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12화 (12/202)

6.

며칠 후, 월요일.

쌍견마차에 커피를 잔뜩 실은 천우 모자가 공단 앞에 도착하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사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었던 한희연은 약간은 주춤거리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시대를 풍미했었던 연예인이 아니던가.

그녀는 속으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여기서 얼굴이 팔린다면 혹시나 재기할 때에 타격이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엄마잖아. 아들을 이런 공단 구석에 쳐 박아둘 수는 없다고!'

이성과 감성이 서로 주먹다짐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천우가 자필로 쓴 피켓을 꺼내들더니 이내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차가운 냉커피 팔아요! 시원한 냉커피가 한 잔에 단돈 100원!"

장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 거야 천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는 적어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천우가 평범한 중년의 남자였다면 이런 싸구려 멘트가 먹힐 리가 없었다.

허나 그는 이제 여섯 살의 꼬마였다.

"어머나, 쟤가 커피를 한다고?"

"꼬마야, 올해로 몇 살이니?"

지나가던 공장 여직원들이 천우를 보곤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여리고 여린 여섯 살 꼬마가 냉커피를 판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그 모습을 보려고 하나 둘 운집하기 시작하니 벌써부터 천우 옆으론 사람이 다가올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희연은 깨달았다.

자신이 고민하건 말건 천우는 어디를 가든 빛을 발하는 아이라는 걸 말이다.

헌데 그 빛이 반사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천우가 손님을 끌어와 커피 취향대로 프림과 설탕을 아래 깔아주면 커피를 부어 섞어주고 돈을 받는 역할을 해주었다.

헌데 그러는 동안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라? 한희연 씨 아니세요?"

"네, 맞아요."

"어머나! 언니, 팬이에요! 사인 좀 부탁드릴게요!"

"···네? 제가 사인펜을 안 가져와서요."

"괜찮아요! 제가 가지고 나올게요."

한희연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희연에게 시선을 쏟았다.

"한희연이다!"

"어디, 어디?!"

"우와, 진짜 한희연이네?! 가서 사인받자!"

순식간에 공장단지 내에 있던 사람들이 쏜살같이 몰려들어서 한희연에게 사인을 받겠다고 몰려들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은 한 물 갔다고 생각했었지만 남자도 아니고 여성팬들이 이렇게 대거 몰려들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언니, 예뻐요!"

"고마워요."

"다시 TV에 나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꼭 그럴게요."

대중들에게 잊혀진 줄 알았던 그녀는 오늘 장사로 인해 힘을 얻었다.

천우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어머니 정도의 미인이 대중들에게 외면당할 리가 없지.'

공단에는 적어도 수 백 명의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물론, 한희연을 좋아하던 팬들은 대부분 중고생들이지만 연예인이라는 특성상 여자들도 여자연예인이 등장하면 관심을 갖기 마련이었다.

천우는 어머니를 장사에 끌어들여서 무작정 고생을 시킬 생각이 아니라 이런 관심을 받아서 조금이나마 대중에게 잊혀지는 공포감을 줄여주려 했던 것이다.

그는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어머니의 자존감이 더욱 극대화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커피, 커피 팔아요!"

"어머나! 이 꼬맹이가 귀여운 것 좀 봐! 얘, 이모한테 뽀뽀 한 번 해주면 500원 줄게!"

"허어, 그런 서비스는 안 합니다! 나중에 누적 판매량 천 잔을 기록한다면 모를까!"

천우는 조그만 손을 좌우로 가로저으며 뽀뽀는 못 해주겠다고 튕겼다.

그 모습에 여자들은 더 난리였다.

"꺄악, 귀여워! 꼬마야, 이 누나는 안 되겠니?"

"허참, 안 된다고 해도 그러시네! 자자, 줄 서세요! 커피 다 떨어집니다!"

"잠깐, 그나저나 한희연 아들이 천재라고 하지 않았어? 꼬마야, 맞니?"

"아이큐가 높냐고 물으신다면 맞다고 대답해드리지요!"

"어쩐지. 얘, 이 누나랑 결혼하지 않을래?"

"위로 네 살, 아래로 두 살까지만 커버 가능합니다!"

"오호호, 말도 어쩜 저리 잘할까?!"

분명 150인분을 타왔는데 줄은 무려 300명 이상 서서 이대로라면 불과 10분도 안 되어서 커피가 동날 판이었다.

천우는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주변 사람들과 꽤 오래 교감했다는 생각이 들 때, 마침 장사할 물량이 동나 있었다.

"천우야, 커피 다 팔렸다!"

"네, 엄마! 들으셨죠? 커피 다 팔렸습니다! 그럼 저희 모자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시고, 돈 많이 버셔서 성공하시고, 나중에 잘 생긴 남편 만나서 유복하고 다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여섯 살의 앳된 목소리에서 어찌 저런 카랑카랑한 음색이 나올 수 있는 건지, 관객들은 그저 배를 잡고 웃을 뿐이었다.

물론, 커피를 못 마셔도 한희연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으니 그녀들은 후일을 기약해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우는 첫 장사를 마무리 짓곤 개달구지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한희연은 돌아오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소녀처럼 말이다.

"엄마."

"응?"

"기분이 좋아 보여요."

"그래, 기분이 좋네. 우리 아들 덕분에 이 엄마가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어."

"헤헤, 엄마는 웃으면 더 예뻐요!"

"···내 새끼. 고마워. 엄마는 천우가 엄마 아들이라서 너무 행복해."

"헤헤, 뭘요. 나도 엄마 아들이라 행복해요."

전생의 천우였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못했을 말이다.

허나 그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허울 좋은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점점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천우는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우리 아이스크림 사먹어요!"

"천우가 사주는 거야?"

"응! 좋아요, 내가 사줄게요."

두 모자는 사이좋게 둘이서 나누어먹는 쌍쌍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리고 개들을 먹일 간식도 조금 샀다.

"엄마, 쪼개주세요!"

"그래. 충식이 형제도 간식을 좀 줄까?"

"네!"

"헥헥!"

충식이 형제와 함께 슈퍼 평상에 걸터앉은 모자는 손을 꼭 잡은 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천우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잘해야겠다. 전생의 어머니 몫까지 더 잘해드려야겠어.'

그는 불현 듯 한희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드릴게요."

"어머나? 호강이라니, 벌써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헤헤, 책에 다 나와요."

"호호, 그래. 우리 아들 덕분에 호강 좀 해보자."

진심이었다.

이 행복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러자면 천우 본인에게 힘이 있어야 할 터, 그는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

CNN방송이 흘러나오는 아침.

천우는 일주일 동안 모은 돈을 꺼내어 최호명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대뜸 돈을 건네는 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니?"

"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응? 그게 뭔데?"

"자동차 회사 주식이요."

천우는 조부의 생일선물로 프라모델과 주식을 선택했다.

설마하니 여섯 살배기 아이가 주식을 선물로 줄 것이라곤 아마 생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최호명이 먼저 놀랐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들을 쳐다보았다.

"주, 주식을 사겠다고?"

"저는 어리니까 아빠가 주식을 구매해주세요."

최호명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일단 아들을 자신의 무릎에 앉혀놓았다.

주식이라는 말을 또 어디서 들었나 싶었던 것이다.

천우는 대략 한 달 전쯤에 최호명에게서 주식이라는 얘기를 스치듯 들었었고 그 얘기를 지금에서야 꺼내들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최호명은 기억력이 천우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걸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행여 안 좋은 바람이라도 들었을까봐 아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식이라는 게 뭔지 알아?"

"아빠가 저번에 말해주셨잖아요. 제 사업에 투자하고 싶다면서."

"···그랬나?"

"조각!"

"아아! 맞다!"

그제야 최호명은 아들에게 바람을 넣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우는 뭔가 큰 깨달음을 었었다는 듯, 놀라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자동차 회사를 갖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꿈을 제가 이뤄드리고 싶어요."

"허어, 넌 정말 속이 깊구나···."

사실 천우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킬 도리가 있다면 지키고 아버지까지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음, 그래. 아무리 한 주의 주식이라도 그걸 손자에게서 받는다면 할아버지께서 상당히 좋아하실 거야. 더군다나 그 돈을 네가 직접 벌었잖니."

"정말 그럴까요?"

"당연하지. 아무튼 아빠가 주식을 한 주 사서 너에게 가져다줄게. 유가증권 그대로 가져올 테니 할아버지께 드리렴."

"유가증권이 뭔데요?"

"응, 종이로 된 일종의 문서야. 그걸 가지면 아마 받는 사람의 기분도 아주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

"네! 고마워요, 아빠! 아빠 최고!"

"하하, 그래. 아무튼 한 주만 사서 할아버지께 드리자꾸나. 지금 태평양 자동차는 미래자동차에 인수되었으니, 미래 주식을 사면 될 것 같은데···."

신문에는 오늘 미래 자동차의 주식이 한 주에 35,000원 쯤 한다고 나와 있었다.

최호명은 천우가 건네 준 48만원 중에서 45만원을 다시 돌려주었다.

"이건 한 주를 사고 남는 돈이니까 그대로 가지고 가서 저금하렴."

"네! 감사해요, 아빠! 아빠가 최고야, 잘 생겼지, 근육도 빵빵하지, 똑똑하지!"

"하하, 이놈! 이런 귀여운 놈!"

최호명은 아들이 귀여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

아들을 껴안고 얼굴을 비비고 난리가 난 최호명을 바라보며 한희연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봐요, 최 씨 부자들. 이제 유치원 가야지. 그리고 나는 왜 빼놓는데? 약간 서운해지려고 해."

"헤헤, 엄마도 최고야! 몸매도 예쁘지, 얼굴도 예쁘지, 마음도 예쁘지!"

"그치? 내 새끼!"

이젠 부모님께 아양을 떠는 것도 꽤나 자연스러워졌다. 언젠가 나이를 먹어서 천우가 최호명보다 커지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는 가끔 이렇게 부모님을 기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아침이 금세 지나가고 천우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부자가 출근과 등원으로 집을 비우면 한희연은 밀린 살림을 하다가 4시에 맞춰서 유치원으로 향한다.

충식이 형제를 산책시킬 겸,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어느 새 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걸어오는 것이 한희연에겐 또 다른 하나의 낙이 되어버렸다.

모자는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의 슈퍼에 앉아서 설탕과자, 그러니까 흔히 뽑기라고 부르는 걸 해먹었다.

동네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긴 했지만 설탕을 가열해서 식소다를 섞는 그 과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희연은 원래 몸매관리 때문에 단 것과 기름진 것을 멀리했으나 아들과 다니는 요즘 들어 가리는 것이 없어졌다.

덕분에 약간 살이 붙긴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아들과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그건 천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휙휙휙!

국자에 설탕을 붓고 연탄불 위에 올려놓으면 맑은 설탕물이 생긴다.

두 모자는 그 안에 식소다를 조금 넣고 휘휘 저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각종 과일맛이 나는 색소를 넣었다.

"엄마, 이것 봐요! 오늘은 포도맛이야!"

"짜잔! 엄마는 파인애플!"

"이따가 아빠 가져다 드리면 좋아하실까요?"

"물론이지! 맥주 한 잔 하라고 드리면 아주 좋아할 거야."

"헤헤, 신난다!"

행복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 소박한 일상이 천우에겐 행복 그 자체였던 것이다.

허나 인간에게 시간은 유한하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어머니와 이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서글퍼졌다.

기왕지사 그렇다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해드리고 싶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유치원 친구들이 그랬는데, 자기네 엄마들은 앞으로 커서 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데요."

부모가 원하는 자식의 미래는 그 시대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전체적인 틀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자가 들어가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 정치인, 법관, 유명인사 등이 될 것이다.

허나 한희연은 진심으로 천우가 어떤 사람이 되던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아들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엄마는 천우가 어떤 사람이 되던 상관없어. 엄마는 그저 천우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나쁜 사람만 빼고요?"

"그래, 나쁜 사람만 빼고."

"킥킥, 그럼 이렇게 쪼그려 앉아서 맨날 뽑기만 구워야겠다!"

"호호, 그래. 뽑기나 굽자꾸나. 엄마도 좋아."

그녀는 진심이었다.

천재적인 머리를 썩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앞에서 절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게요."

"그래, 뭘 하든 정직하게만 자라줘."

정직한 사람이 된다고 100%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 정말 자잘한 죄 한 번 안 짓고 사는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다.

허나 최소한 부모님에게 자신을 보일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노라, 천우는 그리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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