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7화 (7/202)

3.(2)

저녁 7시.

천우는 회사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겸 반주 한 잔을 곁들이고 있는 아버지의 곁에 앉아 있었다.

한희연은 남편의 술잔을 채워주며 가만히 얘기를 들어주었다.

"3년 안에 결판이 날 거야. 만약 실패한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 세 식구 어떻게 해서든 먹고 살 수 있을 테니 걱정 말아요. 정 뭣하면 내가 다시 배우로 복귀해도 되잖아."

"···가장이 되어서 그럴 수야 있나. 아들이랑 고철이라도 주우러 다닐 테니 당신은 나만 믿어."

천우는 가만히 곁에 앉아 있다가 돌연 물 잔을 스윽 들었다.

"건배!"

"하하, 이놈 봐라? 건배는 어디서 배웠어?"

"아빠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건데요."

"내가 집에서 건배를 한 적이 있었던가? 뭐, 아무튼 간에 아들이 잔을 권하니 마셔줘야지. 건배!"

머리가 복잡할 땐 그저 한 잔 마시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허나 천우는 복잡할 것 없다는 걸 에둘러 알려준 것이다.

'괜한 걱정을 하시는군. 상황은 이미 아버지에게 유리한 대로 흘러가고 있는데 말이야.'

3년이라는 기간을 정한 건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것이 나중에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본격적인 엔고가 시작될 것이고 그때 철강업계는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만약 최호명이 한결을 따로 계열분리해서 나온다고 해도 승산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내에 팽배한 거래처 축소 등은 적합하지 않은 전략이었다.

천우는 앞으로 3년 간 회사를 도생시킬 방안을 찾되 최호명이 거래를 끊지 않았으면 했다.

'각자도생이 문제가 아니야. 지금은 있는 인맥을 최대한 모아서 결속해야 할 때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아빠,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

"우리 회사처럼 큰 회사도 고물을 사요?"

"그렇지. 지금처럼 소규모는 아니지만 단계별로 물건을 사들이고 있단다."

"그럼 아빠네 회사에 고철을 팔래요!"

"하하, 그럼 돈을 조금 덜 받게 될 텐데?"

"헤헤, 그래도 아빠한테 도움이 될 거잖아요."

"음···."

천우의 질문을 받은 최호명.

그는 3년을 버티기로 한 것이 결론적으론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 회사 밑에 딸린 입에 몇 개인데 허투루 사업을 할 수는 없지.'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음부터는 아빠네 회사와 직접 연결된 고물상으로 가자꾸나."

"네! 좋아요!"

한 편, 한희연은 부자가 이렇게 소통하면서 아들이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뿌듯했다.

다시 한 번 술잔이 오갔다.

그러면서 한희연은 남편과 가볍게 소주 한 잔 마시다가 불현 듯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아참, 그나저나 고철을 누가 조용히 매집하는 것 같다던 생각은 어때요? 맞았어요?"

최호명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도대체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철을 사재기하려는 움직임이 보여."

"사재기? 가격을 올리려는 건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가격을 올릴 것 같으면 차라리 이슈를 만드는 편이 나아. 당신도 잘 알잖아. 재계와 연예계는 소문이 민감하다는 거 말이야."

"하긴, 그건 그렇죠."

"마찬가지야. 이렇게까지 혈안이 되어서 철을 수집할 세력이 있다면 차라리 한 방에 업계를 쥐고 흔드는 편이 나을 거야."

"으음."

"저놈들, 뭘 어쩌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단순히 물량만 확보하려는 거야. 알아보니까 서울과 경기, 부산에서만 고철을 모으고 다른 지역은 건드리지 않더라고. 지금까지 저놈들이 가지고 간 물량은 포항제철이나 기타 철강회사들 대비 대략 1/20정도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압도적인 물량을 뭘 하려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 특수를 위해서 단순히 철을 비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금 임 부장을 미국으로 보냈어. 내 친구가 상무부에서 일하는 거 알지? 그 친구와 접촉해서 정보 좀 받아오라고 말이야."

"아아, 대학친구라던 그···."

"제이슨 말이야. 제이슨 골드너. 그 친구라면 제법 괜찮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거야."

천우는 인물검색으로 제이슨 골드너라는 사람을 검색해보았다.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제이슨 골드너라는 사람의 이름이 신문에서 몇 번인가 나왔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AI마샤가 검색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제이슨 골드너, 백제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와서 한국에서 수학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CIA에 스카우트 됩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 상무부에 들어가 2004년도까지 일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상무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책임으로 은퇴했습니다.

천우의 기억이 맞았다.

언젠가 미국 상무부 장관이 현보와 약간의 썸씽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천우가 원하는 완벽한 그림이 그려지는 셈이었다.

천우는 이제 곧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의미에서 술병을 들었다.

그리곤 아버지의 잔을 채워주었다.

"아빠, 힘내세요!"

"아이고, 우리 아들이 벌써 철이 다 들었네?"

천우네 집은 항상 신문이 넘쳐난다.

가끔은 최호명의 얼굴이 나오기도 하는데, 천우는 아버지의 얼굴이 나온 신문을 가져다가 그걸 보여주며 말했다.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신문에도 얼굴이 나오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유치원에서도 자랑하고 다니고 있다고요. 저는 아빠가 존경스러워요!"

"···고맙다, 아들."

아들의 존경한다는 한 마디, 자랑스럽다는 그 한 마디가 아버지에게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최호명은 금세 기운을 차렸다.

"그래, 잘 풀릴 거야!"

"헤헤, 잘 풀려라!"

천우는 아버지에게 힘을 주는 김에 그를 더욱 흐뭇하게 하게 해주기로 했다.

얼마 전에 아버지에게 말했듯이 진짜 장사를 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좋아요! 저, 돈 열심히 모아서 장사할 거예요!"

"하하, 그건 저번에도 말했었던 것 같은데."

"아니요, 진짜로요! 저, 커피를 팔 거예요!"

"뭘 판다고?"

"커피요! 공장에서 일하는 누나들에게 커피를 팔 거예요."

"오호?"

자칫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이걸 여섯 살배기가 해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천우가 장사를 한다고 해서 한희연의 몸이 편할 리는 없다.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것도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고 요즘 부쩍 피곤한데다 살까지 쭉쭉 빠지고 있었다.

헌데 이제 곧 한 여름인데 커피를 판다니, 한희연은 황당해서 그저 웃고 말았다.

"호호호! 정말? 공장에서 커피를 팔 거야?"

"네! 저번에 아빠랑 동네를 돌면서 봤어요. 공장에 누나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최호명은 약간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사이에 공장이 어디에 있는지 다 본 거야? 그리고 거기서 커피를 팔 생각을 한 거고?"

"네. 누나들이 손에 뭘 쥐고 있었는데, 엄마가 마시는 것과 비슷해보였어요. 그래서 그걸 팔 생각을 한 거죠."

아들에게 '끼'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행동력이 좋을 줄은 최호명도 미처 몰랐었다.

'이놈, 진짜 물건이 될 지도 모르겠는데? 하는 짓이 아주 대단해.'

그저 단순히 특이한 아이라면 모르겠지만 천우는 특이한 것을 넘어서 아주 구체적인 비전에 끈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최호명은 아들을 적극적으로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 아빠도 팍팍 밀어주마!"

"헤헤, 고마워요. 아빠 최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못 이룰 꿈을 아들이 이뤄줄 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허나 그건 천우가 아직 어떤 아들인지 모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꿈을 직접 이루게 해드릴게요!'

부자의 동상이몽이 꽤나 좋은 쪽으로 풀릴 모양이었다.

***

화요일 아침이었다.

오늘 유치원에서는 IQ검사를 한다고 무슨 종이 같은 걸 나누어주고 있었다.

"친구들, 오늘은 지능지수검사라는 걸 할 거에요! 문제지를 보고 답안지에 알맞은 답을 써넣으면 되는 거예요."

교사는 아이들의 앞에서 직접 답안작성요령을 알려주었고 아이들은 그걸 보고 답안작성 요령을 터득하였다.

물론, 이해력이 낮은 아이들은 아직 답안 자체를 작성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허나 교사들이 각각 아이들의 지능지수검사를 도와주기 때문에 답안작성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였다.

천우는 답안지를 받곤 고민에 빠졌다.

'큰일이네. 이걸 어쩌면 좋지?'

지능지수가 너무 높아도 큰일이지만 너무 낮아도 큰일이다.

너무 높으면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고 너무 낮으면 한희연이 크게 실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간만 갈까, 아니면 아예 검사를 거부해버릴까?

고민하던 그에게 마샤가 답을 주었다.

-앞으로 뭘 도모하시던 간에 지능이 높다는 건 큰 이점이 될 겁니다. 단 여섯 살 나이로 주식을 사서 대박을 터뜨려도 설득이 됩니다. 천재이니까요.

'호오, 그렇지. 앞으로 뭘하든 천재라면 설득력이 생기겠지.'

천우는 요즘 스스로도 깜짝 놀라곤 한다.

그는 어떤 책을 읽든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 스스로 읽은 적이 없는 책인데도 그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우고 있었다.

바로 나노머신 덕분이었다.

인터넷 속에 있는 지식들은 이미 저에게 다 흡수되어 있었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교과과정과 석박사 과정에서 배우고 익히며 갈고 닦는 것들은 천우에겐 무의미했음으로 공부라는 것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런 엄청난 두뇌를 위화감 따위 개나 줘버리고 잘 쓸 수 있는 방법, 바로 천재성의 발현이었다.

천우는 답을 내렸다.

천재성을 드러낸다. 다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말이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네!"

"시작! 다 같이 답안지를 작성해보아요!"

마샤 덕분에 만물박사가 된 천우에게는 과연 지식만 풍부한 것일까.

그건 절대 아니었다.

컴퓨터, 혹은 프로그램, 어플리케이션 등이 해줄 수 있는 모든 서포트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마샤 스스로가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인스톨 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답안을 작성하는 가이드라인까지도 만들어 사용이 가능하였다.

'아이큐 200쯤으로 맞춰보자고.'

-예, 알겠습니다. 답안작성 지원도구를 사용합니다.

천우는 문제지를 받자마자 답안지에 거침없이 체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때론 사칙연산과 같이 답이 명확한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대처법을 묻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건 마샤의 나노머신들이 회의해서 만든 결과로 답을 적어냈다.

한마디로 천우와 마샤, 나노머신이 전부 어우러져 답안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서 답안을 작성하고 나니 드디어 검사가 끝났다.

그동안에도 주변 친구들은 움직이고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천우만 홀로 문제를 잘 풀어냈다.

교사들의 칭찬세례가 이어진다.

"잘했어요! 이야, 우리 천우 어린이는 답안도 잘 만드네?"

"우와, 다했다!"

집에서만 어린아이처럼 굴 것이 아니고 밖에서도 어린아이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된 천우였다.

IQ검사가 끝난 후,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신체지수측정이 이어졌다.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는 물론 IQ이겠지만 그와 못지않은 것이 바로 신체발달일 것이다.

그런 부모들의 관심에 힘입어 유치원은 작년부터 IQ검사와 신체지수 측정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검사가 시작되기 전,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천우는 전문 체육 강사들과 함께 신체지수를 측정했다.

키와 몸무게, 신체사이즈 등을 측정해서 또래의 발달에 비해 느린지 빠른지 판단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천우의 키는 1미터 1센치미터, 또래에 비해서 약간 큰 편이라고 할 수 있었고 골격은 평균을 훨씬 상회하였다.

체육교사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야, 살은 별로 안 쪘는데 골격이 엄청 좋네?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 아이처럼 말이야."

천우의 근, 골격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마샤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그의 신체는 최적의 요건을 향해 성장해 나가고 있었는데, 그건 천우의 골격이나 근육이 가장 이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나노머신이 알아서 제어하고 내분비를 조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변화는 천우 본인이 가장 잘 느끼고 있었다.

"자, 이제 그만 나가서 놀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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