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
284화 - 괴수 연구소 (6)
해가 떨어진 관찰소 안은 한산하다 못해 음습한 기운이 맴돌았다. 오직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감정들만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바람 탓인지 정문에 걸린 금일 운영 종료라는 팻말이 잘게 흔들리다 곧 잠잠해졌다.
“피익!”
“루마아알!”
“어우. 이걸로 오늘 일정도 끝인가?”
관찰소 직원은 유리관 속 작은 세상에 갇힌 괴수들을 보며 뻐근한 어깨를 두들겼다. 육시랄 것들을 관리하는 건 상당한 고역이었다. 더욱이 인류의 적에게 밥과 공간을 제공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범죄자를 관리하는 교도관들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끝이긴. 이따 하나 해부해서 올리란다.”
“또?”
동료의 대꾸에 남자 직원은 혀를 내둘렀다. 이수정이 연구소로 간 뒤, 새로 취임한 소장은 툭하면 직권을 이용하곤 했다.
“자리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이러는 건지….”
직원은 푸념을 늘어놓으며 유리관 옆에 놓인 기계를 조작했다. 그리곤 가장 상처가 많아 보이는 괴수를 끄집어냈다.
“끼아아아!”
자신의 미래를 예상했는지 괴수는 팔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한번 끌려 나간 이는 더 이상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끼이이….”
유리관 속의 노란 눈들은 그 모습을 서글프게 지켜만 봤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도축장을 차리든가 하지. 진짜 이게 뭔 짓인가 싶다.”
직원은 끄집어낸 괴수를 굵은 사슬로 잘 동여매곤 마취약을 주입했다. 그리곤 굵은 한숨을 토했다.
“벌써 몇 놈을 가져다 쓰는 건지. 그래 놓곤 시민들의 과열된 분노 탓에 죽었다고 하겠지.”
“그래놓고 뭔 일 터지면 전부 우리 책임으로 돌리려는 거 아냐?”
“그러니까. 어휴, 때려칠 수도 없고. 전 소장님이 공과 사는 칼처럼 구분하셔서 좋았었는데.”
요동치던 괴수의 몸이 잠잠해지자, 직원들은 괴수를 수레 위에 싣곤 출입구를 빠져나갔다. 잔잔히 우리를 비추던 천장의 빛이 꺼지자 적막만이 남아 외로움을 더했다.
삐걱-
그때, 갑자기 구석에 달린 CCTV의 몸통이 홱 하고 돌아갔다. 동시에 천장에서 거뭇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쓸데없이 이런 걸 달아 놔서 사람 귀찮게 만들고 있어.”
민성은 거미처럼 벽에 달라붙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손과 발을 바삐 놀려 인근에 있는 또 다른 CCTV로 다가갔다. 민성이 움직일 때마다 손에선 철퍽거리는 소리가 울렸는데, 손과 발에 부착된 분홍빛 만두 같은 것이 원인인 듯 보였다.
“좋았어.”
모든 CCTV의 몸체를 돌린 민성은 천장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그리곤 손발에 붙였던 분홍빛 물체를 떼어 내 아이템 창에 넣었다. 핑크 슬라임의 몸을 일부 도려내 만든 물건이라 하는데, 접착 시간이 한정돼 있지만 않았어도 계속 유용하게 사용했을 것이었다.
“야, 일어나.”
민성은 어둠 속을 유유히 헤쳐 나가더니 한 계란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특수 유리문을 강하게 두들겼다.
드르렁-
계란 안에는 바크가 검은 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요란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그에 따라 놈의 머리 위 뿔도 자연스럽게 흔들거렸다. 예전보다야 적어졌다지만 여전히 몸 곳곳에는 돌팔매질당한 상처들이 남아 있었다.
“일어나라고!”
그러나 몇 번이고 깨워도 바크가 요동조차 않자, 민성은 찐득하고도 무거운 살기를 뿜어냈다.
[웬 놈이냐!]
몸을 짓누르는 살기에 바크는 털을 쭈뼛거리며 육중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곤 빨간 눈으로 주변을 매섭게 노려봤다.
[정말로 왔군. 잠시나마 의심했던 걸 반성한다.]
그러더니 다리보다 작은 민성을 내려다보곤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 모습이 꼭 영락없는 개처럼 보여 민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약속은 무겁고도 신중해야지.”
[맞다. 언어의 무게와 속박을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여. 그대의 말과 행동에 더욱 믿음이 간다. 이제 어서 날 이 우리 속에서 풀어다오.]
민성의 말에 바크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이 답답한 곳을 나가 넓은 들판을 내달리고 싶었다. 청량한 물로 목을 축이길 원했다. 사실 계란 정도야 얼마든 부수고 나올 수 있었지만, 민성과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 참을성 있게 기다린 보답은 받아야지.”
민성은 대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곤 빠르게 내리그어 계란 모양의 감옥을 대각선으로 크게 베었다. 그러자 감옥은 강화 유리에 생긴 실금을 따라 힘없이 무너졌다.
위이이이잉-
그와 동시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잠잠했던 관찰소를 들깨우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직원들의 당혹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또한 예상 범위 내였다.
“야, 일단 이것부터 부숴 봐. 흔적조차 안 남게. 그 정돈 가능하지?”
민성은 기지개 펴는 바크를 보며 잘려 나간 감옥을 가리켰다.
[날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은데, 한때는 각 구역의 지배자들과 패권을 다퉜던 몸이다. 이쯤이야 어렵지 않다.]
바크는 시원하게 몸까지 털더니 거대한 앞발로 강화 유리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 정도면 됐어.”
유리가 달걀 껍데기처럼 산산조각 나 흐트러지자, 민성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만하면 그가 남긴 흔적은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가자.”
민성이 투명 스킬을 사용하려는 찰나,
“쿠윅! 쿠이카으익!”
“에디크! 카바니카!”
어느새 잠에서 깬 괴수들이 강화 유리를 두들기며 요란스러운 고함을 질러 댔다.
[자기들도 풀어 달라 하는군.]
“같이 데려갈 만한 놈 있어?”
갖고 있는 능력만 출중하다면야 풀어 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바크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데리고 가 봐야 방해만 될 뿐인 놈들이다. 차라리 혼자인 편이 낫다.]
“그래? 그럼 출발하자. 곧 사람들이 올 거니까. 유령출몰.”
민성은 바크에게까지 스킬을 적용시키곤 관찰소를 빠져나갔다. 반투명해진 자신의 몸을 신기하게 보던 바크도 서둘러 민성의 뒤를 쫓았다. 둘은 관찰소를 빠져나와 멀찍이 이동했다. 이윽고 반쯤 복구 작업이 끝난 한 다리 밑에 도착하고서야 그들은 달리는 걸 멈췄다.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민성은 달이 뜬 강을 응시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이다. 인간 세상으로 떨어진 주민들을 규합하라 하지 않았었나?]
바크는 예전 민성이 내밀었던 제의를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한데 나야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만 인간에게는 독이 될 일을 왜 진행시키는 건가?]
솔직히 당시야 다급하여 받아들였으나 고민하면 할수록 민성의 저의가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그쪽 주민들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건 불가능해. 숨어 살든 아니든 사람들 시체 위에 초석을 세우는 주민들도 분명 나올 거야.”
민성은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고 있던 바를 담담히 읊었다. 한국은 휴전 국가라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덕에 빠르게 괴수들을 진압하거나 대등한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병력이 부족한 아시아의 여럿 국가들은 직격타를 맞았을 것이 뻔했다.
[음.]
그에 바크는 묵묵히 민성의 말을 경청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면 차라리 이쪽에서 먼저 판을 벌리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기왕이면 아는 놈이 자리를 먹는 편이 나한테도 좋고, 겸사겸사 너희들 요리법도 좀 익혀 보려고. 너희들도 원래 살던 곳에선 각자 먹던 게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고작 음식 때문에 날 도와줬단 소린가?]
바크는 멍한 눈으로 민성을 내려다봤다. 장대한 포부가 밑바탕이 된 계획인 줄 알았더니 사심 그득한 냄새만 풀풀 풍겨 왔다.
“고작이라니? 세상에 먹고 자고 싸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어? 너희도 그게 안 되니까 고향 돌아가고 싶다고 발버둥 친 거 아니었어?”
[틀린 말은 아니다만….]
바크는 마땅히 반박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괜히 앞발로 땅을 후벼 팠다.
“그럼 됐잖아? 난 너의 탈출을 돕고, 넌 훗날 성공하면 나한테 주민들의 식사를 대접하고. 딱히 망설일 게 있나?”
민성이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자, 민성의 손을 겸연쩍게 내려다보던 바크는 고개를 저으며 거대한 앞발을 들어 툭 갖다 댔다.
[혹여 내가 실패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럼 네 능력이 그뿐이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민성은 아이템 창을 뒤적거리며 빙긋 미소 지었다. 그에게 바크란 긁지 않은 복권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기대도 없기에 실망도 없다.
“자, 그럼 애프터 케어도 확실히 해야지. 받아.”
민성은 커다란 가죽 주머니 여러 개를 꺼내어 내밀었다. 바크가 허락을 구하고 입으로 조심스럽게 끈을 풀어 보니, 찌부러져 있는 열매 같은 것들과 잡어 따위가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건 뭔가?]
“삶은 감자랑 생선구이.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야.”
민성은 천연덕스럽게 비밀스러운 집에 쌓여 있던 부산물들을 건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빈약한 식사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 귀중한 것을 이리 퍼 줘도 되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가는 길 굶지는 말아야지.”
덤으로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니 그야말로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격이었다.
[…잘 쓰도록 하겠다.]
민성이 무심한 듯 챙기는 모습을 보이자, 바크는 내심 감동하여 민성과 주머니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항이야. 새겨들어.”
민성은 주머니를 바크의 등에 잘 고정시키며 말을 이어 갔다.
“가는 길에 사람들과의 마찰은 최대한 피하고, 어디가 됐건 터 잡는 건 좋은데 되도록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아.”
[마찰은 힘닿는 한 피해 보도록 하겠다. 그러나 굳이 멀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나?]
“아이고 답답아!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바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민성은 마지막 가죽 주머니를 바크의 등에 매달며 녀석의 배를 툭 쳤다.
“예를 들어 네가 고향 땅에서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근데 어느 날 웬 잡것들이 나타나서 동포들 죽이고 터전을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 땅은 이제부터 자기네들 거라며 국가까지 만들었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런 놈들은 갈기갈기 찢어 죽이면 된다.]
민성은 어금니를 보이는 바크를 보며 미소를 던졌다.
“그치? 죽이지 않고선 못 배길 거 같지? 지금 사람들 심정이 딱 그래. 근데 네가 괴수들을 규합하다 보면 결국 무리가 커지고 결국 나라 혹은 그에 준하는 단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럼 사람들은 당연히 단합하여 토벌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고,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접근성도 쉬워지니 그 무리에 내가 껴 있을 가능성도 높아지겠지?”
[그런 끔찍한 일은 피하고 싶다.]
이미 민성에게 한 차례 호되게 당한 기억 탓에 바크는 몸서리치며 고개를 저었다.