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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93화 (293/303)

# 293

293화- 무할름(5)

“그러니까 운빨 좋은 놈이 이기는 게임이다? 이게 게임이야? 도박이지?”

막말로 높은 계급의 카드를 손에 넣는다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운이 높은 쪽이 승리하는 게임. 질 떨어지는 도박과 같았다.

[네 말이 맞다. 왕과 여왕을 동시에 가진 쪽이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그래선 재미가 떨어지니 약간의 규칙을 추가했다.]

무할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설명을 이어 갔다.

[노예는 왕을, 농민은 여왕을 잡을 수 있다.]

“…….”

설명이 끝나자,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바삐 머리를 굴렸다.

‘원래 높은 계급의 카드를 가진 쪽이 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야. 하지만 저 말대로라면 승부는 알 수 없게 돼.’

만약 운 좋게 왕을 먹고 기선 제압 하고자 첫 턴에 냈는데, 상대가 노예를 내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노예와 왕을 함께 먹는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1승과 1패가 확정되는 꼴이니 말이다. 결국 새로 추가된 룰은 약자에게 반란 일으킬 힘을 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규칙은 그게 전부야?”

[그렇다. 시작하겠느냐?]

“대신 셔플은 번갈아 가면서 하는 걸로.”

민성은 눈가를 벅벅 긁적이다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예전에 얻었던 선악의 천칭을 사용할까 고심도 했지만 관두고 말았다. 영혼 소멸은 그에게도 리스크가 컸으니 말이다.

[그럼 내가 먼저 섞지.]

무할름은 불 속에 카드를 넣고 잘 흔들었다. 이윽고 불 속에서 카드 6장이 튀어나와 양측에 3장씩 분배됐다.

“후. 시작해 보자고.”

민성은 3장의 카드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그리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눈가를 긁적였다.

그에게 들어온 패는 농민, 기사, 왕이었다.

‘나쁘진 않네.’

어떻게든 왕만 통과시키면 승리. 즉, 왕이 노예에게 잡히지만 않으면 반드시 이기는 판이었다. 민성은 슬쩍 무할름의 표정을 훑었다. 묘하게 어두워 보이는 것이 곧 꺼질 촛불 같았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무할름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성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어차피 우위는 이쪽에 있다. 괜한 심리전보다 미리 기선을 제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무르기도 없는데. 선택이 잘못됐을 거라 생각하진 않나?]

“전혀?”

잔뜩 굳은 무할름과 달리 민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것보다 이거 시간제한 있는 것 같던데. 얼른 내야 하는 거 아냐?”

[보기보다 눈치가 빠르군.]

민성이 처음과 달리 쪼그라든 허공의 불덩이를 가리키자, 무할름은 씁쓸하게 웃으며 카드를 냈다.

민성의 카드는 기사. 무할름의 카드는 노예였다.

“어이구! 왕이 아니라 아쉽게 됐어?”

[…….]

무할름은 기사가 적힌 카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민성이 너무 당당하게 나와서 당연히 최고의 패를 내놓은 줄 알았다. 다만 그리 생각하게 유도한 건 아닐까, 다른 카드를 던진 건 아닐까 거듭 고민했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노예였다.

띠링-

민성 님께서 1세트를 승리하셨습니다. 2세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용하신 카드들을 넣어 주십시오.

[단순한 건지 아니면 교활한 건지 종잡을 수가 없군.]

무할름은 카드들을 불 속에 넣으며 민성을 노려봤다.

“네가 운이 없는 거지. 그리고 난 이런 게임에 굉장히 익숙하거든.”

그간 섭렵한 수많은 게임들과 적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튜토리얼에 불과했다.

2세트를 시작합니다.

촤륵-

‘무조건 여기서 끝낸다.’

민성은 앞에 놓인 카드들을 천천히 집었다. 운이 가미된 게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빠르게 2세트를 잡고 게임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노예, 농민, 기사

‘실화냐?’

그러나 새로이 들어온 패는 승리와 거리가 있어 보였다.

[카지노에는 게임 끝날 때까지 함부로 입 놀리면 안 된다는 격언이 있지. 주둥이 털다 영혼까지 털린 전례가 많아서 말이야.]

아까 민성의 행동을 마음에 담아 뒀던 건지, 무할름은 주저 없이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곤 입술이 귀 끝까지 닿는 괴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재밌네.”

민성 또한 따라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밝은 얼굴과 달리 속내는 달랐다.

‘아니, 장난해? 아무리 운빨 게임이라 해도 그렇지 무슨 패가 이따위로 나와?’

만약 5와 6중 하나라도 보낸다면 즉시 패배다. 즉 무조건 무할름의 패를 카운터 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게 도박의 묘미 아니겠나? 한 판 한 판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말이야.]

무할름은 당당하게 카드 한 장을 테이블에 툭 던졌다.

‘어쩔까.’

놈이 어떤 카드를 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민성이 잠시간 눈가만 긁적이자, 불의 거인은 히죽이며 민성이 고심하는 모습을 즐겼다.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쯧.”

불덩이가 사라지려 할 때, 민성은 혀를 차며 카드를 내밀었다.

민성의 카드는 기사. 무할름의 카드는 귀족이었다.

띠링-

무할름 님께서 2세트 첫 번째 게임을 승리하셨습니다.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사용하신 카드들을 넣어주십시오.

“후…”

민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비록 1패 하긴 했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다. 놈이 내는 카드에 맞춰 알맞게 낼 수만 있다면 역전승도 충분히 가능했다.

[보기보다 운이 좋군. 어차피 2세트는 내 승리로 끝날 것 같은데. 기권도 가능하다.]

무할름은 이미 승리를 확신했는지 자신감 넘쳐 보였다. 그러나 민성은 그것이 허세임을 잘 알고 있었다. 확률은 반반. 한 번의 선택에 승패가 엇갈린다. 놈이라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화륵-

테이블 위에 불덩이가 생성되어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운빨 게임이면 나도 운빨로 승부해야겠지.”

민성은 작게 중얼거려 아이템 창을 열었다. 그리곤 검게 빛나는 오만한 선인의 돌을 몰래 꺼내 쥐었다. 5~6성 스킬이 랜덤으로 발동되는 능력을 지닌 오만한 선인의 돌. 이 게임에 이보다 적합한 아이템은 없을 것이다.

[흥. 기세만큼은 인정해 주겠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아이템 사용, 오만한 선인의 돌.”

무할름이 카드를 내밀자, 민성도 작게 중얼거렸다.

화아악-

그러자 돌에서 검은 광채가 흘러나오더니, 굵은 사슬에 신체의 자유를 포박당한 초로의 노인 형상이 피어올랐다.

[어리석은 주인은 몰려 있을 때만 나를 부르는구나.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알았으니까 빨리 스킬이나 줘 봐요.”

민성은 점점 줄어드는 불덩이를 살피며 조롱의 눈빛을 보내는 노인을 보챘다.

[덧없는 인생. 덧없는 삶이로구나.]

노인은 몸을 동여맨 사슬 중 하나를 집어 민성에게 던졌다. 사슬이 가슴에 틀어박히자,

[스킬 지독한 오시가 발동됩니다.]

동시에 민성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독한 오시]

등급: ★★★★★

설명: 평생을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참현자가 진정 꿈을 이루고자 만들어 낸 사심 가득한 스킬이다.

효과: 어떠한 물체로 가려져있건 사물의 참모습을 투시할 수 있다.

쿨타임: 24시간

특수 사항: 오만한 선인의 돌로 발동된 스킬로서 스킬은 24시간 후 소멸된다.

“오오오!”

민성은 감동하여 다정한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정말 지금 상황에 딱 맞는 스킬이었다.

[한심한지고….]

그러나 선인은 혀를 끌끌 차더니 돌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것도 스킬인가? 그래 봐야 바뀌는 것은 없을 텐데?]

“그건 지켜보면 알겠지.”

민성은 무할름의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느라 용 썼다. 테이블에 놓인 무할름의 카드 뒷면이 너무도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픽-

민성이 카드를 냄과 동시에 불덩이가 소멸했다. 그러자 테이블에 놓인 카드들이 자동으로 뒤집혔다.

[이럴 리가….]

무할름은 믿기 어렵다는 듯 민성이 내놓은 카드를 멍하니 바라봤다. 카드 안에는 호미를 든 노인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반대로 무할름의 카드에는 여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럴 리가는 무슨. 이게 현실이지. 왜? 이길 줄 알았어?”

띠링-

민성 님께서 두 번째 게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남은 카드 확인 결과, 승패가 자동으로 결정됩니다. 최종 승리자는 민성 님이십니다. 축하드립니다.

제42 위계 악마 무할름을 굴복시키셨습니다. 원할 시 무할름의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연이어 나타난 메시지가 사라지기 무섭게 무할름의 목에 굵은 목줄이 채워졌다. 동시에 민성의 손등에도 불꽃 모양의 문양이 새겨졌다. 아마 무할름의 능력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일종의 증표인 듯했다.

[대체 어떻게 내가 여왕을 낼 거란 사실을 안 거지?]

무할름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는지 카드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긴? 궁금하면 네가 알아내야지. 마술사가 자기 밑천 보이는 거 봤어?”

민성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리곤 덤덤한 눈으로 무할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일단 밖에 네가 쳐 놓은 결계 같은 거랑 불 싸질러 놓은 것부터 치워.”

[…알겠다.]

무할름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충청도 전역을 덮고 있던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또한 건물에 들러붙어 있던 불들 역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킨 건 잘하네.”

민성은 무할름의 일 처리 확인을 위해 테라스로 나와 바깥을 응시했다. 울창했던 숲은 오간 데 없고, 메마른 벌판과 무너진 건물의 잔재 따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마을이 사라지고 있어?”

“무… 무할름이 사라진다! 대사제의 죽음에 무할름 님께서 분노하신 거야!”

“이게 대체….”

도마뱀들은 갑작스럽게 드러난 높다란 아파트를 넋 놓고 바라보거나 아우성치기 바빴다.

“저것도 네 작품이야?”

[그렇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나는 권능으로 그것을 약간 비틀었을 뿐이다. 진 것은 분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꽤 재밌는 광경이야.]

무할름은 민성의 옆으로 다가와 테라스 밑으로 펼쳐진 광경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같은 시각, 불길에서 멀리 떨어진 괴수 토벌군의 집결지 안.

“부… 부장님! 잠깐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전기를 든 장교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막사 문을 젖혔다.

“무슨 일이야?”

한창 작전을 논하던 이종범은 수하의 호들갑에 눈살을 찌푸렸으나 보고를 막지는 않았다.

“방금 경계 근무자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불이! 불길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뭐? 정말이야? 졸다가 헛것을 본 건 아니고?”

느닷없는 낭보에 이 부장은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간이 테이블에 놓인 커피 잔이 엎어졌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여태껏 작전 장교들과 머리를 맞댔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던 찰나였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커피 잔 수백 개를 엎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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