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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87화 (287/303)

# 287

287화 - 호출 (3)

“호오?”

“과거 일을 떠나 네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민성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자 이 부장은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얄밉긴 해도 그간 민성이 행해 온 업적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껏 민성이 해결한 일들은 결코 혜정 대사의 업적들에 밀리지 않았다. 적어도 혜정 대사에 버금가는 능력자. 그것이 이 부장이 민성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놈이 꼬랑지를 말고 도망갈 정도의 일이라면, 현재 국내서 최고의 능력자라 칭송받는 혜정 대사가 온들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거, 정말 바뀐 건지 아니면 바뀐 척을 하는 건지.”

민성은 흥미롭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후, 두 시간가량 자리서 대기했지만 추가로 나타나는 이는 없었다. 와중에 날아오는 질문이나 관심은 무시로 일관했다.

“더 올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출발하겠다. 모두 수송차에 탑승해.”

시계를 살피던 이종범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력들은 시동 걸린 수송차들 앞으로 능력자들을 인도했다.

“하고 많은 차 중에 두돈반이야? 야, 병사! 모포는? 가다가 얼어 죽으라고?”

“죄… 죄송합니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병사를 질타하는 목소리에 민성은 피식 미소 지었다. 그 역시 두돈반의 매서움은 잘 알고 있었다. 추위에 하반신이 마비되는 감각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런 일도 생각해서 다 챙겨 왔지.’

민성이 아이템 창 안의 침낭을 떠올리며 두돈반에 올라타려는 찰나,

“저, 민성 님은 따로 배차된 차가 있으니 저기에 탑승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병사의 조심스러운 제지에 민성은 발걸이에 올렸던 발을 빼며 고개를 돌렸다. 작은 지프차가 달달거리며 그의 승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지프차의 조수석에 올랐다.

“난장판이 되도 있는 놈만 대접받는 건 똑같구먼. 퉤!”

두돈반에 오른 일부 능력자들 사이서 작은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민성이 고개를 돌리자 하나 같이 입을 동여맸다.

“출발해.”

“예.”

무전기로 민성의 탑승을 확인한 이 부장이 명령하자, 길게 늘어서 있던 차량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량들은 빠르게 대교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도가 될지 모가 될지.”

이종범은 도로 양옆으로 어지러이 흐트러진 주인 잃은 차들을 보며 하얀 연기를 뱉어 냈다.

*

끼익-

어둑한 밤길을 헤치고 도착한 두돈반은 커다란 벌판에 도착하고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간간히 울려오는 총소리가 이곳이 전선임을 알렸다.

“아이고, 허리야! 삭신이 다 뻐근하네!”

“군대에는 이런 차밖에 없나요?”

몇 시간이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통에, 사람들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두돈반에서 내려왔다.

“하암.”

반면 레토나 운전수 옆에서 편히 졸면서 온 민성은 크게 하품하며 보조석에서 내렸다. 그러다 전방의 붉은 물감으로 칠해진 도시를 보곤 반쯤 감긴 눈을 비볐다. 화염 속에 잠긴 도시, 그 위로 흔들리는 불길은 꼭 바람에 나부끼는 수풀처럼 보였다.

“어이, 한 상병. 저기가 목적진가 본데?”

“그런 것 같습니다!”

“같이 들어갈래?”

민성의 농담에 한 상병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어색한 미소만 흘렸다. 직책이 운전수라곤 허나 귀가 없진 않았다. 여태껏 저 안에 들어갔다 복귀한 이가 없단 사실은 이미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농담이야, 농담.”

민성은 상병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렁이는 불길을 응시했다.

‘진짜 멀쩡하네. 어떻게 되먹은 곳이야?’

만약 이번 일을 맡을 경우, 여태껏 맡았던 그 어떤 일들보다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불길이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라면 진입 자체가 불가하단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충성!”

“상황은?”

민성이 상념에 잠긴 사이, 이종범은 현장의 장교에게 마주 경례해 주곤 즉시 현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아직까지 큰 이상은 없습니다만 점점 불길이 거세지는 것이 불안 요소로 꼽힙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장교의 답에 이 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이제껏 도시들을 점거하고 안주하는 양상을 띠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외곽으로 밀고 나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종범은 그의 멱살을 강하게 움켜잡고 속삭였다.

“난 그런 사안은 받은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된 걸까?”

“죄… 죄송합니다. 근례에 갑작스럽게 상황이 변한지라 보고가 늦었습니다.”

이 부장은 겁에 질린 장교의 눈을 말없이 노려보다 멱살을 놨다. 그리곤 작전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장교 또한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후….”

까다로운 고용주가 사라지자 고용인들은 곧 제집처럼 자리에 널브러지거나 담배를 꼬나무는 등 갖가지 행동을 보였다.

“다들 언제까지 눈치만 볼 거요? 어차피 같은 목적으로 모였는데 서로 잴 게 있나?”

일부는 답답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말문을 열기도 했다.

“그럽시다. 기왕 한배 탄 거, 우리 한번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좀 해봅시다.”

그러자 하나둘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저는 명철이라 합디다. 거, 잘들 좀 부탁드립니다.”

특히 스스로를 명철이라 소개한 남자는 바삐 입을 놀리며 분위기를 띄우고자 했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작고 왜소한 몸과 달리 얼굴은 세월을 직격타로 맞은 듯 꽤 늙어 보였다.

“요즘 연결망 활동이 좀 뜸한 것 같던데 음식 가리지 않는 건 여전해?”

“하하… 편식은 몸에 해롭지.”

얼굴을 피어싱으로 도배한 남자의 물음에 명철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연결망.

어느 날부턴가 생겨난 특수한 라인으로서 과거 인터넷 같은 활용도를 지니고 있었다. 서로의 활동을 올리거나 온라인 쇼핑몰처럼 물건을 거래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몇 가지 제한 사항이 있었는데, 오직 능력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타워에서 갖고 나온 물건들은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그런 것치곤 되게 신선한 음식 사진만 올리던데. 숙성된 음식 사진도 좀 올려 봐. 좋은 건 같이 봐야지. ‘잡식은 싫어요’ 님.”

남자의 말에 명철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하더니 서서히 일그러졌다.

“우웩. 더러운 새끼. 그렇게 살고 싶나?”

“저런 새끼들 때문에 우리까지 싸잡혀 욕먹는 거지.”

명철의 수려한 입담 덕에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던 여성 능력자들은 멸시와 모멸이 담긴 시선을 쏘아 보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크고 작음을 떠나 범법자들이었다. 그러나 범죄도 급수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범법자들 사이서도 성범죄자는 멸시 대상이었다.

“…혹시 연결망 운영잔가?”

명철은 애써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제로 연결망이 생긴 뒤로 많은 이들이 운영진에 대해 궁금해했다. 혹자는 타워 관리자가 제공한 추가 혜택이다, 혹은 누군가가 얻은 스킬의 능력이다는 둥,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지만 이렇다 할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운영자?”

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운영자였으면 이런 곳에 발도 안 디뎠겠지. 여자만 밝히지 말고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 그 나이 처먹고 그렇게 살고 싶어? 쪽팔린 줄 알아야지.”

“연결망 안의 일은 안에서 끝내는 게 좋지. 구태여 밖으로 끄집어낼 필요 있나?”

명철은 남자가 운영자와 연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죽일 듯 그를 노려봤다.

“바깥일은 바깥에서 끝내는 게 좋지. 구태여 더러운 사진들 올릴 필요 있나? 어지간히 나잇값 못하네.”

“이 새끼가!”

“왜? 정곡을 찔렸어? 꼬우면 덤비든가? 근데 여자 상대로나 힘쓰는 새끼가 제대로 된 능력은 있을지 모르겠네?”

둘의 언성이 점차 높아져 육탄전으로 돌변하려는 찰나.

“두 분 다 그쯤 하세요. 어차피 정부의 묵인하에 행하신 일들인데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요? 그보다는 당면의 일에 집중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중재자 격으로 나선 여인이 낫을 휘둘러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렇죠.”

“부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남자들은 목에 드리운 길쭉한 낫에 침을 삼키며 눈을 까딱였다.

귀부인.

그녀 또한 연결망 내에서 꽤나 유명한 인사였다. 명철의 주요 표적이 여성들이었다면 그녀는 어린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다만 무료 공개된 정보인지라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았다.

“판단이 빨라서 좋네요.”

귀부인은 붉은 입술을 할짝대며 낫을 거둬들였다. 그제야 남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 곁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근데 정부 놈 말대로라면 들어가지를 못한다는 건데 마땅한 수가 있나?”

“그러게. 그렇다고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될 거고. 뭐, 그것도 재밌긴 하지만 지치니까 사양하고 싶은데.”

험악한 분위기가 잦아들자 사람들은 저들끼리 숙덕거리며 앞일을 모색했다.

“흠….”

민성은 그런 이들을 조용히 관찰하며 눈 주변을 긁적거렸다. 아직 들어가는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보나 표본이 있으면 좋겠는데.’

멋모르고 불길에 뛰어드는 단세포 한 명 정도는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렇게 살피시나요?”

나긋하면서도 간드러지는 음성에 민성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머리를 뒤로 올려 묶은 여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함께 온 사람들은 그녀를 귀부인이라 부르던데, 별명 참 잘 지었단 생각이 들었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에는 세월이 새긴 주름들이 드문드문 보였고, 단아한 드레스 역시 꽤나 잘 어울렸다.

‘저런 복장으로 잘도 움직였네.’

“글쎄.”

민성은 귀부인이 신은 굽 높은 힐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단지 복장에 호기심이 갔을 뿐 대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귀부인은 드레스 끝단을 잘 정리하고 민성의 옆에 앉았다.

“당신은 참여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얼간이들 몇 모여서 머리 맞댄다고 좋은 생각이 나올 것 같지는 않거든. 차라리 기다리는 편이 낫지.”

민성은 이종범이 들어간 막사를 흘낏 쳐다보곤 자리를 뜨려 했다.

“얼간이 같은 발상이라도 말하는 사람에게 그걸 실현시킬 힘이 있다면 훌륭한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죠.”

“그럴 힘이 없으니까 구경하는 거지.”

“힘이 없다고요?”

민성의 말에 귀부인은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갑자기 들고 있던 낫을 사납게 휘둘렀다.

쇄액-

옷걸이 머리 부분처럼 휜 날이 목으로 날아오자, 민성은 반사적으로 상반신을 뒤로 젖혔다. 그리곤 몸을 일으키며 귀부인의 얼굴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귀부인의 몸은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 무슨?”

갑작스런 상황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쿨럭, 쿨럭.”

귀부인은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 내며 몸을 잘게 떨었다. 별거 없는 주먹질이었지만 뭉텅 깎여나간 체력과 마나가 강한 긴장감을 불러왔다.

“커헉!”

“설마 여자라고 봐줄 거라 생각했어?”

민성은 귀부인의 목을 짓밟곤 천천히 힘을 실었다. 귀부인의 눈이 터질 듯 새빨개졌지만 민성은 무심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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