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21화 (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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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는 천우에게 업데이트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본 업데이트에서 AI의 언어구사능력 및 어휘력이 증가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오역이나 의역이 99%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허어, 그냥 자체적으로 막 업데이트가 되는 거야?"

-AI마샤는 지식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성장을 거듭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일전에 제가 인터넷을 먹고 자랐다고 설명 드렸던가요?

"그랬었지."

-저도 처음에는 나노머신 고유의 연산능력이나 초기설정 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허나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경험기반성장프로그램' 덕분에 지금의 능력을 갖게 된 것이지요.

"뭐야, 그럼 경험치를 쌓으면 진화하는 게임의 괴물 비슷한 거네?"

-괴물이라니요. 그래도 비슷하긴 합니다.

AI마샤의 개발자조차도 아마 마샤의 미래까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인터넷이나 서적에 있는 지식을 습득해서 진화한다는 설계만 해두었을 뿐, 이것이 어떤 방향으로 자랄 지는 짐작도 못했던 셈이다.

-제게 경험과 지식을 주십시오. 만약 진화의 열쇠가 되는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습득한다면 저는 꾸준히 진화하게 될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나?"

-물론입니다. 진화의 열쇠가 되기도 하죠.

천우는 얼마 전, 최 씨 서고에 들어가고 싶다고 안달이 났었던 그녀의 모습을 상기시켜냈다.

그때의 그 행동이 이제는 이해가 됐다.

"그래서 그렇게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던 거야?"

-네, 맞습니다.

"무슨 육성시뮬레抉? 같구먼. 뭐, 어쨌든 간에 지식이 곧 양분이라 이거지?"

-그런 셈이죠.

"허참,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AI를 얻었는데 정작 내가 그걸 모르고 있었네."

뭔가 굴레를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천우가 아버지에게 힌트를 주고 조부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천우가 전생과 현생의 아버지에게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었다.

망하면 패배자가 되는 현실, 아버지가 패배자가 되면 자신도 패배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허나 이제 보니 그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의 인생길은 탄탄대로였던 것이다.

그는 결심했다.

AI마샤를 등에 업고 글로벌 투자회사의 오너가 되겠다고 말이다.

"외국으로 나가자!"

일요일의 이른 아침.

천우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식사준비를 하고 있던 오금자가 있었고 그 옆에 앉아 신문을 읽는 최충의가 있었다.

그는 오금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할머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으음? 우리 강아지가 뭐 갖고 싶은 게 있나?"

"아니요. 갖고 싶은 건 아닌데···."

"뭔데?"

천우는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말했다.

"할머니에게 투자수업을 듣고 싶어요."

"투자수업?"

"네! 증조할아버지의 책을 읽다보니까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졌지만 이제는 뵙고 싶어도 뵐 수가 없잖아요."

"···그랬구나."

"그래서 할머니께 부탁드리는 거예요.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증조할아버지 문하에서 수학하셨다면서요."

"그래, 그러긴 했지."

"저에게 수학하셨던 걸 전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으음, 하지만···."

천우는 다짜고짜 넙죽 엎드려 절하였다.

"사부님으로 모실게요!"

"사부? 나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말이니?"

"네! 할머니, 아니 사부님!"

천우에겐 지식이 넘쳐난다. 반면 그에겐 지식만 있지 실전감각이 아예 제로라는 것이 문제였다.

허나 체스터 카렐의 슬하에서 실전감각을 익힌 오금자가 스승이라면 어떻게 될까.

글로벌 기업을 일구는 것도 한 걸음부터.

천우는 오금자에게 실전감각에 대해서 배우고 마샤까지 업데이트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오금자는 천우를 자리에서 일으켰다.

"이 할미가 너를 얼마나 잘 이끌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최선을 다해볼게."

"정말요?!"

"그래, 약속하마."

"와아! 신난다!"

"그럼 아침을 먹어야하니까 잠옷은 벗어두고 어서 내려오렴."

"네에! 아싸, 신난다!"

천우가 폴짝폴짝 뛰면서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최충의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신문을 스윽 치웠다.

"엉뚱한 녀석이로군."

"투자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인 걸까요?"

"글쎄."

그리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허나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일주일에 한 번씩 오금자에게 과외를 받으니 마샤가 쑥쑥 자라났다.

오금자는 천우에게 '체스터 카렐 식' 투자에 대해 설명하고 실 예를 들어서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녀가 강조하는 건 가치투자였다.

천우는 콜라를 마시면서 그녀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오금자는 천우에게 하루에 한 번, 그것도 한 잔만 콜라를 허락했는데 탄산은 뼈에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1929년에 미국에는 대공황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단다."

"책에서 봤어요! 물건은 많이 만드는데 사주는 사람이 없어서 경제가 파탄 났다고 했어요!"

"그래, 역시 똑똑하구나. 그런 것을 두고 과잉생산이라고 말해."

"과잉생산!"

"옳지!"

천우는 배움의 자세가 아주 적극적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스승도 배움에 적극적인 제자를 싫어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오금자는 그런 천우가 너무나도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천우를 무릎에 앉혀놓고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첩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대공황 때에는 미국 전체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단다. 만 개가 넘는 회사가 도산했었으니까.

"빨간딱지!"

"그래. 차압딱지가 붙는 그 부도 말이야. 증조할아버지께서도 그 당시에 투자했던 기업들이 전부 침체되어서 손해를 많이 보셨단다."

"아아···!"

그녀는 소녀이던 시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그린 그림에는 그녀의 눈으로 본 세상과 그 역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대공황을 연상케 하는 어두침침한 하늘과 엄동설한에 깡통의 횃불 하나로 버티는 거리의 부랑자들, 그리고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되어 절망하는 샐러리맨들까지.

굳이 사진이 없더라도 충분히 그 시절이 이해가 되었다.

"우와, 마치 만화에 나오는 얘기 같아요! 헌데 그런 위기를 증조할아버지는 도대체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극복하지 않으셨어. 이용하셨지."

"이용한다고요? 투자를 했는데 회사가 망할 뻔했다면서요."

"그래, 그랬지. 하지만 천우야 중요한 건 회사의 내실과 경영진의 도덕성이야. 아무리 경제에 공황이 와서 빨간딱지가 나붙는다고 해도 결국 자생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

"어떻게 자생을 하는데요?"

"다른 회사와는 다른 경쟁력, 기술력, 뛰어난 인력 등이 회사를 도생시키는 거야. 이 삼박자만 갖춰져 있다면 회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아."

"아하, 지금의 1달러가 10년 후의 1달러일 수는 없다. 회사 역시 그렇다!"

"증조할아버지의 책을 많이 읽었구나."

"네!"

"장하구나. 어쨌든 증조할아버지는 대공황에 바닥까지 떨어진 회사의 주식들을 다시 사 모으기 시작하셨단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었지. 하지만 10년 후, 주가가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어. 꽉 막혀 있던 경제가 다시 활황을 되찾은 거야."

"오오!"

"그 회사 중 하나가 바로 천우가 마시고 있는 그 음료수를 만든 회사란다."

"우와! 대단해요!"

"알겠니? 투자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위기가 왔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란다. 오히려 그때가 지분을 늘리기 좋은 기회인 거지."

"아아! 위기를 이용할 줄 알아야한다!"

"그래, 우리 강아지. 장하구나."

대학에서의 배움과는 다른, 할머니의 동화와 같은 교육이 천우의 뇌를 자극했다.

그러자, 마샤가 업데이트를 시작했다.

-AI마샤의 업데이트가 진행 됩니다···.

마샤는 오늘 총 네 번의 업데이트를 끝냈다.

투자에 대한 과외를 받는 동안 천우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네 개나 발견한 것이었다.

머리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이게 바로 진화라는 것이구나!'

그는 슬슬 진화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오후에도 진화에 열중했다.

마샤의 경험치는 책에서도 나온다고 했으니 꾸준히 책을 읽는 것도 천우에겐 이득인 셈이었다.

오늘 천우는 걸어서 무려 유럽까지 행상했던 장사꾼 최옥산의 일대기를 읽기로 했다.

"최옥산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최옥산은 세종재위기에 살았던 장사꾼인데 백달원으로부터 이어지는 보부상단원으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지금의 인도로 원행을 떠나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흔하디흔한 향신료가 유럽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싸다는 걸 알게 된 최옥산은 조선과 왜에서 사들인 금, 은을 인도에 가져다주고 향신료를 사서 중동아시아의 모래바람을 뚫을 결심을 했던 것이다.

허나 첫 원행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사막이라는 개념조차 잘 몰랐던 그는 중동아시아의 모래밭을 지나다가 동료 네 명을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강도를 당해 가진 것에 절반을 잃었다.

최옥산은 여기서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남은 향신료를 가지고 중앙유럽에 닿았고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황금을 거머쥐게 된다.

서양에서 받은 황금으로 용병을 고용한 그는 배를 타고 다시 인도로 향한다.

아예 인도에 상단의 원행 방을 차린 그는 다시 조선과 왜를 오가면서 금, 은을 모았고 인도와의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인도에서 쌓은 부는 다시 유럽으로 향했고, 그는 실로 어마어마한 재물을 축적하게 되었다.

최옥산의 일대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절로 갸웃거려지게 만드는 글이었다.

"세종치세에 글로벌 무역이라고···?"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역사서에 보면 이미 통일신라시대부터 파식이니 대식이니 하는 중동과의 무역이 성행했었고 심지어 3세기의 유물 중에는 페르시아에서 만든 자기를 신라로 들여온 것도 있으니까요.

"오호라."

흥미로운 글이었다.

특히나 최옥산이 일찍이 해외로 시장을 넓혔었다는 점.

그것은 다시 말해서 황금이 한국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사실이었다.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르다보면 황금의 위치를 찾을 지도 모르겠는데?"

-AI마샤의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완료되었습니다.

"이번엔 또 뭘 업데이트 했는데?"

-지도의 기능을 업데이트했습니다. 지금까지 AI마샤가 2020년대 미래의 인터넷에서 수집했었던 정보들을 바탕으로 목표물을 추적할 수 있도록 지도검색기능을 전 세계로 확대하였습니다. 이제 지형, 지물의 특징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습니다.

"호오, 그것 참 편리한 기능이로군? 좋아, 앞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황금을 추적해보자고."

천우는 일확천금만을 노리는 바보는 아니었지만 마샤를 업데이트하는 김에 황금까지 찾는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책을 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똑똑.

노크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최충의였다.

정오쯤에 회사로 출근했다가 돌아온 최충의가 천우가 뭐하나 궁금해서 서고를 찾은 것이었다.

"뭘 하고 있었느냐."

"독서요!"

"그래, 좋은 자세구나."

약간 쌀쌀맞지만 그래도 천우에게 관심이 꽤나 많은 최충의였다.

천우는 이제는 그를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와 진심으로 친해지겠다고 마음먹었다.

오금자가 천우의 경제학 스승이라면 최충의는 경영학 스승이 되어줄 사람이 아니겠는가.

회사에서 돌아온 최충의에게 천우가 말했다.

"가방 주세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뭐? 허참, 가방이 너보다 클 것 같은데."

"헤헤, 괜찮아요! 주세요, 들어드리고 싶어요!"

"흠, 뭐 그렇다면야. 따라오너라."

"네, 할아버지!"

서류가방은 꽤나 묵직했다.

도대체 이 안에는 뭐가 들어있기에 이렇게 무거운 것일까.

'그나저나 가방이 엄청나게 낡았네. 그렇게 돈을 벌어서 다 어디에 쓰는 걸까?'

최충의는 가문을 대표하는 집은 상당히 화려하게 꾸미지만 자시 자신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의 유일한 사치는 담배였다.

향락과 사치, 그리고 흥청망청 이라는 단어는 최충의 사전엔 있지도 않았다.

'그래, 사람이 좀 차가워도 배울 첨은 참 많은 양반이지.'

낡고 커다란 서류가방을 들고 뒤뚱뒤뚱 걷고 있던 천우에게 최충의가 불현 듯 물었다.

"천우야. 이 할아비가 뭐하나 물어보자."

"뭔데요?"

"어째서 일본 부동산이 뜰 것이라 생각한 게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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