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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89화 (28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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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화- 무할름(1)

“…….”

명철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자, 전경민은 그를 한쪽으로 밀어 버리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민성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서로의 능력에 대해서 토의하는 시간이었던가요? 그럼 저부터 말하면 될까요?”

“낯짝이 두꺼운 건지 오지랖이 넓은 건지.”

전경민의 행각에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픽 웃었다. 그러나 눈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간 경험한 바론 명철보다 이런 부류가 더 속이 시커멨다.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해 어떻게든 보험을 들어 놓고자 하는 안전주의자, 혹은 위기 속에서 한몫 잡아 보고자 하는 기회주의자. 둘 중 하나일 게 확실했다.

“어휴,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저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제가 타워서 얻은 능력은….”

전경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헤픈 웃음을 지으며 능력자들에게 설명하려는 그때.

화륵-

잔잔하게 도시를 덮고 있던 불길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건 또 왜 저래?’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민성은 눈을 찌푸리고 불길을 응시했다. 집주인에게 걸린 도둑놈처럼 움찔거리는 것이 영 꺼림칙하게 보였다.

“부장님… 저… 저것 좀 보십쇼!”

“나도 눈은 있어. 그나저나 한동안은 괜찮을 거라 하지 않았어?”

이 부장은 장교를 노려보다 오순도순 모여 담배 태우는 병사들에게로 시선 돌렸다.

“운전수들 당장 돌아가서 시동 걸어! 빨리!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당장 철수한다! 빨리 타!”

그리곤 멍하니 불을 보는 능력자들에게도 화급히 명령하며 레토나에 올랐다.

“출발해!”

“예?”

“젠장. 비켜!”

이종범은 얼빠져 있는 병사를 뒷좌석으로 밀어내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건 또 진풍경이네. 천하의 부장님께서 바람에 불 흔들리는 정도로 호들갑 떨 줄은 몰랐는데.”

“능력자들 때려잡는 덴 이골 난 양반이 겁이 많네.”

일부 능력자들은 꽁무니 빠지게 달리는 레토나를 보며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도주 말곤 방법이 없으니까 튀었겠지. 일단 나도 빼는 게 낫겠지.’

민성 역시 서둘러 레토나에 올랐다. 신중한 놈이 냅다 도망갔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러자 민성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다수 능력자들 역시 몸을 빼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와 동시에 좀도둑처럼 움찔거리던 불길이 강도로 돌변해 무서운 속도로 덮쳐 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런 미친!”

상식을 초월한 속도로 확산되는 불길에 한껏 여유 부리던 능력자들과 그들을 기다리던 병사들은 서둘러 두돈반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불길은 그들의 도주를 용납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살려줘! 물! 물!”

“워터 실드!”

수풀을 타고 추격하던 불길은 삽시간에 군화와 신발에 옮겨붙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비명 지르며 불을 끄고자 했다. 수통 물을 들이붓거나 스킬을 사용했지만, 불길은 외려 휘발유를 먹은 듯 더 거세게 솟구쳤다.

“시발! 제발 누가 이것 좀 꺼 줘! 아아악!”

“아파! 너무 아파! 살려 줘… 제발….”

녹아내리는 입에선 절망과 고통에 찬 비명 소리만이 맴돌았다.

“눈치 없으면 죽는 거지.”

민성은 백미러로 지옥으로 변한 들판을 보며 혀를 찼다. 애꿎은 병사들의 죽음은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죽음은 가까운 이웃사촌 같은 존재였다. 어느 때고 시루떡을 들고 집 문을 두들길지 모르니 말이다.

“저… 민성님. 잠시지만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곧 죽을 사람처럼.”

잘게 떨리는 한 상병의 음성에 민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차 뒤편에 달라붙은 불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언제 붙었지?’

불의 확산이 전력 질주 하는 지프차의 꼬랑지를 물 정도로 빠르단 말인가.

“저 부탁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제3 난민 보호소에서 생활 중이신데 제 마지막을 전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직접 전해 드려.”

민성은 창문을 열고 차 뚜껑 위에 올라섰다. 그리곤 불붙은 뒷좌석에 대검을 휘둘렀다.

“됐지?”

“…예. 어?”

한 상병은 백미러로 떨어져 나간 좌석을 보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반동 탓에 천장에서 튕겨져 나간 민성은 사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얼씨구?”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살폈다. 갑자기 왜 멈췄나 했더니 떨어져 나간 좌석의 불길이 양 갈래로 갈라져 어느덧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지랄도 가지가지네. 한번 해 보자는 거지?”

민성은 불길을 노려보며 피식 웃다가 지프차에 다가가 한 상병의 수통을 잡아챘다. 그리곤 상병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줬다.

“출발해.”

“예? 무슨 말씀이신….”

“출발하라고. 부모님 보고 싶으면.”

한 상병은 당혹하여 민성을 바라보다 결심한 듯 가속 페달을 밟았다.

“강단은 있네.”

민성은 가볍게 발을 놀려 지프차를 앞질러 불길 앞에 섰다.

“흡!”

그리곤 땅에 깊숙이 대검을 찔러 넣고 있는 힘껏 힘을 줬다. 불붙은 바닥이 하늘 높이 솟구치자, 지프차는 깨진 울타리 사이로 맹렬히 질주해 빠져나갔다. 레토나가 빠져나가기 무섭게 불길은 다시 울타리를 고쳤다.

“충성!”

민성은 불길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에 피식 웃으며 얼른 가라 손짓했다.

“최대한 아끼려 했는데. 오늘 한번 끝장을 보자.”

불을 노려보며 중얼거리던 민성은 수통의 물을 손바닥에 쏟아냈다.

“수옥.”

마나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지면에서 작은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차 커져 발밑을 진하게 자극해 왔다.

쏴아아-

한국서 유일하게 바다와 인연이 없는 지방에 때아닌 해일이 발생했다. 성난 말들의 질주처럼 세차게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의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하늘과 맞닿을 정도의 높이와 그 끝을 모를 폭은 눈에 비치는 세상을 모조리 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민성은 주춤거리는 불길을 노려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어떤 놈의 잔재주인진 몰라도 싸움을 걸어왔으니 응당 받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파도는 무심하다 여길 정도로 제 역할에 충실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삼키려는 듯 검은 아가리로 불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물속에 잠겨 상황을 살피는 민성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민성은 물 밑바닥을 훑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도무지 지금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다. 당연히 꺼졌다고 생각한 불길이 바다 속 붉은 해초처럼 유유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종범은 물로도 소용없다 했지만 설마 이만한 물로도 꺼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젠장. 어쩌지?’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은 조금씩 낮아졌다. 선택지는 두 가지. 이대로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겨 몸을 빼거나 혹은 불길이 잠시 활동을 멈춘 틈을 활용해 불 속으로 들어가거나.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뜨거운 해초 사이를 지나쳤다. 이윽고 거대한 해초 밭 위를 헤엄쳐 지나려 하자,

띠링-

[업화의 봉인지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민성이 기포를 쏟아 내며 고개를 끄덕이자. 살랑이던 해초들은 슬며시 길을 터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길을 만들어 냈다. 민성은 혹시라도 해초에 몸이 닿을 걸 유의하며 조심스럽게 길로 들어갔다.

얼마나 걸은 걸까. 민성은 어느 순간 그를 감싸고 있던 물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대신 숨 막힐 듯한 더위와 열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코트가 어느 정도 열기를 감소시켜 줬지만 그래도 더웠다.

“후….”

어느덧 불길 속을 빠져나온 민성은 뜨겁게 달궈진 숨을 내뱉었다. 메마른 나무들이 그득한 숲. 현재 그가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민성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워, 고대 문명지 같네.”

민성은 숲 너머 저 멀리에 펼쳐져 있는 이질적인 광경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분명 길로 접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불 속에 잠긴 도시가 있던 자리엔 낯선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었다. 사진에서나 접하던 인도의 타지마할처럼 고전적이지만 웅장한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불길로 이뤄진 건축물들만 없었다면 이곳이 인도라 해도 수긍할 것 같았다.

‘괴수들이 만든 곳치곤 제법 괜찮네. 설마 바깥에서 보던 불들이 사실 이런 건물들이었던 건 아니겠지?’

민성은 이질적인 광경을 눈 속에 담으며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이글거리는 잎사귀 위를 기어 다니는 불똥 같은 생명체도,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하늘을 나는 불새도 모두 신기하기 그지없는 광경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묘한 아쉬움이 남았다. 어찌 됐건 계약에 따라 그는 이곳을 박살 내야만 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풍경. 최대한 머릿속에 그려 넣고 싶었다. 더위도 익숙해지니 참을 만했다.

“여기! 이쪽으로 와! 다른 인간이다!”

민성이 산보하듯 여유로이 걸으며 풍경을 만끽하는 와중, 지척에서 들려온 날 선 음성이 그의 귀를 자극했다.

‘저건 또 뭐야?’

민성은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이족 보행 하는 도마뱀 여럿이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나무로 된 갑주와 낡아 보이는 무기 따위를 들고 있었는데 딱히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다만 입에서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는 불꽃이 조금 거슬렸다.

“움직이지 마라!”

도마뱀들은 입꼬리를 히죽거리는 민성을 둘러싸고 창, 칼을 들이밀며 위협했다.

“처음부터 가만히 있었는데?”

민성은 신기한 동물 관찰하듯 도마뱀들을 바라봤다. 대체 사람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티노랑 동문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능력을 얻었나?’

스킬창을 살펴봤지만 딱히 변한 건 없었다.

“네놈도 그렇고 다른 인간들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신성한 불을 통과한 거지?”

민성이 실없는 상상을 하는 사이, 도마뱀 중 하나가 경계하며 질문 던졌다.

‘다른 인간들? 그래도 몇 놈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보네.’

민성은 바삐 머리 굴리며 허리 숙여 흙 한 줌을 쥐었다. 바싹 말라 있는 것이 아무래도 안과 밖은 별개의 세상처럼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지!”

“어이구, 죄송합니다. 사람이 원체 호기심 많은 종족인지라 그만 실수를 범했습니다. 저는 그저 짐꾼 역으로 딸려 온지라 아는 게 없습니다.”

민성은 얼굴 가까이 드리운 검날에 겁먹은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민성의 거대한 대검을 유심히 살피던 한 도마뱀은 대형 가방이라 판단하곤 고개를 돌렸다. 설마 그들의 몸뚱이보다 길쭉한 것이 검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지하 감옥으로 데려간다. 묶어!”

“예, 대장!”

도마뱀들은 대장의 명령에 잽싸게 민성의 몸을 포박하려 들었다.

“아, 손은 대지 말고. 말로 해 말로.”

민성은 싱긋 웃으며 등에서 대검을 뽑아 가볍게 휘둘렀다.

“음?”

도마뱀 병사들은 반듯이 잘려 나간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곤 소리 지르기도 전에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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