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
300화- 마른 땅에도 싹은 튼다(2)
“아니, 대체 저놈이 뭐라고 이 난린 건데?”
“아무리 세상 물정에 어둡다 해도 그렇지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알면 묻겠냐?”
한편 순식간에 사라진 민성의 등을 보던 능력자들은 저들끼리 입씨름하기 바빴다.
“어이고, 이 등신아. 이번에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영상 속 그 사람이잖아!”
하루에 능력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게시물만 적게는 수천 개, 많게는 수만 개의 글들이 올라오곤 했다. 대개는 자신이 타워에서 들고나온 아이템이나 스킬, 펫 따위를 자랑하는 게시물이 주를 이뤘다. 한데 그중, 단연코 압도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는 게시물이 있었다. 올라 온 지 불과 일주일도 채 안 됐건만 순식간에 최다 조회 수를 갈아 치운 게시물이기도 했다.
“아아, 그거? 근데 솔직히 그게 말이 돼? 어디 옛날 삼류 영화 같은 거 적당히 편집해서 올린 거 아냐?”
남자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간간이 괴수 토벌에 성공한 사례들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극소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괴수들의 습격에 살아남았다는 경험담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영상은 달랐다. 영상 안의 남자는 불의 정령처럼 보이는 펫을 다뤘고, 육중한 대검으로 괴수들을 거침없이 베어 댔다. 그리고 악마처럼 보이는 괴수를 맞닥뜨렸을 때 장난감처럼 괴수를 다루는 모습이란.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지 싶었다.
“정말 어떤 놈이 조회 수 노리고 편집한 걸 수도 있겠지. 돈이 되니까. 근데 난 이제껏 저런 대검 사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
동료의 주장에 남자는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을 고수했다.
“그러니까 들어가거든 괜히 엮이지 말자고. 진짜 소문대로의 성격이라면 오늘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알았어.”
“자, 다시 전파하겠습니다! 질서를 유지해 주십쇼! 여러분이 통솔에 따라 주실수록 입장도 빨라집니다!”
다시 군인들의 통제가 시작되자, 아까와 달리 사람들은 순순히 통제에 따랐다. 민성의 출현으로 남보다 먼저 출입하고자 했던 욕망이 확 식어 버린 탓이었다.
“오호.”
한편 여유롭게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온 민성은 과거와 달라진 내부 모습에 눈을 빛냈다. 막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불어 내부에 있던 군인들 역시 숫자가 줄어든 것 같았다. 지금은 남아 있는 난민들을 통제하는 일부와 타워에서 나오는 능력자들을 상대로 협상하는 이들이 전부였다.
“자자, 무화과나무로 만들어진 단단한 장궁 보고 가세요! 이 활로 말할 것 같으면 이번 전투에서 슬라임을 다섯 마리나 죽일 수 있게 했던 무기입니다! 품질은 직접 사용했던 제가 보증합니다! 지금 구매하시면 500코인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넘기겠습니다!”
“같은 물건을 저는 옆집보다 100코인 저렴한 400코인에 팔고 있습니다! 많이 보러 오세요!”
“뭐야, 임마! 그럼 저는 300코인!”
대신 비어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세입자들이 들어와 있었다. 타워의 물건을 파는 이들부터,
“소주에 물 탄 술 팝니다! 다들 요즘 술 귀한 거 아시죠? 한 잔에 50코인! 잡다한 아이템도 받습니다!”
“겨울을 뜨뜻하게 보낼 수 있는 군용 모포가 100코인!”
그런 이들을 상대로 돈 벌려는 이들도 꽤 많았다. 민성은 장사에 열중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타워 안의 상점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을 밖에서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아나가려는 저들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안이나 살펴볼까.’
계속 주변을 둘러보던 민성은 물 탄 소주를 팔고 있는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안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이들이 사발에 담긴 액체를 들이붓고 있었다.
“어서 오십쇼!”
젊은 남자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인이 세숫대야에 술과 물을 섞고 있었다. 잠시 안을 둘러보던 민성은 자리에 앉곤 주인장을 바라봤다.
“현금은 안 받습니까?”
현금이라는 말에 주인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과거, 카드를 내밀면 묘하게 표정이 일그러지던 사장님들의 얼굴과 비슷해 보였다.
“손님도 아시다시피 나라가 요 모양 요 꼴이니 현찰을 받아도 쓸 곳이 없습니다. 차라리 코인이 더 낫지요.”
젊은 사장은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엄지와 검지로 동그란 원을 만들어 보였다.
“그렇습니까? 그럼 한잔 주십쇼.”
“아, 손님. 죄송합니다만 저희 가게는 선불입니다. 워낙 먹고 도망가는 놈들이 많아서. 하하….”
민성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주인장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리곤 100코인을 지불했다.
“예! 여기 소주 두 잔 나갑니다!”
주인장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두 개의 사발을 민성 앞에 놓았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술맛을 음미하던 손님들이 민성을 힐끗 살폈다. 민성에게야 푼돈이나 마찬가지지만 본디 100코인을 벌기 위해선 전쟁에서 꽤 큰 공헌을 세워야 했다. 한데 그런 거액을 거침없이 사용하니 신기하게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술은 오랜만이네.’
하지만 민성은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사발 안의 희멀건 액체를 바라봤다. 사발을 들고 한 모금 삼키니 희미한 물맛 사이로 미세한 쓴맛이 느껴졌다. 정말 이름대로였다. 그래도 술맛은 나니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긴. 사기 쳤다가 걸리면 손목 정도론 안 끝나겠지.’
민성은 속으로 웃으며 순식간에 두 사발의 술을 비웠다.
“주인장. 그거 들었어? 이번 토벌로 내년에는 쌀 생산이 대폭 늘어날 거라는데. 막걸리 나오면 이 장사도 계속 못 하겠어?”
“이번 토벌도 그놈이 다 했다던데? 사실 정부에서 공들여서 키운 놈이라거나 그런 거 아냐?”
“흥. 정부가 호구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어? 아마 약점 잡혀서 협조하는 병신이겠지. 아무런 득도 없는 일에 힘이나 쓰고, 쯧쯧. 그럴 바에 죽치고 앉아서 타워 소집이나 기다리거나 괴수 토벌에 한 발 담그는 게 낫지. 에너지 스톤 나오면 꽤 쏠쏠하게 챙겨 주잖아?”
몇 없는 손님들의 대화를 안주 삼아 먹으니 금방이었다. 민성은 빈 사발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간만에 먹어서 그런지 물이 섞여서 그런지 몰라도 괜히 아쉬움이 들었다.
“사장님. 그 원액도 파십니까?”
민성이 초록색 소주병을 가리키자, 주인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곧 장사치의 그것으로 변했다.
“가능하기야 합니다만 보시다시피 한 병당 대략 스무 사발 정도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네가 1000코인이라는 거금을 낼 수 있겠냐는 간접적인 물음이기도 했다. 민성은 대답 대신 비꼬듯 까닥이는 주인장의 손을 잡았다.
“어… 어?”
1000코인이 들어왔다는 메시지에 주인장은 손까지 벌벌 떨었다. 이게 흔히 말하는 대박 손님인가 싶기도 했다.
“자, 이제 한 병 주시겠습니까?”
“물… 물론입니다!”
민성이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묻자, 주인장은 잽싸게 아내 옆의 소주병을 들고 와 조심스럽게 민성 앞에 내밀었다. 덤으로 작고 깨끗한 유리잔과 마른 육포 몇 조각이 딸려 나왔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아니, 맛있게 드십쇼.”
민성은 고개를 까딱여 보이곤 작은 잔에 술을 따르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간만에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배 속이 뜨뜻해지는 것이 치열한 삶 탓에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는 것 같았다. 물론 타워 안의 술집에서 더 좋은 술을 먹을 수도 있지만 각각 나름의 풍취라는 게 있었다.
“그나저나 사장님. 요즘 술은 사치품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꽤 확보하신 걸 보면 수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살짝 취기가 돌자 민성은 포장마차 구석에 쌓인 궤짝을 보곤 서슴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주인장은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민성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원래 이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제조법을 알고 있으니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이해했습니다.”
민성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주인장은 밝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차라리 저도 전쟁에 소집됐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살이가 뜻대로 안 되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해야지 않겠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민성은 주인장의 답변을 안주 삼아 남은 술을 목구멍에 털어 버렸다. 그리곤 많이 팔라는 말과 함께 포장마차를 빠져나왔다.
‘좋구만.’
민성은 천천히 개인 상점들을 훑으며 걸음을 옮겼다. 살짝 취기가 올라왔지만 움직이는 데 무리는 없었다. 게다가 여차하면 술기운을 제거해 주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아니! 여긴 원래 제 자리라고요!”
“뭔 개소리여! 분명 비어있었는데 어딜 사기 치려 들어!”
“잠깐 볼일 보고 왔더니 빈집털이 한 새끼가 어딜 개수작이야! 나와!”
중간중간 땅을 두고 다투는 능력자들의 쌈박질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간간이 쇠 마찰음 소리가 들려오는 걸 봐선, 이곳에서만 땅 싸움이 벌어지는 건 아닌 듯했다.
‘소유권이 있으면 싸울 일도 없지.’
구경꾼 사이에 껴 박수까지 치며 싸움을 유도하던 민성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본디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은 과거 관리자로부터 지급받은 토지였다. 당시에야 마땅히 쓸 일이 없어 놔뒀지만 오늘 같은 날엔 활용하기 좋을 터였다.
곧 타워 인근에 도착한 민성은 잠시 두리번거리다 눈을 번뜩였다. 작은 땅덩이에서 오직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네모꼴의 미세한 선이 빛나고 있었다.
“미숙한 암살자가 사용하던 단검 팝니다!”
“단검보다는 당신의 평생을 함께할 귀여운 펫을 추천드립니다! 한번 오셔서 자세히 보고 가세요! 적절한 값에 양도합니다!”
다만 들어가기 전에 땅 앞에 죽치고 앉아있는 사람들부터 치워야 할 듯했다.
“어서 오십쇼!”
민성이 땅 앞으로 다가가자, 양 상점의 주인이 동시에 소리치며 민성을 환영했다.
“단검 보러 오신 거죠? 그렇다면 잘 찾아오신 겁니다! 이 단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실용성 떨어지는 무기보단 확실한 능력이 보장된 펫이 낫지 않겠습니까?”
양쪽 상인은 서로 민성을 잡고자 열심히 입을 놀리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정작 민성의 표정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 뒤에 제자리니까 좀 나와 주실래요?”
“네?”
민성의 요구에 둘은 어벙한 표정으로 묻다가 곧 비웃음 지었다. 살짝 발개진 얼굴, 옅게 풍기는 술 냄새를 보니 대강 짐작이 갔다. 안전지대 내의 땅은 전쟁서 지대한 공헌을 쌓아야만 얻을 수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몰라도 그런 자들의 행세를 하고 싶은 철부지임이 분명했다.
“어디 부잣집 도련님이신진 모르겠는데 술을 자셨으면 곱게 돌아가쇼.”
“능력자라고 다 같은 능력자가 아니야. 기왕 할 거면 그럴듯하게 행세해야지. 이 바닥이 그렇게 녹록한 줄 알아?”
상인들은 허리를 바짝 세우곤 민성을 조롱했다. 돈이 힘의 잣대던 시절은 지났다. 두 상인은 아직도 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철부지 정돈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민성은 대답 대신 대검을 들어 바닥을 내려찍었다.
쾅-
“…….”
멍하니 땅 깊숙이 박힌 대검을 보던 한 상인은 그가 판매하던 단검을 들었다. 그리곤 민성을 따라 바닥에 내려찍었다.
깡-
추위에 얼어붙은 땅에 단검이 튕겨져 나오자, 상인은 헤픈 웃음을 흘리며 주섬주섬 상점을 정리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 그 녹록지 않은 바닥을 단번에 뚫어 버리시다니. 시… 실례했습니다!”
펫을 팔던 상인도 경쟁자를 따라 화급히 자취를 감췄다. 민성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땅 안으로 들어섰다. 커뮤니티 덕에 민성을 인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힐끔힐끔 민성의 좌판을 살폈다. 대관절 상위 1% 안의 능력자가 어떤 물건을 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감… 자?”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민성의 아이템 창에서 나온 것은 감자 더미와 말린 잡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