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래! 장하다, 내 아들."
천우는 과연 최호명을 실망시키지 않는 아들이 될 것이다.
그건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다음 날.
통학버스를 타지 않고 최호명의 차를 타고 등원했다가 쌍견마차와 같이 하원하게 된 천우는 한희연과 함께 골목골목을 뒤지고 다녔다.
아무리 잘 사는 동네라지만 외관이 뭐 그리 깔끔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아직 종량제봉투를 사용하기 전이라서 쓰레기를 버리는데 딱히 규칙 같은 것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더 그랬다.
그녀는 천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어때? 조금 더럽지?"
"그렇긴 하네요."
"천우야, 돈을 번다는 건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걸 단순히 주워서 팔아서 돈을 번다고 한다면 참으로 쉽게 돈을 버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러지가 않아. 때론 이렇게 더러움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란다."
확실히 더럽긴 했다. 하지만 그나마 타는 쓰레기와 안타는 쓰레기가 나뉘어져 있으니 비위가 상하는 넝마주이 정도는 아니었다.
천우는 전봇대 아래에서 쓰다가 버린 다리미를 주웠다.
"더럽긴 하지만 이런 건 돈이 되겠죠?"
"후후, 그래. 그럴 것 같구나."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이 보통 아침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고물을 줍는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수확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어디까지나 이건 한희연에겐 교육, 천우에겐 고물상에 출근도장을 찍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기에 불만은 없었다.
오늘 하루 한 시간쯤 돌아다녀서 건진 것은 다리미 하나, 고철더미 1kg 남짓이었다.
오히려 개들 산책을 시켰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은 후, 간식을 먹는 천우에게 한희연이 웃으며 물었다.
"내일도 나갈 거니?"
"네!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갈 거예요!"
"힘들지 않아?"
"아니요, 전혀요!"
"힘이 들면 그만해도 괜찮아."
"계속 할래요! 아빠가 끈기를 가진 사람이 되라고 말했었거든요."
솔직히 넝마주이를 해보니 아들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는 것이 썩 내키지 않는 한희연이었다.
허나 고생 한 번 해보지 않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사람보다는 적당히 고생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아들이 하겠다는 걸 말리기보다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마음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래봤자 하루에 한 시간인데 뭐.'
아이 교육에도 좋고 체육에도 좋을 것이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야 하는 일도 아니고 너무 비위생적인 물건은 한희연이 옆에서 제지를 해줄 수도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하네, 우리 아들."
"헤헤, 내일은 더 많이 벌어요, 우리!"
"그래, 그러자꾸나."
천우는 이런 나날이 쌓이다보면 모자간의 정도 더 깊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
대한민국에 분리수거가 정착된 것은 언제일까.
1977년도 쯤, 대한민국은 쓰레기로 인한 도시오염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문가들의 진단을 받기 시작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수거형태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대한민국은 벌이만큼 선진 쓰레기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에 연탄이 주 난방연료였던 만큼 연탄재는 물론이고 음식물쓰레기, 생활폐기물 등, 거의 모든 쓰레기가 전봇대 아래 아무렇게나 쑤셔 박혀 있기 일쑤였다.
이런 가운데 과연 분리수거라는 말이 가당키나 했을까?
물론, 분류수거라는 개념이 있기는 했으나 환경미화원이나 시민들이나 분리수거가 의무는 아니었으므로 일일이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는 일은 상당히 드물었다.
그러던 도중 1978년부터 점차 분리수거를 실시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제도적립이 진행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분리수거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서울이 배출시키는 하루 쓰레기의 양이 무려 2만 1천 톤에 달했다. 이걸 트럭으로 실어서 난지도에 파묻거나 태우는 것이 쓰레기처리의 전부였다.
한마디로 쓰레기를 수거해도 묻거나 태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정부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고철수집가나 재활용, 폐품 수집가들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고철수집가들은 주로 난지도에서 일한다.
현재의 쓰레기처리방식은 주로 태우거나 묻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분리수거를 위한 일정한 규율이나 법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쓰레기를 통째로 묻거나 태우기 때문에 난지도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들도 엄청나게 많다.
여기서 새로운 블루오션이 시작된다.
난지도에서 분리수거를 해서 직접 쓰레기 안에서 자원을 찾아 고물상에 되파는 형식이다.
해서 최근 들어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던 것이다.
분리수거 자체가 없는 이 시점에서 넝마주이라는 건 정말 하층민이나 하는 짓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2010년대에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폐지를 줍는 것과는 달랐다.
그야말로 쓰레기를 뒤져야만 진짜 제대로 된 돈벌이가 되었던 것이다.
허나 천우와 한희연은 쓰레기까지 뒤지지는 않고 중고제품이나 그나마 분리수거가 된 물건만 주워다 팔았다.
그러니 개달구지 하나를 채우는 건 어림도 없었고 일주일 내내 돌아다녀봐야 5천원 벌기도 빠듯했다.
허나 그 덕분에 천우와 한희연이 모자의 정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모자의 정을 쌓는다는 것, 천우는 그것이면 족했다.
그의 진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늘을 기점으로 한희연과 같이 고물수집에 나선 것이 벌써 2주일이 되었다.
그동안 천우 모자는 고물을 꾀나 모아두었고 한희연은 이제 슬슬 고물을 팔아치울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천우야, 오늘 아빠랑 같이 고물을 팔러 갈까?"
"네!"
오늘 아침 최호명에게 오후쯤 고물상에 갈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부리나케 일을 끝내고 오겠다고 했다.
아들이 처음으로 돈을 버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천우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마침 고철 값이 오르기 바로 직전이다. 아버지에게 약간의 힌트를 드릴 수 있겠어.'
고물계가 돌아가는 것부터가 이미 심상치 않다는 걸을 보여준다면 최호명도 뭔가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날 오후, 회사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온 최호명이 공사장에서나 쓰는 리어카를 꺼내왔다.
"아들, 고물상가자!"
"네, 아빠!"
"차곡차곡 물건을 실어보자.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최호명은 아들이 최대한 바르고 튼튼하게, 그리고 남자답게 커나가길 원했다.
유치원에서 맞고 올 바엔 차라리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자답게 맞서 싸우기를 바랐고 한량처럼 아버지 재산에 기대어 오렌지족 짓거리를 할 바엔 넝마주이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최호명의 바람을 천우가 아주 알뜰하게 채워주니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아들, 기대가 된다. 그치?"
"과연 얼마나 나올까요."
"글쎄다. 요즘 철 값이 꽤 많이 떨어져서 생각보다는 많이 안 나올 것 같은데?"
국제 원자재 가격은 상당한 안정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84년도 달러화의 절상으로 인해 원자재 값이 크게 오르기 전까지는 고철은 딱히 업계의 주목을 받지도 못했었다.
지금도 달러화가 점점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남미의 개발도상국과 중공 등지에서 철을 마구 퍼 나르고 있었기에 원자재 가격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고물이 주목을 받을 리가 없었다.
'만약 이런 와중에 고철 값을 15%나 더 준다면서 매입하면 너나 나나 그 사람에게 스크랩을 팔겠지. 이 자식들, 꽤나 날카로운 인터셉트였어.'
지금의 고철 스크랩은 제철소까지 대량으로 퍼 나를 수 있는 인프라가 없으면 고수익이 창출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상인들이라 할 수 있는 소형 고철쟁이들은 규모가 큰 자원회사에 고물을 가져다주어 재화를 벌여들었다. 그리고 대형 고물쟁이들이 돈놀이를 통해서 또 다시 돈을 벌어들이는 식이었다.
그런 대형 고물쟁이들의 지갑에 15%를 더 넣어준다면 아무래도 고철이 포항제철로 들어가는 일은 아마 없을 지도 모른다.
천우는 그런 동향을 보여주기 위해서 최호명을 고물상으로 이끈 것이었다.
오후 세 시.
최호명은 천우를 수레에 태우고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신화자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천우에게 돈의 사용처에 대해 물었다.
"이 돈으로 뭘 할 거니?"
"저금이요."
"저금? 무엇을 위해서?"
"돈을 모으고 싶어요!"
"하하, 돈을 모아? 그런 이후엔?"
그러고 보니 돈을 모아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해보지 않았다.
천우는 꾸준히 고철을 모을 것이다.
허나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큰일을 도모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천우에게 있어서 그 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래, 힌트를 드리는 거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2010년대와 비교한다면 5배, 어떤 것은 열 배 가까이 오른 것도 있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바로 과잉생산이었다.
과잉생산으로 인해 원자재 값이 많이 내렸다. 석유, 직물, 광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종목의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지는 적자행진이었다.
그건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림픽 특수네 뭐네 기대감이 팽배해서 그렇지 막상 무역수지는 얼마 전부터 적자기조였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원자재가격이 내려가면 당연히 수지가 맞아야 정상인데 오히려 그 반대라니 말이다.
그 해답이 과잉생산에 있었다.
이제 과잉생산의 끝에서 드디어 적자폭이 커져 경제가 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는 분명 징후가 있다. 이를테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앞서 천우가 생각해낸 철 값 인상과 같은 것 말이다.
천우는 그 힌트를 아버지에게 콕 집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마샤, 83년을 기준으로 글로벌 경제위기로 치달아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징후는 뭐가 있지?'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함께 달러화의 절상 및 절하 등이 있겠지요. 그리고 과잉생산으로 인한 정부의 물가하락 정책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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