탁이 해제된다면 현재의 체스터 카렐 센트럴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자는 겁니다."

"그럼 외종조부들이 아직도 경영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건가요?"

"공식적으로는 종식이 된 걸로 알려져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쪼록 불편하시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비밀만남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지요?"

"넵!"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우는 계약서에 날인하였고, 이로서 이스트우드와의 관계가 설립된 셈이었다.

계약을 마친 후, 로버트 콜먼은 전화번호만 덩그러니 적힌 명함을 건네어 주었다.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이스트우드 컴퍼니의 가족들에게만 전달되는 명함입니다."

"네,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그는 객실을 나선 후, 비상계단을 타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천우는 그 모습이 마치 영화 '007'에 나오는 요원 같다고 생각했다.

"민첩하시네요."

"비밀이 많은 사람이란다. 물론, 네가 장성한다면 그 비밀을 자연스레 알게 될 테지만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묘한 사람이다.

계약을 끝낸 후, 두 조손은 나란히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섰다.

밖에서 식사도 하고 주변에 있는 명물들도 구경하고 돌아오니 기자들이 더 많이 몰려 있었다.

-저희 5개국 외무상은 엔화와 마르크 절상을 통하여 세계 무역수지 악화를 종결시키기로 최종 합의하였으며···.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였으며 누군가는 죽도록 싫었을 합의가 이뤄졌다.

물론, 이 합의로 인해 일본의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성공은 준비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법이지!'

모든 것을 오늘을 기점으로 바뀔 것이다.

천우는 삼저호황의 총성이 귓전을 맴도는 것 같았다.

***

85년도 10월.

드디어 길고 길었던 달러화 고공행진이 막을 내렸다.

엔화는 크게 올랐고 달러화는 점점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최호명과 한결은 바쁘게 움직였다.

10월이 되자마자 엔화가 오르더니 업계의 철근물량이 한 달 만에 모두 매진이 되어버렸다.

한결은 그러는 동안에도 예년과 비슷한 물량만을 출고시켰다.

그리고 86년 1월이 되자마자 물량을 슬슬 풀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은행은 기준금리를 7%대로 인하하였고 4월 초, 6%대로 1%포인트 추가인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에 반해서 엔화는 또 한 폭 큰 절상을 보였고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철근이 품귀현상을 빗기 시작한 것이었다.

86년 4월, 한결은 한국산 철근물량이 가뭄을 겪을 시기에 맞춰서 철근을 대량 풀어버렸다.

그 결과, 철근 재고를 바탕으로 거의 3배에 달하는 매출신장을 이뤄냈다.

이른 아침.

최호명은 실무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상무부가?"

"예, 그렇습니다. 미 재무부장관이 일 재무부에 전화를 걸었답니다. 금리추가인하를 계속 종용한 것이지요."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일본의 엔화절상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여 미국은 일본에게 금리 추가인하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소극적이나마 일본은 계속해서 금리인하정책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일본은 금리인하 정책을 어느 정도 예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단도직입적인 미국의 압박을 받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동산 쪽 경기는 어떻습니까?"

"슬슬 큰손들이 몰려듭니다. 벌써 신주쿠는 포화상태고 긴자 쪽은 물량이 없어서 못 구할 지경이랍니다."

최호명은 생각했다.

일본의 부동산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폭발할까, 아니면 가격이 다시 다운 될까?

그의 생각은 두 가지 다 아니었다.

"···기회인데 이거."

"기회라니요?"

"철근이 얼마나 남았죠? 우리가 투자한 부동산에 건물 올릴 정도는 되겠죠?"

"물론 그 정도는 됩니다만···."

"투자지역에 상가들을 때려지으세요. 최대한 많이."

"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은데요."

"괜찮아요. 공사일정을 잡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부동산의 한 방, 그 묵직한 것이 조만간 터질 것이라고 최호명은 확신했다.

만약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한국에서 철근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싣고 가서 아예 일본에서 장기근로수당을 지급하며 공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한국의 인력을 데려다 쓰면 엔화를 지급해야 하는 부담과 고임금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콘크리트와 철근을 한국에서 가져다쓰면 훨씬 더 이득이 될 것이었다.

이미 중동아시아의 유전 및 도시개발 붐으로 인하여 한국산 시멘트는 저가대비 고효율이 인정된 상태였다.

일본의 산업자원 기준에 충족하는 품질의 고급 시멘트만 사다 써도 일본에서 자재를 사서 쓰는 것보다 족히 두 배는 저렴했다.

최호명은 아예 이참에 시멘트 회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85년도까지 이어졌던 경상수지 악화의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망한 삼척 등지의 시멘트 회사가 매물로 나온 상태였다.

순식간에 현금부자가 되어버린 한결은 시멘트 회사를 인수하여 철강과 합병시켰고, 한결 철강시멘트가 발족되었다.

현보를 통해 공사단가를 최대한 낮추었고 거기에 원자재까지 생산해서 쓰니 수지가 제법 잘 맞았다.

최호명은 생각했다.

자신이 건설까지 해봐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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