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8화 (8/202)

4.

천우가 다니는 유치원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일 1회 야외활동을 하도록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는 이 시간만 되면 여느 또래의 아이들처럼 나가서 뛰고 놀고, 혹은 매달리고 점프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 야외활동을 했을 때엔 잘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서 천우는 자신의 폐활량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저 어려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그게 전혀 아니었다.

이제 막 6살이 된 아이가 5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할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근력과 지구력이 얼마나 좋은지 이 나이에 턱걸이를 30회 이상은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정도인데 만약 천우가 성인이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된다는 말일까.

지금까지 쭉 자신을 실험하고 지켜봐왔던 천우는 이제 드디어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젠장, 그저 조금 특별한 소년인 줄 알았더니 이건 그냥 괴물이잖아. 마샤, 어떻게 된 거야?'

-AI마샤는 원래 군사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병기를 만들 목적이었기에 명석한 두뇌와 최고의 신체,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이었죠.

'허어, 그래서 뇌하수체를 먼저 장악하도록 만든 것이었구나.'

-뇌하수체를 장악한 후, 각종 호르몬 분비를 위한 내분비기관과 근, 골격 체계까지 장악해서 사람을 아예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겁니다. 겉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인님은 지금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그럼 신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미성년에게 실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이론대로라면 지금 이대로 초인을 넘어선 경지가 계속 갱신 될 겁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AI는 스스로 진화하게끔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뿐만 아니라 신체도 점점 강해집니다.

만약 2030년에 AI마샤 프로젝트가 성공했었다면 지구는 온통 사이보그 천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나마 60억 분의 1 확률로 마샤에게 최적화 된 체질을 가지고 있었던 천우가 있었기에 마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와 궁합이 맞지 않다거나 새로운 체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말짱 허사였다.

그것이 바로 마샤의 실험체들이 떼로 죽음을 당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천우는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회귀하였고 신체와 두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게 되었다.

-근육이든 머리든 적당히만 사용하시면 됩니다. 아예 사용하지 않는 건 퇴화되기 마련이니까요.

'허참,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처음엔 무슨 각성제 같은 걸 먹었나 싶었지만 알고 보니 그게 전부 마샤에 의해서 생긴 일이었던 것이다.

이제 천우는 인간병기,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뭐, 그게 나쁜 일은 아니니까.'

두 번째 인생, 그건 천우에게 있어 단순한 기회를 넘어선 일이었다.

그날 오후.

어김없이 한희연이 쌍견마차를 끌고 천우를 마중하려 나왔다.

마차를 끌고 골목을 누비면서 고철을 줍는 동안 두 모자는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하고 놀았어?"

"아이큐 검사 했어요!"

"아참, 그랬었지. 검사는 잘 했어?"

"네! 문제가 쉬웠어요!"

"그랬구나. 역시, 우리 아들은 똑똑해."

"헤헤, 난 똑똑해!"

천우는 점점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의 칭찬에 중독되어서 자꾸 칭찬받을 짓만 골라서 하게 되었다.

'내가 비정상이 된 건가?'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어머니에게서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비록 한희연이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고 있었다.

전폭적인 지지와 칭찬, 그리고 공감이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다고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천우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교육법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어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천우가 50대 아저씨의 몸이었다고 해도 아마 이런 지지와 칭찬을 들었다면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천우는 아주 지극히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젠 정말 서로간의 유대감이 차곡차곡 잘 쌓여가고 있었던 두 모자였다.

그런 그들의 앞에 의외의 인물이 찾아왔다.

"한희연 씨. 오랜만입니다."

"박성호 이사님?"

"그렇게 전화를 드렸는데도 어째 되돌아오는 연락 한 통이 없을 수 있습니까. 이거 참, 섭섭한데요?"

박성호는 한희연의 전 소속사인 엘리트 기획의 대표이사 박태호의 사촌동생이다.

한강일보의 총괄편집장이자 사내이사이기도 한 그는 박태호의 소속사 연예인들의 스캔들이나 이슈를 무마시키는 역할을 주로 해주었는데 한희연 역시 여러 위기에서 구해주었었다.

더 이상 불러오는 배를 감추지 못해서 속도위반 발표를 하긴 했었으나 그 전까지 박성호는 거의 신들린 듯한 언론플레이로 그녀를 감싸주곤 했었다.

박성호는 몇 번이고 한희연에게 짧은 인터뷰를 요청했었으나 그녀는 한사코 거절하곤 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남편과 아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사 채면이 아주 말이 아닙니다. 제가 한희연 씨와 친하다고 아주 큰소리를 뻥뻥 쳐놓았는데 연거푸 문전박대를 당하다니 말입니다."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인터뷰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대중들은 당신을 점점 더 빠르게 잊어갈 겁니다. 지금이라도 간간이 신문에 이름이라도 내보내는 것이 완벽하게 잊혀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란 말입니다."

한희연의 동공이 찰나에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천우는 그걸 아주 또렷하게 캐치했다.

'어머니도 여자고 연예인이야.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얼마 전, 한희연은 아들의 예쁘다는 소리에 반색했었고 천우는 그것이 아직 연예계에 대한 약간의 미련이라고 생각했었다.

천우는 손을 번쩍 들었다.

"아저씨!"

"그래, 네? 천우지?"

"네!"

"네 백일잔치에 갔었어. 이야, 이렇게 큰 걸 보니 감회가 새로운데?"

"저도 그래요. 그런데 아저씨, 인터뷰가 뭐에요?"

"인터뷰? 쉽게 말해서 네 어머니를 돋보이게 해주는 신문 기사라고나 할까?"

"그걸 하면 엄마가 돋보여요?"

"물론이지! 그러려고 이 아저씨가 계속 찾아오고 있는 거니까."

사실, 박성호가 이렇게까지 한희연에게 목을 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엘리트 기획은 한강일보와 연계하여 CF촬영 건수를 많이 밀어주고 리베이트를 받았었는데, 그중에서 한희연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다.

청춘스타 중에서도 상당히 네임드가 묵직했던 한희연이 찍은 광고만 해도 신문지면 두 개 정도는 차지했으니 한강일보에게 있어선 한희연이 중요한 돈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녀가 빠져버리니 한강일보의 매출도 확 빠져버렸고 그 브로커로 활동했던 박성호에게 있어선 크나큰 타격이라 할 수 있었다.

헌데 한희연이 시집을 가면서 박성호에겐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현보 그룹의 며느리가 바로 한희연이라는 점이었다.

남편 최호명이 지독할 정도의 애처가인데다 그가 직책상 현보 그룹의 실세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잘만하면 지면광고를 현보에게 독점공급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자꾸 아내를 띄워주려 찾아오는 것이었고 한희연은 그걸 한사코 거절하는 것이었다.

물론, 엘리트 기획의 대표 박태호는 한희연의 친오빠 한진연의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동생이 대중들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도 있긴 했다.

하지만 박성호와 한희연은 어려서 친분이 단 1%도 없었기 때문에 그에겐 광고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천우가 그런 사정까지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 있어서 이번 인터뷰는 전혀 나쁠 것이 없겠다 싶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현보 그룹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일주일 후엔 내가 천재라고 다들 떠들고 다닐 텐데, 그걸 어머니의 공으로 묘하게 싱크로 시킨다면 회장이라는 그 노친네도 좋아할 수밖에는 없겠지.'

이해관계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인터뷰로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 천우는 그리 생각했다.

"엄마, 인터뷰 해봐요, 우리!"

"···천우야, 그건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왜요?"

"아빠 생각도 해줘야지."

"그냥 엄마를 인터뷰 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은 원래 누구 한 명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으으, 잘 모르겠어요. 엄마도 사람인데요? 우리 엄마는 예쁜 여자인데···."

순간, 한희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가정에게 있어 신문사 인터뷰는 긁어 부스럼일지 모르겠지만 한희연 본인에게는 대중과의 마지막 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 그녀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이다.

박성호는 그녀에게 슬그머니 명함을 내밀었다.

"형이 많이 걱정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요."

"저, 저는···."

"때론 꼬맹이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법입니다."

더 이상 뭘 더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나 싶었다.

박성호는 명함 한 장만 놓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한희연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그날 밤.

부부가 소주잔을 맞대고 있었다.

"천우는 자?"

"금방 잠들었어요."

아직도 박성호의 명함을 만지작거리는 한희연을 보며 최호명이 물었다.

"뭐가 두려운 거야?"

"···반반이야. 사람들에게서 잊혀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해보고 실망하면 어쩌나."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약간 떨려오는 아내의 손, 최호명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예뻐.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인터뷰 해."

"그거야 당신 생각이고···."

"아니야. TV 틀어봐. 당신보다 예쁜 여자가 어디 있나. 나, 이래 뵈도 한 때 미인대회 후원해줬던 사람이야. 여자 얼굴 보는 재주는 있다고. 봐, 그런 재주가 없었으면 당신 같은 여자를 만날 수나 있었겠어?"

남편의 장난스러운 충고에 그녀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정말요?"

"당연하지. 천우도 맨날 아주 노래를 부르잖아. 자기 엄마 예쁘다고."

"우리 집 두 남자 덕분에 내가 아주 살겠네···."

"인터뷰 날짜 잡히면 얘기해줘. 나도 좀 같이 끼게."

"알았어요."

두 부부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으려 하고 있었다.

그 현장을 바로 뒤에서 목격하고 있었던 천우는 슬금슬금 걸어서 다시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됐다. 아버지라면 어머니를 지지해 주실 줄 알았어.'

일주일 후에 분명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천우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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