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노머신 재벌 3세-3화 (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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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먹으며 자라난 마샤의 나노입자들에게는 각각 저장장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저마다 그 분야들이 달랐다.

어떤 입자는 사회, 어떤 입자는 정치, 어떤 입자는 신문, 뉴스 등으로 분야를 아주 세세하게 나누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그것을 중앙통제장치인 마샤가 유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마샤는 입자들이 가진 정보를 추려서 한 편의 보고서처럼 만들어냈다.

-검색결과를 말씀드립니다. 1983년도, 미국 상무부에서 달러화 절하 전략을 수립하고 1년 후엔 84년에 본격적인 협상안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85년에 플라자 합의를 통해서 G5가 합의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 일본과 독일의 자국화폐 절상방안이 결정됩니다. 2017년에 노환으로 사망한 전직 CIA요원 마크 톰누스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1983년도부터 원자재 가격 조작을 위한 모종의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미국의 모직산업이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와 더불어 일본산 건설자재와 공산품의 가격 인상으로 인하여 한국의 대 아랍권 수출량이 무려 40%나 증가했을 당시에도 그들은 엄청난 특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 내 고철 값이 증가하였고 철근은 품귀현상을 빗었다고 마크 톰누스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한국 내부에서도 고철을 매입했다는 소리?'

-그렇습니다. 아주 약간씩이지만 고철 값이 오르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1983년 5월부터 9월까지 점차적으로 15%정도 가격이 오르게 되는데, 포항제철로 들어가는 스크랩을 조금 더 높은 단가로 사들이는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간에서 사재기를 한 것이군.'

-맞습니다. 15%정도 웃돈을 주고 고철 스크랩을 수거해서 압축한 후, 그걸 철근으로 만들어서 비축한 것이죠.

'비축이라!'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한국에서 수거한 고철을 외국으로 가지고 가서 다시 반입해 왔을 지도 모르고 아예 한국에서 생산된 철을 비축했다가 철근회사에 넘겨서 성형만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허나 확실한 건 철근 과잉생산이 문제가 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엄청난 양의 철근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이죠.

마샤는 아주 단적인 예를 들어주었지만 엔화절상을 통해서 이득을 본 사람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안도 수혜를 좀 봐야 되겠는데?'

천우는 첫 번째 목표를 잡았다.

1985년도를 기점으로 아버지를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말이다.

수요일 오후, 천우가 종종 걸음으로 하원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이 동네 유치원은 스쿨버스가 운행되지만 수요일마다 스케줄을 비워서 주 5일만 운행하는 사이클을 만들었다.

해서 천우는 수요일마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등원했다가 혼자, 혹은 어머니와 함께 하원하곤 했다.

오늘은 한희연이 바빠서 천우 혼자서 하원했다.

유치원에서 천우네 집으로 가는 길목은 넓은 대로변이 있는데다 지하철 정류장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 파출소와 해병대전우회의 방범순찰단이 있어서 치안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만약 치안이 이정도로 좋지 않았다면 천우 혼자서 집에 돌아오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래봤자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서부터 한희연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가 걸어오는 길은 채 500미터도 되지 않을 터였다.

대로변을 지나는데 용달차에 특장을 매단 고물상들이 지나다니면서 고철을 매입하고 있었다.

-고철, 비철, 안 쓰는 가전제품 삽니다!

최근 들어 이 동네에도 점점 고철쟁이들이 늘고 있었다.

원래 이 동네에 고철을 매입하는 장사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4월 한 달 동안에만 적어도 세 대의 차가 늘어난 형국이었다.

천우는 이번 한 달 동안 계속해서 고철쟁이들을 주시했고 그들의 동향이 어떤지 감시했다.

이 동네에는 비록 고물상부지가 없지만 저녁에 가끔 아버지의 차를 타고 외식을 나갈 때에 보면 일렬로 늘어선 트럭이 유독 한 곳에만 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신화고철', 그것이 바로 이 동네의 고물을 싹쓸이하는 고물상이었다.

천우가 알기론 이 근방에만 해도 고물상이 족히 네다섯은 되는 것 같았는데 유독 신화고철에만 사람이 몰리는 것이 이상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신화고철에서 철 값을 얼마나 받는지 한 번 알아볼 생각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 접어드니 한희연이 보였다.

"천우야!"

"엄마!"

천우는 당장 달려가서 한희연에게 안겼다.

비록 전생의 어머니에게선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었던 천우였지만 한희연은 그의 텅 빈 가슴을 가득 채워줄 만큼 자상한 어머니였다.

처음엔 어머니와 이런 살가운 사이를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중년의 남자가 엄마라는 말과 함께 애교를 부린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이제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한다.

그 나이에 맞는 최소한의 행동거지, 그러니까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을 밖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조숙한 말투나 행동 등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로 살아가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네!"

"선생님 말씀 잘 들었고?"

"그럼요!"

"그래, 잘했어. 집에 들어가서 간식 먹자."

아마도 호박파이나 계란빵 같은 것이 식탁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따금 먹기 좋은 간식들을 차려서 천우에게 먹이곤 했는데, 파이와 빵이 그녀의 주력상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신화고철은 도대체 언제 가볼 수 있을까.'

여섯 살 아이가 돌아다닐 수 있는 행동반경은 생각보다 넓지가 않았다.

신화고철은 적어도 차로 5분 이상가야 있는 곳이기 때문에 천우와 같은 아이가 갈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희연을 끌고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터.

천우는 머리를 써보기로 했다.

자기가 고물을 주워 파는 것이었다.

"엄마, 사람들은 왜 고철을 주워요?"

"고철? 아마도 돈을 벌려고 줍는 것 아니겠니."

"고물로 물건을 살 수 있어요?"

"아니, 고물로는 살 수 없어. 고물을 팔아서 받은 돈으로 물건을 사는 거지."

"아하! 그럼 천우도 고물을 주울래요!"

"고물을 줍는다고? 돈을 벌고 싶니?"

"네! 나도 돈을 벌어보고 싶어요!"

재벌가의 장손이다. 아무리 끈 떨어진 재벌 3세라곤 하지만 이 동네에선 천우보다 잘 사는 아이들은 없었다.

게다가 현보 그룹의 계열사 이사도 아니고 본사의 총괄이사 아들이 고물을 줍는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허나 한희연은 달랐다.

"그래, 그럼 벌어보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랑 같이 고철을 주워보자꾸나."

"정말요?!"

"그래, 물론이지. 엄마가 고철 줍는 걸 도와줄게."

"엄마 사랑해요!"

천우는 한희연에게 덥석 안겼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게 참으로 힘들었었지만 이제는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아들이 한 번 되어보려 마음먹었다.

자식을 낳아본 적이 있는 천우로선 아들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기쁠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부모는 자식이 특별한 걸 해야 기쁜 것이 아니야. 사랑을 표현하는 것, 그게 가장 기쁜 일이 되겠지.'

그의 마음은 한희연의 마음을 정통으로 저격해버렸다.

한희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호호, 얘도 참. 그렇게도 좋니?"

"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고맙구나. 요즘 예쁘다는 말 듣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아들이 엄마 원을 풀어주네?"

연예인은 항상 대중들의 관심을 원한다. 더군다나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한희연은 아직도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예전만큼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 약간의 공허함을 천우가 채워주고 있었기에 그녀는 우울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왈왈!"

어디서부터인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우의 집은 넓은 마당에 2층으로 이뤄져 있었는데, 그 마당을 지키는 두 마리의 세인트버나드가 살고 있었다.

한희연이 개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현보 그룹 하청업체 사장이 외국에서 좋은 혈통을 골라서 선물한 것이 바로 충식, 충보 형제였다.

대문을 열자마자 두 마리의 거구가 달려 나왔다.

"헥헥, 왈왈!"

"우리 이쁜이들!"

비록 천우만큼은 아니지만 한희연은 두 마리의 개를 아주 정성스럽게 키워냈다.

이제는 한 가족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애정이 깊었다.

거실로 들어와 창밖을 살피니 거구의 개들이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리 마당이 넓어도 녀석들에겐 좁아보였다.

'저 덩치들이 뛰어놀기엔 이 넓은 마당도 비좁긴 하겠지.'

아무리 마당이 넓어도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천우가 집에 있기에 한희연이 매일 산책을 시켜주는 것도 무리가 있을 터, 두 마리의 세인트버나드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닐 것이었다.

가만히 개들을 바라보다 천우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물을 주워오면 어머니가 고생을 하시겠지. 으음, 차라리 그럴 바엔 개들을 쓰는 것이 좋겠어.'

천우는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렸다.

아마 그 만화에 나오는 파트라슈가 세인트버나드였을 것이다.

그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딱인데? 그림 나오겠어.'

우유를 배달하는 것과 고물을 주워서 나른다는 점에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달구지를 끌 수 있다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날 밤.

천우는 회사에서 돌아온 최호명에게 말했다.

"아빠, 수레를 만들어주세요."

"수레? 갑자기 수레는 왜?"

"고물을 주워오려고요."

"뭐? 뜬금없이 무슨 고물을···."

최호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한희연이 그에게 천우의 새로운 취미가 생겼음을 알렸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던 최호명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쭈, 이놈 봐라. 고물을 주워서 꼬마 고철쟁이가 되어보겠다 이거야?"

"나도 돈 좀 벌어보게요!"

"하하! 그래, 알았다. 달구지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지?"

"네!"

사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른다.

하원, 그 짧은 시간에 줍는 고철의 양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 수레 값이 더 나갈 수도 있었다.

허나 최호명은 아들이 벌써부터 경제관념을 갖고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기꺼이 집에 있는 손수레와 목재들을 희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현보 그룹은 주택건설과 무역, 전자를 주업으로 삼은 기업집단이니만큼 그 회사의 총괄이사 집에는 별에 별 잡동사니들이 다 있었다.

새로운 기획이나 신제품이 만들어 질 때마다 집으로 물건을 가져다 나르는 바람에 한희연은 그걸 치우는 것이 더 일이라고 구박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최호명은 그 덕분에 공사용 안전벨트로 개의 하네스를 만들고 가전제품을 나를 때 쓰려고 사둔 수레를 개조해서 개달구지를 만들 수 있었다.

저녁을 먹기 직전, 최호명은 달구지를 뚝딱 완성해냈다.

"짜잔!"

"우와, 달구지다!"

"쌍견마차라고 해야 할까? 하하,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신기하긴 하네."

최호명은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자신이 아들에게 돈 말고 뭔가를 또 해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고 그런 외아들이 벌써부터 경제관념을 가지려 호기심을 보인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는 천우의 이런 관심이 한낮 여흥거리로 끝나기보다는 계속해서 뭔가를 팔고 재화를 만들어내어 밑거름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기를 바랐다.

"아들, 아빠가 큰맘 먹고 만들어 준 거니까 너무 일찍 포기하거나 싫증내면 안 된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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