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9화 (9/202)

4.(2)

일주일 후.

천우네 집은 한바탕 난리가 나버렸다.

유치원에서 했었던 아이큐검사에 대한 결과지가 집으로 도착했던 것이다.

아침부터 신문을 읽고 있던 최호명은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아이큐가 얼마라고?!"

"···189래요.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아이큐측정회사에서는 방법이 따라서 10~20의 차이는 있지만 천우는 소위 말하는 '천재' 혹은 '영재'라고 못을 박았다.

허나 이걸 받아들이는 부모 입장에서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최호명은 회사에 나가는 것도 미뤄둔 채 천우를 데리고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두뇌전문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강남 시가지 한 복판에 위치한 정신과 병원.

이곳은 지능지수 판별에도 대단한 조예가 있었다.

소아정신과 박사 이주현은 천우에게 몇 가지 문제를 내주었다.

그건 수학공식을 아무리 달달 외고 있다고 해도 풀기 힘든 것이었다.

이를 테면 '46+12는 코끼리고 71-10은 뱀인데 88x11은 악어다. 그렇다면 65-15는 무엇일까'라는 식의 다소 난해한 문제들이 즐비해 있었다.

허나 이 안에는 반드시 어떠한 규칙이 있었고 그것을 얼마 만에 풀어내느냐에 따라서 IQ지수가 판단되는 것이었다.

천우는 문제가 나오는 족족 답을 말해주었다.

"답은 11이에요."

"어째서 그렇지?"

"잘 보세요···."

천우는 이 답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아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노머신이 아무리 많은 CPU를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사칙연산 없이는 절대로 답을 도출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노머신 안에는 공식이 남아 있었고 천우는 그것을 그대로 박사에게 읊어 준 것이었다.

답과 그 과정을 전해들은 이주현 박사는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아무래도 측정이 잘못된 것 같네요."

"아하, 그럼 우리 아들은 천재가 아니라는···."

"아니요. 그게 아니라 189라는 수치는 평가 절하가 된 것이라고요."

"절하요···?"

"이 문제는 멘사에 가입하기 위해서 영재후보들에게 풀라고 내는 문제들입니다. IQ190대 천재들은 이걸 10초 안에 풀어내고 180대는 20초 안에 푸는 것이 정상입니다. 헌데 아드님은 그걸 넘어섰잖아요."

"허어! 그렇다면···."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자신은 없습니다만 국제기준으로 보았을 때 아드님은 190이상입니다. 200에 가깝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죠."

최호명은 한희연을 쳐다보았고 이에 대한 답을 구했다.

허나 아무리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곤 해도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한희연은 약간 당황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우리 아들은 그저 약간 똑똑한 정도였지 이정도로 뛰어난 천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압니다. 천재는 겉으로 봐선 잘 모를 때가 많죠. 하지만 이렇게 잠재된 능력이 자기도 원치 않을 때 막 터져 나옵니다. 지금이 딱 그럴 때라고 볼 수 있겠네요."

"허어."

"뭐,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이정도면 멘사 회원자격은 차고도 넘치겠네요. 한국에 멘사지부가 없음이 안타까울 정도네요."

병원을 나오며 최호명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들을 쳐다보았다.

혹시 심경에 뭔가 변화라도 생긴 걸까?

천우는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 아빠?"

"오오! 우리 집에서 천재가 나오다니! 내가 대학교 때 IQ가 고작 95라고 주변에서 얼마나 놀렸는데! 도대체 공부를 어떤 머리로 하는 거냐면서 주변에서 얼마나 놀렸는 줄 알아?! 이야, 이것 참! 하늘이 우리 집에 이런 인재를 내려주시나?"

역시, 아들을 매우 아끼는 만큼 그의 천재성에 기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최호명이 호들갑을 떠니 천우의 표정도 매우 밝아졌다.

"아빠도 제가 천재라서 좋아요?"

"물론이지!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보다 기쁠 수가 있나? 안 그래, 여보?"

기쁜 건 한희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요, 당황스럽긴 하지만 기분은 좋네요. 우리가 천재를 낳다니."

"이게 다 당신 덕분이지. 원래 머리는 엄마를 닮는다잖아!"

생물학적으로 보면 아들의 지능은 아버지를 닮는 것이 어느 정도 정설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착각 덕분에 두 부부의 금실이 더욱 좋아졌다.

미칠 듯이 기뻐하던 두 사람, 그러다가 불쑥 한희연이 물었다.

"천우가 천재 판정을 받았으니 아버님도 곧 알게 되시겠죠? 곧 신문사 인터뷰를 하기로 했잖아요."

"으음. 뭐 그건 그렇지."

"당신 아들이 이런 천재라는 걸 알면 아버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질까요?"

최호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버지는 머리만 좋다고 누군가를 인정할 성격은 아니야. 물론 신문에서 손자를 보면 좋아는 하시겠지. 원래 애들을 좋아하시니까. 하지만···."

천우는 지금까지 쭉 집안의 인정을 받지 못한 자손이었다.

워낙 자손을 아끼는 최충의지만 천우가 태어나면서 자신의 아들이 좌천되었으니 사실 속으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과연 천우를 인정할 수 있을까?

천우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장은 그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어.'

과연 천우가 어떻게 인정을 받을까.

그건 현보 그룹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하면 답이 딱 나오는 문제였다.

1960년대 광산펀드로 우연히 거액을 거머쥔 이후에 70년대 강남개발에 편승해서 지금의 대기업을 일군 사람이 바로 최충의였다.

광산을 구매했을 당시, 최충의는 현보 상사라는 작은 회사를 가지고 있었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워낙 집안이 엄격했던 터라 그는 송아지 두 마리를 팔아서 만든 돈으로 상사를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현보 상사는 동남아에서 가지고 온 값 싼 직물과 설탕 등을 국내에 팔아서 이득을 남기는 중소기업이었다.

1960년대 중반, 현보 상사는 미군기지로 들어가는 식자재를 납품해서 번 돈으로 물류기지를 인수하였다.

그 회사의 이름이 초연 상사, 그 유명한 몰리브덴 광산인 초연 광산의 소유주였던 회사다.

초연 상사는 일제 강점기의 폐광을 다수 인수하여 가지고 있었던 상태였는데, 급격한 현금부동화로 회사가 망하자 이걸 현보 상사에게 끼워서 팔았다.

당시에는 상업가치가 제로라고 평가된 초연 광산은 산지를 싸게 가지고 온다 치고 사올 정도로 헐값에 끼워 팔기가 되었다.

헌데 그 광산에서 희토류금속이 발견된 것이다.

최충의는 정말 광산에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싶어서 지질학자들 몇 명을 보냈다가 우연치 않게 귀중한 금속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한때 대란을 일으켰던 몰리브덴인 것이었다.

몰리브덴 수출량 1위는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이 몰리브덴 수출규제를 걸어버리면서 그 값이 천정부지기수로 뛴 것이었다.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에 광산이 개발되니 최충의가 떼돈을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 최충의는 부동산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의 첫 투자 지역은 강남, 당시의 강남은 강북에 비해서 상당히 낙후되어 있었고 여전히 사방천지가 논밭이었다.

아직은 농업지역에 불과했던 강남이 개발될 것이라는 걸 그는 과연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바로 직감과 인맥 덕분이었다.

최충의는 대한민국이 서서히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서울 역시 조만간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중앙정보부의 지인이 남서울이 개발될 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최충의는 강남의 땅을 대규모로 매입한 후, 그중 금싸라기 2/10를 정부에 넘김으로 인해 개발권까지 얻게 된다.

그 결과는?

당연히 대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970년대, 아파트 건설붐으로 인해 서울 각 지역에 아파트를 때려 지었지만 미분양 사태가 벌어졌다.

건설붐으로 인해 공급물량과잉사태가 벌어져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허나 이 또한 우연치 않은 계기로 일이 풀렸다.

바로 오일쇼크였다.

미국의 이스라엘 비호로 인해 터진 중동갈등이 기름 값 동결 및 생산 감축으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인 오일쇼크가 터진 것이었다.

이때 안전자산으로 부동산이 급부상하면서 현보 그룹은 아파트의 물량 전부를 해소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한마디로 운이 미칠 듯 좋았던 셈이다.

이렇듯, 최충의는 자신의 인생을 반쯤 운에 맞긴 사람처럼 보인다.

허나 사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겐 승부사 기질과 사업가적 기질이 풍부했다.

한마디로 그는 타고난 '기질'을 가진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의자에 앉아서 펜대나 굴리는 애송이들은 절대 사업을 할 수가 없다. 그놈들에겐 기질이라는 것이 없거든.'

그렇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건 바로 기질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이라도 담이 작으면 절대 사업체를 이만큼 키울 수 없었을 것이고 그건 타고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질, 기질이 뛰어난 손자를 본다면 천하의 최충의라도 어느 정도 마음이 흔들릴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마침 판은 짜여졌다. 판에 그림만 그려준다면 게임 끝이지.'

천우는 판을 점점 자신 쪽으로 끌어오기로 마음 먹었다.

***

며칠 후,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마침 한국에서 아이큐 190이상, 추정 200이라 생각되는 천재가 나왔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었다.

원래 오늘의 취재진은 한강일보 연예부 한 팀 뿐이었지만 천우가 수재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타 신문사의 사회부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기자들은 도대체 천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인지 궁금해서 그녀와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오가 지나고 슬슬 유치원이 끝날 시간이 되자, 한희연은 개달구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기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뭡니까?"

"남편이 쌍견마차라고 부르는 우리 아들 전용 고철수집기예요."

"무, 무슨 수집기요?"

"고철이요. 우리 아들의 취미가 좀 독특해서 하루에 한 시간씩 이렇게 고철을 모으고 있죠."

기자들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철을 모아요? 혹시 용접이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요. 우리 아들이 천재라도 용접은 할 줄 몰라요. 가르쳐 준 사람이 없거든요. 그저 고물을 팔아서 돈 벌어서 장사밑천 모으는 것이 좋은 가봐요."

"장사요? 무슨 장사 말입니까?"

"으음, 그건 기밀이라서 쉽게 발설하기 좀 그러네요. 아무리 꼬맹이라곤 해도 사업 아이템을 남에게 발설하면 좀 그렇잖아요?"

도대체 저 꼬마가 무슨 사업을 한다는 것일까.

기자들은 계속해서 한희연을 따라서 움직였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유치원 앞, 이제 막 천우가 나올 시간이 되었다.

한희연은 아들이 놀랄까봐 주의를 당부했다.

"아무리 역광이라도 플레시는 터뜨리지 말아주세요. 아이가 놀랄 수도 있잖아요."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잠시 후, 천우가 유치원에서 걸어 나왔다.

천우는 자신을 찍으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기자단을 발견하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왔군. 이정도면 신문에 담 쌓고 사는 사람도 다 알겠어.'

그는 드디어 제대로 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천우는 평소처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골목을 누비며 고철을 주웠다.

"우와, 카세트다! 기판 가격이 kg당 1400원정도 하니까 플라스틱 가격까지 따지면 적어도 1600원은 나오겠어요!"

"오늘은 운이 좋네? 천우는 좋겠다."

"헤헤, 다 엄마 덕분이죠."

기자들은 천우가 대략적인 시세를 알고 있는데다 알아서 총 견적까지 가늠하는걸 보곤 깜짝 놀랐다.

"얘, 고철을 수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한 달 쯤 되었죠."

"그런데 시세를 외우고 있어? 거기에 대략적인 가격까지 산출할 수 있고?"

"전자기판 스크랩은 kg당 1400원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플라스틱은 kg당 450원정도 하니까 이정도 무게면 1600원정도 나올 것이라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요."

"허어, 그런가?!"

이젠 조금 고차원적인 말을 해도 기자들은 그러려니 이해했다.

왜냐하면 천우는 천재였으니까 말이다.

한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천우와 한희연은 고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쯤 최호명이 회사에서 돌아왔다.

"아들!"

"와아아, 아빠다!"

기자들은 돈독한 부자사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들의 손이 더러워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천우 아버님께선 대기업의 총괄이사이신데 아들이 고물을 줍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렇지 않다니요."

"아아, 그럼···."

"당연히 자랑스럽죠. 세상에 이렇게 똘똘한 놈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랑스러워요? 이사님 연봉이나 소유 주식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돈이잖습니까."

"하하, 보잘 것 없다니요. 현보도 결국 여러분이 말하는 그 푼돈이 모여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푼돈을 하찮게 생각한다면 큰돈을 벌 수 없습니다."

"아아!"

"아들의 그런 기질을 아버지가 억압해서 막는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입니까."

기자들은 감탄했다.

그러면서 메모지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고 적어 두었다.

천우는 속으로 씨익 웃었다.

모든 것이 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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